5.
윤정우와 태종대왕함의 함장인 유준희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는 사령관실로 향했다.
사령관실에는 이미 다른 손님 몇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북양도에
주둔하고 있는 친위천군 3여단 5연대장이자 북양도의 군정장관인 김영진 대령
일행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님."
"안녕하십니까? 김 대령."
"예. 사령관님. 마침 귀국인사를 드리러 올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불러주시니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령관님."
"아닙니다. 의당 제가 찾아갔어야 하는 것인데, 죄송합니다. 김 대령."
"헌데, 무슨 일로...?"
"성격도 급하십니다. 일단 식사나 먼저 하시지요."
"네. 사령관님."
모든 일행이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는 커다란 식탁에는 어느새 음식들이 자리를 잡고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북양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반찬은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특히 북주시 앞 바다에서 잡힌 여러 가지 신선한
해산물이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름 모를 생선과 게, 바닷가재 등과 함께
북주시 특산인 큼지막한 야채와 채소들이 한 상 가득했다.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
식탁이었다. 윤정우는 북주시에서 재배되는 커다란 신선초를 하나 집어들었다. 지난
병인년에 왜국에서 들여온 신선초가 이곳 북양도에도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매번
윤정우를 놀라게 만들었다. 북주시 외곽의 농장에서 재배되고 있는 채소로는
신선초를 비롯해서 조선에서 가져간 들깨와 배추, 상추, 가지 등 많은 종류의 채소가
재배되고 있었는데, 북양도에서 재배되는 채소는 조선이나 북해도에서 재배되는
채소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북양도의 채소는 너무나 거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우리 북양도의 농업 기술관들도 처음에는 엄청난 크기로
자라는 채소와 야채의 생장에 기가 질렸을 정도니까요."
김영진이 하는 얘기는 윤정우를 비롯한 해외원정함대 장병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항상 북양도의 채소를 먹을 때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자연스럽게 화제로 삼고 있었다. 원래 북주시 일대의 빙하퇴적지는 토양이
비옥하기로 유명하다. 게다가 여름철은 낮이 무척 길기 때문에 한대지방인데도
식물들이 매우 빠르게 자라고 그 크기도 아주 컸다. 이곳 북양도의 북주시 일대는
여름이 석 달밖에 안 되지만 특이하게도 식물들은 온대지방보다 빨리, 그리고 크게
자란다. 그 이유는 원래부터 북주시 일대가 빙하퇴적지로 토양이 비옥한데다 낮
시간이 20시간이 넘는 여름철에는 그 풍부한 일조량이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는데
있었다. 그래서 보통 한 뼘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상추의 경우에는 거의 배추 정도의
크기까지 자랐으며, 배추 같은 경우에는 사람의 몸통 만한 것이 생산되고 있었다.
지금 식탁에 자리잡은 모든 채소들이 바로 북주시 외곽의 농장에서 재배된 초대형
채소들이었다.
윤정우는 아무리 보아도 거대한 채소들이 너무 신기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재배된 채소들을 먹을 때는 항상 가위를 준비해야 했는데,
너무도 큰 채소들이다 보니 한 잎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자르기 위해서였다.
"이것도 드셔보십시오. 사령관님. 고래고기 회입니다."
"고래고기요?"
"그렇습니다. 이곳 북주시 앞 바다에는 매년 엄청난 수의 고래들이 출몰하는데
인디언 어부들이 잡아오는 것을 구입한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잡아온 것이라 아주
신선합니다."
김영진의 말을 들은 윤정우는 붉은 색을 띤 큼지막한 고래고기 한 점을 고추냉이와
간장에 살짝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벌써 여러 번 북양도에 왔지만, 그리고
고래고기를 잘 먹는 왜국에서 다 년간 살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고래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윤정우는 그 맛이 궁금했다.
"흐음... 맛있는데요."
고래고기는 의외로 담백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영
이상했는데 입 속으로 들어가자 특유의 담백한 맛이 윤정우의 입을 순식간에
매료시키고 말았다. 어느새 윤정우는 자꾸만 고래고기 쪽으로 손이 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신선한 해산물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고래고기가
윤정우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었다. 윤정우가 이렇게 고래고기를 잘 먹자 식탁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고래고기의 맛이 어떤가 하는 생각에 너도나도 젓가락질을 하는
바람에 식탁 위의 고래고기는 순식간에 동이 나고 말았다.
"장관님. 혹시 고래고기 좀 더 구할 수 없겠소이까?"
"왜요? 맛이 있습니까?"
"예. 아주 맛있사오이다. 이왕이면 우리 장병들에게도 고래고기의 맛을 보이고
싶사오이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에 어부들이 또 다른 고래를 잡아온다고 하였으니, 그 고래를
아예 통째 드리도록 하지요."
"아이구... 감사하오이다."
"무얼요. 별 것도 아닌 것인데 이렇듯 맛있게 드셔주시는데, 외려 제가 고맙지요."
태종대왕함의 함장 유준희는 임진왜란 이후에, 이순신이 죽고 나서 새로운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어 조선 수군을 일으킨 유형(柳珩)의 자손이었다. 그 유형의
직계자손인 유준희가 무관이 되었고, 해군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평소
과묵하고 침착한 성품의 유준희가 이렇게 고래고기의 맛에 푹 빠지고 만 것은
의외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