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87화 (187/318)

11.

"원로에 고생 많으시었소이다. 대감."

"고생이랄 게 무에 있겠사옵니까? 전하."

내무대신 김병학은 청국 조정의 실권자인 공친왕(恭親王) 혁흔(奕 )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조정의 명을 받은 김병학은 지난 10월 서울을 출발하여 50여 일의 여정

끝에 청국 북경에 도착한 것이 바로 이틀 전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청국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의 공친왕 집무실에서 역관을 대동하고 회담을

하고 있었다. 김병학의 통역을 위해서는 오경석 조선 공사가 특별히 자청하고

나섰는데, 북경주재 조선 공사라는 직책과는 사뭇 격이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나,

공친왕과의 공식적인 접촉에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려는 김병학과 오경석의 생각이

일치한 결과였다.

"그래, 부원군(府院君) 대감께서 우리 청국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오이까?"

"지난 9월에 있었던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사옵니다. 전하."

예부(禮部)에서 올라온 보고로 이미 조선 사신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친왕은 일체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김병학도

마찬가지였다. 공친왕이 자신을 비롯한 조선 사신이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지만 김병학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일이라면 북경주재 귀국 공사에게 일임하여도 될 듯 합니다만..."

이미 지난해 말 북경에 조선공사관이 세워지고 공사로 오경석이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빗대서 하는 소리였다.

"그렇기도 하옵니다만, 사안이 너무도 중차대한 일이라서..."

"중차대한 일이라...?"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미 북경에도 조선과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소문은 많이 나돌고 있었다. 주로

청국의 상하이(上海)와 톈진(天津))에서 조선의 제물포를 오가며 무역을 하는

상인들에 의해서 퍼진 소문이었지만, 워낙 허황한 소문이 많았기에 공친왕은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디 말씀해 보세요."

"실은 지난 9월 초에 우리 조선을 침공한 법국 군대를 상국(上國)의 염려와 성원

덕분에 모조리 물리치고 일부를 포로로 잡을 수 있었사옵니다."

"예-에?"

공친왕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잃었다. 법국 군대가 대규모 함대를 동원해

조선을 정벌하러 간 줄은 알고 있었다. 지난 7월에 법국 대리공사 벨로네 벨로네(

Claude Henri Marie Bellonet, 伯洛內, 白龍納)의 조회문이 있을 때부터 조선문제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 9월 4일 산동성 치푸(芝 )를 출발하여

조선으로 향한 법국 함대의 규모도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총 9척에 달하는

함선과 2000명이 넘는 병력이라면 지난 1860년 제 2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과 법국이

동원한 병력의 1/4 규모밖에 되지 않았지만 조선에게는 치명타로 작용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여, 법국 대리공사 벨로네의 경고성 조회문을 핑계로 조선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있었다. 헌데 이제 와서 법국 군대가 조선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소리를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법국 군대는 우리 조선의 수도인 한양으로 올라오는 내륙 수운을 붕괴시키고 한양을

고립시켜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고 우리 조선의 강화도에 상륙하였으나, 9월 7일

강화도를 수비하고 있던 우리 조선군에 의해 궤멸적인 타격을 받아 항복하였사옵니다.

"

"그... 그럴 리가... 그럼, 법국 함대는 어떻게 되었소? 상륙한 법국 군대야 어떻게

해볼 수 있었다지만 해군이 빈약한 조선이 법국의 막강한 함대를 무찌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오만...?"

공친왕은 말까지 더듬으며 말했다. 이런 공친왕의 말투로 봐서 그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공친왕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았다. 자신이 알고 있고, 모든 청국의 관계자들이나, 서양 외교관들이 알고 있듯이

조선은 해군이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재래식의 수군이 있다고는 하지만

근대식의 해군이라고는 말 할 수 없었다. 청국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해군이 없고

그저 영국에서 수입한 양선 한 척이 전부인 상황에서 서양 제국(諸國)의 강대한

해군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실정인데 하물며 조선은 말해 무엇할 것인가. 이것이

여태까지 공친왕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하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우리 조선은 해군이라고 불릴만한 수군이 없는

실정이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저들의 함대를 물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인지 저들이 좁은 내륙 해협으로 함대를 진입하여

정박한 관계로 해안가의 요새포를 이용하여 저들 함대를 모조리 수장시킬 수

있었사옵니다. 전하."

여기까지 말한 김병학은 품속에서 기다란 봉투를 두 개 꺼내서 공친왕에게 전했다.

하나는 조선과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상세한 전말을 기록한 문서였고, 나머지 하나는

조선의 섭정공 김영훈이 공친왕에게 따로 전하는 서찰이었다. 김영훈은 그 서찰에서

역시 법국과의 전쟁을 언급하면서 완곡하게 조선을 낮추고 이 모든 일이 상국(上國)

의 보살핌 덕분이었다는 것을 간곡한 어조로 설명하고 있었다.

