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야마가타가 이끄는 본진의 선두가 조선군의 포격에 괴멸 당하면서 교헤이의 선봉,
군타로의 중군과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고 더 이상 진격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진은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귀를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행음이 있고 나서는 어김없이
엄청난 폭음을 동반한 포탄이 떨어졌으며,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일순간에 큰 웅덩이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였고, 폭발의 권역에 있던 군사들의 몸은
갈가리 찢겨져 나가기 일쑤였다. 몸뚱이 채로 하늘높이 솟구치다가 떨어지는
군사들이 부지기수였으며, 찢겨져 나간 주인 잃은 살덩이는 뒤에 있던 본진 군사들의
얼굴로, 머리로, 몸뚱이로 비 오듯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죽어간 군사들이 흘린
피로 히사노강(久野江)은 삽시간에 피로 물들어 버렸다. 끔찍했다.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막부군과의 전쟁으로 수많은 전장에서 목숨을 바쳤지만 이번과
같이 엄청나게 참혹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교헤이와 군타로가 이끌던 선봉과
중군이 있는 곳에는 엄청나게 터지는 총포탄 소리가 끊이질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더불어서 군사들의 비명도 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본진의 군사들은 공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군감 야마가타는 조선군의 포격에 몸이 갈가리 찢겨져 죽음을 당했다.
야마가타만 죽은 게 아니었다. 야마가타의 부장 야마타 호스케도 같이 죽었다.
이제는 소수의 장수들만이 살아남은 상태였다. 대장과 부장이 없는 상태에서의
죠슈군 군사들은 장수들이 아무리 독전을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들 겁을
집어먹고 발길을 돌려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급기야는 봇물 터진 것처럼 키쿠가와초(
菊川町) 방면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장수들의 독전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싸워야 한다는 이성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살고자 하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
지경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병장기도 버려버리고 차가운 히사노강에 발이 빠지든
말든 달리고 또 달렸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달렸다. 도망가기에 급급한 죠슈군
군사들의 눈에 히사노강과 덴부강(田部江)이 합쳐지는 지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그 지점만 벗어나면 키쿠가와초가 지척이었다. 그리고 키쿠가와초를 지나 코야가와강(
木屋江)을 건너기만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조선군이 아무리 강력한 화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조선군이 아무리 야차(
夜叉)와 같다손 치더라도 코야가와강만 건너면 살 수 있었다. 걸음아 나를 살려다오
하는 식으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죠슈군 군사들의 얼굴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곧 절망의 탄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덴부강에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이는 가 싶더니 한 무리의 기병대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나오토가
이끌던 5천 별동대는 기병이 없었다. 그렇다면 저들 기병은 조선군이 분명했다.
참담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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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를 조정한 후로 저는 많이 편해지기는 했지만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은
기다리기 힘들다고 하시는 분이 많네요. ^^;; 그러나 앞으로 이런 연재 주기는 지킬
생각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연재 주기가 빨라지는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재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주소를 안 보내주신 증정본 선정 독자들이 계신데 그
분들은 안타깝지만 증정본 증정 선정에서 제외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95 높은 산 깊은 골...12
"처참하구만..."
"그렇습니다. 여단장님."
양헌수는 참모들을 이끌고 전장을 순시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있었던 전투는
조선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피로 얼룩진 계곡은 한 평생을 무장으로서
살아온 양헌수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직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접전이었고, 승전이었기에 기분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었지만 너무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점이 양헌수와 참모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번 전투로 죽거나 상한 왜군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했지...?"
"거의 3만에 육박합니다. 여단장님."
양헌수도 이미 작전참모의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냥 보고를 받는
것하고,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나와 확인을 하는 것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여단본부에서 보고를 받을 때에는 그저 좀 많이 숫자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막상
전장을 둘러보면서 그 소리를 듣자 정말이지 엄청난 왜군이 죽었거나 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양헌수 일행이 둘러보고 있는 구야강 방어선에서 죽거나 다친 죠슈군 군사들만
2만이 넘었다. 그리고 전부강에서는 4천이 넘는 죠슈군 군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목옥강변에서 조선군 마군연대와 격돌한 죠슈군 군사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3만을
헤아린다. 그리고 1만 5천에 달하는 군사들이 조선군의 포로가 되었다. 전부강에서
돌격해 온 조희순이 지휘하는 마군연대 3대대의 군사들에게 상당수의 죠슈군
군사들이 변변한 저항도 하지 않고 지레 겁을 먹고 항복해 버렸고, 국천 마을로
도망쳐 목옥강을 건너려던 일부 죠슈군 군사들도 뒤따라 들이닥친 이종승의 마군연대
2개 대대에 의해 포위 당하여 퇴로가 차단 당했다. 평소 칼날 같은 군기와 엄청난
전의를 보여줬던 죠슈군의 강군(强軍)도 조선군의 엄청난 화기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 꼴이 되고 말았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조선군 화기에 기선을 제압
당하고, 우두머리들까지 모조리 몰살당해, 군사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심리적으로 공황에 빠진 탓이 컸다. 처음 들어보는 엄청난 총포탄의
소리며, 죽어가거나 쓰러지며 울부짖던 동료들의 소리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던
것이 죠슈군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스스로 자멸하게 만든 주된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세밀한 조선군의 포위망을 뚫고 야마구치(山口)까지 도망칠 수
있었던 군사들은 채 5천이 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조선군의 피해는 경미하다면
경미했다. 세 군데의 전투에서 5백이 채 안 되는 군사들이 죽거나 다쳤을 뿐이다.
그것도 아군의 오폭에 의한 사고로 인한 사상자를 빼면 나머지는 대부분이 목옥강변
전투에서 벌어진 사상자였다.
