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박진만이 이끄는 친위천군 3연대 1대대가 대마도의 무사와 향사들을 정리하고
대마도를 완전히 접수하고 있을 때, 김영훈과 한상덕, 김병국 등은 남양조선소에 와
있었다. 지난 7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 침입했던 제너럴 셔먼호는 이제
광제호(光濟號)라는 새로운 이름을 소년왕으로부터 하사 받고 이제는 어엿한 조선
해군의 연락선 겸 훈련선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김영훈 일행은 그 광제호를 타고
해주의 용당포를 출발하여 남양 해군사령부까지 오게 되었다. 광제호는 지난
대동강에서의 전투로 기관이 파손되었었는데, 신기도감 신기창의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풍백함에 장착된 것과 똑같은 기관을 장착하여 17노트라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배로 다시 태어났다.
남양조선소에는 3000톤급 이상의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선거가 두 개 있었고,
5000톤급 이상의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선거가 한 개 있었다. 풍백함을 비롯한
운사함과 우사함이 모두 건조된 상태에서 그동안은 민간용으로 상당수의 증기선을
건조하여 민간에 대여한 남양조선소는 올해 초부터 극비리에 잠수함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3000톤급 이상을 건조할 수 있는 선거 두 개 중, 하나의 선거에서
건조되기 시작한 잠수함은 해군사령부에서 파견 나온 군사들의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건조되고 있었다. 그 선거에는 출입이 허용된 일부 기술자들과 과학자, 그리고
근로자들 외에는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는데, 세계 최초의 실용 군용 잠수함의
건조였기에 엄중한 보안과 철통같은 경비 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세계 최초의
실용 군용 잠수함이 건조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김영훈이 일부 대신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총 세 척이 건조되고 있는 하나의 선거에는 막바지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현대의 크레인과 비슷한 기계가 여러 대 보이고 있었는데, 정약용이
만든 높이 4.4m, 폭 1.7m의 거중기(擧重機)보다 몇 배는 거대한 현대식으로 개량된
거중기-크레인-가 근로자들 손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고, 녹로(*1)와 비슷하면서도
훨씬 거대하고 높다란 쇠 구조물 여러 개가 선거 양쪽에 얼키설키 있으면서, 여러
가지 물건들을 나르는 모습도 보였다. 한 눈에 봐도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 수준의
건설장비 정도는 돼 보였다. 그리고 한창 건조 중인 세 척의 잠수함이 선거 한
가운데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세 척 잠수함의 외벽에는 커다란 사다리에
올라간 근로자들이 불꽃을 튀기며 산소용접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꺼운 누비옷을
입고, 손에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용접용 장갑을 낀 조선의 근로자들이 첨단
장비라고 할 수 있는 산소용접기를 사용하여 잠수함 건조에 일조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뿌듯한 마음이 절로 일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상당히
이채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대단하군요!"
"그렇습니다, 합하. 이 속도로만 작업이 진행된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진수할 수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김영훈 일행을 안내하고 있는 남양조선소의 제조(提調) 최규철의 말에는 자신감이
묻어나 있었다.
"저런 크레인 같은 것들은 인마(人馬)의 손으로 움직이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동력원이 있습니까?"
"저기 보이는 모든 기계들은 신기도감에서 개발 생산된 것들인데 모두 전기를
이용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합하."
"전기요? 아! 이곳 조선소에도 초고온 태양로가 1기 설치돼 있지요?"
"그렇습니다, 합하."
김영훈은 초고온 태양로가 남양조선소에도 설치되어 있는 것을 깜빡 잊은 모양이다.
잠시 자신의 건망증을 탓한 김영훈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서 잠수함의 외벽을
용접하고 있는 조선 근로자들을 보면서 다시 묻는다.
"우리 근로자들의 용접작업이나, 다른 기계를 이용한 작업에 대한 적응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말도 마십시오, 합하. 처음에는 파란 불을 뿜어내는 산소용접기가 무서워서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던 근로자가 태반이었습니다. ㄱ자 모양의 조그만
기계에서 희한한 불이 뿜어져 나오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처음 몇 주에는 사고도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요?"
"그렇지 않구요. 워낙에 기계문명에 대한 몰이해와 거부감이 뿌리깊었던 조선인지라
그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고 적응하도록 교육시키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또한 용접기를 비롯한 처음 보는 여러 가지 기계를 잘못 다뤄, 부상을 입거나, 또는
다른 부분을 용접하거나, 용접을 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다시 작업을
해야만 했던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지금은 어느 정도의
숙련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불안한 마음이 약간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천군 기술진이 일일이 확인을 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느라 작업
진행속도가 초반에는 상당히 더뎠던 것도 사실이구요."
"예... 그렇군요..."
