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해병여단의 작전계획 1호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일단 죠슈군의 주력을 해병여단의
주력이 틀어막으면 예비로 돌려놨던 마군연대와 다른 보군대대가 죠슈군의 배후를
급습하여 섬멸한다는 간단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이 간단한 작전을 수립하기 위해
작전참모 강혁수와 여단의 참모들은 며칠 밤을 꼬박 새워 지도와 씨름해야했고,
시모노세키 일대의 지형 지물을 파악하고 나서야 세부적인 작전계획 1호를 수립할 수
있었다.
죠슈군이 집결하고 있는 국천 마을에서 시모노세키로 진격하기 위해 죠슈군이 선택할
수 있는 진격로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진격로는 가장 일반적이고 무난한
진격로인데 국천 마을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진격하다가 다시 전부강과 합류하는
서북쪽의 구야강 일대로 방향을 틀어 시모노세키의 북쪽 외곽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경우 구야강 일대의 계곡이 좁기 때문에 죠슈군은 대군을 일시에 투입할 수 없고,
축차 투입할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길게 늘어선 종대 대형으로밖에
진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화력을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이점은 방어하는
측면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전술적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했다. 반대로
장점도 있었는데 구야강을 끼고 있는 양쪽 산들의 지형이 비교적 완만하고
시모노세키로 통하는 진격로가 대단히 짧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산이나 구릉들이
해발고도 100m에 불과할 정도로 낮았고, 그 지형도 완만하고 나무가 별로 없는
목초지였다. 이 점은 방어하는 측면보다는 공격하는 측면에게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해병여단의 참모들은 죠슈군의 주공(主攻)이 첫 번째 진격로를 선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진격로는 국천 마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다 다시 전부강이 발원하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진격하는 것이다.
전부강의 발원지로 통하는 두 번째 진격로는 구야강 진격로에 비해 계곡의 폭이 넓기
때문에 대군을 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양쪽에 높은 산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그 산들이 시모노세키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는 천연의 방벽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공격하는 측면에서는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진격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쪽을 통해
조공(助攻)이 시모노세키에 잠입하여 공작을 펼친다면 해병여단의 상륙지는 크게
위협을 받을 수 있었다. 여단 참모들은 전부강 진격로로 죠슈번의 조공이 진격해 올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죠슈군의 예상 진격로를 파악한 해병여단 참모들은 즉시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부대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먼저 구야강에 방어선을 구축하는 부대로 어재연
대령이 이끄는 보군 1연대와 보군 2연대의 1대대, 2대대 병력이 맡기로 했다. 1연대
병력 1800명이 강력한 참호를 동반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2연대 2개 대대의 1200명은
구야강 양쪽의 야산에 매복하여 죠슈군의 주력을 상대하는 구야강 방어선의
작전계획이었다. 구야강 방어선의 화력은 81mm 박격포가 100문, 8정의 K-4 고속
유탄발사기, 유탄발사기와 한-4198식 기관총이 각각 180정을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화력이었다.
그리고 죠슈군의 조공이 진격해 올 것으로 예상되는 전부강 계곡을 방어하기 위해서
2연대 3대대 600명의 병력과 마군연대 3대대의 마군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보군 1개
대대가 적의 게릴라들을 방어하여 적의 게릴라들을 고착화시키면, 강력한 화력의
지원을 받는 마군 1개 대대가 전과를 확대하여 적을 섬멸하고, 기회를 봐서 적의
주력에 대한 배후 기습을 노리는 것이 전부강 방어선의 임무였다. 전부강 방어선에는
20문의 81mm 박격포와 2정의 K-4 고속 유탄발사기, 그리고 12정 씩의 유탄발사기와
한-4198식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군연대의 2개 대대는 소월 마을에서 목옥강을 따라 북상한 후에
죠슈군의 배후를 급습하는 것으로 작전을 수립했는데, 목옥강변 비트에 매복해 있는
수색대대 매복 1조의 첩보대로라면 다카스기가 지휘하는 군사들과의 충돌이 불가피
할 것이다. 마군 2개 대대는 모두 마군용 제식 무기와 예비로 K-4 고속 유탄발사기
2정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다카스기의 군사들을 섬멸하고 죠슈군의 배후를 급습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여단 참모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죠슈군이 움직인 이상 해병여단과 죠슈군의 일전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죠슈군은 시모노세키로 회군하는 것이 너무 늦어 조선군이 인근의 지형 지물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에 대해 뼈아픈 대가를 치를 일만 남았다.
히로시마 전선의 10만에 달하는 대군이 막부군의 발목잡기에 붙들려 제 때에
회군하지 못했고, 막부군의 공격에 희생된 1만의 군사들, 그리고 막부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와 근거지인 야마구치 지역 일대의 방어선 구축으로 절반에 가까운 4만의
병력이 남아야 했기에, 겨우 5만의 병력만이 시모노세키로 진격한 것은 분명 죠슈군
수뇌부의 커다란 실책이 될 것이었지만 아직 저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 yskevin에게 있으며, 아울러 글에서 오탈자 및 오류,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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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는 솔직히 굉장히 무리한 연재였고요. 그래서 3일에 한 번씩 연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글 쓰는 일이 어렵기도 하지만 글에서 자꾸 오류가 보이고,
또 설정의 변경도 가끔 발생하고... 이런 것들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독자
대감들과의 약속에 얽매이다 보니 이런 오류와 변경 등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글 쓰기가 힘든 것이겠지요. 좀
더 낳은 글, 좀 더 사실과 개연성에 입각한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러나 연재 분량의 변동은 없을 것입니다.
