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연대장님! 광성보에서 무전이 들어왔습니다."
"뭐라던가?"
"적함을 모조리 염하에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6척의 적함 모두를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통신군관의 보고가 있자 주위에 있던 참모들과 군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야---"
"우리가 이겼다---"
양헌수는 좌중의 소란이 그치길 기다렸다 말한다.
"아군의 피해는 어떻다던가?"
"없답니다. 연대장님."
아군의 피해가 없다는 통신군관의 보고에 그때서야 웃음을 머금는 양헌수였다.
양헌수는 참모들에게로 갔다. 기다리던 참모들은 일제히 양헌수에게 현대식으로
경례를 하며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이것이 어찌 이 사람 개인의 공이요? 모두들 나라를 위해 애쓴 덕분이거늘..."
"아니오이다. 연대장님. 우리가 이렇게 일방적인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신기도감에서 생산한 화기(火器)의 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대장님의 공이 가장
크오이다. 연대장님의 지휘하에 모든 참모들과 군사들이 일치단결(一致團結)한
결과가 아니겠소이까?"
인사참모의 말이 맞았다. 양헌수 특유의 카리스마와 친화력, 그리고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군사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임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신기도감에서 생산된 우수한 무기만 가지고 전쟁을 치를 수는 없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뛰어난 무기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군사들의
훈련과 사기,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응집하여 분출시킬 수 있는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지휘관도 중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양헌수는 조선 육군에서 가장 뛰어난 지휘관
중 하나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인사참모의 말에 얼굴이 달아오른 양헌수를 보며 어재연이 말한다.
"연대장님. 법국의 본진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이까? 항복을 권유하는 사절을
보내는 것이 어떠하오이까?"
"항복을 권유하는 사절이라..."
"그러하오이다."
어재연이 양헌수에게 이렇게 권하고 있는데 다시 통신군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연대장님! 해군으로부터의 무전입니다. 빈집 털이 작전이 성공했답니다."
통신군관의 말이 끝나자 좌중은 다시 한 번 우렁찬 함성에 휩싸였다. 양헌수도
이때만큼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됐어. 이제 됐어."
를 연발했다.
"어 중령!"
"예, 연대장님."
"어 중령이 법국 본진으로 가서 항복을 권유하시오."
"항복을 말입니까?"
"그렇소. 그리고 저들에게 갈 때, 의원으로 파견된 법국 선교사가 여러 명 있지요?"
"그러하오이다만..."
"그들 중 한 두 명을 데려가시오. 아무래도 우리가 저들에게 항복을 권유하기보다는
저들 법국 선교사들이 직접 항복을 권유하는 게 더 효과가 있겠지..."
양헌수는 의원으로 강화부성에 파견된 법국 선교사를 법국 군대가 상륙해 있는
갑곶나루에 보낼 생각이었다. 어재연 단독으로 가서 항복을 권유하기보다는 법국인
선교사가 직접 가서 법국 선교사들이 아무도 희생되지 않음을 밝히고, 물치도에
정박했던 세 척의 대형함을 제외한 염하에 정박 중이던 법국 함선의 몰살을 알리며
항복을 권유하게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고립된 법국 군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았다. 항복을 하느냐 아니면, 최후의 저항으로 다시 한 번 강화부성을
공략하느냐... 어느 쪽을 선택해도 양헌수의 입장에서는 손해날 것이 없었지만,
이왕이면 더 이상의 피를 흘리지 않고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전후처리야 조정에서
할 일이고 자신은 한 사람의 생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었다. 그리고 양헌수가 노리는
것은 또 있었다. 법국 선교사들이 법국 군대 본진에 가게 되면 저절로 법국 군대의
전쟁 수행의지는 떨어질 것이고, 또 자신들의 함선에 대한 소식을 법국 선교사의
입으로 직접 듣게된 법국 군사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군관들의 사기에도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