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믿을 수 없습니다. 어찌 그런 일이..."
"믿으셔야 합니다. 대리공사님."
프랑스 공사관의 대리공사 벨로네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벨로네의 앞에는 안쓰러운 얼굴로 벨로네를 쳐다보는 리델 신부가 앉아
있었다.
로만 칼라의 검은색 사제목을 입고 있는 리델 신부는 방금 조선 공사관을 떠나
프랑스 공사관에 도착했다. 프랑스 공사관에 오자마자 프랑스의 대(對) 조선
원정함대의 참패 소식을 전하기 위해 벨로네의 집무실로 왔다.
프랑스의 패배 소식은 이미 페킹(Peking 북경)을 비롯한 청국 전역에 퍼져 있는
상태였다. 어디서 들어서 아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을 침공한 프랑스 원정함대가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는 소문은 벌써 한 달 전부터 나돌고 있었다. 프랑스 공사관
측에서는 애써 그러한 소문을 무시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조선에 원정간 프랑스
원정함대의 소식을 극비리에 탐문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이라곤 허황한
소문밖에 없었다. 급기야는 프랑스 원정함대의 소식을 알아오기 위해서 조선에
함정을 파견해 보자는 의견이 있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군함이 로즈 제독이 이끄는
원정함대에 배속되어 조선으로 향발하였고, 남아있는 배라고는 소형 상선이 전부였던
상태라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원정함대의 통역으로 종군했던 리델 신부가 갑자기 돌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원정함대의 처참한 참패 소식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어떻게 그 말을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말을 또 아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며칠 전에
조선에서 사신이 북경으로 들어왔고, 그 조선 사신과 함께 리델 신부가 돌아왔으니
조선이 프랑스 원정함대를 무찌르고 리델 신부를 포로로 잡았다는 얘기밖에 되질
않았다.
"진정하시고 이 편지와 문서를 보십시오."
리델 신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는 벨로네에게 두 장의 편지를 건넸다.
잠시 멍하니 앉아 있던 벨로네는 그제서야 정신이 돌아오는지 편지를 받았다.
"이게 뭡니까? 리델 신부님."
"원정함대사령관이신 로즈 제독님이 보낸 편지와 문서입니다."
벨로네는 로즈 제독의 편지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신인이 로즈 제독으로
돼 있는 편지의 겉봉을 후다닥 뜯더니만 정신없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 북경주재 프랑스 대리공사 무슈 벨로네에게...
먼저 이렇게 불쾌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전하게 된 점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오.
이미 리델 신부에게 들어서 아시겠지만 우리 프랑스 조선 원정함대는 조선군에게
무참하게 패했다오. 이 모든 일이 원정함대사령관인 본인의 책임임을 통감하는
바이오. 자세한 전투기록은 따로 첨부한 문서에 자세히 기록해 두었으니 그것을 보면
될 것이오.
벨로네 대리공사께서는 부디 이 편지를 받는 즉시 본국에 우리 조선 원정함대의
참패와 항복 소식을 전하고 빠른 시일 내에 조선 측과 접촉하여 우리 원정함대
장병들이 무사히 조국 프랑스로 송환될 수 있도록 송환협상에 성의를 다해 임해 주기
바라오. 아울러 우리가 애초에 원정 목적으로 내세웠던 우리 프랑스 선교사 9명도
모두 살아있음을 본인은 확인하였소. 그것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리델 신부에게 듣기
바라오. 모쪼록 최대한의 성의로 송환협상에 임해 프랑스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의 품으로 우리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기 바라오.
프랑스 대조선 원정함대 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Pierre Gustavus Rose)>
로즈 제독의 편지를 다 읽은 벨로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나서 전투기록이라는 문서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리고는 경악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로즈 제독의 편지와 전투기록 문서를
들고 있던 양손은 수전증에 걸린 알콜 중독자 마냥 부들부들 떨고 있었으며 얼굴빛은
사색(死色)으로 변해 있었다. 눈알은 충혈된 채 금방이라도 빠져 나올 듯 부릅떠져
있었다. 급기야는 실핏줄이 터지면서 피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와--- 악---"
벨로네는 마치 괴물이 울부짖듯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마를 그렇게 고함을
질렀을까? 공사관 내에 있는 다른 직원들이 놀라서 달려올 정도로 벨로네의
고함소리는 한참을 계속됐다. 리델 신부는 벨로네의 괴물같은 비명을 듣고 달려온
공사관 직원들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돌려보내야 했다. 그리고 일단 벨로네를
안정시켜야만 했다.
