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83화 (183/318)

7.

문교차관 이창호는 성균관 대학과 육사에서 역사학을 일주일에 세 번씩 가르치고

있었다.

조정에 출사한 다른 출신 중신들이 윗사람과 아랫사람들 훈련과 교육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업무로 정신 없이 바빴다면, 그만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한가하다고 할 수

있었다. 왜? 그것은 바로 그가 모시고 있는 문교대신 최한기 덕분이었다. 문교대신

최한기는 당대 제일의 실학자요, 개혁성향의 학자였다. 천문,·지리,·농학,·의학,

·수학 등 거의 모든 학문 전반에 박학하여 1,000여 권의 저서를 남기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천군이 전수한 신문물과 신학문에 대한 이해가

남달리 빠른 대신이었다. 하여, 천군 출신 차관들에게 많은 의존도를 보이는 다른

대신들과는 반대로 스스로 어느 정도의 역량을 보이고 있는 대신이었다. 그래서

이창호가 이렇게 시간을 내서 성균관 대학과 육군사관학교에서 교수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창호가 두 학교에서 강의만 하는 것으로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천군 출신 차관들이 각 부서의 일로 바쁜 반면에 그는 다른 일로

바빴다.

이창호는 두 학교에서 역사학을 교수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민족의 숨겨진 역사를 저술한 각종 서적들을 수집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또

각종 연구활동도 왕성히 하는 중이기에 결코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바쁜 이창호였지만 성균관 대학과 육군사관학교의 강의만큼은 꼭 빼놓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위해 광화문 앞 12부 거리에서 멀고 먼

태릉에까지 걸음을 했다.

이창호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교단에 섰다. 이미 생도들도 이창호의 강의 방식을

알고 있었기에 다는 교수들에게 하듯이 따로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한자라도 더 가르치는 게 이창호의 강의 스타일이었다. 이창호는 흑판에

동북아시아의 지도를 대충 그렸다.

"오늘은 고구려(高句麗)의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375~413)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

모두들 광개토태왕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광개토태왕께서 그토록 정복사업에 헌신하셨던 이유는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이창호의 질문이 있자 여기저기에서 손을 드는 생도들이 보였다. 짙은 회색의 양식(

洋式) 생도 정복을 입고 머리와 수염을 짧게 자른 육사생도들은 현대 한국의

육사생도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창호가 한 생도를 가리켰다.

"광개토태왕께서는 우리 민족의 옛 영토를 수복하고 위해서 정복전쟁을

일으키셨습니다."

"음... 맞는 말이네, 또 다른 의견은 없나?"

이창호가 약간은 미진한 듯 다른 의견을 구하자, 또 다른 생도가 대답을 한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의 성격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사전 정지작업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은 역사 이래로 수많은 외침을 당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외침을 당하기 이전에 외침의 위험요소를 사전에 제거한다면 외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볼 때 그런 측면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 같습니다."

"... 음..."

육사생도들은 말투부터 달랐다. 미래 조선군을 이끌어갈 동량들이다 보니 일반

조선사람들이 쓰는 말투가 아닌 천군이 주입하고 있는 군대식의 말투가 자연스럽게

몸에 베여있었다.

"또 다른 의견은 없나?"

이창호는 생도들에게서 별 다른 의견이 없자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바꾸면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모두들 고구려가 위치를 눈여겨봐라. 4세기 당시 고구려는 남으로는 백제 신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일단 남쪽은 제외하고 설명하겠다. 그럼, 고구려의 중심인

만주 일대를 살펴보면 동쪽으로는 어느 나라가 있나?"

"숙신(肅愼)이 있습니다."

"그렇지! 그럼, 동북쪽으로는?"

"부여(夫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좋다, 그럼 서쪽과 서남쪽에는 어느 나라가 자리를 잡고 있나?"

이창호의 질문은 쉴새없이 이어졌다. 생도들의 대답도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서쪽으로는 거란(契丹)이 있고 서남쪽으로는 후연(後燕)이 있습니다."

"또?"

"...?"

"서쪽에는 거란이 있고, 서남쪽에는 후연이 있다. 그리고 서북쪽, 그러니까 대흥안령

산맥 너머에는 지두우(支豆于)라는 유목민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렇게 고구려는

광개토태왕 시절의 정복전쟁으로 인해 만주를 중심으로 다섯 나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게 됐다. 그럼 여기서 왜? 광개토태왕께서는 만주를 장악하고 다섯 나라의 중심을

차지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단순하게 우리 민족의 고토를

수복하기 위해서? 아니면 이민족의 침입에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서? ... 지도를

보면서 잘 생각해봐라!"

