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나가사끼 주재 조선 공사 윤정우는 며칠 전에 조선에서 인편으로 보내온 새로운
통신기를 전달받았다. 바로 수수께끼 암호해독기였다. 수수께끼 암호해독기가 조선
공사관에 배치됨으로써 이제는 조선과의 통신이 한결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
틀림없었다. 그동안 나가사끼 주재 조선 공사관에서 조선과의 주요 문서나 암호
전문을 주고받으려면 최소한 한 달에서 심하면 두 달까지 걸리곤 했으나 이제는 그럴
걱정이 없었다.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전달받은 기념으로 운현궁의 대정원과 통신을
한 결과 섭정공 김영훈의 새로운 명령을 수령할 수 있었다. 바로 윤정우 자신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사관 무관들의 조선 복귀였다. 아직 후임 공사가 결정되지 않아
복귀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소식은 윤정우와 공사관 경비 책임자
한성호를 비롯한 모든 무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조선이
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조선과 조선 공사 윤정우를 비롯한
공사관의 직원, 무관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나가사끼 어디를 가더라도
주목을 받았고, 경원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니 요즘은 정말 조선 사람이라는
자부와 긍지를 느끼고 생활하는 나날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브란트 영사."
"반갑습니다. 공사각하."
윤정우 조선 공사는 나가사끼 주재 독일 영사 브란트의 예방을 받고 있었다. 어느새
윤정우가 조선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며칠 전에 독일 영사관에서 연락이
왔었다. 윤정우가 조선으로 귀환하기 전에 한 번 찾아뵙고 인사를 나누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윤정우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조선과 독일이 수교한 후에
브란트와 윤정우는 서로의 영사관과 공사관을 가끔씩 방문하면서 우의를 돈독하게
하였기에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요 몇 달간 브란트와 윤정우 각자가 바쁜 관계로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더불어서 법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에 대한 인사의 뜻과
앞으로 벌어질 지도 모르는 독일과 프랑스와의 전쟁에 대한 사전 포석의 의미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윤정우는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조선군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방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먼저 귀국의 승전(勝戰)을 축하드립니다. 공사각하."
"감사합니다. 영사. 나도 귀국의 승전을 축하드립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하하하... 어디 그게 작은 일입니까? 드디어 귀국이 그렇게도 바라마지 않던 통일을
이룰 준비를 성숙하게 만든 일이 어디 작은 일입니까?"
"감사합니다. 각하."
이렇게 말하면서도 브란트는 속으로 무척 놀라고 있었다. 독일연방(獨逸聯邦
Deutscher Bund)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어지간한 동양의
정치인들이나 외교관들은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윤정우 조선 공사가 대뜸 그
얘기를 꺼내자 내심으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고 있었다.
이 무렵 독일은 독일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하나의 국가 연합체에 불과했다.
1815년 결성된 독일연방은 독일 통일을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으로써
오스트리아, 프로이센(프러시아), 바이에른, 작센, 하노버 등 35개의 군주국과
함부르크, 뤼벡, 브레멘, 프랑크푸르트 등 4개의 자유도시(自由都市)를 통합하여
조직된 연방이었다. 각국 대표로 구성된 연방의회를 프랑크푸르트에 설치하였으며,
오스트리아가 의장국으로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독일연방의
프랑크푸르트연방의회는 항상 독일의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른 소(小)
독일주의와 대(大) 독일주의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소 독일주의는 프로이센 중심으로 독일을 통일하려는 생각이었고, 대 독일주의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통일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독일연방의 양대 산맥이랄 수
있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대립은 결국 보오전쟁-속칭 7주전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보오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은 결국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통일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실 보오전쟁은 승리는 철혈정책(鐵血政策, Blut und Eisen Politik)으로 유명한
프로이센의 수상 겸 외상인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의 치밀한
외교와 프로이센의 참모총장 몰드케(Helmuth Johannes Ludwig von Moltke) 장군의
뛰어난 군사적 재능에 기인한 승리였다. 보오전쟁의 원인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덴마크와 독일의 접경에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이란
두 개의 공국(公國)이 있었는데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은 1460년 이후로 덴마크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대부분은 독일인이었다. 그리고 홀슈타인은
독일연방의 일원이기도 했다. 1863년 덴마크는 이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침공해
강제로 병합해 버렸고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덴마크가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지역을 병합해 버리자 독일연방의 이름으로 개입할 것을 희망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도 역시 독일연방의 의장국으로서 개입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독일연방이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병합한 덴마크를
공격했고 손쉽게 승리를 이끌어냈다. 원래 덴마크는 영국과 프랑스가 이 문제에
개입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영국은 애초에 개입할 의사가 없었고, 프랑스는 멕시코
문제 때문에 거기에 대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되찾은 독일연방은 비엔나협정을 맺어 이 두 지역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공동 관리한다는데 합의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스마르크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공동 관리한다는 것을 불씨로 삼아 나중에
오스트리아를 연방에서 축출할 생각을 프로이센의 수상인 비스마르크는 가지고
있었다.
