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88화 (188/318)

12.

북경성은 명나라의 3대 황제인 성조 영락제(成祖 永樂帝)가 건국초기의 수도였던

남경(南京)에서부터 천도하면서 쌓은 성이다. 당시까지 남아있던 원나라의 수도

대도성(大都城)을 확대, 발전시켰다. 유럽까지 쳐들어가 유라시아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원나라 3대 황제 세조 쿠빌라이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호화롭게 만들어, 멀리

서양의 이탈리아에서부터 온 방문객인 마르코 폴로를 놀라게 했던 그 대도성터의

동쪽에 중심을 잡고 있었다. 황성과 내성, 외성을 새로 배치하다보니 예전 대도성

보다는 동쪽으로 조금 이동을 한 상태였다.

북경성은 황성을 중심으로 한 내성(內城)과 각종 관아와 귀족, 관리들의 거주지인

외성(外城)으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인 모양은 凸字 모양이다. 정문은 정양문(正陽門)

이고 정양문 좌우로 선무문(宣武門)과 숭문문(崇文門)이 있다. 그리고 이 정양문,

선무문, 숭문문을 지나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안문(天安門)이 나온다.

북경성의 정문인 정양문이 남쪽으로 나 있는 정문이라면 동쪽으로 나 있는 정문은

조양문(朝陽門)이다. 우리 한양성의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에 해당하는 문이

조양문(朝陽門)이다. 조양문에서 서쪽으로 똑바로 가다보면 황제가 살고 있는 자금성(

紫禁城)이 연결되기 때문에 조양문은 북경성의 정동문이 된다.

우리 조선 사신 일행이 북경성의 조양문(朝陽門)을 통해 입경하면, 조선 사신들의

지정 숙소인 옥하관(玉河館)에 들어 여장을 풀었다. 자금성에서 흘러나온 냇물이

옥하(玉河)요, 옥하변에 있다 하여 옥하관인 이 사신 숙소의 정식 명칭은 사역회동관(

四譯會同館)이다. 명나라 때부터 있어 온 변방 국가들의 사신 숙소로서 합동

영빈관인 것이다. 청나라 때는 주로 조선 사신의 전용 객관으로 쓰였으며, 사행이

겹쳐 관이 좁으면 먼저 도착한 사행이 옥하관에 머물고 늦게 당도한 사행은 북경성

안의 절간을 빌려 머물곤 했다. 18세기에 들어 러시아와 국교를 열면서부터 러시아

사신들이 먼저 와 있으면 그들이 이 옥화관을 차지했으므로, 우리 사행은 절간이나

인근 개인집을 빌려 들기도 했다.

공친왕을 예방하고 온 김병학과 오경석은 지금 옥하관의 김병학의 방에 돌아와

있었다.

지난 10월 서울을 출발한 김병학 일행은 지금 북경성 조양문 내에 있는 옥하관에

여장을 풀었다. 다행히 러시아 사신이 없어서 옥하관을 통째로 사용할 수 있었다.

조양문 밖 동악묘(東岳廟)에서 북경주재 조선공사 오경석과 청국 예부의 접반관(

接伴官)과 통관(通官)들의 영접을 받은 후 바로 옥하관에 여장을 푼 것이 벌써 이틀

전이었다.

"그 이명복이라는 선교사는 보내셨는가?"

"아까 법국 공사관의 관헌이 우리 공사관으로 찾아와서 데리고 갔다고 하옵니다."

"음... 잘됐군."

"하온데 대감."

"응...?"

"저들이 언제 우리에게 접촉을 시도해 올까요?"

"그거야 낸들 알겠는가. 그러나 저들이 먼저 접촉을 시도해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네."

공친왕을 예방하고 돌아온 김병학과 오경석은 이제는 법국 선교사인 리델과 앞으로의

법국의 대응에 대한 숙의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법국에 청구하기로한 전쟁 배상금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사옵니다."

"나도 그것이 걱정일세. 그렇게 많은 배상금을 받을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여

섭정공 합하께 여쭈어 보았지만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으니... 뭐 섭정공 합하께옵서

어디 범연한 분이시던가. 어련히 잘 알아서 책정하셨을라구..."

"예..."

오경석은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도 뭔가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인지 얼굴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실상 오경석이 걱정하는 것은 물경 2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전쟁

배상금이었다.

200만 파운드라면 독일이 조선에 제공한 2000만 파운드의 차관에 비하면 약소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1842년 1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이 2년이라는 기간동안 투입한 500만

파운드라는 전비(戰費)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오경석이

당시 영국군이 투입한 전비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200만 파운드라는 금액이

얼마나 엄청난 금액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금액을 단 하루의

전투로 고스란히 조선에게 물어줘야 했으니 과연 법국이 그 배상금 전액을

물어줄지도 의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던가? 그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는 사용할 만 하던가?"

"아! 그거요. 아주 대단한 물건이었사옵니다. 어떻게 몇 천리나 떨어진 서울과

암호전문이 연결되는지 그 원리는 알 수 없으나, 한글이 새겨져 있는 자판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할 따름이옵니다."

오경석은 김병학 일행이 가져온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이용해 이미 운현궁의

대정원과 교신을 일차 마친 상태였다. 서울에서 북경까지는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대략 1000Km가 넘는 거리였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에게 정확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물건이라니 정말 천군 기술력의 한계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조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신문물과 신학문에 조예가 깊은 역매(亦梅) 자네가

모르면 나 같은 유학자는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아니 그런가?"

"그런가요...? 하하하..."

