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12화 (212/318)

1.

"어이! 현명이! 우덜도 어여 가서 새꺼리랑 보리 그스름 먹드라고."

"예. 알겠스무니다요."

"자네들도 어여 가드라고!"

"예..."

박현명(朴賢明)은 보리 베기를 하던 일손을 멈추고 일행을 이끌고 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은 박현명을 부른 사내와 박현명을 빼더라도 족히

대여섯은 돼 보였다. 일행이 걸음을 옮긴 보리밭 귀퉁이에는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화톳불을 피워놓고 무언가를 굽고 있었다. 햇보리였다.

"어여 와. 먼 살일 나섰다고 고로코롬 일을 열심히 한당가잉. 다 먹고살자고 허는

일잉께 먹음서 혀야헐 것 아니겄능가잉..."

"예... 고맙스무니다."

박현명은 약간 어눌한 조선말로 대답을 하면서 밥이 담긴 함지와 햇보리 단 한

움큼을 받아 들었다. 한 사내가 넘겨준 햇보리 단을 받아든 박현명은 익숙한 솜씨로

햇보리 단을 불에다 굽기 시작했다. 아직 누렇게 익기 전의 보리라 그런지 약간

푸르스름한 기운이 남아있던 햇보리 단은 투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에서 익기

시작했다. 투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누런 연기가 피어오르자 박현명은 햇보리 단을

반대로 뒤집었다. 다른 쪽도 그을리려는 생각이었다.

"보리 그슬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을 봉께, 현명이 자네도 이제 어엿한 조선

사람이 다 됐고만잉."

"아따, 이 사람 말허는 뽄새하고는... 현명이가 어찌 조선 사람이 아니등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조선에 살기 시작헌지 폴새 오년이 넘었고, 조선말도 요로코롬 잘허는디

조선 사람 다 됐다니! 현명이를 비롯한 이 사람덜은 조선 사람이 다 된 것이 아니라

폴새 조선 사람이랑께! 고것은 자네가 말을 잘못헌 것여! 듣는 이 사람덜이 월매나

섭허것는가."

"하이구야. 내가 말 한 번 잘못혀갔고 요로코롬 타박을 다 듣고, 아이고... 그려,

내가 잘못혔고만... 미안하네잉."

두 사람의 그런 소리를 듣던 박현명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다만 훈훈한 웃음만

흘리며 햇보리를 굽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어느 정도 보리가 다 구워진 듯 하자,

박현명은 까맣게 그을린 햇보리 단을 양손에 쥐고 비비기 시작했다. 약간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지만 그렇게 참지 못할 정도의 뜨거움은 아니었다. 얼마만큼 비볐을까?

양 손바닥은 순식간에 까만 검댕이 묻었고, 겉껍질이 떨어져 나간 햇보리 단은 뽀얀

속살이 내비치는 보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양손에 남은 구워진 햇보리를 박현명이 입으로 불자,

까맣게 탄 겉껍질은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뽀얀 햇보리만 남았다. 손에 남은

햇보리를 양손으로 번갈아 옮기면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겉껍질을 털어 낸 박현명은

햇보리를 단숨에 입에다 털어 넣었다. 이것이 이른바 전라도 지방의 풍속 중 하나인 '

보리 그스름'이다. 보리 그스름은 미리 베어놓은 햇보리를 망종(芒種) 날 불에

구워서 먹는 풍습으로 이렇게 햇보리를 구워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 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전라도 지방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박현명은 입에 검댕을 가득 묻혀 가면서 햇보리를 구워 먹는 이런 풍속이

이제는 낯설지 않았다.

"아참! 현명이 자네는 고것을 알고 있당가?"

"무엇을 말쓰므 하시는 것인지...?"

"아, 거시기 있잖은가. 머시냐, 오늘은 보리에다 밤이슬을 맞혀 가지고 설라무네

다음날 먹어야 한다는 것을 여적 모르고 있었당가?"

