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왜국에서 양헌수의 해병여단이 죠슈군을 상대로 일전을 벌이고 있을 때 청국에
파견된 김병학은 한참 귀국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청국 조정의
실권자인 공친왕을 만나 조선이 법국과의 전쟁에서 승전한 것을 알리고, 청국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대하여 섬길 것을 다짐하였기에 청국 조정에서도 조선과 조선에서
온 사신, 그리고 조선 공사관에 대하여 과하다고 할 정도의 편의를 봐줄 정도였다.
사실 이번에 청국에 사신으로 김병학이 임명되어 온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다.
젊은 청국의 실권자인 공친왕을 잘 요리할 수 있고, 조ㆍ청 양국의 여러 가지 공동
관심사에 대한 이견(異見)을 잘 조율할 수 있는, 그리고 조선이 청국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경륜이 있는 인사를 찾다보니 소년왕의 장인인
김병학이 결정된 것이다.
김병학은 김영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병학은 북경에 오자마자 청국의
실권자인 공친왕을 예방하여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결과를 아뢰고 조선의 입장을
최대한으로 설명하여 조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청국 총리각국사무아문(
總理各國事務衙門)의 여론을 이끌었으며, 그 후에도 여러 번 공친왕을 예방하여
조선이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실리를 얻어내는데 주력했고, 왜국과의 관계에 대한
것도 사후 양해를 얻어 조선 조정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었다. 사실 청국 조정에서도
조선과 왜국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청국에는 사대(事大)하고 왜국(
倭國)에는 교린(交隣)해 온 것이 역대 조선 조정의 외교정책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청국 공친왕과 관리들은 그런 맥락에서 조선과 왜국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왜관이 조선에 설치되었기에 조선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공관을 설치했다고 이해하였다. 다만, 김병국이나 오경석은 독일과의 관계만큼은
아직까지 청국에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으로 알리지 않았으니, 그것은 독일
외교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는 청국에 사대하고 신속하고 있는 조선의 입장을
생각하여 청국이나 다른 서양 제국(諸國)에게 양국 관계를 알리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일이었지만 이쪽에서 먼저 나서서 알릴 필요는 없었다.
공친왕이나 총리각국사무아문의 관리들은 조선과 법국과의 전쟁 배상금 청구 등 전후
처리 문제에 있어서도 최대한 조선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중립을
내세워, 전후 처리 문제는 어디까지나 양국(조선과 법국)의 문제라는 점을 내세워
모르는 척 잠자코 있었지만, 서양 제국(諸國) 공관의 움직임이나 반응들을 입수하는
대로 조선 공사관에 알려줄 정도로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대정원 소속의
정보원들이 청국 구석구석에 파견되어 정보를 수집해오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그러한
정보들이 필요 없을지 몰랐지만 일단 청국의 호의는 받아들이고 볼 일이었다.
청국의 호의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지난 갑자년(甲子年1864년) 조선이
청국으로부터 들였던 차관 200만냥에 대하여서도 양식보총의 총탄으로 대신 상환할
것을 허락하였고, 아울러서 만주의 이름난 호마(胡馬)의 수입에 대해서도 파격적으로
수용하였다. 사실 그동안 조선에서는 만주산 호마의 수입을 원하기는 하였지만
청국을 자극할 것을 우려하여 그런 움직임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멀리
외몽골까지 오지랖을 넓혀 양식보총을 판매한 것이고, 그 판매 대금으로 몽골마를
수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청국의 이러한 호의로 이제는 수월하게 만주산 호마를
수입할 길이 열렸고, 의주(義州)를 통해 호마를 들여오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공친왕은 김병학이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사양 제국(諸國)의 조선 침탈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의 군사력을 기를 것을 주청(奏請)하였고, 그 군사력 증강 사업의 일환으로
만주산 호마를 수입할 것을 청하자, 그 자리에서 호마 1만 필에 대한 판매를 허할
정도로 호의를 보여 주었다. 사실 이러한 공친왕의 호의는 김병학으로서도 의외의
일이었으나, 공친왕을 비롯한 청국 조정의 여론을 살펴보면 그렇게 의외의 일도
아니었다. 안팎의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시달리고 있던 청국의 입장에서는 든든한
속방인 조선을 어떻게든 달래서 자신들의 품을 벗어날 수 없도록 달콤한 사탕을
쥐여줄 필요성을 이번 법국과 조선과의 전쟁으로 절감하고 있었고, 그런 생각이 마침
김병학의 주청으로 가시화된 것이었다.
"내일 가시면 언제나 뵙게 되겠사오이까?"
"그러게나 말일세. 아마도 역매(亦梅) 자네가 귀국하기 전까지는 다시 보기 어려울
게야..."
"섭섭하오이다. 대감."
"나도 그렇다네."