1865년이 되자 오스트리아는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의 분할을 요구했으나,
프로이센은 양국의 공동관리를 주장한다. 결국 가스타인협정(Convention of Gastein
1865년 8월 13일)으로 오스트리아는 홀슈타인을 얻고, 슐레스비히는 프로이센이
차지한다. 그러나 이 가스타인협정은 프로이센으로 보면 엄청난 이익을 안겨준
조약이었다. 가스타인협정으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독일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이게 됐고, 프로이센은 독일민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이게 되었다.
그후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는 외교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오스트리아를 고립시키게
된다. 비스마르크는 먼저 프랑스를 달랠 목적으로 나폴레옹 3세를 찾아가 대(對)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고, 그의 허영심을 부추겨 중립
약속을 얻어내는데 성공한다. 비스마르크는 나폴레옹3세에게 전쟁이 끝난 후 섭섭지
않은 보상을 약속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서를 남긴 것은 아닌 그냥 구두로 한
약속이었다. 그러나 멍청하고 허영심에 들뜬 나폴레옹3세는 비스마르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덜컥 중립을 약속해 버린 것이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프로이센이
룩셈부르크와 벨지움을 양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것은 나폴레옹3세의
착각이었다. 이렇게 프랑스의 중립을 이끌어낸 비스마르크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이탈리아를 끌어들이기로 하고 공작에 들어갔다. 이탈리아는 이 무렵
통일을 하기는 했지만 베네치아를 차지하지 못해서 오스트리아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비스마르크는 이탈리아에 베네치아를 양도하기로 하고
군사동맹을 맺기에 이른다. 이렇게 외교적으로 오스트리아를 고립시킨 프로이센의
수상 비스마르크는 1866년 6월 오스트리아가 홀슈타인 공국의 장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연방의회를 소집하자 독일의 분열을 고착화시키고 가스타인협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프로이센의 비난과 다른 독일연방
일원의 질시를 한 몸에 받게된 오스트리아는 결국 힘으로 프로이센을 굴복시킬 것을
천명하고 6월 17일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6월 18일 프로이센의
오스트리아 선전포고, 6월 20일 이탈리아의 오스트리아 선전포고로 전쟁은 불이
붙었으며 외교적으로 고립된 오스트리아는 7월 3일 중부 유럽 베멘에서 벌어진
쾨니히그레츠전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고, 결국 프라하조약(Treaty of Prague
1866년 8월 23일)을 맺어 전쟁을 종결짓게 되었으며, 이 전쟁으로 인해 결국
독일연방은 해체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독일연방이 해체된다고 해서 다가 아니었다.
독일연방의 해체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북독일연방의 성립과 독일 통일로
이어지게 되니 비스마르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프로이센이
주장하던 소 독일주의의 완전한 승리였다.
"사실 저는 귀국의 비스마르크 수상께서 오스트리아에게 무리한 전후 보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을 아주 바람직한 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예? 그것은 무슨 말씀인지...?"
브란트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동양의 작은 나라 외교관에 불과한 윤정우의
입에서 독일-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와의 전후처리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주 놀랄만한 일이었다. 아마도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조선 유학생들 중에 정보를
제공하는 자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브란트가 하고 있는데 윤정우의 말은
계속되었다.
"쾨니히그레츠전투에서 귀국의 몰드케 장군이 이끄는 군이 승리하고 몰드케 장군을
비롯한 군부에서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까지 진격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귀국의
비스마르크 수상께서는 진격을 반대하지 않습니까?"
"그랬지요."
"그리고 프라하조약을 맺어 전쟁을 종결지으면서 오스트리아로부터 일체의 전쟁
배상금을 받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인한 전쟁 배상금을 한푼도 받지 않았고,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한 곳도 할양 받지 않았다. 단지 문제가 됐던 홀슈타인만
차지하였고, 이탈리아에게는 베네치아만 떼어주도록 했다. 홀슈타인이야 원래 누구의
땅도 아니었기에 오스트리아의 영토가 할양된 것이 아니었고, 베네치아도 원래는
이탈리아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마찬가지였다. 이때 군부와 정치권의 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프로이센 황태자의 옹호와 비스마르크가 수상직 사퇴 표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반대하였기에 결국 모든 일은 그의 의도대로 관철되었다.
