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72화 (172/318)

20.

로즈 제독의 눈에서 불통이 튀었다. 겨우 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정박중인

데를레데와 키엔샹이 조선군 요새포에 의해 공격받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포가 포격을 하는지 사방에서 물기둥이 치솟고 있었고, 데룰레데와

키엔샹은 닻도 올리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조선군의 요새에서 우리 배들을 공격하다니! 누가 말 좀 해봐!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로즈 제독만 당황한 게 아니었다.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서 움직이던 병사들도,

강화성에 접근해, 조선군의 동태와 아군의 피해를 확인하려고 출발하려던 수병들도,

로즈 제독 주변에 있던 참모들도 모두 정신이 나간 표정이었다. 로즈 제독의 호통이

있자, 그때서야 이리저리 허둥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쪽의 조선군 요새에서 공격하고 있다! 어떻게 좀 해 보란 말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올 때만해도 아무런 기척도 없던

조선군 요새에서 포격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갑곶나루와 가까운 조선군의 남쪽 요새(가리산돈대)와 북쪽 요새(염주돈대)

에 정찰병을 파견하여 수색했던 로즈 제독이었다. 상륙지에서 각각 1.5Km와 0.8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는 않은 요새를 확인하지 않고 지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확인했던 것인데, 아무 것도 없다는 정찰병의 보고가 있었다.

갑곶나루의 요새와 마찬가지로 지키는 병사도 없었고, 요새포라고 있는 것은 몇 백년

전에 유럽에서 사용했음직한 초기 전장식 야포가 뒹굴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게

전부였다. 그리고 양쪽 요새에서 발견된 전장식 야포들은 이미 수거한지 오래였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믿을 수 없었다.

정찰병이 수색한 남쪽 요새의 남쪽에 있는 또 다른 요새에서 통신보급함 데룰레데와

키엔샹을 포격하고 있었으니 입에 거품을 물고 졸도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로즈 제독이 입에 거품을 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는 있지만 당장 상륙군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변변한 방어선도 없었고, 미트라예즈(Mitrailleuse)

소구경 속사포 6문과 6파운드 야포 16문는 아직 배치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설사

배치되었다고 해도 미트라예즈 소구경 속사포로는 조선군 요새에 타격을 줄 수

없었다. 거리도 거의 3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조선군의 요새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직사화기인 미트라예즈 소구경 속사포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6파운드 야포로 공격하자니 6파운드 야포는 사정거리가 미치지 못했다. 최소한

데룰레데와 키엔샹에 장착되어 있는 80파운드 전장식 야포 정도는 되야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인데, 6파운드 포로는 나무로 된 성문이나, 또는 근거리의 성벽이나 파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프랑스 조선 원정함대 병사들은 눈앞에서 데룰레데와

키엔샹이 포격을 당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데룰레데는 처음에

직격탄을 맞은 충격으로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키엔샹은

데룰레데보다 나았다. 80파운드 후미 주포 2문이 조선군 요새를 향해 불을 뿜기

시작했다.

"뻥! 뻐벙! 뻥! 뻥!"

"이야--- 죽여라---"

"그래! 그렇지!"

키엔샹의 후미 주포가 하얀 연기와 함께 불을 뿜자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로즈

제독과 참모들, 그리고 프랑스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키엔샹이 발사한 포탄은 조선군 요새의 석축에 맞고 말았다. 그리고

조선군의 소구경 속사포에 주포를 다루던 수병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이 1Km나 떨어진

갑곶나루에서도 똑똑히 보였다. 프랑스 수병들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아니, 조선군이

보유한 소구경 속사포의 위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어서 데룰레데의 선수에

조선군의 포탄이 작렬했다. 엄청난 불기둥이 치솟았고 데룰레데는 함수부터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어서 한 발의 포탄이 가라앉는 데룰레데의 중앙부에 한 발의 포탄이 더

작렬하면서 죽어 가는 데룰레데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버렸다.

"오--- 이럴 수가---"

"오--- 하느님---"

데룰레데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라앉는 동안, 아직도 살아있는 키엔샹이 어떻게 닻을

끊었는지, 아니면 올렸는지 천천히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강화해협에 정박한 상태였기에 보일러를 예열할 필요도 없었고,

그랬기에 제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꽁무니를 보인 상태라 함수 주포

2문은 사용할 수도 없었고 함미 주포 2문은 조선군의 소구경 속사포가 쏟아지고 있는

상태였기에 수병들이 접근할 수도 없었다. 실상 함미 주포를 조작할 만한 수병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키엔샹은 기를 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키엔샹의 도주도 얼마가지 못했다. 탄착점을 수정한 것인지 조선군의

요새포에서 발사된 포탄들은 키엔샹의 진행방향을 정확하게 노리고 터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명중탄이 나오면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위대한 프랑스 해군의 함선 두 척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일순간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 충격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남쪽에 있는 조선군의 요새에서 환호성과 함께 노래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조선군으로 보이는 병사 하나가 커다란 깃발을 장대에 내걸고 휘두르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았다. 로즈 제독과 참모들, 프랑스 병사들의 눈에 불통이 튀었다.

