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합하, 저들 법국 군사들을 어찌하실 의향이신지요?"
"... 으음..."
강화도연대의 승전보가 조선에 울려 퍼지고 난 며칠 후, 운현궁 영로당(英老堂)
에서는 모처럼 조정의 중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법국 군대를 무찌른 일도
무찌른 일이지만, 이제 그 후속조치를 논의해야할 시점이었기에 섭정공 김영훈이
모든 중신들을 운현궁으로 부른 것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김영훈은 형형한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김영훈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 것인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김영훈의 형형한
안광은 아무리 철석간장(鐵石肝腸)을 지닌 대장부(大丈夫)라 할지라도 정면으로 받기
힘들 지경인데, 오늘같이 경사스러운 일의 후속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상소(上訴)가 빗발친다고 들었소만, 무슨
내용이랍니까?"
"예, 합하, 기호(畿湖)일대의 유생들뿐만 아니라 삼남(三南)의 유생들까지 너도나도
상소를 올리고 있어, 추밀원의 관헌들이 온통 그 일에 매달려 있으나, 너무도 많은
상소가 올라오는지라 업무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하옵니다. 상소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는데, 하나는 양헌수 대령을 비롯한 강화도연대의 군관과 군사들을
위로하라는 상소이옵고, 또 하나는 우리 조선을 침략한 저들 법국 군사들을 모두
참형에 처하야 주상전하의 위엄을 만 천하에 알릴 것을 주청하는 상소라고 하옵니다.
아울러 차제(此際)에 우리 조선을 넘보는 양이의 무리들에게 엄중 경고의 의미를
담자고 하옵니다."
"흐음... 그래요? 그럼 여기 계신 중신들의 의향은 어떠하시오?"
김영훈의 말에 중신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말이 없었다. 보다못한 국무대신
정원용이 다시 나선다.
"합하, 신(臣) 국무대신 정원용 아뢰옵니다."
"말씀하세요."
"신의 생각으로는 양헌수 대령 이하 모든 군관, 군사들에게 크게 상을 내려 위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하오나, 천 이백 명이 넘는 법국 군사들을
모조리 죽여 저잣거리에 효수(梟首)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저들이 비록 우리 조선을 무단히 침탈하여 우리 조선의 국권(國權)을
유린(蹂躪)한 것은 분명히 능지처참(陵遲處斬)에 처해야 마땅한 일이오나, 그렇게
한다면 더 큰 분란을 몰고 올 소지가 다분하다 할 것이옵니다."
"... 으음..."
"합하, 신의 생각도 국무대신 대감의 뜻과 같사옵니다. 저들이 비록 우리 조선을
침탈하였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조선의 힘으로 양이들과 정면으로 대적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그리고 이미 항복한 적군을 참형에 처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로 사료되옵니다. 하여, 이번에는 저들 법국 군사들을 따끔히
혼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이대로 본국에 송환토록 하시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소년왕의 장인(丈人)이자 섭정공 김영훈의 총애를 받고 있는 내무대신 김병학의 말에
일부 중신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의 발언을 옳다고 여기는
중신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병학의 동생 국방대신 김병국이었다.
"합하, 내무대신 대감의 의견이 일면 타당할 듯 싶사오나, 한 가지 간과(看過)하고
넘어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바로 전쟁배상금에 대한 것이옵니다."
"전쟁배상금이라..."
"그러하옵니다, 합하. 저들 서양의 제국(諸國)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전쟁에서
이긴 편이 진 편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물리는 것이 관례라고 하옵니다. 그것은
우리 동양의 여러 나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하였사옵니다. 저들이 아편전쟁을
일으켜 청국을 핍박하였을 때도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청국에 청구하였으며, 왜국에도
마찬가지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 조선이 이번에 강화도를
침탈한 법국의 군대를 수월히 무찔렀다고는 하지만 막대한 군수물자와 군자금이
소용된 것은 사실이옵니다. 그리고 법국 군대의 군홧발에 짓밟히고 신음한 우리
조선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그에 따른 배상금을 적용하여 받아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여 다시는 우리 조선을 얕잡아보고 그와 같은
방자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크게 경각(警覺)토록 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
인줄로 사료되옵니다."
