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방금 목옥강변 국천 마을에 매복하고 있던 수색대대 매복 1조의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예상대로 죠슈군의 주력이 목옥강을 건너 국천 마을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매복 1조의 보고에 의하면 죠슈군은 최소 1개 사단에서 최대 1개 군단
규모에 이른다고 합니다."
"...... 음......"
"예정대로 작전계획 1호를 실시할 것을 건의 드립니다. 여단장님."
"그래? 그럼 즉시 작전계획 1호를 실시하지."
"알겠습니다. 여단장님!"
양헌수 소장의 명령을 받은 여단 작전참모 강혁수 중령의 발걸음이 빨리 지기
시작했다. 왜국에 출병하여 시모노세키에 상륙하고 닷새가 지나도록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해병여단의 군사들은 서서히 따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죠슈번의 대군이
국천 마을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입수되었으니 여단본부는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 1친위해병여단은 강화도연대를 모태로 하여 창설된 부대였다. 그러나
강화도연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변화가 있었다. 일단 편제와 병력, 화력 면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해병여단이 3개 보군중대와 1개 박격포중대가 1개 대대를 이루고
있는 점은 강화도연대와 같았다. 그러나 4개 대대가 1개 연대를 형성하였던
강화도연대와는 달리 3개 대대가 1개 연대를 형성하여-일반적인 조선군의 편제와
같다-, 총 6개의 보군대대로 이루어진 2개의 보군연대가 있었고, 여기에 다시 3개
마군대대로 이루어진 1개 마군연대가 배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여단본부 직할
수색대대가 독립적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전투병력은 1개 수색대대와 2개
보군연대, 그리고 1개 마군연대, 총 6천명에 이르는 대부대였고, 1천여 명에 이르는
지원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력도 강화도연대에 비할 수 없이 막강해졌다.
독립적인 포병연대나 포병대대가 없는 것은 강화도연대와 비슷했다. 그리고 각
대대의 구성도 강화도연대와 같았다. 3개 보군중대와 1개 박격포중대가 1개 대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같았고, 박격포중대에 20문의 박격포가 배치된 것도 같았다.
그리고 분대당 1정의 유탄발사기와 한(韓)-4198식 기관총의 배치된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기도감에서 관리하던 K-4 고속
유탄발사기가 각 박격포중대에 2정씩 배치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단본부 직할의
1개 수색대대는 박격포중대는 없고 순전히 보군 4개 중대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수색대대가 보유한 무기가 또 기존의 보군대대와는 또 달랐다. 그 임무의 특성상
박격포중대가 없는 순수 4개 보군중대로 이루어졌고, 분대당 1정씩 보유하고 있는 한-
4198식 기관총도 없었다. 대신에 수색대대의 각 분대에는 K-3 분대지원 기관총이
배치되었다. K-3 분대지원 기관총 역시 해병여단에만 지급된 것으로 적정을 탐지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는 수색대대의 특성상 무게가 14kg에 육박하는 한-4198식
기관총보다는, 6.85kg에 불과한 K-3 분대지원 기관총이 훨씬 작전에 유용할 것이라는
판단아래 지급된 것이다. 물론 천군이 도래하면서 가져온 K-3 분대지원 기관총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었기에 수색대대의 모든 분대에 지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는 한-4198식 기관총으로 무장하였고, 나머지는 K-3 분대지원 기관총으로
무장하였다. 그래서 해병여단이 보유한 총 박격포의 숫자는 모두 120문에 달했고,
여기에 K-4 고속 유탄발사기가 12문, 한-4198식 기관총이 180정, 유탄발사기가
216정에 K-3 분대지원 기관총이 36정이 배치되어 있었다. 이러한 해병여단의 화력은
단일부대로는 사단급의 근위천군이나 친위천군에 버금가는 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화력이었다. 여기에 군사 개개인이 세계 최강의
소총인 한식보총(韓式步銃)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죠슈군이 아무리 막강하고,
죠슈군의 병력이 아무리 어마어마할지라도 무찌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죠슈군은 해병여단이 죠슈군의 주 진격로로 예상하고 있던 국천 마을로 들어왔으니
이제는 그동안 수립해 놓은 작전계획대로만 군사들을 움직이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