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방포하라--- 어서 방포하라---"
용진진의 책임자이자, 가리산돈대를 지휘하고 있는 강화도연대 3대대 3중대 3소대장
박만철 중위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그가 지휘하는 용진진의
가리산돈대는 바로 옆에 위치한 좌강돈대와 함께 갑곶 방면에 정박하고 있는 두 척의
법국 함선을 포격하고 있었다.
"뻥! 뻐벙! 뻥! 뻥! 뻐버벙!"
"따다땅따다당땅다당--- 땅따다땅---"
75mm와 120mm 후장식 속사포가 굉음과 함께 불을 뿜었다. 그리고 각 돈대마다 2문씩
배치된 한(韓)-4198식 기관총도 갑판에 나와 있는 적 군사들을 향해 총탄을 쉴새없이
뿜어대고 있었다. 용진진의 가리산돈대는 법국 함선이 정박하고 있는 갑곶과는 불과
1400보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이고, 소대의 다른 부사관이 책임자로 있는 좌강돈대는
가리산돈대로부터 1300보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사정거리가 4Km가 넘는 75mm와
120mm 후장식 속사포에게는 갑곶에 정박하고 있는 법국 함선 두 척을 포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리산돈대에서 적함을 공격하자 좌강돈대에서도 포격을 하기
시작했다.
강화도의 돈대는 대부분 주변보다 높은 언덕 위에 설치되어 있었고, 두툼한 석축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석축 안쪽으로 움푹 파인 곳에 포좌가 위치하고 있었기에,
적함은 요새포를 직접 관측할 수 없었고, 조선군은 관측병의 유도에 따라 적함에게
불벼락을 내릴 수 있었다.
"어서 방포하라--- 적함을 깨트려라---"
용진진에 속한, 또 다른 부사관이 지휘하고 있는 용당돈대는 용진진의 세 돈대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좌강돈대로부터 1200보 정도 떨어져 있는
용당돈대는 지금 연안포함 타르디프를 상대로 홀로 분전하고 있었다. 박만철은
용강돈대가 걱정되는지 가끔씩 남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명중했습니다--- 또, 명중했습니다---"
갑곶 방면에 정박해 있던 한 척의 적함에 포탄이 작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군하나루 쪽으로 붙어있던 다른 한 척은 돛대에 포탄이 명중했는지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돛대가 부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적함에서 방포했습니다---"
법국 함선의 수병들은 갑자기 날아온 포탄에 당황했는지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응하여 80파운드
전장식 주포를 발사했다.
"뻥! 뻥! 뻥뻐벙!"
80파운드 주포에서 발사된 포탄 몇 발이 가리산돈대의 석축을 때렸다.
"펑! 퍼버벙!"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석축에 맞은 포탄은 사방으로 먼지를 날리며 터졌다.
위협을 느낀 박철만이 고함을 지른다.
"뭣들 하느냐--- 적들이 대포를 쏘지 못하게 해라--- 기관총 방포--- 어서 방포하라!"
키엔샹의 후미에 있는 80파운드 주포 2문에서 발사된 포탄은 조선군에게 충분한
위협을 줄만했다. 박철만의 명령에 한-4198식 기관총 사수가 키엔샹의 후미 주포
2문을 노리고 집중적으로 기관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75mm와 120mm
속사포도 계속해서 불을 뿜고 있었다.
"뚜다다다땅따당--- 따당따따땅땅따다땅---"
"뻥! 뻥 뻥! 뻐버벙! 뻐벙!"
1분에 8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한-4198식 기관총의 위력은 대단했다. 기관총 사수는
탄통에 든 총탄이 바닥이 나도록 방아쇠를 당기고 또 당겼다. 단단한 돌 바닥에
기관총에서 빠져나온 탄피가 핑핑피핑 하는 소리를 내면서 사수의 발 밑에 쌓이기
시작했다.
가리산돈대를 노리던 키엔샹의 후미 주포 2문은 단 몇 발만을 발사한 채 그대로
침묵하고 말았다. 키엔샹의 80파운드 후미 주포를 조작하던 수병들이 하얀색
해군복에 붉은 꽃을 피우며 속절없이 쓰러져갔다.
가리산돈대와 좌당돈대의 숙달된 포병들은 제대로 된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는 법국
함선 데를레데와 키엔샹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적함은 아직까지 닻을
올리지도 못했는지 그 자리에서 맴만 돌고 있었다. 수많은 물기둥이 적함 좌우에서
치솟았으며, 한-4198식 기관총탄이 퍽퍽 소리를 내며 목재 함 측면에 박히고 있었다.