"진정하십시오. 대리공사님. 대리공사님께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진정하게 생겼냐구요!"
"... 음..."
"우리 위대한 프랑스군이 허접쓰레기같은 노란 원숭이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는데
어떻게 진정합니까? 어떻게요!"
벨로네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이 보였다. 일국의 대리공사라는 자가 이렇게 미쳐
날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리델 신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리델 신부가
벨로네라는 사람을 잘 몰라서 하는 생각이었다. 철저한 백인우월주의자인 벨로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파렴치한 짓도 할 사람이었지만, 자국의 명예가
실추되거나 자국민이 피해를 보는 꼴은 죽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벨로네 개인의 생각일 것이랴. 당시 보편적인 서양인들의 사고가
그러했던 것을...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생각하십시오!"
급기야는 리델 신부도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대리공사나 되는 위인이 이렇게
한심한 작태를 선보이는 것에 대해 리델 신부도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리델 신부가 이렇게 악을 쓰자 벨로네도 자신의 실태(失態)를
깨달았다.
"... 험...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흥분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대리공사님."
벨로네는 리델 신부에게 사과를 하긴 했어도 쉽사리 진정하기 어려운지 한참을 쉼
호흡을 하면서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일단 본국에 이 사실을 알리고 후속 조치를 지시 받아야 합니다. 너무도 엄청난
일이라 저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요."
"헌데, 우리 선교사 9명이 살아있다는 얘기는 무슨 소립니까?"
벨로네는 민간인에 불과한 리델 신부에게 국가 대사를 의논한다는 것에 대해 일말의
거리끼는 마음이 들었는지 말머리를 돌려 선교사 문제를 물어보았다.
"그것이... 실은 제가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베르뇌 주교님을 비롯한 우리 프랑스
선교사 9명은 모두 무사하십니다."
"뭐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이 학살됐다는
정보도 잘못된 정보였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벨로네는 다시금 망연자실해졌다. 결국 일개 선교사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위대한
프랑스 함대가 원정을 했던 것이고, 그 때문에 결국 위대한 프랑스군이 굴욕적인
참패와 항복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너무도 황당한 사실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벨로네였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일국의 외교관이라는
자가. 일국의 함대사령관이라는 자가 미확인 정보를 토대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여 결국에는 헤어나올 수 없는 모욕과 굴욕의 구렁텅이에 위대한 프랑스의 명예를
송두리째 밀어 넣은 꼴이 되었으니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대책이 서질 않았다.
"... 음..."
"..."
벨로네와 리델 신부는 말이 없었다. 너무도 엄청난 일에 벨로네는 망연자실했고,
자신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선교사의 신분이었기에 리델 신부도 잠자코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벨로네는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리델 신부님은 일단 돌아가서 쉬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 예... 그럼..."
리델 신부가 나간 후에도 벨로네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생각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본국 프랑스 외무성과 해군성에 이 일의 상세한 결말을 알리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전문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본국의 지시를 받고 나서야 조선
측과 송환협상을 하든지 해야할 것이다. 아마도 정식으로 송환협상이 시작되려면 몇
달이 지나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가엾은 이교도의 땅인 이곳 동양에 건너와서 나름대로 조국 프랑스를 위해서
헌신하기를 몇 해이던가. 이제는 더 이상 외교관으로서의 삶은 종지부를 찍어야 할지
몰랐다. 아니 이대로 물러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정작 그가 마음쓰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동양의 미개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조선이라는 해괴하고
웃기는 나라의 외교관들과 어떻게 송환협상에 임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지금
벨로네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이었다. 평소 동양의 나라들을 발가락에 낀
때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벨로네의 자존심에 비춰본다면 그것은 심히 어렵고도 힘든
일이 분명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 끙... 미치겠구만..."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90 높은 산 깊은 골...7
지난 회에 올렸던 닭고기 탕수육을 문제삼는 독자들이 조금 있었는데 탕수육은 그리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설탕이 아니더라도 탕수육의 단맛을
낼 수 있는 것은 무지하게 많습니다. 그럼 과연 조선 사람이 탕수육이라는 음식을
만들었느냐? 그것은 도래한 천군 중에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에게서
전수받았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