평균 20kb는 꾸준히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천 마을 인근의 구야강(
久野江)과 전부강(田部江)의 정확한 왜놈들 말을 제가 모르기 때문에 왜놈들이
등장할 경우에는 왜놈들 말로 표기를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놈들 말을
알고 계시는 독자 대감께서는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93 높은 산 깊은 골...10
"왜놈들이 오고 있다고 하오이다. 어 대령님."
"예. 모든 준비는 완벽하오이까? 조 대령."
"완벽하오이다."
1연대장 어재연 대령과 2연대장 조진호 대령은 구야강 방어선 한쪽에 위치한
지휘소에서 쌍안경으로 죠슈군을 관측하고 있었다. 해병여단에서 최선임 연대장인
어재연 대령이 이끄는 구야강 방어선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죠슈군은
예상대로 구야강을 주 진격로로 삼아서 시모노세키로 들이칠 모양이었다. 죠슈군이
회군하지 못한 며칠 동안 해병여단의 군사들은 죠슈군의 주 진격로로 예상되는
구야강 상류 일대에 강력한 참호선을 구축하였고, 양쪽 계곡에는 2개 대대의
군사들이 매복을 하고 있었다. 구야강 계곡은 강폭이 좁고 주변에 자갈밭이 넓게
형성되어 있어서, 행진하기에는 그렇게 좋은 편도 나쁜 편도 아니었다.
그리고 계곡 가운데로 흐르는 구야강의 강폭도 몇 미터를 넘지 않을 실개천
수준이었고, 수심도 겨우 발목밖에 차지 않을 정도로 얕았기 때문에 차가운 겨울
날씨만 아니라면 물 속을 행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매복하는 입장에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지형이었다. 우선 계곡의 넓이가 70m가 넘지 않을 정도로 좁았기에 적의
움직임을 한 눈에 관측할 수 있었고, 양쪽 산에는 빽빽한 삼림이 들어차 있어서
천혜의 방벽이 돼 주었다. 조진호 휘하의 2연대 2개 대대의 군사들은 어젯밤부터
양쪽 계곡에 분대 단위로 교통호와 비트를 파고 매복해 있었고, 조진호는 분대
단위의 원활한 공격과 기동을 위해 일선 분대장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한
상태였다. 해병여단에서 이러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데는 수색대대의 정확한
첩보도 있었지만 국천 마을로 진격한 죠슈군의 움직임에 기인한바 컸다. 어차피
시모노세키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국천 마을로 진격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국천 마을에
진격하고 나서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진격로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해병여단에서는 죠슈군의 움직임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세밀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계획대로 매복해 있는 2연대 군사들이 방포하는 것과 동시에 각 단위 부대별로
알아서 공격하도록 하는 게 좋겠소이다."
"예."
계곡 양쪽에 매복하고 있던 2연대의 2개 대대 군사들이 왜놈들을 향해 발사하기
시작하면, 구야강 방어선에 배치된 100문에 이르는 박격포와 8정의 K-4 고속
유탄발사기가 동시에 발사를 시작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유탄발사기, 한-
4198식 기관총. 한식보총의 일제사격에 4만에 이르는 죠슈군은 독 안에 갇힌 생쥐
신세와 다를 바 없게될 것이다.
"저기 오는군."
드디어 어재연이 들고 있는 쌍안경에 죠슈군이 모습을 나타냈다. 여러 개의 커다란
군기(軍旗)를 앞세우고 계곡으로 들어서는 죠슈군의 움직임은 거칠 것이 없다는 듯이
당당했다. 자신들의 군세(軍勢)를 믿고 있음인지 양쪽 계곡에 대한 사전 정찰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당당한 걸음으로 계곡으로 들어서는 죠슈군의 움직임은 어재연이
보기에도 대단해 보였다. 현대적인 군사훈련을 정식으로 받지는 못했지만 막부군과의
실전경험을 토대로 한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는 듯 싶었다. 죠슈군의 선두가 이미
박격포의 사정거리에는 들어왔지만 매복해 있는 2연대 군사들의 사격은 아직까지
없었다. 눈앞에 나타난 죠슈군은 선봉에 불과한 병력일 것이라는 생각을 매복해 있는
2연대의 일선 지휘관들도 하고 있을 것이다. 구야강 방어선으로 진격해 오는
죠슈군의 숫자가 물경 4만에 이른다는 첩보였는데, 눈앞에 나타난 죠슈군의 숫자는
겨우 1만에 불과한 정도였다. 아직까지 3만의 죠슈군이 더 들어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재연이나 조진호의 생각도 그랬고, 매복해 있는 2연대 지휘관들의
생각도 그러하리라. 그리고, 이곳 구야강 방어선에서 죠슈군이 관측되는 계곡
입구까지는 기껏 6Km 남짓, 왜놈들을 다 끌어들이고 나서도 왜놈들 야포의
사거리에는 닿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이런 조선군의 계략(計略)을
아는지 모르는지 죠슈군의 군사들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수많은 군기를
앞세운 선봉이 계곡으로 들어서는가 싶더니, 어느새 중군이 다시 군기와 함께
몰려들고 있었다. 이어서 선봉과 중군의 군기보다도 더 많은 군기가 계곡 입구에
보이기 시작하더니 엄청난 군사들이 한꺼번에 계곡으로 몰려들어 왔다. 장관이었다.
대단한 장관이었다. 그러나 어재연의 눈에는 죠슈군이 들고 있는 수많은 군기가
장례식에 등장하는 만장(萬丈)처럼 보였고, 4만에 이르는 엄청난 대군이 한낱
허수아비로 비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펄럭이는 군기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선봉장으로 보이는 자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것이 어재연의 그런 생각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