"무슨 말쓰므 이신지...? 잘 모르겠스무니다."

"이런, 이런... 조선 사람이 된지 월매나 지났는디 여적 고런 것도 모르고 있었데..."

박현명에게 무엇인가를 얘기하던 사내는 정작 그 거시기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는 않고

혀만 차고 있었다. 사실 현명이 아무리 조선에서 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고 해서

조선의 풍속을 모조리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보리 그스름이야 전라도 일대에서

워낙 유명했던 풍속이고, 또 이렇게 농사일을 하는 짬짬이 배울 수 있는

풍속이었기에 쉽게 익숙할 수 있었지만 밤이슬에 보리를 맞히는 풍속의 경우에는

여러 지방에서 행해지던 풍속이 아닌 일부 지방에서만 내려오는 풍속이었기에 알리

없었다.

오늘은 바로 망종이었다. 일년 중에서 어느 날이 농사꾼에게 바쁘지 않을까 마는,

그래도 농사철에서 가장 바쁜 시기가 바로 망종이었다. 망종이란 말 그대로 벼와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들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망종과 관련된 여러 속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보리와

망종이 관련된 속담이 많았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되는 망종',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등등 보라와

망종에 관련된 속담은 이렇듯 상당히 많이 있다. 이렇듯이 이 시기가 되면 모든 논과

밭의 보리를 수확하고 거기에 물을 대 모내기를 준비해야 하는 때가 바로 망종이었다.

예전과 같이 수리 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때는 겨울에도 논에 물을 빼지 못하고

고스란히 물을 담아놓아야 했고, 그래서 보리 농사는 천상 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

陰地)에서만 지어야 했었지만, 천군의 등장으로 수리 시설 및 관계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와 보수, 신설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지금은 겨울에도 논에 물을 댈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겨울에는 물을 빼고 그곳에 보리를 심을 수 있게 된 지금은

여름에는 벼농사를, 겨울에는 보리농사를 지으면서 농가 소득을 증대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리농사를 논에도 지을 수도 있었지만 주로 밭에서 짓는 이유는

잎에서도 언급했지만, 논에 물을 대기 어려웠기도 하였지만, 그보다는 양지(陽地)에

위치한 논보다는 음지에 위치한 밭이 보리농사를 짓기 적합하였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보리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야 생장에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많이 내린

눈은 보리의 뿌리를 덮어서 이불을 덮은 것처럼 보온 효과를 가져와 보리가 잘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고, 봄이 되어 그 눈이 녹으면서 생기는 수분은 보리의

생장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그런데 양지의 논에서 짓는 보리농사는 눈이

내리더라도 그 눈이 햇볕을 받으면 금새 녹기 때문에 보리를 제대로 덮을 수

없을뿐더러, 보리 씨앗이 뿌려진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땅이 떠버리면서 보리의 뿌리가 땅에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논에 짓는 보리농사는 반드시 보리밟기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 논에서의 보리농사도 이제는 논에 물을 대 놓아야 할

필요가 없었고, 그리하여 보리농사를 지어 농가 소득을 늘리는 커다란 소득원이 되는

형편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에 맞지 않는 벼농사도 짓는

마당에 그쯤의 수고로움은 농사짓는 백성들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란

보리는 소만(小滿)이 지나면 익기 시작하는데 망종이 지나기 전에 수확을 마쳐야

보리를 수확한 논에 물을 대고 바로 모내기를 해서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확한 보리를 망종 날 밤에 밖에 내다놓고 이슬을 맞히는 이유는, 망종

밤이슬을 맞힌 보리를 다음날 먹으면 허리 아픈 병도 없어지고, 그 해를 병 없이

지낼 수 있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민간의 풍속까지 박현명을 비롯한

귀화 왜인(倭人)들이 속속들이 알기에는 5년이라는 기간이 한편으로는 길었고, 또

한편으로는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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