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난 9월 9일에 항복한 법국 군사들은 부상자들을 제외한 전원이 남한산성으로
옮겨졌다.
법국 정부와 포로들의 몸값과 전쟁배상금 문제를 매듭짓기까지 남한산성에서
기거하면서 여러 가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법국 정부와의 전후
처리문제가 지지부진할 경우에는 법국 군사들을 동원하여 여러 가지 노동에 종사케
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밥값은 하 게할 생각이었다.
이렇게 간단히 법국의 침공을 물리친 조선은 활기에 휩싸여 있었다.
서양의 강대한 나라 법국을, 대국(大國) 청국의 황제까지 피난을 가게 만들었던 그런
법국의 군대를, 거의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무찔렀다는데 조선의 천 육백만 백성들은
환호했다.
지난 수 천년 동안 이민족의 숱한 침략을 묵묵히 받아야만 했던 그런 조선
백성들에게, 강화도에서 날아온 승전보는 압박과 설움에서 신음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패배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쾌거였다. 그 활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행사가 한로(寒露)를 목전에 둔 오늘
강화도에서 열리고 있었다.
얼룩무늬 전투복 차림의 양헌수 강화도연대장을 비롯한 강화도연대의 핵심 참모들과
경계 근무자들을 제외한 강화도연대의 모든 군사들은 넓디 너른 연병장에 도열해
있었다.
모두들 질서정연하게 오와 열을 맞춰 서 있었으며, 군사들의 앞에는 태극기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 전통의 군기(軍旗)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강화도연대
군사들의 앞에는 소년왕과 섭정공 김영훈을 비롯한 조정의 모든 대소신료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으며, 연병장 주변에는 강화부의 모든 백성들이 몰려 왔는지 발 딛을 틈도
없을 지경이었다.
지난 9월 9일에 있었던 법국 군대의 항복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전공을 세운
강화도연대의 군관들과 군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자리에 소년왕과 김영훈이
조정의 대소신료들을 이끌고 참석한 것이다. 원래부터 김영훈은 이와 같은 국가적인
행사에 소년왕을 모시고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 큰 구경거리에
빠질 소년왕이 아니었다. 덕분에 강화도 백성들만 큰 구경을 하게 생겼다. 더불어
소년왕과 섭정공이 내리는 푸짐한 잔칫상까지 곁들여서...
소년왕은 김영훈의 안내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섰다. 소년왕이 단상에 오르자 도저히
쉰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양헌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부대--- 차리엇!"
"착! 착! 착!"
"주상전하께 받들어--- 총!"
"충--- 성---"
"충! 성!"
"충성."
"세워-어 총!"
"착! 착! 착!"
"부대 쉬엇!"
"착! 착! 착!"
양헌수의 구령에 맞춰 강화도연대의 군사들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년왕을 비롯한 대소신료들과 백성들의 얼굴에는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천군의 절도 있고 늠연한 모습은 많이 봐왔던 소년왕이지만 조선군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기에 그 기꺼운 마음이 유달리 더했고, 주변에 운집한 강화도의
백성들도 강화도연대의 늠름한 모습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강화도연대
군사들을 바라보며 소년왕이 입을 열었다.
"과인이 어린 나이에 용상에 오른 지 만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작금에 너희 군사들의
이렇게 늠름하고 정연한 모습을 보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구나. 대저,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고 한다면, 나라를 지키는 간성(干城)은 너희와 같은 군사들일 터, 이제
너희와 같은 늠름한 정병이 우리 조선을 지킨다는 생각을 하니 짐의 마음이 절로
든든하구나. 부디 너희 군사 스스로는, 각자가 이 나라 조선의 간성임을 자각하고,
과인에게는 충성스러운 군사요, 백성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과 같은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해주기 바라노라. 너희가 있음에 우리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고,
너희가 있음으로 외세의 촉수가 우리 조선을 감히 넘볼 수 없음이니..."
소년왕의 훈시가 끝나자 양헌수의 선창으로 주상전하 천세 소리가 온 연병장에
가득했다.
감격적인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좌중의 소란이 가시는 듯 하자 소년왕은 김영훈과
함께 양헌수의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강화도연대의 참모들과 각 대대장들,
그리고 오늘 표창을 받을 군사들이 양헌수의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하, 양헌수 대령이옵니다."
"대령, 양헌수!"
김영훈의 소개가 있자, 양헌수는 우렁찬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했다. 소년왕은 그런
양헌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고생했소. 정말 고생했소..."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아니로세. 그대와 같은 이가 있어 우리 조선의 앞날이 밝다 할 것이니..."
소년왕은 양헌수에게 이렇게 치하하고, 붉은색 보자기를 둘러쓴 쟁반을 들고 한 쪽에
시립(侍立)해 있던 내관에게로 손을 내밀었다. 내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쟁반을
소년왕에게 올렸다. 붉은색 보자기를 두른 쟁반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계급장이
있었다. 소년왕은 그 중에서 은으로 만든 별 하나를 집어들더니 양헌수의 전투복
옷깃에 직접 달아주었다. 바야흐로 조선 군관 최초의 장성 진급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양헌수에게 소장(小將) 계급을 상징하는 별 하나를 달아준 소년왕은
다시 뭔가를 집어들었다. 훈장(勳章)이었다.
원래 조선의 포상제도에는 훈장과 포장(褒章)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저 공신이라는
칭호와 함께 관직을 올려주고, 그에 따른 면세토지와 재물을 하사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조정의 재정은 날이 갈수록 피폐해졌으며, 조세수입은
악화일로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은 현대의 훈장과
포장제도를 도입할 것을 생각했다. 예전의 공신 책봉에 비하면 아무런 경제적인
혜택이 돌아가지는 않지만, 대신에 임금이 직접 훈장과 포장을 달아줌으로써, 그
어느 것보다 명예로운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전통으로 이어지게 하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소년왕이 양헌수에게 새로운 계급장과 함께 훈장을 달아주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양헌수에게 훈장을 달아준 소년왕은 다시 법국 육전대를 괴멸시킨 어재연 1대대장과
법국 함선을 수장시키는데 공을 세운 각 돈대의 군관들과 군사들에게 훈장과 포장을
수여했다.
마지막으로 새로 제작한 부대기를 양헌수에게 건네줌으로써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비상하는 봉황(鳳凰)이 새겨진 부대기의 하단에는 제 1 친위해병여단(親衛海兵旅團)
이라는 문구가 금박을 입은 채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드디어 조선 최초의
해병대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양헌수가 지휘하는 조선 최초의 해병여단은 상황에
따라서는 왜국으로의 출병까지 염두에 두고 새로이 친위천군 소속의 1개
마군대대까지 합류할 예정이었으니, 이로써 명실상부한 해병여단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