20세기나 21세기의 첨단 기계와 기술에 대한 숙련도를 묻는 김영훈의 말에 최규철은
그동안의 애로사항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거의 100년에서 150년을 앞선 기술과
일부 기계에 조선사람들이 쉽게 적응하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최규철의 얘기를
들어보니 상당한 난관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가져온 기계 중에 소모성 부품들도 상당히 있을 것인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기계류의 부품 같은 경우에는 신기도감에서 볼트와 너트 등의 부품류에 대한
규격화를 이미 완성하였고, 그에 맞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지만, 지금 세계의 다른 나라나 조선에서 생산이 안되고 있는 고무나 플라스틱류의
경우에는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예비로 가져온 것들이 모두 바닥날 실정입니다.
예를 들어 산소용접기의 경우에도 용접봉이나 용접기는 지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용접기와 산소통을 연결해주는 고무 호스 같은 것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아끼고 유의하면서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계에 봉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직까지 고무나 플라스틱 제품은 조선에서 만들 수 없었다. 물론 쥬신상사를 통해서
천연고무가 수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극히 소량에 불과했고 가격도 상당히 비쌌다.
그리고 고무를 다시 가공해서 제품을 만들기에는 아직까지 비용대 효과면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대량수입과 대량생산이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다시피 한 조선이고, 이제 겨우 중화학 공업단지의 건설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인지라 그런 것을 이루기에는 앞으로도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천연고무의 원산지인 남미의 브라질과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었기에 운송비도 만만치 않았고, 천연고무의 가격이 너무 비쌌다. 지금 시대에
천연고무는 일종의 전략물자로 취급되어 고무나무의 원산지인 브라질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고 있는 물건으로, 브라질은 고무나무를 금수품목으로 지정하고 그
관리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 실정이었다.
"하루빨리 중화학 공업단지가 완공돼야 석유화학 고무나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합하. 천연고무의 원산지인 브라질까지는 거리가 상당히 많이 떨어진
관계로 시일도 오래 걸릴뿐더러 가격도 너무 비쌉니다. 그렇다고 동남아에
고무나무가 심어지기를 기다리려면 최소한 6,7년은 있어야 하니..."
고무나무의 원산지는 브라질의 아마존강 유역이다. 브라질은 천연고무의 수출로
막대한 이득을 취했는데, 이런 고무나무가 동남아시아에 이식된 것은 한 영국인
수목학자의 공이 컸다. 영국인 수목학자 위크햄(Henry A. Wickham)은 1870년에
고무나무의 종자를 과수 종자로 속여 브라질로부터 빼돌린 뒤 런던 근교의 왕립
식물원(Kew Gardens)에서 싹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이후 영국은 1877년 싱가포르에
고무나무를 최초로 도입하였는데, 이것이 성공적으로 자라자 2년 뒤에는 말레이 반도
곳곳에서 고무나무의 적응 시험을 실시하였고 결국 전 동남아시아에 고무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일단 그 문제는 달리 해결 방법이 없군요. 하루빨리 석유화학 공업단지가 준공되어
가동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헌데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한(韓)-1 잠수함이 1차
대전에 사용되었던 독일의 구형 U-9을 모델로 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합하."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구형 U-9보다는 크기가 좀 더 큰 것 같군요."
"잘 보셨습니다. 합하. 구형 U-9은 크기가 57.38m, 전폭이 6m, 배수량이 611톤에
불과한 소형 잠수함이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우리 한-1 잠수함은 크기와 전폭이
구형 U-9에 비해서 약간씩 커졌습니다. 그리고 배수량도 약간 늘어났지요."
한-1 잠수함은 1차 대전에 활약한 독일의 구형 U-9을 모델로 만들어지고 있는
잠수함이다. 비록 구형 U-9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성능이나 제원은 약간
달랐다.
*한-1 잠수함의 제원
배수량 : 수중/수상 : 600톤/720톤
크기 : 70m
전폭 : 7m
속력 : 수중/수상 : 15노트/9노트
잠항심도 : 60m
무장 : 함수/함미/운용어뢰 : 2/2/10
승무원 : 장교/수병 : 5/30
독일의 구형 U-9에는 없던 음향탐지기와 무전기, 스노켈 장비가 새로 장착되었고,
구형 U-9의 어뢰운용수가 겨우 6기에 불과했으나, 한-1 잠수함은 10기의 어뢰를
운용하도록 성능이나 무장에서 약간 업그레이드 되었기에 크기와 전폭, 그리고
배수량이 약간 늘어난 상태였다. 그리고 스노켈 장비를 장착하였기에 수중
항주능력이 대폭 향상된 것이 바로 한-1 잠수함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술력으로 구형 U-9 정도의 잠수함밖에 만들 수 없습니까? 좀 더
성능이 뛰어난 잠수함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합하."