"제가 볼 때는 귀국의 비스마르크 수상께서는 아마도 나중을 위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나중 일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정녕 영사께서는 모르고 계십니까?"
"무엇을 말씀입니까? 저는 하나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사각하."
브란트는 윤정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무슨 이유로
오스트리아로부터 전쟁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았는지 정치가가 아닌 일개 외교관이
어떻게 짐작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1862년 왜국 나가사끼에 영사관을 세우고 초대
영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왜국에만 있던 브란트가 어떻게 본국의 정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귀국의 제일 큰 가상 적국이 어느 나라입니까?"
"... 음..."
브란트는 윤정우가 무슨 이유로 이 문제를 묻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일국의
외교관들이 자칫 잘못하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소재를 대화의
주재로 선택한다는 것에 대해 당황했다. 그런 브란트를 보면서 윤정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귀국의 제일 큰 가상 적국은 얼마 전 우리 조선을 침공한 법국이 아닙니까?
"... 예... 그렇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귀국의 비스마르크 수상께서는 나중에 법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오스트리아에 무리한 전쟁 배상금이나 영토의 할양을 지양(止揚)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 프랑스와 전쟁을 생각하고 있다고요?"
"아! 그렇게 놀라실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사견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 예..."
"영사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조선의 섭정공 합하께옵서는 법국의 침공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고 계십니다. 그래서 만일 귀국이 법국과 전쟁을 한다면
귀국에 자그마한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하고 계시답니다."
"예... 그러시군요..."
브란트는 내심으로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에서 파견된
외교관 윤정우가 이렇게 정국을 보는 안목이 탁월할 것이라고는 미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윤정우와 여러 번 개인적으로 만나서 친분을 쌓기는 했지만 이런 정도의
인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윤정우라는 대단한 외교관을 키운
조선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심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웃기지도 않았다. 겨우 2000명의 프랑스군을 물리쳤다고 기고만장하는
꼴이라니 정말 웃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소문으로만 듣던 조선의
우수한 제식소총을 수입할 수만 있다면 독일군에 상당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브란트였다.
윤정우도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조선의 한식보총(韓式步銃) 정도면 서양에서도
엄청난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시모노세키에 상륙한
조선 해병여단이 죠슈군을 무찌르면 당연히 조선군의 우수한 무기에 대한 소문이
퍼질 것이고 독일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왜국 나가사끼주재
조선 공사로서의 마지막 공작(工作)이라는 나름의 생각이 들기도 했기에 브란트에게
이런 말을 꺼낸 것이다. 윤정우 자신도 한식보총 정도면 2차대전까지 사용해도
무난한 소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귀환 이유가 해군에 다시
복무하라는 것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윤정우는, 이번 기회에 한식보총을
이용해서 독일이 제공한 차관을 어느 정도 상환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윤정우가 만일 잠수함을 팔려는 김영훈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면 그런
걱정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었지만 잠수함의 건조는 아직까지는 철저한 비밀에 부쳐진
사항이었다.
"마침 잘 됐군요. 그 문제라면 나중에 제가 조선에 부임한 뒤 귀국 정부와 협의를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말씀은...?"
"실은 제가 내년에 귀국에 세워지는 독일 공사관의 초대 공사로 영전하여 파견하도록
결정이 났습니다."
"그렇습니까? 우리 조선주재 초대 공사로 영전하신다니 정말 잘 되었습니다."
"실은 그것 때문에 공사각하께 인사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그렇군요... 정말 잘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조선에 가셔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공사각하."
"그럼요. 그렇다마다요. 헌데 제가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어디 다른 곳의 공관으로 파견 나가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아닙니다만... 실은 제가 원래 직업외교관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가 해군 사관이었습니다."
"그러시군요. 어쩐지..."
"아무래도 군으로 다시 복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예..."
브란트는 윤정우를 처음 만날 때부터 직업외교관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체격도 좋고 몸의 동작 하나 하나에서 절도가 느껴지는 것이
윤정우의 전직이 군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해군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조선에 과연 얼마나 강력한 해군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브란트가 이렇게 조선 공사관을 방문한 목적은 윤정우의 본국 귀환을 축하하는
의미의 방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에 세울 독일 공사관과 초대 공사로 자신의 부임을
알리는 목적이 더 컸다. 더군다나 서양 제국(諸國)으로는 처음으로 조선에 공관을
설치하여 초대 공사로 부임한다는 생각만 하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흥분하는
브란트였다. 이것이야말로 그의 외교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을 할 때면 온 몸이 전율에 휩싸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조선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 조국 독일이
앞으로 동양에 대한 세력형성이나 발언권 강화 측면에서 분명히 커다란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독일의 아시아에서의 식민지 획득과 쟁탈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