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94화 (194/318)

18.

"저런 대메에 치직일 놈들이 우짜자고 저라고 달라드노?"

기관장 배대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해적선의 무식할 정도의 빠른 속도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배대치는 쥬신호가 아직 전 속력을 내지는 않았지만 저 정도의

빠르기는 능히 낼 수 있다는 생각에 선장 박만복을 한 번 힐끗 쳐다보았다.

"와? 우덜도 함 해보까? 속도 겡쟁에서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갑네?"

"함 해 보입시더. 지깐 놈이 따라와 봤자지예."

"그럼 함 해봐라. 기관이 터지뿌도록 돌려보그라."

"알겠심더."

박만복의 명령이 떨어지자 배대치는 기관실로 뛰어 갔다. 순항속도에도 못 미치는

9노트의 속도로 달리던 것이 이제는 최고속도를 낼 일만 남았다. 쥬신호의

최고속도는 17노트에 이른다. 풍백함과 똑같은 기관으로 개수를 한 것이 바로 지난

여름이었다. 17노트라면 당시의 증기선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여기에 돛까지 올리면 그 속도는 쉽게 20노트를 넘을 것이다.

"돛도 올리그레이! 전 속력으로 함 가보자---"

박만복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동안 접어 두었던 세 개의 돛이 모두 펼쳐졌다. 이렇게

세 개의 돛을 모두 펼치고 기관을 전 속력으로 가동하기 시작하자 쥬신호도 9노트의

속도를 벗어나 어느새 14노트를 넘어가고 있었다. 기관을 작동할 시에 최고속도가

17노트이고, 세 개의 돛을 같이 사용하면 20노트를 훌쩍 넘기는 속도를 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속도가 날 수 없었다. 그리고 따라오는 해적선도

만만치 않았다. 세 개의 돛을 모두 펼치고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해적선의 모습은

쥬신호의 선원들에게 충분한 위협이 될만했다. 해적선과의 거리는 어느새 3000보까지

좁혀들었다. 처음 발견 당시에 5000보 정도 떨어져 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가까운

거리였다. 그리고 3000보라는 거리도 꾸준히 좁혀지고 있었다.

"말봉아! 한 방 더 믹이삘그라!"

"이번에도 맞추지는 말고예?"

"아이다. 이번에는 함 제대로 맞춰봐라!"

"알겠심더."

박만복의 얼굴은 결의에 찬 모습이 역력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대라면 본때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나중이 편한 법이었다. 정말봉은 선원들을 다그쳐 다시

2문의 75mm 주포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포에 장착되어 있는 포대경을

보면서 정확한 거리를 측정하고 그에 따른 포격 각도와 장약을 나름대로 선택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군에서 전문적으로 75mm 주포를 다뤄본 경험이 없었기에

아무래도 포술 능력이나 장약의 선택 등 여러 가지 능력에서는 많이 뒤떨어지는 게

틀림없었다.

"방포 해삐라!"

[빵! 빵!]

[씨우웅! 쓔우웅!]

이번 방포는 상당히 근접한 지점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해적선을 맞추지는 못했다.

전문적인 포술 훈련을 받은 선원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군에서 사용하는

사격제원환산표-일명 대수표-라도 있었다면 거리에 따른 부앙각의 조절이나 제대로

된 장약의 선택이 있었을 것이지만 사격제원환산표 같은 것은 군에서도 대외비로

취급하고 있는 중요한 문서였기에 일반 상선의 주포 사격을 위해 제공하지는 않았다.

설사 사격제원환산표를 제공받았다손 치더라도 상당한 수학적 능력이 필요하였기에

정말봉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일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순전히 감(感)과

숙련도에 의한 사격이 될 수밖에 없었고, 박만복이 원하는 것처럼 해적선을 바로

맞출 수는 없었다.

"안되겠심더. 속도를 쪼매만 늦촤주이소. 그라고 선수 주포 2문도 가꽈야 하겠심더."

정말봉은 곧 죽어도 자신의 포격술이 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정말봉이 전성관(傳聲管)을 통해 이렇게 소리치자 어느새 선교(船橋)에 들어가 있던

박만복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관실로 통하는 전성관을 붙잡고 기관실의

배대치에게 속도를 14노트 정도로 늦출 것을 명령했다. 더불어서 2000보 안으로

해적선이 접근하면 기관 출력을 최대로 다시 올릴 것을 지시했다. 그가 알기론

아직까지 양선의 주포는 2000보까지가 최대사거리 일 것이다. 물론 그것도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정도의 해적선이라면 기껏해야 1000보에서 1500보 정도가 주포의

최대사거리일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에 해적선에 불벼락을 내릴 수 있다면 상황은

끝날 것이다. 해적선은 원거리에서 퍼부어 대는 쥬신호의 포화에 속절없이 당하다

침몰하든지 아니면 약탈을 포기하고 꽁지 빠진 강아지 새끼처럼 도망을 치던지 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박만복의 얼굴은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쥬신호가 이렇게 속도를 늦추는 사이에 해적선은 어느새 2000보 안까지 접근했다.

해적선이 보유한 주포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제부터는

쥬신호도 해적선의 포화를 뒤집어 써야 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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