김영훈과 최규철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김종완 해군사령관이 나서며 말했다.
"솔직히 우리의 기술력으로는 2차 대전에서 독일이 건조한 U-21 정도는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 U-9을 만든 이유는 아직까지 제대로
잠수함을 운용할 수 있는 승무원이 없는 상태에서 성능이 월등한 잠수함을 만들어서
운용하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었습니다. 막말로 운용하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아시다시피 잠수함의 사고는 곧바로 커다란 인명피해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최규철 대감께 구형 U-9을 먼저 만들어 달라고 건의했습니다. 구형 U-9을
운용하면서, 숙달된 잠수함 승무원을 많이 양성한 후에, 좀 더 좋은 잠수함을 만들
것을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군요..."
김종완의 설명대로 잠수함 승무원들은 하루아침에 양성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증기함의 운용요원을 배출하기 시작한 해군에게 제대로 된
잠수함의 승무원까지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적어도 2년에서 3년 정도는
훈련시켜야 쓸만한 잠수함 승무원을 양성할 수 있었다. 일단 시범적으로 건조한 한-1
잠수함을 통하여 충분한 숫자의 잠수함 승무원들을 양성한 후에 제대로 된 잠수함을
건조해도 늦지 않았다.
"아까 설명을 듣기로는 독일군이 사용하던 이니그마(Enigma) 암호해독기를 우리 한-1
잠수함에 설치한다고 들었소만... 이니그마가 무엇입니까?"
"신기도감에서 개발된 이니그마는 우리말로 하면 수수께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한 정식 명칭은 수수께끼라고 합니다. 이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는 독일에서
개발하여 2차 대전 당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던 것을, 우리 신기도감의 기술자들이
개량해서 만든 것으로 26자의 한글 자판에 회전자(Rotor)와 플러그판(Steckbrett),
전구판(Lampenfeld)으로 구성되어집니다."
수수께끼의 사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자판의 원하는 자음과 모음을 두드리면
일련의 작업을 통해 뒤에 있는 전구판의 해당 자음과 모음에 불이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처음의 자음과 모음을 대신해 문구를 만들면 되는 것이고, 멀리 떨어져
암호화된 문구를 접한 사람은 위와 똑같은 작업을 통해 원래의 문장으로 해독하면
되는 것이다. 신기도감에서는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잠수함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외국에 주재하고 있는 해외공관이나 해외출병 부대에도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물건이었다. 전기를 이용해서 사용해야 하는 점 때문에 지금시대에는
보편화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앞으로 전기가 널리 보급된다면 그 효용은
무한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왜국에 출병한 해병여단이나 왜국 주재 조선 공사관에는
이번에 실험적으로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보급하여 앞으로는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이용한 통신을 할 계획이었다.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는 당연히 전기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조선 공사관의 경우에는 발전을 위한 소형 디젤발전기를 보낸 상태고,
왜국에 출병한 해병여단과 대마도를 접수하라고 파견한 친위천군 3연대 1대대를
위해서는 디젤발전기보다 휴대가 간편한 축전지를 보낸 상태였다. 물론 예비로
충분한 수량의 축전지를 준비해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면, 공중파를 통한다는 말인데, 지금이야 무선 감청 기술이 전무한 실정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나중에 기술이 진보하여 수수께끼 무선 통신이 감청되면
어떻게 합니까? 물론 감청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암호를 해독하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한 감청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분석하면 어떤 글자가 어떤 글자로
변환되는지 파악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거기에 대한 대책도 세워놔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아이고, 합하. 저희 기술자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이미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서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선통신에 대한
감청기술이 등장하려면 아직 몇 십 년이나 있어야 하는데요. 우리 천군이 이 세계에
등장하여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고, 그 과학기술의 발전이 다른 외국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 몇 십 년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군요... 요즘 제가 전과 같이 아무 것이나 쉬이 넘기지 않다 보니 별 걱정을
다한답니다. 이해하세요. 아무래도 이 섭정공의 자리라는 게 사람을 쉬 늙게 만드는
자린가 봅니다."
김영훈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입맛이 썼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60대의 노인처럼 하고 있으니, 별에 별 걱정이 다 생기는 지경이었다.
한국에서였다면 감히 상상이나 했던 일인가.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겼던가?
"그럼 한-1은 총 몇 척이나 건조할 생각입니까? 그리고 한-1의 후속 모델로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한-1은 총 6척 정도 건조할 예정이고, 후속 모델로는... 음... 지금 생각으로는 U-
21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 6척의 한-1 잠수함의 건조라... 좋군요."
"감사합니다. 합하."