김병학과 오경석은 조선 사신들의 숙소인 옥하관(玉河館) 김병학의 숙소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전형적인 사합원(四合院) 형식의 옥하관 앞마당에서는 지금 한창
수행원들이 귀국 보따리를 꾸리고 있었다. 신년(新年)이 되기 전에 북경성을 떠날
생각으로 막바지 채비가 한창이었다.
김병학과 오경석은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교분이 없었던 사이였다.
김병학이야 당대의 세도가였던 안동 김씨의 주류(主流)로서 당당한 양반 사대부의
신분이었으니, 오경석과 같은 중인 신분의 역관과 교류를 할 일이 없었고, 실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도 없던 터였으니 그러한 일이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점은 오경석도 마찬가지였다. 일개 중인 출신 역관의 신분인 오경석이 대제학(大提學)
이라는 고명한 신분의 김병학과 따로 교통하여 어울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김병학이 이렇게 북경에 오게되고 오경석을 비롯한 여러 공사관 식구들과 허물없이
여러 일을 처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천군의 사상이나 역사관, 세계관을 누구보다도 많이 수혈(輸血)받은 김병학이다보니
일찌감치 남다를 사상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오경석의 인품과 학식에 매료된
측면도 있었다.
"그나저나 법국 외교관의 연락은 아직 없던가?"
"아직이오이다. 대감. 뭐, 그들 공사관에서 본국으로 사실을 알리고 훈령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것이지만, 동양과 서양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사온지라 시일이 조금 걸리는 듯 싶사오이다."
"그럴테지. 어디 하루 이틀 달려서 닿을 수 있는 데라 말이지."
이미 오경석과 법국 대리공사 벨로네와의 만남은 몇 번 있었다. 매번 법국 대리공사
벨로네의 청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고, 비공식적인 접촉이었기에 했지만 조선과 법국
외교관들은 전후 처리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 꾸준한 접촉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사실 그러한 만남은 오경석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벨로네가 원하여 접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만큼 저들이 애가 닳아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오경석은 벨로네와의 첫 대면에서 법국 함대의 침탈에 대하여 준엄한 논조로 꾸짖어
벨로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법국 대리공사 벨로네는 평소의 성정으로
본다면 당장 기함을 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오경석의 준엄한
꾸짖음에 얼굴만 붉히고 말았었다.
"사실 저들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을 게야! 암! 그렇고말고."
"그렇지요."
"비록 전쟁 배상금이 약간 과도한 감은 없지 않지만, 주권국의 국권을 유린하고 강제
침탈한 것에 비하면 과하달 것도 없지. 그리고 1천 2백에 달하는 포로가 우리 손에
있는 바에야 저들이 들어주지 않을 수 없지."
"맞습니다."
김병학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비록 실리를 취하기 위해 청국에
신속하고 사대하고는 있지만 청국도 어쩌지 못한 서양의 침탈을 막아낸 나라의
사신이라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2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거금을 졸지에 물어주게
생긴 법국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로즈 제독 이하 조선 원정에 관여한 모든 인사의
주리를 틀어도 시원치 않을 것이지만 단 하루의 전쟁으로 대외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또는 정치적으로 막대한 실리를 취한 조선의 입장에서는 로즈 제독 이하 조선
침탈에 관계된 모든 인사에게 상을 주어도 마땅할 정도였다. 이 일은 앞으로 조선이
웅비(雄飛)하는데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는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병학과
오경석은 말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것을 이심전심으로 느끼고 있었다.
케빈입니다. 오늘은 조금 분량이 적네요. 이렇게 죠슈군과의 전쟁을 마무리지으며
5권을 끝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이 보입니다. 여러 독자 대감들도 약간 지겨운 느낌이 들었겠지만 저도
약간은 그런 느낌이 들었답니다. 모든 것이 제가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사실 5권
분량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그러나 왜국으로 출병하였는데 그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어서, 상당 부분 그 장면에 할애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장난
아니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출판본에서는 빠지는 장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죠슈군과의 전쟁 장면이냐? 아니면 다른 장면을 빼거나 뒤로 돌리느냐 하는 것으로
고민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슬럼프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도 잘
써지지 않고 죽을 맛입니다. 이상합니다. 빨리 제 페이스를 찾아야 할 것인데 저도
죽을 지경이랍니다. 한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회부터는 6권이
시작됨과 동시에 1871년으로 바로 넘어가서 시작할 예정입니다. 5년이 흐르지요.
그래서 그 준비로 연재가 건너 뛸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3권의 출판 문제
때문에 연재가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판사 얘기로는 이번 주 말이나 다음 주
초에는 책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글을 쓰는 저도 최종 교정을 봐야 하기에 시간이
별로 여의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슬럼프라 글도 잘 써지지 않는데 출판
교정까지 보게 생겼으니, 주 2회의 연재 주기도 맞추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죄송할 뿐입니다. 그리고 3권이 출판되면 바로 3권에 대한 증정
이벤트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벤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회 연재에서 언급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회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만...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96 새로운 땅, 새로운 사람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