"허면, 저들이 전쟁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리고 과도한
전쟁 배상금에 불만을 품은 저들이 다시 우리 조선을 침탈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김병학은 김병국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점을 경계하고 있었다.
김병학의 우려를 간파한 김병국이 다시 말한다.
"형님. 우리 조선에 천 이백 명이 넘는 법국 군사들이 포로로 잡혀 있는데 무엇을
걱정하시오이까. 또한 우리 조선의 육군과 해군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이 마당에
설사 저들이 다시 쳐들어온다 하여도, 하등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오이다."
"그렇기는 하네만..."
김병학도 김병국의 의견에 동조를 하기는 했지만, 공맹(孔孟)의 도리가 살아있는
조선에서 적들을 핍박하여 배상금을 뜯어내고, 아울러 나중에 분란의 소지를
남긴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거리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비록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에게서 신학문과 신문물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많이 입은 김병학이라 할지라도
당당한 유학자라는 자부심이 남아있었기에, 다른 이의 괴로움을 틈타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데 저어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김영훈은 김병학과 김병국 형제의 논쟁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김병학의
그런 태도에서 당당한 조선 사대부로서의 풍모를 느끼고 있다면, 김병국의
모습에서는 조선이 자주국임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하는 무인의 기개와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두 분 모두 고정하세요. 여(余)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송구하옵니다. 합하."
"죽여주시옵소서, 합하."
"아닙니다. 두 분 모두 이 나라 조선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을 어찌 여가 모를
수 있겠소이까? 너무 괘념치 마세요. 먼저, 내무대신과 외무대신, 재경대신은
들으세요."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재경대신 김기현 예, 대령해 있사옵니다. 합하."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합하."
외무대신 유후조와 내무대신 김병학, 그리고 재경대신 김기현 등 세 사람이 김영훈이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했다.
"내무대신께서는 청국에 한 번 다녀오시도록 하세요. 청국에 가서 이번 법국과의
전쟁에 대한 전말을 소상히 알리도록 하세요. 아울러 청국 조정에 강력히 항의하도록
하세요."
"항의라 하오시면...?"
"명색이 상국(上國)이라는 청국에서 이번에 법국이 우리 조선을 침략하는데
수수방관했다는 것은 스스로 우리 조선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주상전하께서는 청국 조정의 이와 같은 작태에 굉장히 진노하셨다고 전하고,
앞으로는 청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할 것이라는 통첩을 하도록 하세요. 아울러
그동안 청국의 입장을 생각하여 명백한 조선 땅임에도 그 관리를 소홀히 했던 간도
일대에 대해서 분명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이제는 우리 조선이 군대를 파견하여
직접 관리한다는 사실을 통보하세요."
김영훈의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지자 좌중은 금새 소란에 휩싸였다. 국무대신
정원용과 법무대신 조두순 같은 노신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내무대신 김병학과
국방대신 김병국, 상공대신 박규수와 문교대신 최한기, 보위대신 유홍기 같은
대신들은 크게 환영하는 눈치였다. 물론 천군 출신의 김기현이나 김인호 같은 이는
두말 할 필요도 없었다.
김영훈이 내무대신 김병학을 청국에 파견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상국으로 섬겼던 처지에, 아무나 함부로 파견하여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통보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 적임자로는 김병학만한 인물이 없었다. 현 조선 임금의
장인이라는 신분은 다른 어떤 사신보다도 중량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내무대신께서는 외무부와 잘 협조해 이번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 주시오. 아울러 이번에 사로잡은 법국 선교사 이복명(李福明 Felex Clau
Ridel)을 대동토록 하세요. 아무래도 법국의 외교관들에게는 저들 법국 선교사가
직접 설명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겝니다. 그리고 전쟁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 문제는
재경부에 일임할 터이니, 재경대신께서는 각 부처와 잘 상의하여 일을 추진하도록
하고, 최종적인 교섭권은 청국 공사로 가 있는 오경석 영감에게 일임하도록 하세요."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합하."
"외무대신께서는 들으세요."
"예, 합하."
