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쥬신상사 소속의 쥬신호는 원래가 막부의 군함 후지야마(富士山)호였다.
후지야마호는 만재 배수량이 1000톤에 달하고 비록 구식 전장식 함포에 불과했지만
보유 함포가 무려 36문에 이를 정도로 나름대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는 배였다.
그런 후지야마호의 함포는 막부가 쥬신상사에 배를 팔아 넘길 때 포함되지 않았지만
쥬신상사에서는 자위용으로 신기도감 기기창에서 강화도의 요새에 배치한 요새포의
함재용인 75mm 후장식 속사포를 선수와 선미에 각각 2문씩 장착하고 있었다. 원래
쥬신호는 조선과 왜국을 왕래하면서 무역에 종사하였기에 함포의 장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지만, 나가사끼에 금은거래소가 생기고 그 금은(金銀)의 수송을
전담하는 배로 쥬신호가 결정되고 나자 자위(自衛)를 위한 함포의 탑재가 요구되었다.
"선장님! 후방에 접근하는 배가 있다!"
"저 문둥이 자석은 어찌 된 놈이 선장한테 꼬박꼬박 반말이고 반말이!"
박만복은 부산 출신의 뱃사람인데 전준호가 쥬신호를 사들이고 나서 스카웃을 한
선부(船夫) 중에서 가장 양선(洋船)의 운용과 조함에 재능을 발휘하였기에 쥬신호의
선장으로 발탁된 사람으로 뱃사람답게 성격이 괄괄했다. 그러나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나름대로 선원들을 아끼는 타고난 뱃사람이었다. 그리고 통영(統營)
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 소속 전선(戰船)에서 군역을 치른 경험도 있는
베테랑 선장이 바로 박만복이었다. 박만복에게 반말로 지껄인 견시수는 원래부터
후지야마호에 승선했던 왜인 선원이었는데 지금까지 쥬신호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왜인 선원 중 하나였다. 조선식 이름으로 이충선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견시수는
조선말을 배울 때부터 반말로 배웠기에 이렇게 반말밖에 할 줄 몰랐다. 그것을 알고
있는 박만복은 욕을 해주긴 했지만 그다지 나무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남은 추워서 불알이 땡땡 얼 지겡인데 이런 날씨에 따라오는 저 새끼는 뭐꼬?"
천리경으로 후미를 관찰하던 박만복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튀어나올리 만무했다.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겨울 날씨에 추워서 온 몸이 얼 지경인데 웬 미친놈이
따라붙어서 따뜻한 선장실에서 쉬지도 못하게 하는지 한 번 패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쥬신호의 뒤를 도둑괭이가 생선 노리는 것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으로 보면 분명히 쥬신호에 실려있는 청국 관은(官銀)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쥬신상사 나가사끼 지점에서 청국에 판매한 우레시노차와 조선 쥬신상사 소속의 다른
배에서 판매한 섬유와 인삼, 그리고 요즘 청국주재 외국 상인들과 왜국주재 외국
상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담배를 판매한 수출대금을 이번에 한꺼번에
받은 것이 물경 백만 냥에 달하는 관은이었다. 그리고 그 백만 냥에 달하는 청국
관은을 싣고 상해를 출발한 것이 바로 엿새 전이었다. 다른 배들은 벌써 각각의
수입품들을 싣고 목적지로 출발한지 오래였고 쥬신호만 홀로 관은을 싣고 나가사끼로
가는 중이다. 이제 이틀만 더 가면 나가사끼에 도착하는데 그 새를 못 참고 침을
흘리는 놈이 나타났으니 박만복이 짜증날 만도 했다. 그동안 해적의 손길 한 번 타지
않은 쥬신호였는데 마침내 올 것이 온 모양이다. 하기야 달러로 환산하면 거의 90만
달러가 넘는 거금인데, 그것을 보고 어느 누가 눈이 훼까닥 돌지 않겠는가. 쥬신호는
9노트 정도의 속도로 꾸준히 나가사끼를 향해 가고 있는데, 따라오는 배는 오히려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는 것이 필경 10노트 이상의 속도로 쫓아오는 것이 분명했다.
상당한 빠르기였다.
"우짤낀교?"
어느새 옆에는 쥬신호의 수석항해사 정말봉과 기관장 배대치가 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박만복과 동향 사람으로 친형제와도 같은 사람들이었다.
"멀 우짠단 말이고?"
"패 쥑이삐까요?"
"이눔아가 돌았나? 글안해도 우리 조선이 법국인지 지랄인지 하는 나라 함대를
묵사발로 맹글어가꼬 양놈들이 온통 눈이 벌개가 있는디, 머시 어쩌고 어째?"
"그라몬 우짤낀데예. 저놈들이 필시 우리 배의 관언을 노리고 있는 기 분명할낀데..."
"... 음... 일단 경고용으로 한방 멕이그라. 맞추지는 말고."
"계속 따라오면 쥑이삔다 이런 소리네예."
"퍼뜩 하그라."
"알았소마."
일단 경고용 사격을 한 번 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해적임이 틀림없다고는 하지만
우연히 항로가 같은 배 일수도 있었다. 박만복의 명령이 떨어지자 정말봉이 몇몇
선원들을 지휘하며 75mm 후미 주포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쥬신호는 상선이었기에
포술장이 따로 있지 않았다. 일단 거리가 거의 사,오천보 이상 떨어져 있었기에
제대로 겨누고 쏘지 않는 이상 따라오는 해적선에 맞을 염려는 없었다. 정말봉은
능숙한 솜씨로 선원들을 다그쳐 어느새 75mm 함포의 발사 준비를 마치고 박만복을
쳐다봤다.
"방포 해삐라!"
"방포!"
[뻥! 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