오경석은 김병학이 말했듯이 조선 사람 중에서 신문물과 신학문을 습득하는데 있어서,

신기도감 기기창의 부장 강위와 더불어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오경석에게도 아직까지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는 그 작동원리를 알아볼 수 없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 이르도록 줄기차게 실학을 공부하였다고는

하지만 천군이 가져온 신문물과 신학문은 그런 그에게도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오경석이 지레 겁을 먹고 신문물과 신학문을 배우는 것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사람답지 않은 오뚝한 콧날에 그윽한 눈매를 가지고 있는 오경석은

그에 못지 않은 열의와 기개로 충만한 사람이었다. 하여, 언젠가는 천군이 들여온

신문물과 신학문을 모조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세상을 여는데 일익을

담당할 포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대감께서는 북경이 초행이신지요?"

"그렇네. 초행이네만..."

"그럼, 이번 참에 북경의 명승을 한 번 둘러보시고 가시옵소서."

"그럴까...?"

"어떻사옵니까? 말이 나온 김에 지금 당장 나가시지요. 제가 안내를 해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오경석은 김병학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당장이라도 일어설 기색이었다. 이미 수 십

차례에 걸쳐서 청국을 오간 경력이 있었고, 이곳 북경주재 조선 공사로 부임하여

1년을 넘게 북경에 살았기에 북경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오경석이

이렇게 나서자 김병학도 슬그머니 구미가 동하는 것을 느꼈다. 원래는 오늘 하루는

옥하관에서 쉴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오경석의 제안에 회가 동한 것이다.

"좋네, 가세나. 그런데 나귀를 타야하는가? 아니면 수레를 타야하는가?"

"마차를 타야하옵니다. 대감. 우리 공사관에서 사용하는 마차를 가지고 왔으니

그것을 이용하면 될 것입니다. 더구나 조양문 밖 동악묘에서는 오늘 방생회(放生會)

를 한다고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으니 이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가는데는

마차만큼 수월한 것이 없사옵니다."

"방생회?"

"그렇사옵니다. 대감."

"방생회라고 하면 불가에서 이르는 그 방생을 뜻하는 것인가?"

"아니옵니다. 대감. 동악묘는 도가의 동악대제(東岳大帝)를 주신으로 모시는

사원인데 마침 오늘이 방생회를 여는 날이옵니다. 동악묘의 방생회는 불가의 방생과

달리 살아있는 새를 방생하는 행사이옵니다."

"허-어! 그래...?"

김병학은 오경석의 말에 흥미가 점점 당기는 것을 느꼈다. 불가에서 이르는 방생이

물에서 사는 물고기를 놓아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도가의 동악묘에서 행하는 방생은

새를 놓아주는 행사를 의미했다. 매달 방생회가 열리는 날이면 각지에서 몰려든

참배객들과 방생용 새를 파는 새 장수들이 득시글거리는 날이 바로 오늘 같은

방생회가 있는 날이었다.

"어서 가세나. 그 모습을 한 번 보고 싶구만..."

"방생회는 그냥 마차 안에서 봐도 되옵니다. 오늘은 유리창(琉璃廠)에나 다녀오도록

하지요."

"유리창이라면 북경성 화평문(和平門) 밖에 있다는 그 유리창을 말하는 것인가?"

"대감께서도 유리창의 소문을 들으셨사옵니까?"

"그럼, 북경에 오는데 유리창을 보지 않는다면 어찌 조선에서 온 사신이라고 할 수

있으리요. 아니 그런가?"

"맞사옵니다. 대감... 하하하..."

"하하하..."

유리창은 북경성 화평문 밖에 형성되어 있는 일종의 골동품 상가지대였다. 처음에는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과거에서 낙방한 사람들이 거리를

정리한 다음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았던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건륭제 시절에 유명한 사고전서(四庫全書)를 편찬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문인ㆍ학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금은 청국에서 편찬되는 각종

서적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청국으로 들어오는 진귀한 문물이 모여드는 곳으로

변모하였다. 이 유리창은 조선 사신들과의 인연으로도 빠질 수 없는 곳이었다. 조선

사신들은 북경에 올 때면 꼭 유리창에 들러 각종 서적과 문물을 수집하기도 했으며,

이곳 유리창의 문인ㆍ학자들과도 꾸준한 학술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학문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또한 많은 사신들이 연행록(燕行錄)에서 이미 언급한 곳이 바로

유리창이었다.

"이 사람 역매. 뭐하고 있는가? 어서 앞장서지 않고."

"예. 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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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되신 의견이나 건의는 작가가 판단하여 글의 진행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챕터가 끝나면 5권이 마무리됩니다. 5권이

끝나고 6권이 시작될 때에는 시간을 좀 진행시켜서 1871년부터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바로 조선과 서구 열강들의 각축을 그릴 생각입니다. 이 5년 동안 조선이나

천군이 꼭 만들어야 될 것이 무엇인지, 꼭 이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꼭 수립해야할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 독자 대감들의 의견을 구합니다. 아무거나 좋습니다.

의견 채택되신 독자 대감께는 역시 증정본 책을 한 권 보내드리도록 하겠으니 많은

리플과 메시지, 메일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이 이벤트는 이번 주까지 계속됩니다. 단,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의견은 제외합니다. ^^ 그럼, 이만...(__)

버그 자수입니다...-_-;;

누르하치에 의해 삼전도의 치욕이 일어난 게 아니죠...-_- 청 태종 홍타시(皇太極)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회에서도 밝혔듯이 당분간 청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사대를 청산한다고 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설정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천군이 등장하여 조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3년이라는 시간가지고 그렇게 급작스럽게

여러 대외관계를 바꾸기에는 아주 미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아직은 조선이 안으로 웅크리며 내실을 기해야 할 시기라는

판단입니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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