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나저나 현명이 자네가 요번 가을에 군역을 치른다고 들었네만, 고것은 어찌된
일인가?"
누군가의 이런 말이 있자, 새참을 먹고 있던 박현명을 비롯한 왜인 출신 귀화인들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어 버렸고, 모두들 눈알을 돌리며 박현명의 입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박현명을 바라보는 왜인 출신 귀화인들은 모두 박현명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의 처지에 공감한
누군가가 이런 문제를 꺼낸 것이다.
"그것은... 일단 외인부대(外人部隊)에 지원서를 내기는 했지만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스므니다."
"고것이 먼 소리당가? 확실헌 것을 알 수가 없다니! 그럼, 군역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시방."
"......"
박현명은 말이 없었다. 자신도 외인부대에 대한 소문만 들었지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말을 해 줄 것인가. 그러나 외인부대에 대한 선망의 눈초리는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외인부대는 지난해(1870년)부터 창설된 새로운 형태의 군대를 가리키는 말이자,
외국인으로서 조선에 이민이나 귀화를 온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군역을
치르는 말로 상징되고 있었다. 왜인 출신의 이민자나 귀화인들이 조선 땅에
정착한지도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민자나 귀화인에 대한 정책은 조선
사람들과 여러 면에서 차별화 돼 있었다. 조정에서 이민과 귀화를 장려하고 있고,
또한 이민자나 귀화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는 여러 가지 정책들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차별하고 있는 정책도 없지 않게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민자나 귀화인들에 대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것이었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었다. 특히 이러한 차별은 토마스 글로버와 같은 서양 출신
귀화인에게보다는 박현명과 같은 왜인 출신 이민자나 귀화인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토마스 글로버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서양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할 정도의 귀화인들이었기에 특별히 그들을 겨냥한
정책을 시행할 필요성을 조정에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도 원인이었지만, 왜인
출신 이민자나 귀화인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감정이, 아직까지는 조정에서나
일반 조선 사회에서 상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왜인
출신 이민자나 귀화인들은 그들이 비록 조선 사람들과 똑같은 의무를 짊어지고
있기는 했지만 모든 권리까지 동등하게 부여받은 것은 아니었다. 조선 사람들과
똑같이 납세의 의무를 짊어지고 성실하게 납세하고 있기는 하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릴 수 있는 기회가 최소한으로 한정되어
있었고,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경오년(庚午年 1870년) 창설된 외인부대는 그러한 차별의
관행과 정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외인부대는 조선에 이민을 오거나 귀화를 한 외국인들을 겨냥하여 창설된 부대로
아직까지 전면적인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고 있는 현 상황에서 손쉬운 방법으로
군사들을 양성하고 외국에서 이민온 이민자들이나 귀화인들에게 정식 조선인으로서의
삶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측면에서 창설된, 말 그대로 외국인들만 지원할 수 있는
부대였다. 외인부대는 장교와 부사관들은 모두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반
군사들만이 외국인 출신 지원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든 외인부대의 군사들은
순수하게 지원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는데, 징병제로 할 경우에 자질이 부족한
자들의 유입이 있을 수 있었고, 또한 이민자나 귀화인들이 담당하고 있던 군포 납입(
군포를 납입하는 대신에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하는 제도로 바뀐 지 오래지만 아직도
일반 백성들은 군포 납입이라고 칭하고 있었다.)이 줄어들게 되면 그만큼의 세수입은
줄어들고 나라에서 부담해야 하는 군사들에 대한 훈련과 양성, 그리고 봉록에
소요되는 자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야 했기에 채택된 정책이다. 이렇게
지원자들로만 구성된 외인부대는 엄격한 사전 심사와 신체 검사, 체력 검증을 거친
후에 선발되었는데, 이렇게 선발된 인원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두 달의 훈련기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두 달의 훈련이 모두 끝나면 바로 자대 배치를 받고
본격적인 군 생활이 시작된다. 그리고 일반적인 조선 군사들의 병역 기간이 3년임에
반해 외인부대는 5년이라는 기간을 복무해야 제대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5년에
이르는 외인부대의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사회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 정식으로 조선 사람임을 증명하는 신분 증명서 호패(號牌)를 발급 받게
될 것이고, 호패가 있으므로 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 외인부대가 창설된 지 1년이 약간 넘은 시점이었기에 5년의
복무기간을 마치고 제대한 군사는 없는 실정이었지만 복무를 마친 군사는 일반 조선
사람들과 아무런 차별이 없는 의무와 권리가 보장되었으며, 군역에 종사하지 않는
이민자나 귀화인들이 60세까지 군포납입의 의무가 있는 것에 비해, 외인부대에
복무했다는 것만으로 군포 납입의 의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니, 지원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5년만 힘들게 고생하면 남은 몇 십 년을 세금 없이, 그리고 남은 생을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섭정공 김영훈이 이민자나 귀화인을 대상으로 하는 부대를 창설한다고 했을 때
조정의 원로 대신들이나 중신들은 한결같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지만,
언제까지 남아도는 인력을 썩힐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리고 조선의 웅비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전격적으로 시행되었고 창설되었다. 지금은
겨우 1개 연대 병력의 외인부대만 있는 실정이었지만 김영훈은 외인부대를 꾸준히
늘려 최종적으로는 1개 사단에서 1개 군단까지 확대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조선으로의 이민이나 귀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점에서는 이민자나
귀화인들로만 구성된 외인부대는 그대로 잔존시키고, 일반 조선인 부대에 이민자나
귀화인들을 배치시키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겨우 용돈 수준의
봉록을 받으며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형태가, 제대로 된 봉록을 지급하여 생계의 걱정
없이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형태로 바뀌게 될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현대 한국의 일반
병사들이 받는 수준과 비슷한 용돈 정도의 봉록만을 외인부대의 군사들은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창설된 외인부대에는 일반 조선군 부대에는 특별한 복무
수칙이 6개 존재하고 있었는데, 모든 수칙이 이민자나 귀화인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참고로 외인부대의 6개 복무 수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모든 외인부대원은 명예로써 조선에 충성을 다하는 지원병이다.
