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08화 (208/318)

34.

K-4 고속 유탄발사기는 괴물이었다. 급속 사격시 1분에 6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의 K-4 고속 유탄발사기에 숨죽이고 지켜보던 마군연대 군사들도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퉁! 퉁! 퉁! 투투둥! 투투두둥!] 우렁찬 굉음과 함께

발사되는 유탄은 어김없이 죠슈군 군사들의 몸을 찢고 있었고, 마군연대의 군사들은

별다른 일을 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아직까지 죠슈군 마군은 쏟아지는 유탄의

불벼락에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보군이 침착하게 은폐와 엄폐를

하는 것이 상당한 수준의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최현필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고

있었다. 어서 수색대대의 1개 중대가 와야 돌격을 할 것인데, 아직까지 수색대대

군사들은 오지 않고 있었다. 이곳 개활지에서 소월 마을까지는 기껏 2Km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논두렁을 끼고 은폐한 죠슈군

보군의 움직임은 뜻밖에도 정연해 보였다. 마군이 지리멸렬한 반면 보군은 그렇지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죠슈군 보군에 의해 방어선이 구축될 수도 있었고, 그렇게되면

마군연대는 제대로 된 전공도 세우지 못하고 이곳에서 돈좌(頓挫)할 수도 있는

상황이 최현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K-4 고속 유탄발사기의 위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지만 유탄의 수는 한정되어 있었다. 2정의 K-4 고속

유탄발사기는 각각 500발 정도의 유탄밖에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1정당

500발이라면 언뜻 많은 숫자의 유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그렇지 않았다.

1분에 50발씩 발사한다고 쳐도 기껏 10분이면 동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적의 보군은

두툼한 논두렁을 의지하며 쏟아지는 유탄의 폭우를 용케도 피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직사화기인 K-4 고속 유탄발사기로는 논두렁 뒤에 은폐해 있는 적의

보군을 격멸할 방법이 없었다. 최현필은 초조하게 시계를 보면서 가끔씩 뒤를

바라보고 있는데 멀리서 수색대대 군사들의 얼룩무늬 위장복과 하얀 설상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수색대대 군사들이 이제야 오고 있었다. 1개 중대 160명의 수색대대

군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비록 단독군장으로 뛰는 것이지만 무척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연대장님."

"......?"

이종승은 최현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보군과 연합하여 적을 깨트릴까요? 아니면 우회하는 방법을 택하시겠습니까?"

"음..."

수색대대의 1개 중대 군사들이 보강됐다고는 하지만 수색대대는 기본적으로

개인화기밖에 보유하지 않고 있었다. 한식보총과 K-3 분대지원화기 16정, 유탄발사기

16정이 화력의 전부였다. 죠슈군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화력이었지만 지금처럼 적이

논두렁을 의지해서 방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믿음직한 화력도 아니었다.

"강행돌파 해야하지 않겠소이까?"

"그러나 강행돌파하기에는 적 보군의 화력에 고스란히 노출될 텐데요?"

"달리 방도가 없지 않소이까? 수색대대 군사들과 고속 유탄발사기의 엄호방포를 등에

업고 적의 방어선을 그대로 강행돌파해야지요."

"그러면 우리 마군연대 군사들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할텐데요?"

"각오해야지요. 그러나 아군의 피해를 두려워하여 호기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

해병여단장 양헌수 소장의 아들인 양주현은 천군의 현대적 전술과 군사훈련에 대한

이해와 적응이 남달랐지만 사람이 약간은 과격한 데가 있었다. 용감하다는 것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덕목이기는 했지만 너무 강공

일변도로 나가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최현필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대장

이종승은 양주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좋소. 강행돌파하십시다."

"연대장님!"

"최 중령의 염려는 알고 있소.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질 않소이까? 지금 상황에서

다른 길을 찾는다는 것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일이고 자칫하다가는 후퇴하는

왜놈들을 고스란히 돌려보낼 수도 있소이다."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알겠소이다. 연대장님."

이종승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색대대 군사들은 좀 더 앞쪽으로 이동하여 엄폐물을

찾기 시작했다. 수색대대가 보유한 K-3 분대지원화기의 유효사거리가 겨우 800m에

불과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4198식 기관총 같으면 유효사거리가 1Km가

넘고 최대사거리가 4Km가 넘었기에, 죠슈군과의 거리 1Km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K-3 분대지원화기의 경우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수색대대의 1개 중대

병력의 보군이 증강되어 앞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하자 죠슈군에서도 응사를 시작했다.

발사음으로 봐서는 양식보총(攘式步銃)의 발사음이 틀림없었다. 전장식 소총도

아니고 후장식의 양식보총을 왜놈들이 보유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벌써 여러

명의 수색대대 군사들이 쓰러지는 게 이종승의 눈에도 띄었다. 이종승은 얼굴빛이

굳어지며 외치기 시작했다.

"방포하라! 어서 수색대대를 엄호하라!"

[퉁! 퉁! 퉁! 퉁! 투둥! 투두둥! 퉁! 퉁! 투두둥!]

[빵! 빠바방! 빵! 빵! 빠바방! 빵! 빠바방!]

이렇게 마군연대의 화력이 일시에 죠슈군 군사들에게 집중되자 죠슈군 군사들은 다시

논두렁으로 몸을 숨겼다. 약삭빠른 놈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종승과 최현필,

양주현은 이를 갈고 있었다. 다행히 수색대대의 군사들은 목표했던 지점까지

이동하여 전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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