먼저 조선과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한 서찰을 펼쳐본 공친왕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문이 막힌 정도가 아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안색이 다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청국에 신속(臣屬)하고 있는 속방(屬邦)에 불과한 조선에서, 동양

제일의 대국(大國)이라 자부하는 청국도 못한 일을 이뤄냈다는 것을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김병학과 오경석은 공친왕의 그런 기색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과거

청 태조 누르하치에게 인조대왕이 당한 삼전도의 치욕이 모조리 씻겨져 나가는 것

같은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공친왕은 한참을 말문이 막혀

있었다. 정신은 멍했고, 머리 속은 텅빈 것 같았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청국 측 역관의 기침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듣기로는 대감과 같이 온 법국인 선교사가 한 사람 있다고 들었소만, 그것은 어찌된

일이오?"

"그 법국인 선교사의 이름은 리델(Felex Clau Ridel, 李福明)이라고 하옵고, 그자는

일전에 우리 조선에 불법으로 입국하여 선교하다 청국으로 도망쳐 법국 함대를

불러들인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이옵니다."

김병학은 여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이것은 김병학의 말을 통역하던 오경석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조선 사신일행이 말을 끊어버리자 공친왕이 뒤를 이어 입을

열었다. 사실 김병학은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말을 끊은 것이었다. 지난 전쟁의 전단(

戰端)을 제공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사람이 바로 리델 신부였다. 공친왕은

당연히 리델 신부에 대한 궁금증이 인 것이다.

"그 선교사를 어찌할 생각이시오? 설마 지난번처럼 그자를 죽일 생각이시오?"

"지난번 일이라 하오시면...?"

"있지 않소이까! 조선에서 천주교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처형한 일 말이오이다."

공친왕은 아직까지 그 일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리델

신부가 청국에 밀입국해 자국 공사관과 함대에 알린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이런 정보부재는 공친왕만 탓할 것도 아니었다. 조선에 대한 주변국들과 서양

제국의 정보부재는 심각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정보부재를 해소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서양 제국은 청국과 왜국 상인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그치고 있었다. 그것은 왜국과

청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왜국은 조선에 왜관을 두어 무역을 통한 교류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정세에 밝지 못했다. 청국의 사신이 육로를 통해 서울까지 들어와서 조선의

실정을 어느 정도는 살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왜국의 사신은 주로 서계에 의한

서신교환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 임진년과 정유년의 왜란으로 인해 왜국 사신이 조선

내륙으로 들어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하게 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이 나가사끼에 공사관을 두어 왜국과 왜국에 진출한 서양 제국에

대한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왜국은 왜왕을 지지하는 존왕양이파(

尊王攘夷派)와 막부를 지지하는 좌막파(佐幕派)의 대립으로 인한 내란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기에 감히 조선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국의 경우에는 전통적으로 조선에 사신을 자주 파견하지 않았다. 그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사신을 파견하는 정도였으니 그 횟수는 1년에 한 차례가 될까

말까 했다. 조선이 1년에 보통 서너 차례에 달하는 사신을 청국에 파견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경우였다. 그리고 그렇게 파견하던 사신도 최근에 들어와서는 거의 파견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국의 정정이 극히 불안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다른

서양의 침노(侵擄)가 극에 달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한 마디로 사신을 파견할

만큼 형편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조선은 주변의 다른 속국들에 비해서 유난히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있던 것도 사신을 파견하는 것에 소홀하게된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조선의 요구로 북경에 상주하는 공사관을

세우는 것을 허락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명색이 대국이요 상국인 청국에서 소국(

小國)이요 속국인 조선에 공사관을 세우고 외교관을 상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것이 청국 조정 관료들의 현실인식이었다. 조정의 누구도 조선에 공사관을 세우자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전하. 이번에 신이 상국에 오고 나서야 그런 소문이 북경에 퍼졌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감히 단언하건데 그와 같은 모두 헛소문에 불과한

일이옵니다."

"헛소문?! 허면, 진실은 무엇이라는 말씀이오?"

"전하. 지난해 말에 우리 조선에서는 역모를 도모하려는 자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적발한 적이 있었사옵니다."

"그건 조선 공사의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어요."

"하온데 그 역모에 가담한 자들 중에는 천주교를 믿는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사옵니다.

"

"그것도 알고 있어요."

공친왕은 뭔가에 단단히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김병학이 말을 하는 족족 그 말을

끊어버리는 품새가 심상치 않았다. 그러나 김병학도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 이런

조그만 일에 얼굴을 붉히고 안색이 변할 정도로 김병학의 살아온 날들이 녹록치는

않았다.

"그때 역모에 가담한 자들을 모조리 참수한 적이 있었사온데, 그 중에는 천주교

신자들 몇몇도 포함되었사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에서 금하고 있는 천주교를 믿는

죄인들을 적발하여 심문한 일이 있었사옵니다. 그 중에는 법국 선교사 9명도

포함되어 있사온데, 리델이라는 자는 천주교 신자 몇몇이 참수된 것을 오해하여 다른

법국인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이 참수된 것으로 지레 짐작하여

자국 공사관과 함대에 고한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허-어... 허면, 이 모든 일이 리델이라는 선교사의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말씀이시오?"