"외무대신께서는 영초(穎樵) 대감을 수행하여 청국에 다녀올 수행원을 인선하는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해 주시고, 아울러 왜국 나가사끼의 우리 공사관에도 이번
법국과의 전쟁에 관한 소식을 알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막부와의 교섭이 끝나면
나가사끼 주재 공사로 가 있는 윤정우를 귀국토록 하세요. 내 따로 일을 맡길 것이
있습니다. 따라서 후임 왜국 공사의 인선도 서둘러야겠지요."
"알겠사옵니다. 합하."
이렇게 여러 대신들에게 명을 내린 김영훈은 법무대신 조두순과 합참차장 신헌을
부른다.
"법무대신과 합참차장께서는 들으세요."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신 합참차장 신헌 대령했사옵니다. 합하."
조두순과 신헌이 대답하자 김영훈은 먼저 조두순을 보며 말한다.
"법무대신께서는 이번에 법국 군대에 종군한 조선인 천주교 신자 셋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알고있사옵니다, 합하."
"대감께서는 그들을 잡아다가 엄중 문초한 후에 참형토록 하세요. 하찮은 종교 문제
따위로 조국을 배신하고 간첩행위를 한 자들을 살려둔다면 나라의 기강이 어찌 설
것이며, 앞으로 저들과 같은 무지몽매한 짓거리를 하는 무리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는 보장을 어찌할 수 있으리요. 차제에 그와 같은 망극한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일벌백계로 다스려 주세요."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합하."
김영훈은 내심으로 법국 군대에 종군한 최지혁을 비롯한 세 명의 조선인 천주교
신자를 살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차후에 이러한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고, 아직까지 천주교에 대한 금령이 해제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국을 배신하고
간첩행위를 한 자들을 살려둔다면 앞으로의 일에 큰 장애로 작용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행여나 딴 생각을 먹고 있는 양반 사대부 이하 모든 백성들에게 경계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고, 합참차장께서는 국방부와 협의하여 간도에 파견할 부대를 가리도록 하세요.
참고로 간도 일대에는 그 중요성을 비추어 볼 때 1개 사단급의 부대를 따로 편성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지휘관으로는 위당 대감께서 맡아주셔야 할 것이구요."
"신이 말이옵니까?"
"그렇습니다. 대감께서 맡아주시지 않는다면 누가 있어, 그 일을 맡기겠습니까?"
"망극하옵니다, 합하."
김영훈은 신헌에게 1개 사단의 지휘권을 줄 생각이었다. 간도의 중요성으로 볼 때
1개 사단 정도는 파견해야 효율적인 관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신헌으로
하여금 군정(軍政)을 실시토록 할 생각이었다. 아울러 황해도 이북 지방의 주민들
중에서 희망자를 뽑아 간도 일대로 이주시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
"모두들 들으세요. 이번에 법국의 침탈을 무찌른 친위천군 강화도연대의 양헌수 대령
이하 모든 군관들과 군사들에 대해서는 조정에서 특별한 상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따로 자리를 만들어 위로할 생각이니, 이 자리에 계신 여러 중신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기 바랍니다. 아울러 그 자리에는 주상전하께옵서도
친히 참석하신다는 것을 알아두세요."
"망극하옵니다, 합하."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김영훈은 일부러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일과 시베리아에서 목재를 채취할
수 있는 벌목권을 얻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알래스카야 지금 조선의
힘으로 확실하게 관리할 수 없으니, 당분간은 그대로 묵혀둘 수밖에 없었고,
시베리아의 벌목권이야 이미 가을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제대로 된 벌목
사업을 시행하기 어려운 점이 작용하였다. 그렇다고 이 문제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정원에서 비밀리에 벌목장으로 파견할 인부들의 인선과 교육을 이미 시작했고,
해군이 어느 정도 제 자리를 잡고, 조선의 인구가 늘어날 때쯤이면 알래스카의
관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행여 미국과 캐나다가 알래스카를 집적거린다고 하여도
당분간은 놔둘 생각이었다.
아니, 오히려 미국과 캐나다에서 알래스카를 집적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때가 되면 어느 정도 해군의 성장이 있을 것이고 조선도 제국(
帝國)으로 발돋움할 터이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말 그대로 전단(戰端 전쟁의
실마리)이 될 소지를 미리 만들어 놓고 기다린다고나 할까? 조정의 중신들이
알았다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김영훈은 은근히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