"모두 산개(散開)하라! 미트라예즈와 야포를 어서 방열하라!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로즈 제독의 호통에 잠시 멍하니 서있던 프랑스 병사들은 허둥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어간 동료를, 차가운 가을 바다에 수장된 전우의 명복을 빌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조선군 요새포가 보여준 위력이라면 언제 이곳 갑곶나루를 공격할지

몰랐다. 그리고 정확히 몇 문의 요새포가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두 군데서 날아온

포탄을 분석해보면 하나의 요새에 5문에서 10문 정도의, 그것도 3인치에서 5인치

정도 되는 두 종류 이상의 전장식 요새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모두 이리 와 보게."

조선군의 포격에 대비해서 언제든지 엎드릴 수 있게 한 쪽 무릎을 땅에 대고 있던

로즈 제독은 조선군의 포격이 없자, 참모들을 소집했다.

"저 놈들이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로즈 제독은 불안한 듯 조선군 요새가 있는 남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나 다른

참모들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자신들이 본 것이 사실이라면 조선군의 요새포는

이곳을 충분히 포격하고도 남았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그 점이

로즈 제독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제독님, 혹시 포탄이 다 떨어진 것은 아닐까요?"

"포탄?"

"그렇습니다. 제독님.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프랑스군을 포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 음..."

보쉐 중령의 말에 로즈 제독은 조선군이 정말 포탄이 떨어졌나? 그래서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릴리앙 중령의 말에 그 생각이 깨지고

말았다.

"포탄이 떨어졌다는 가정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제독님. 조선군이 우리 함선을

공격할 때 충분한 예비포탄도 준비하지 않고 무턱대고 공격했겠습니까? 조선군이

보여준 포격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습니다. 조선군의 장비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훌륭했으며, 훈련도 잘 돼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조선군이

가장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하겠습니까?"

"그렇지..."

릴리앙 중령의 말이 맞았다. 강화된 대대규모의 욕전대 400여 명을 단 5분만에

몰살시킬 정도의 화력과 훈련, 그리고 데룰레데와 켄시앙을 수장시킬 때 보여준

포격능력이라면 자신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오합지졸 노란 원숭이가 더 이상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럼, 왜 우릴 공격하지 않는 걸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참모들 중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그때 페트릭 대위가 말한다.

"혹시 우리의 항복을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요?"

"항복?"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우리를 그냥 놔둘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음..."

"생각해보십시오, 제독님. 조선군은 우리의 통신보급함 데룰레데와 키엔샹을

침몰시켰습니다. 그렇다면 하류에 정박하고 있는 네 척의 연안포함도 공격을 받았을

게 분명합니다."

패트릭 대위의 말에 로즈 제독을 비롯한 모든 참모들의 낯빛이 파랗게 질려갔다.

여태껏 자신들의 처지만 생각하느라고 네 척의 연안포함을 잊고 있었다. 만약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올 때 보았던 요새들에서 연안포함을 공격했다면 데룰레데와

키엔샹의 운명과 다를 게 없으리라. 패트릭 대위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네 척의 연안포함이 침몰되었다면 우리 프랑스군은 이곳에 고립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세 척의 대형함이 건재하다 고는 하지만 그들과 연락할 방법이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설사 그들이 우리의 소식을 알았다해도 이곳까지 올라 올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 척의 대형함 게르에르와 프리모게, 그리고 라플라스의 소식을 알지

못했다. 만약 그들의 소식을 알았다면 당장 졸도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나 아직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세 척의 대형함이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해도

이곳 갑곶나루까지 올 수 없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강화해협의

수심이 그렇게 깊지 않고, 또 양안 사이가 좁은 상태에서 조선군 요새포의

집중포화를 뚫고 이곳까지 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장갑함이라면 모를까

조선군의 3인치와 5인치로 추정되는 다 수 요새포의 포격을 목재함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문제였다. 패트릭 대위의 말이 계속될수록 좌중은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지금 우리가 보유한 식량은 어느 정도지?"

"배급량을 줄이고 식량을 관리한다면 보름에서 20일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솔직히 무립니다."

"이런, 제기랄..."

로즈 제독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진작 올리비에 대령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처음에 자신에게 좀 더 강하게 요새를 포격할 것을 주장하지 않은

올리비에 대령이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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