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76화 (176/318)

24.

갑곶나루의 너른 모래사장에는 일단의 법국 군대가 한 줄의 흐트러짐 없이 도열해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추고 서 있는 법국 군사들의 맨 앞에는 법국 조선원정대 사령관 로즈

제독이 서 있었고, 그 뒤로는 참모들이 도열해 있었다. 로즈 제독의 정면에는 조선

전통의 융복을 입고 있는 양헌수 강화도연대장이 휘하 참모들과 조선군의 신식

군복인 얼룩무늬 전투복과 전투화, 철모를 착용한 1개 대대 규모의 군사들의 옹위(

擁衛)를 받으며 서 있었고, 한쪽에는 서울에서 어제 급파된 취타(吹打隊)가 노란색

옷을 입고 있는 서 있었다. 하늘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양 일기는 맑고

청명했으며, 하늘은 높았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그대로였다.

양헌수 대령을 비롯한 조선 군사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자부심이 충만했고, 로즈

제독을 위시한 법국 군사들의 얼굴에는 비통하고 참담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갑자년(甲子年 1866년) 음력 9월 5일 조선에 도착한 법국 조선원정함대는, 9월 6일에

강화도에 상륙하여, 9월 7일, 단 하루의 전투로 회복 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올리비에 대령이 이끄는 400여 명의 육전대는 괴멸 당했고, 9척에 달하는 대(大)

함대는 모조리 차가운 바다 속에 수장 당했다. 원정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은 더 이상

전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희생만 따를 뿐이라는 생각에 조선군에

무조건 항복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제(음력 9월 8일)는 굴육적인 무장해제를 당해야

했다. 이미 무조건 항복하기로 한 마당에 무장해제를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프랑스

역사상 800명이 넘는 인원이 몰살당하고, 천 명이 넘는 인원이 항복하는 일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이미 포로가 된 육전대 생존자 200여 명을 합하면 그 수는

무려 1200명이 넘었다. 엄청난 숫자였다.

"부대--- 차렷---"

"착! 착! 착!"

"뒤로 돌앗!"

"... 착!... 착!"

"국기에 대한 경례엣!"

"착! 착! 착!"

로즈 제독의 구령이 떨어지자 갑곶나루에 도열한 모든 프랑스 병사들은 오른손을

들어올려 힘차게, 그러면서도 비장하게 경례를 했다.

"Allons enfants de la Patrie,(나아가자, 조국의 아들 딸들이여,)

Le jour de gloire est arrive!(영광의 날은 왔도다!)

Contre nous de la tyrannie!(폭군에 결연히 맞서서)

L'etendard sanglant est leve(bis)(피묻은 전쟁의 깃발을 내려라!)

Entendez-vous dans nos campagnes(우리 강토에 울려퍼지는)

Mugir ces feroces soldats?(끔찍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Ils viennent jusque dans vos bras.(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

Egorger vos fils, vos compagnes!(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도다!)

Aux armes citoyens,(무기를 잡으라, 시민동지들이여!)

Formez vos bataillons(그대 부대의 앞장을 서라!)

Marchons, marchons(진격하자, 진격하자!)

Qu'un sang impur(우리 조국의 목마른 밭이랑에)

Abreuve nos sillons(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흐르도록!)

조선 원정함대 소속의 군악대가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연주하면서 도열한 프랑스 병사들은 나지막하게 국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갑곶나루 한 쪽에 게양되어 있던 삼색 프랑스 국기가 라 마르세예즈의 음률에 맞춰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원래는 호전적이고 선동적인 행진곡풍의 힘찬 곡이 바로 라 마르세예즈였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처절하리만큼 애절하고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군악대의 나팔소리에도 힘이 없었고, 그에 맞춘 북소리도 풀이 죽어 있었다.

군악대의 라 마르세예즈 연주가 서서히 잦아들면서, 파란색과 하얀색, 빨간색으로

이뤄진 프랑스의 자랑. 삼색 국기가 어느새 내려와, 차곡차곡 접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로즈 제독의 눈에도, 프랑스 병사들의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위대한 프랑스가, 막강한 프랑스군이, 언제 이런 참담한 패배와 굴욕적인 항복을

당했던가. 상대가 서양 제국(諸國)의 군대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상대는 서양의 강국인 영국군도 아니고 독일군(프러시아)도 아닌, 동양의

노란 원숭이 군대였으니 그 참담함이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국가적인 자존심이나, 인종적인 우월감이 유달리 강한 프랑스의 병사들에게는 절대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부대--- 차리엇!"

"착! 착! 착!"

"뒤로 돌앗!"

"... 착!... 착!"

병사들에게 뒤로 돌 것을 명령한 로즈 제독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뒤로 돌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있으며, 눈물을 삼키고 있던 로즈 제독은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부하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말은 안하고 있었지만 비통한 표정이

역력했다. 잠시 병사들을 바라보던 로즈 제독은 입술을 깨물며 뒤로 돌았다. 그리고

조선군 강화도연대장 양헌수 대령에게 경례를 한다.

"프랑스 조선 원정함대 사령관 피에르 구스타브 로즈 제독 이하 1056명은... 지금 이

시간 부로 조선 육군 강화도연대장 양헌수 대령 각하께... 무조건 항복합니다. 부디

우리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아주십시오."

자신보다 한참 아래 계급인 조선군 양헌수 대령에게 격에 맞지 않는 경례를 올린

로즈 제독은, 참담하고 서글픈 마음에 가끔씩 말을 잇지 못하면서 가까스로 경례를

마쳤다. 대령에 불과한 양헌수에게 각하라는 경칭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위신을

세워보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스스로 생각해 봐도 속보이는 짓이었다.

로즈 제독의 항복 선언과 함께 조선군 양헌수 대령에 대한 경례가 있자, 노란색 옷을

입은 조선군의 군악대가 귀에 거스르는 동양의 곡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서양의

나팔과 비슷한 악기도 있었고, 북과 비슷한 악기도 있었다. 장엄하면서도 힘차게

울려 퍼지는 조선 군악대의 연주로 봐서는 조선의 국가든지, 아니면 개선행진곡쯤

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로즈 제독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우라질 놈의 하늘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맑은 것인가. 빌어먹을... 이렇게 참담한 심정의 프랑스군이

항복한 오늘은 1866년 음력 9월 9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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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는 좀 짧습니다. 아니 많이 짧다고 해야겠지요...^^;;

이번 회는 제 1차 조법전쟁이라는 챕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원래는 그냥

항복했다는 몇 마디 말로 대신하고 바로 새로운 챕터로 들어갈려고 하다가, 그렇게

하다가는 여러 독자 대감들의 짱똘이 날아오는 게 두렵기도 했고, 또 너무 허술하게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간절했지요. 하여간 이렇게 해서 제 1차 조법전쟁을

마무리했습니다. 나중에 출판본에서는 이번 챕터의 제목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법국과의 2차 전쟁을 구상하고 있기는 하지만 법국 단독의 침공이 아닌 미국과

연합한 함대의 침입으로 다룰 생각도 없지 않거든요. 어쨌든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회가 좀 짧은 관계로, 또 어제 연재

약속을 지키지 못한 관계로 여러 독자 대감들께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작가가

연참을 한답니다. 아마 오늘 밤 10시쯤 후속 연재를 올릴 생각인데, 거기에 한 가지

이벤트를 첨부할 생각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회에 나오게 되니 다음 회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따 밤 10시에 다시 뵙겠습니다. (__)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84 높은 산 깊은 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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