구야강 방어선 전투에서 발생한 조선군 임시 박격포대대의 오폭은 최악의 인명피해를
불러왔다. 겨우 백 미터가 채 안 되는 좁은 계곡에서 펼쳐진 100문이 넘는 박격포의
일제 방포는 결국 김종오가 우려했던 대로 아군의 오폭에 의한 아군 사상자
발생이라는 끔직한 결과를 가져왔다. 박격포라는 것이 개활지에서 적의 돌격을 그
뛰어난 즉응성으로 저지하면서, 적에게 치명적인 출혈을 강요할 수 있는 요긴한
화기임에는 틀림없었으나, 구야강 방어선에서처럼 폭이 좁고 긴 회랑형 지형에서는
그 운용이 대단히 까다로운 화기임에도 틀림없었다. 결국 임시 박격포대대장으로
임명된 김종오의 우려가 현실로 구현되고 말았다. 다행히 오폭이 발생하고 나서 바로
방포를 중단하였기에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구야강
계곡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보군 2연대 군사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도 50명이 넘는 2연대 군사들이 아군의 오폭으로 죽거나 상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훈련과 전술의 개발, 운용에 있어서 큰 교훈을 남기기에 충분한
숫자였다.
목옥강변 전투에서 죠슈군과 접전한 마군연대의 군사들이 피해가 컸는데, 죠슈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다 발생한 피해가 대부분이었다. 죠슈군이 논두렁을 비롯한 일반적인
은폐ㆍ엄폐물을 거점으로 삼아 저항했다고는 하지만, 죠규순 기병대(奇兵隊)의
용전분투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2천이 넘는 기병대(奇兵隊) 군사들이 모두
양식보총(攘式步銃)으로 무장하고 있었기에 그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죠슈군
수뇌부는 애초에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은 다카스기의 기병대(奇兵隊)와 기병대(
騎兵隊)의 모든 군사들에게 양식보총을 지급하였고, 남아있는 모든 양식보총탄까지
몰아줬기에 그들과 접전했던 마군연대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인 K-4 고속 유탄발사기의 운용의 문제가 드러난 전투가 바로 목옥강변
전투였다. 다른 두 군데의 방어선에서도 일부 문제가 드러나기는 했지만 마군연대에
임시로 배속된 K-4 고속 유탄발사기 사수들은 기대했던 만큼의 완벽한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만약 잘 훈련된 현대 한국군 병사에 의해 2정의 K-4 고속
유탄발사기가 운용되었다고 한다면 목옥강변에서 조우한 3천의 죠슈군 군사들 정도는
충분히 섬멸할 수 있었어야 할 것이나, 불행히도 K-4 고속 유탄발사기를 운용한
군사들은 조선군이었다. 박격포나 한-4198식 기관총, 그리고 개인용 화기인
유탄발사기에 대한 훈련은 충분했다. 그러나 K-4 고속 유탄발사기는 달랐다.
조선군으로서는 처음 운용하는 화기였고, 배치되고 나서 충분한 방포 훈련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실전이었다. 강화도에서 부대가 재편되고 부랴부랴 몇 번의 방포
훈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손에 익을 정도의 훈련에 불과했다. 그러고는
바로 왜국으로 출병하였다. 왜국에 도착해서는 왜인들이나, 막부측 연락관의 눈에
노출되는 일을 염려하여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전에서 성능만큼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비록 죠슈군의 기병대(騎兵隊)를 섬멸하여 아군
마군연대의 운신의 폭을 넓혔다고는 하지만 다카스기의 기병대(奇兵隊)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기에 마군연대도 상당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식보총의 한계가 드러난 전투가 바로 목옥강변 전투였다. 일반적으로 보군이
사용했을 때에는 별다른 문제가 있을 수 없는 우수한 소총이 바로 한식보총이다.
그러나 한식보총을 보군이 아닌 마군이 사용한다면, 단 한번의 일제 방포 후에
돌격해야 하는 마군의 특성상, 단지 그저 그런 정도의 소총에 불과한 것이 또한
한식보총이었다. 일제 방포 후에 말을 몰아 적진을 향해 돌격하면서도 방포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마군용 소총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었던 전투가 바로 목옥강변
전투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기병대나 인디언처럼 말을 달리면서
방포하고 다시 장전할 수 있는 소총이 지금의 마군에게는 필요했다. 물론 마상(馬上)
방포가 평지에서의 방포처럼 안정적인 실력을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최소한
마상에서 돌격하면서 재장전하고 방포할 수 있었다면, 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압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대부분의 마군연대 군관들이나 군사들은 느끼고
있었다.
"일단 부상당한 왜군들에게 우리 군사들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치료의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포로로 잡힌 왜군들에 대해서도 일체의 가혹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그래도 제 1친위해병여단의 이번 왜국 출병은 나름의 준비를 한 출병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충분한 의료진의 동행이었다. 7천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인원이 해외로 출병하여 전투를 벌이는데 따른 많은 수의 의료진도 동행할 수 있도록
조정의 명이 있었고, 양헌수 이하 참모들의 의견도 조정의 뜻과 같았다. 그래서 민간
출신으로 구성된 대규모 의료진의 합류가 있었고, 그 의료진이 활약할 때가 바로
지금부터였다. 조선군과 죠슈군과의 전투, 그리고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발생한
사상자로 인한 감정의 골은 쉽게 메울 수 없었지만, 의료진의 치료로 일반
왜인들이나 전투 중 상한 왜군들이 조금이라도 조선군에 대한 나쁜 감정을 지울 수
있기를 양헌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조선과
왜국과의 관계가 정립되던지 양국 백성들이 서로 원수처럼 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양헌수는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