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조선군입니다."
"... 음..."
부장이자 기병대(騎兵隊)의 지휘관인 이노우에 몬다의 말에 다카스기는 말이 없었다.
막부 해군의 포격을 각오하고 출진한 상태였지만 기다리던 막부 해군의 포격 대신에
대규모 조선군 기병대와의 조우는 다카스기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차라리 잘 된 일이군."
"... 예?"
"어차피 저들은 우리 군 주력의 배후를 노리고 이동하던 부대가 틀림없다. 저들을
여기서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만 있다면 우리 군 주력이 그만큼 목적한 바를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게 아닌가."
다카스기는 아직까지 죠슈군 본진이 처한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아련하게 포성이
들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죠슈군이 쏘는 대포 소린지, 아니면 조선군의 대포 소린지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우렁찼던 것도 아니었고, 그러기에는 본진의
진격로인 히사노강(久野江)과는 이곳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물경 25리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의 전투상황을 아련히 들려오는 포성만으로 알 수는 없었다.
다카스기가 이노우에와 이런 얘기를 나누며 군사들을 배치할 것을 의논하고 있는데
남쪽에 위치한 조선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조선군 기병대가 좌우로 넓게
산개하는 듯 싶더니 좌우 양쪽에서 마차에 실려있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리경을 통해서 그 모습을 확인한 다카스기는 깜짝 놀라면서도 도대체 저 물건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시커먼 몸체에 삼발이
비슷한 것에 올려져 있는 물건은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다. 분명히
무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는데, 저렇게 생긴 무기는 처음 보았다. 미국(米國)이라는
나라에서는 여러 개의 소총을 한데 묶어 한꺼번에 여러 발의 총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속사포라는 것이 있다던데, 그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조선군의 물건은 여러 개의 총탄을 묶어놓은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시커먼 몸통에
총으로 보이는 기다란 막대기가 삐죽 튀어나온 것뿐이었다. 평소부터 신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나카스기는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그것이 죠슈군 기병대(奇兵隊)와
기병대(騎兵隊)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그 물건을 두 사람의 조선군 군사가 잡는 듯
싶더니 갑자기 귀를 찢을 것 같은 파공음과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씨융! 씨우웅! 씨우웅! 쓩! 쓩! 쓩!]
[쿠앙! 콰쾅! 쿠아앙! 콰앙! 쾅! 쾅! 쾅!]
[히히힝! 히힝! 히히히힝!]
[으악! 크아악! 으으악! 크억! 살려줘!]
"이런! 산개하라! 어서 산개하라! 논두렁으로 몸을 숨겨라!"
다카스기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급히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도 말에서 뛰어내려 논두렁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조선군 화기의 위력은
엄청났다. 단 두 정의 속사포에서 엄청난 포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고 있었고, 비명 소리와 말울음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농민과 하층민들로 이루어진 다카스기의 기병대(奇兵隊)는 비교적 은폐와
엄폐를 잘하고 있었다. 원래가 보병들인 기병대(奇兵隊)는 조선군의 포탄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가까운 논두렁으로 몸을 날렸고, 행여나 눈먼 총포탄에 맞을까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러나 다카스기의 기병대(奇兵隊)와는 달리 이노우에가
지휘하는 기병대(騎兵隊)는 제대로 몸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우선 덩치가 커다란
말이 엄청난 폭음에 놀라 발광하고 있었고, 그 말들을 제대로 진정시키지 못한
기병대원들은 쏟아지는 포화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다카스기의 기병대(奇兵隊)가 달리 기병대가 아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