2)모든 외인부대원은 출신 성분, 인종, 종교를 초월하여 형제이며 전우들이다.
3)모든 외인부대원은 자신이 외인부대원의 일원이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
4)모든 외인부대원은 최고의 군인으로서 훈련은 강하게 받고, 병기는 최상의 상태로
정비하며, 나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항상 유지한다.
5)모든 외인부대원은 명령이 떨어지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이를
완수한다.
6)모든 외인부대원은 전투에 임해서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싸운다. 만약
부상당하거나 죽게 될지라도 반드시 적을 격파하겠다.
이런 복무수칙을 가지고 창설된 외인부대의 훈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외인부대의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싸워나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을 배양하는 것이다. 훈련이 끝나갈 때쯤 이들 외인부대 군사들은
조선을 위해서 멋있게 싸우고,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도록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외인부대는 일반 조선군 부대와 복장과 장비는 동일하였지만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모(軍帽)였다. 조선군의 일반적인 군모가 현대 한국군의
군모와 동일했고, 해병대의 군모도 현대 한국 해병대와 동일한 팔각모였는데,
외인부대의 군모는 현대의 UN군이 착용하는 것과 똑같은 파란색의 베레모였다.
그래서 외인부대는 외인부대라는 부대 명칭으로 호칭되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푸른
베레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군 일각에서는 너무 눈에 확 띄는 푸른 베레보다는
까만색의 검은 베레를 군모로 착용시키는 것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특전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검은 베레를 외인부대에게 착용시킬 수는 없다고
김영훈은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아직까지 특전사의 창설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특전사의 창설도 필요할 것이고 그때를 위해서 검은 베레는 남겨두고 싶은 것이
특전사 출신 섭정공 김영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외인부대에서의 군역에 뽑히기가 솔찬히 힘들다고 들었는디, 어찌 괜찮을랑가
모르것구만잉..."
"그려도 워쩌 것어. 나라에서 정헌 것잉께 혀야지... 그라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있던 것들이 모조리 없어진다고 허는디 요런 기회가 참말로 어딨 것는가?
안 그런가잉?"
"그렇스므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반드시 외인부대에 선발될 것이므니다."
이렇게 말하는 박현명의 얼굴에는 결의가 가득했고, 반짝이는 두 눈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충만했다. 박현명도 외인부대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벌써 자신이 알고 있는 몇 명의 귀화인이 지원하였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이들 조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생활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이렇게 조선 사람들과 동화하여 생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지만
외인부대의 복무는 또 다른 문제였다. 외인부대에서 5년 동안 복무하고 제대하면
받게 되는 군포 납입 의무에서의 해방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60세까지 군포를
납입하는 의무는 일반 조선 사람들도 같이 지고 있는 의무였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바로 외인부대를 복무한 후에 손에 쥐게 될 정식 조선 사람이라는 신분
증명서, 바로 호패였다. 그것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자신은 어떤 고난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먼. 현명이 자네는 반드시 군역에 뽑힐 것이구만..."
"고게 먼 소리당가! 그럼 이 사람들은 뽑히지 말고 현명이만 뽑히란 말인가!"
"아니, 내 말은 고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현명이처럼 뽑혔으면 좋겄다는 얘기
아니 것는가잉..."
주변에 있던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이 박현명과 다른 왜인들에게 이런 덕담(德談)을
건네고 있었다. 이렇게 박현명과 다른 왜인들에게 덕담을 건네면서도 그들의
낯빛에서는 한 가닥 미안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한때는 그들도 일반
조선 사람들처럼 이민자나 귀화인들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 이유 없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해를 같이 부대끼면서 생활하다 보니,
그들도 사람인지라 자신들과 똑같은 피가 왜인들에게 흐르고 있었고, 자신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박현명과 같은 왜인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고, 이렇듯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자신들이 지난날에는 왜 그렇게
이들에게 서운하게 대했을까 하는 미안한 감정이 저절로 묻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생각과 움직임이 비록 일부 지방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생각과 움직임이 점점 조선 사회에 퍼져나갈 때쯤에는 한층 성숙한 인간관계가
조성될 것이고, 좀 더 발전하는 조선이 이룩될 것이 분명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 yskevin에게 있으며, 아울러 글에서 오탈자 및 오류, 또는
의견, 건의를 보내실 분들은 리플이나 감상, 비평란 또는 작가의 개인 전자우편
[email protected]이나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택되신 의견이나 건의는 작가가 판단하여 글의 진행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케빈입니다.^^ 오랜만이죠... 죄송합니다.
사실 지난주에는 3권의 최종 교정작업 때문에 밤을 새서 교정을 봐야 했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연재를 빼 먹을 수밖에 없었고,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는 생각에
펑펑 놀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한가지 안내 말씀드립니다. 아마도 내일
3권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3권에 대한 증정 이벤트를 다시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감상문을 적어 달라는 것이 아닌 그저 선착순으로 이름과 주소, 우편번호,
연락처를 제 메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냥 메일만 보내는 것이니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겠지요. 이렇게 도착한 메일은 도착한 순서대로 증정본 증정 독자로 선정하여
3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97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