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01화 (201/318)

26.

박수동이 분대원을 이끌고 매복한 국천 마을 인근 목옥강변의 비트는 딱딱한

흙바닥에 궁둥이와 등허리가 배기기는 했지만 의외로 따뜻했다. 산자락 끄트머리에

넓은 구멍을 파고 그 위에 판쵸 우의 몇 장을 덮고, 다시 그 위에 낙엽과 나뭇가지로

위장한 비트는 따뜻했다. 그리고 박수동과 분대원들은 한국군이 입는 것과 동일한

동내의와 전투복, 그리고 그 전투복 위에는 깔깔이라고 부르는 내피를 껴입었고,

다시 그 위에는 방탄복을 입었고, 방탄복 위에는 야전 잠바를, 야전 잠바 위에는

설상복을 입고 있었고, 따뜻한 침낭으로 몸을 감싸고 있었으니, 따뜻하다 못해

덥다고 느낄 정도였다.한 겨울 추운 산악지역에서 비박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월동장구를 갖추고 있었으니, 박수동과 분대원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귀와 얼굴에 대한 보온을 하라고 지급한 귀도리와

안면 덮개(안면 마스크)를 벗고 설상복의 목 부분을 풀어헤친 분대원들도 있었다.

박수동은 그런 분대원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천군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사실 해병여단에 지급된 월동장구들은 천군이 한국에서 출발할 때 일선 군부대에서

남아돌던 개인 장구류의 일부였다. 소총과 대검을 제외한 모든 개인 장구류를 가지고

온 게 물경 10만에 달하는 병력에게 지급할 수 있는 수량이었다. 아직 모든 지방군에

보급된 것은 아니었지만 황해도 이북에 주둔하고 있는 지방군과 근위천군과 친위천군

등 중앙군에게는 모두 보급된 물품이었다.

밤새도록 더위?와 싸우며 적정을 감시하고 있던 박수동 하사와 분대원들은 해가 뜨기

전부터 부산한 죠슈군의 움직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국천 마을 외곽에 임시로

설치한 목책을 뜯어내고, 무기를 점검하며, 군마를 보살피는 모습이 드디어 출진을

하는 모양이다. 한참을 어지럽게 부산을 떨고 있는 죠슈군의 모습을 보면서 박수동은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불쌍한 왜놈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 죠슈군이

동원한 군사들은 물경 5만이 넘어 보였다. 그런데, 5만의 군사들 중 태반이 제대로

된 월동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홑옷 차림이었고, 버선도 안

신은 맨발에 허름한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무장도 빈약하여 하층민이나 농민

출신의 군사들은 양식보총은 커녕 전장식 보총도 없었다. 무장이라곤 오로지

허리춤에 꽂혀진 자그마한 왜도와 창이 전부였다. 저런 군사들이 10만이 넘고 20만이

넘어도 막강한 조선군 해병여단의 화력에 일방적으로 학살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박수동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박 하사님. 저들이 이동을 하고 있심더."

"나도 봤다."

관측용도로 낸 조그만 창으로 어슴푸레 보이는 죠슈군의 움직임은 크게 세 무리로

나눠지고 있었다. 다 수의 대포를 동반한 제일 많은 군사들이 집결한 한 무리는

그대로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약 4천에서 5천 정도의 군사들은 전부강을 건너

역시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병대(騎兵隊)가 포함된 제일 적은 수의

군사들은 목옥강을 따라 남하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기병대를 동반한 한 무리의

적들이 목옥강변 비트 바로 옆을 통과하고 있었기에 모든 분대원들은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박수동은 적들이 모두 지나간 것을 확인한 뒤

여단본부로 무전을 때렸다. 목옥강변 비트의 무전 보고를 받은 여단본부에서는 그

내용을 다시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부대들에게 전달할 것이고, 본격적인 전투가 얼마

지나지 않으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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