최규철은 김영훈이 좋다고 한 의미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단 자신이나
해군측의 계획에 대해 김영훈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정작 김영훈이 좋다고 대답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무서운 신무기가 될 것이 분명한 이 한-1 잠수함을 조선 해군이 운용하고
충분한 운용경험이 쌓이는 몇 년 후에는 몇 척을 독일에 수출할 생각이었다. 구형 U-
9을 건조한 원래의 나라 독일에 새로 건조된 막강한 신무기 한-1 잠수함을
수출한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일이 될 것이지만, 어차피 동맹관계로까지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대 독일 외교관계를 잠수함이라는 신무기를 제공함으로써 공고히
하고 싶었고, 더불어서 조선이 독일로부터 제공받은 차관 2000만 파운드의 상환도
잠수함으로 대신할 생각이었다. 남양조선소에서 건조되는 한-1 잠수함의 척당
건조비용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잠수함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충분히 그만한 값어치는
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1 잠수함 한 두 척에 약간의 건조기술까지 넘겨준다면
충분히 2000만 파운드의 값어치는 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김영훈은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천군의 기술로 개발되어 장착된 음향탐지기나 무전기, 스노켈 장비 등은 당연히
제거하고 말이다. 이른바 다운그레이드 형식의 수출이라고나 할까.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이런 심중을 내 비치도 않고 혼자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중신들에게
이런 뜻을 보인다 할지라도 모두들 훌륭한 생각이라고 찬성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김영훈이 좋다고 한 것인데 최규철은 달리 오해하고 있었다.
"U-21이라... 너무 수준이 높은 것 아닐까요? 이제 겨우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너무 이른 결정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대정원장 대감. 적어도 U-21 정도는 되야 수중에서 장시간 작전을 할 수
있고, 그래야만 잠수함을 만드는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저의 솔직한 심정은 209급
잠수함을 만들고 싶지만 아직까지 그것은 불가능한 주문이고, 적어도 U-21는
만들어서 우리 조선해군을 세계 제일의 해군으로 키우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하하하... 그래요..."
최규철의 욕심에 가까운 말에 질문을 한 한상덕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까지는 요원한 일이지만 자신들이 죽고 없는 다음 세대에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방대신 김병국은 이들이 하는
얘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헌데, 해군사령관 대감."
"말씀하시지요."
"이들 잠수함의 승무원은 어떻게 선발하실 작정이시오? 그리고 이들 잠수함의 함장은
내정되었소이까?"
김병국은 남양조선소에 온 후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시커먼 선체의
잠수함이라는 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대략적으로 공부한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의 대화에 낄 정도로 많은 공부를 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별말이 없었고,
다른 이들이 웃음을 터뜨려도 왜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웃지 못했던
김병국이었으나, 이번 잠수함 건조 시설에 대한 시찰이나 해군의 인사관련 일까지
잊어버리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잠수함의 승무원은 모두 부사관 이상의 지원자들로 충원할 생각입니다. 잠수함의
특성상 일반 군사들을 승무원으로 선발할 수는 없고, 부사관 이상의 군관들의 지원을
받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1번함의 함장에는 홍현태 대위를 2번함의 함장에는 공동우
대위를, 마지막 3번함의 함장에는 윤정우 대위를 내정한 상태입니다."
"가만, 윤정우 대위라면...?"
"그렇습니다. 지금 나가사끼 주재 조선 공사 윤정우가 바로 윤정우 대위입니다."
"합하께옵서 그래서 윤정우 공사를 불러 들이라 하신 것이구려."
"그렇습니다. 대감. 솔직히 조선 해군 출신의 군관에게 참수함을 맡기기에는
잠수함이라는 무기가 너무도 생경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천군 출신의 함장들
밑에서 착실하게 경험을 쌓은 후에 함장을 맡겨도 맡길 생각입니다."
김종완의 대답에 모두들 공감하는 눈치였다. 잠수함을 비롯한 신무기에 무지한
김병국도 김종완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조선 해군이 상당한 성장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증기선을 맡길만한 군관들이 양성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잠수함이라는 신무기를 운용하라고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벌써 중화참인데..."
"그렇구려... 어떻습니까? 합하. 시장하시옵니까?"
"나도 마침 그 얘기를 하려던 참입니다. 근로자들이 작업을 그만두고 하나 둘 나가는
게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나보군요."
"그렇습니다. 합하. 제 방으로 가시지요. 식사를 거기로 가져오라고 이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일반 근로자들이 먹는 식당으로 가십시다. 근로자들이 어떻게
먹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이 뭔지도 알고 싶고..."
"알겠습니다. 합하. 그럼, 식당으로 가시지요."
해주에서 새벽밥을 먹고 출발했으니 배가 고플 때도 됐다. 몇 시간을 배를 타고 왔고,
또 상당한 시간을 돌아다니며 잠수함 건조과정을 지켜봤으니 시장할 만도 했다.
마침 점심때가 되자 김영훈 일행은 최규철의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