이창호는 여기까지 말하고 생도들을 쳐다보았다. 80명 정도 수용하는 강의실에

빼곡이 들어서 있는 생도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이창호의 강의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창호가 원하는 답을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도 모르겠나? 엉?"

이창호의 말에 짜증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창호가 막 다음 말을 하려는

순간 한 생도가 쭈뼛거리며 손을 들었다.

"교... 교수님..."

"뭔가? 제군."

"혹시 광개토태왕께서는 상업을 통한 국가경제의 이익을 생각하시지 않았을까요?"

"호-오... 자세히 말해보게."

이창호는 호기심이 생기는 표정이었다. 육사생도 중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하는

생도가 있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이창호가 이렇게 호기심을 나타내자 그 생도는

용기를 내서 대답을 한다.

"제가 볼 때 고구려의 영토가 저들 다섯 나라의 중심에 있었다면, 저들 다섯 나라의

각종 특산품이 자연스럽게 고구려를 통해서, 여러 나라의 다른 지역으로 특산품이

이동하면서, 거기에 따른 중계무역으로 부를 독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섯 나라의 중심을 고구려가 차지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중개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독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제대로 말했다. 사실 광개토태왕께서 그런 생각까지 하시고 영토를 확장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그렇게 영토를 확장함으로써 고구려가 자연스럽게

다섯 나라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또한 다섯 나라 사이의 중계무역을 통한 부를

독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고구려가 몇 백년 동안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

"오..."

"그런 일이..."

이창호의 강의를 듣는 생도들은 처음 듣는 소리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신들도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알았을 때의 흥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표현되었다. 이찬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한다.

"예를 들어, 북쪽과 동쪽에 있는 부여와 숙신의 특산품인 질 좋은 짐승의 가죽들이

남쪽의 후연이나 거란으로 팔려가려면 당연히 고구려를 거쳐야만 했고, 후연이 중원(

中原)에서 들여오는 여러 진귀한 물건들이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시

고구려를 거쳐야 했다. 그것은 거란의 암염(巖鹽 돌소금)이나 지두우에서 생산되는

군마(軍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거란이 차지하고 있던 대흥안령산맥 남쪽

지역은 원래 암염이 많이 나는 곳이었고, 유목민인 거란족도 암염이 주요

소득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두우는 중가리분지와 함께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군마의

산지였다. 이 지두우 군마도 역시 고구려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갔다. 이와

같이 고구려가 몇 백년을 동북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는 저력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던 것이다. 이제 이해가 되나?"

"예, 그렇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생도들의 우렁찬 대답이 있자 이창호는 중계무역에 의한 부의 독점이라는 대답을 한

생도를 부른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돼나?"

"예, 2학년 생도 박권수!"

"박권수?"

"예, 그렇습니다."

"자네는 사대부 출신인가? 아니면...?"

"... 예... 저희 집안은 대대로 보부상을 해왔습니다."

"음... 그렇군. 아! 오해하지는 말게. 내가 자네 신분을 물어본 것은, 다만 어떻게

그런 혁신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일세."

"예, 알겠습니다."

이창호는 그 생도를 눈여겨보았다. 일반 양반 사대부 출신의 생도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생각이었는데 장사를 업으로 삼던 보부상 집안 출신이어서 그런지 생각하는

면도 달랐다.

사실 육사생도들이 다른 조선 백성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개화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상업의 중요성과 교역으로 통한 부의 증대가 국가발전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무지했다. 특히 양반 사대부 출신의 생도들이 거기에 대한 이해가 심각하게

뒤떨어지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상업이라는 것에 대한 천시하는 의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조선이 좀 더

발전하고 커나가기 위해서는 양반 사대부를 비롯한 일반 백성들의 의식개혁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일반 백성들의 의식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었다. 다만, 양반 사대부들의 의식개혁이 느려서

문제지. 언젠가 조정에서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만민평등의 사회를 열어갈 때 가장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는 계층이 양반 사대부 일 수도 있었다. 그거야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지만, 조선군의 동량으로 키워야할 육사생도들에게만은 그런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창호였다. 물론 그것은 성균관

대학의 문과와 이과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었다.

이창호가 막 다음 주제로 강의를 이어가려고 하는데 밖에서 "땡땡땡"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한 시간의 수업이 끝났다는 소리였다.

"모두 수고했다. 다음 시간에는 장수태왕(長壽太王 394~491)의 지두우 정복에 대한

강의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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