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96화 (196/318)

20.

"이야! 맞았다."

"맞췄삤다!"

선수에 있던 2문의 주포를 더 가져와 도합 4문의 75mm 주포를 일제히 발사한 것이

바로 방금 전이었다. 발사한 포탄 네 발 중 세 발은 해적선에 근접하여 폭발하기는

했지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했지만 마지막 한 발이 해적선의 돛대를 그대로 맞춰

부러뜨리는 것이 쥬신호의 선미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전성관을 통해 들려오는

정말봉의 함성 소리에 박만복은 해적선을 맞췄다는 것을 재빨리 알아 차렸다. 다시

기관실로 통하는 전성관을 잡은 박만복은 큰 소리로 기관실의 배대치에게 명령했다.

"속도를 늦촤라! 좀 더 속도를 늦촤라! 말봉아! 이때를 놓치면 안된데이! 어서

숨통을 끊어 뿌라!"

기관실의 배대치에게 속도를 늦출 것을 명령한 박만복은 다시 선미로 통하는

전성관으로 정말봉에게 해적선의 숨통을 끊어버릴 것을 명령했다. 비록 돛대

꼭대기에 소속을 나타내는 어떠한 깃발도 걸려있지 않지만 저러한 형태의 범선들이

주로 양이놈들의 상선 겸 해적선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하고 다닌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박만복이었다. 이왕 이렇게 일이 벌어진 이상 건방진 양이놈들의 숨통을

끊어놔야 나중에 뒤탈이 없을 것이다. 물론 박만복도 후환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잘못은 저들에게 있었다. 이렇게 상선의 뒤를 살금살금 뒤쫓아 온

것도 잘못이었고, 경고성 포격을 했는데도 달려든 것도 잘못이었다. 양이놈들의

나라는 국력이 강해서 머나먼 동양 땅에까지 군대와 함대를 파견하여 청국을

핍박하였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박만복이 아니었다. 더구나 지난번 법국함대의 조선

침탈과 참담한 패배로 인해 양이놈들의 신경이 억수로 날카로운 이 때에 어떠한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될 것이었기에 확실한 처리를 명령한 것이다.

"거리 1800보. 방포!"

[빵! 빵! 빠방! 빠바방!]

정말봉의 방포 명령을 받은 선원들은 익숙한 솜씨로 다시 재장전을 하여 주포를

발사했다. 75mm 주포는 우렁찬 굉음을 내지르며 일제히 발사되었다. [쓩! 쓩! 씨웅!

쓔웅!] 하는 비행음(飛行音)과 함께 발사된 포탄은 해적선이 있는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는 모습이 선원들의 눈에 보였다. 아니 날아가는 포탄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은

선원들만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해적선에 명중탄을 작열시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쥬신호의 선원들 눈에는 포탄의 날아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하늘을 찢을 것 같은 비행음을 동반한 포탄은 선원들의 염원을 한 몸에

받으며 그대로 해적선에 내려 꽂혔다. 이번에도 역시 한 발이 해적선의 갑판에

명중했다. 나머지 세 발은 해적선에 근접하기는 했지만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명중한 한 발의 75mm 포탄은 해적선의 갑판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해적선의 제일 밑바닥에서 그대로 터져 버렸다. 쥬신호의 75mm 포탄이 바로

철갑고폭탄(Armour Piercing High Explosive)이었기 때문에 목조 범선의 갑판을 뚫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강화도나 해군의 다른 함선에 장착된 120mm 철갑고폭탄이 목조

범선에 맞으면 그대로 선저(船底)까지 뚫고 나가 바다 속에서 터졌을 수도 있었으나

75mm 포탄은 그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위력만으로도 일반 목조

범선에게는 재앙이었다. 지금쯤 해적선의 바닥은 커다란 구멍이 뚫렸을 것이

분명했고, 그곳을 통해 시퍼런 바닷물이 콸콸콸 쏟아져 들어오고 있을 것이다.

"재장전!"

75mm 주포는 포의 본체도 120mm 포에 비해 작았고, 포탄도 훨씬 구경이 작았을

뿐더러 무게도 가벼웠다. 그래서 비교적 신속하게 재장전이 이루어졌다. 4문의 주포

모두를 신속하게 재장전한 선원들은 정말봉을 쳐다봤다. 어서 방포 명령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정말봉은 방포 명령을 대신에 희한한 명령을

내렸다.

"모두들 주포를 수펭으로 놓그라!"

주포를 조작하던 선원들은 정말봉의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눈만 똥그래졌을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느닷없이 포를 수평으로 놓다니? 그럼 어떻게 쏘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정말봉을 쳐다본 것인데 정말봉이 시범을 보였다.

"모두들 잘 보그레이. 여기 있는 이것이 바로 포대겡이다. 이 포대겡을 보고

해적선을 고대로 고누라 안카나!"

정말봉은 지금 75mm 주포를 이용해서 직접조준사격(直接照準射擊-이하 직사)을

시연할 생각이었다. 1800보 정도 떨어진 거리라면 굳이 직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리지만 선원들의 방포 능력이 생각보다 떨어질 때는 직사가 오히려 효과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에서 생각해 낸 것이지만 이것은 상당히 올바른

선택이었다. 사실 직사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포대경이 달리지 않은

후장식 속사포의 경우에는 후미폐쇄기(後尾閉鎖機)를 열고 포구로 적함이 보이면

그대로 장전한 뒤 발사하면 되는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여 직사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직사로 적함을 공격하는 이유는 적함이 곡사로 타격하기 힘든 지근 거리에

위치해 있거나 관통력을 증대시킬 때 취하는 사격 방법인데, 쥬신호의 75mm 주포처럼

포에 포대경이 달려있을 경우에는 더욱 간단했다. 포대경과 포구를 일직선으로 놓고

적함을 관측한 후에 그대로 발사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봉의 시범에 선원들은 포구를

숙이고 포대경을 이용해서 해적선을 그대로 겨누었다. 포대경을 통해서 본 해적선은

첫 번째 돛대가 부러져 쓰러진 뒤로 무슨 충격을 받았는지 우현으로 완전히 방향을

튼 채로 천천히 항진하고 있었다. 그것도 돛대 하나가 부러지고 바람을 정면으로

받지 못해서인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두 번째 명중탄으로 인한

피해였는지도 몰랐다.

"방포 해삐라!"

[빵! 빠방! 빠바방! 빠앙!]

[쓔우웅! 쓩! 쓩! 씨우우웅!]

쥬신호에서 발사된 네 발의 75mm 포탄은 그대로 해적선의 우현에 작렬했다. 해적선의

우현에서 연속해서 명중한 네 발의 포탄은 커다란 굉음과 함께 화염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굉음을 동반한 화염이 잠시 사그라 드는 듯 하더니만 다시 한 번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염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중 갑판에 위치한

해적선의 포가(砲架)와 탄약고가 유폭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이전의

굉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굉음이 울리더니만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사방으로 나무 조각 같은 것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아련하게 사람의 비명 소리

같은 것도 들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해적선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오로지 배가 있었다는 흔적만을 얘기해주는 잔해만이 덩그러니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을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우와!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우와와와와와!!!"

정말봉과 주포를 조작하던 선원들은 모두들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배가 떠나가라

발을 동동 굴렀꼬,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그 소리는 쥬신호의 모든

선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해적선과의 일전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다른

선원들도 하늘을 찌를 것 같은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환호성에

휩싸였던 쥬신호는 선장 박만복의 지시로 천천히 회두(回頭)를 하여 해적선이 있던

지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생존자를 수색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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