"그러한 줄로 아옵니다. 전하."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일개 선교사가 퍼트린 헛소문에 서양의 강대한 법국은

물론이고 동양 제일의 대국인 청국까지 놀아났다는 사실은 망신 중에서도 대단한

망신에 속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이미 당한 망신은

그렇다고 해도 조선에 따질 것은 따져야 했다. 공친왕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허면, 왜 그에 대한 사실을 여지껏 알리지 않다가 이제야 알린다는 말이오. 이는

상국인 우리 청국 조정을 우롱하자는 생각에서 벌인 처사가 아니었소?

"전하. 우리 조정에서 그런 소문을 전해들은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오경석 공사를

통해서이옵니다. 오경석 공사는 상국에 이러한 소문이 퍼진 것을 알고는 부랴부랴

우리 조정에 이 사실을 알렸사옵니다. 그때가 지난 7월 말이었사옵니다. 그러나

상국에서 우리 조선까지는 장장 두 달에 가까운 노정이 소요되는 관계로 우리

조정에서 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미 법국 함대가 조선으로 원정 온 이후의

일이옵니다. 하여, 그 소문의 허실을 알리기에는 이미 늦게 되었사옵니다. 일단 우리

조정에서는 저들에게 이 사실을 상세히 알리고 퇴거할 것을 요구하였사오나, 저들은

무엄하게도 우리 조선의 국권을 유린하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강화도를

침탈하였기에, 먼저 저들의 침탈을 물리친 연후에 이렇게 알리게 되었사옵니다. 부디

우리 조정의 사정을 밝게 살피시어 노여움을 거두어 주옵소서. 전하."

이쯤 되고 보니 공친왕으로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김병학의 말에 하나의 그른 점이

없었다. 북경에 주재하고 있는 오경석도 머나먼 조선 땅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

수는 없었을 것이고, 북경에 퍼진 소문을 조선 조정에 알렸다고 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시간이 덜 소요되는 배를 왜 이용하지

않았냐고 따진다면 거기에 대한 변명이 분명코 있을 것이다. 공친왕은 입맛이 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조선 조정에서 청국 조정이 아무런 사전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을

문제삼지 않는 것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오이까?"

"법국이 불법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 조선을 침탈한 것은 야만적인 행위로

규탄 받아야 마땅한 줄로 아옵니다. 일단 이 사실을 법국 공사관에 알리고 강력히

항의하도록 할 것이옵니다. 그러한 다음 법국 정부의 공식사과와 함께 책임자를

처벌하고, 아울러 저들의 침탈로 인해 우리 조선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금을

청구한 연후에 포로들을 송환할 작정이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상국 예부의

허락이 있은 연후에 시행해야될 줄로 아옵니다. 전하."

"... 음..."

공친왕은 김병학의 말이 끝나자 얼굴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서양의 강국인 법국을

물리친 조선이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관했다면 당장 호통을 치며 나무랐을 것이나,

이렇게 알아서 기고 들어오니 기껍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지난번의 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그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험... 험... 조선이 비록 아국의 속방이라고는 하나 엄연한 자주국이건만 국방과

외교에서의 일까지 아국 조정의 허락을 받을 일이 무에 있겠소. 여지껏 해온 것처럼

만 해주신다면 아국 조정에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을 것이오이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김병학과 오경석은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망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록 조선이

천군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청국과 척(隻)을 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병학은 한껏 공친왕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후에 다시 한 번

공친왕을 비롯한 상국을 띄워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전하, 우리 조선과 상국은 오랫동안 교통을 하여온 사이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과

상국과는 순치지간(脣齒趾間 입술과 이빨처럼 가까운 사이)의 처지에 있는 가까운

사이라고 말할 수 있사옵니다. 그동안 우리 조선은 상국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우리 조선의 백성들과 조정의 신료들은 항상 이 점을 유념하고

있사옵니다. 앞으로도 우리 조선은 상국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 한치의 소홀함도 없을

것이옵니다. 전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려..."

김병학의 거듭된 치사에 얼굴이 다 벌게진 공친왕은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조선에서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경계하는 마음도 생기고 있었다. 조선이

지금은 비록 청국에 신속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중에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지금 조선 임금의 장인이라는 김병학이 입으로는 상국의 은혜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

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등을 돌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난 강희제(康熙帝)

나 건륭제(乾隆帝)의 치세 때라면 이런 걱정은 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청국에 신속하는 대부분의 속방이 등을 돌리거나 아니면 양이의

침탈로 식민지로 전락한 지금, 조선은 든든한 우방이요, 청국에 신속하는 거의

유일한 속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태이다 보니 조선을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하였고, 조선에게 좀 더 잘 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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