고려 때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지난 숙종대왕 시대에 이르러 완성된 강화도의 진과
보, 그리고 돈대는 모두 5진과 7보 53돈대로 이루어져 있다. 5전은 월곶진, 제물진,
용진진, 덕진진, 초지진이 있으며, 7보로는 광성보, 선두보, 장곶보, 정포보, 인화보,
철곶보, 승천보가 있으며, 53돈대는 각 진과 보에 속해 있었다. 53개에 달하는
돈대는 옆의 돈대와 보통 1.5Km 이내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설치되어 있었는데,
적함이 나타났을 때, 적함을 가운데 두고 십자포화를 퍼붓기 위함이었다. 지금
공격을 당하고 있는 데를레데와 키엔샹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가리산돈대와
좌강돈대의 십자포화 고스란히 노출된 법국 함선이 살아남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 소리였다.
"또, 명중했습니다!"
"우지끈... 쿠궁...꽈쾅---"
포탄 저장고에 120mm 철갑고폭탄(Armour Piercing High Explosive)이 명중했는지
통신보급함 데를레데는 굉음과 함께 엄청난 불기둥을 뿜어내며 함수가 박살난 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라앉는 데를레데에 다시 한 발의 철갑고폭탄이
작렬했다. 이는 데를레데를 두 번 죽이는 결과였으니, 삽시간에 데를레데를 잡아먹은
염하의 탁류(濁流)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적함 한 척이 굉음을 토하며 가라앉자,
가리산돈대와 좌당돈대의 조선군 포수들과 경비병들은 일제히 우레와 같은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우와--- 적함이 가라앉았다--- 이겼다---"
그러나 용진진의 소대장 박만철은 자만하지 않았다. 아직 한 척의 적함이 살아있었고,
홀로 분전하고 있는 용당돈대의 상황도 궁금했다. 나머지 한 척의 적함은 어떻게
닻을 올렸는지 염하를 거슬러 올라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보일러가 채 예열이
되지 않았는지 속도는 느렸지만, 그래도 기를 쓰며 올라가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연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보일러가 터져라 기관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이 모습을
쌍안경으로 관측하던 관측병이 소리를 질렀다.
"거리 50 밀어!"
관측병의 소리를 들은 포수들은 포 옆에 달려있는 동그란 손잡이를 죽어라고 돌렸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75mm와 120mm 후장식 속사포가 매끄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탄약수는 죽어라고 탄약을 날라다 장전구에 넣었고, 장전수는
탄약수가 장전한 포탄을 기다란 밀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덮개를 닫은
포수가 덮개에 달린 끈을 잡아 당겼다. 모든 군사들이 숙달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뻥! 뻐벙! 뻥! 뻥! 뻥!"
"뻥! 뻐버벙! 뻥! 뻥!"
숙달된 포수와 탄약수, 장전수의 기계적인 움직임 덕분에, 불과 몇 초에 한 번씩
장전되고 발사된 철갑고폭탄은 50이라는 거리를 리드로 정하고 날아가서, 적함의
선수에 거대한 물기둥을 만들며 터졌다. 몇 번의 물기둥이 치솟았는지 모른다.
드디어, 제대로 된 명중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뻥! 뻥! 뻐버벙! 뻥 뻐벙!"
"쾅! 콰광! 쾅꽈콰쾅!"
철갑고폭탄 몇 발이 뚫고 들어간 자리에서, 갑자기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커다란
불기둥과 함께 하얀 연기가 치솟았고, 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산지사방으로 비산(飛散)했으며, 폭발에 휩쓸린 적함의 수병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염하의 차가운 물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우와--- 이겼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가리산돈대의 모든 군사들이 저마다 손을 번쩍 들고, 불길에 휩싸인 채 가라앉는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더러는 옆의 군사를 얼싸안기도 했고, 더러는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박만철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두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힌 눈물이
양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박만철은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저도
모르게 노래가 튀어나오는데, 올해 초부터 배우기 시작한 "애국하는 노래였다"(*1).
소대장 박만철이 우렁찬 목소리로 애국하는 노래의 첫 구절을 부르자, 저마다
얼싸안고, 또는 눈물을 흘리고, 또는 환호성을 지르던 군사들이 후렴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대 조선국 자주독립 분명하다.
(합가) 에야 에야 애국하세 나라 위해 죽어보세.
분골하고 쇄신토록 충군하고 애국하세.
(합가) 우리 조정 높여 주고 우리 백성 도와 주세.
깊은 잠을 어서 깨어 부국 강병(富國强兵) 진보하세.
(합가) 남의 천대 받게 되니 후회 막급 없이 하세.
합심하고 일심 되어 서세동점(西勢東漸) 막아 보세.
(합가)사농공상(士農工商) 진력하야 사람마다 자유 하세.
남녀 없이 입학하야 세계 학식 배워 보자.
(합가) 교육해야 개화되고, 개화해야 사람되네.
태극기(太極旗)를 높이 달아 육대주에 횡행하세.
(합가) 산이 높고 물이 깊게 우리 마음 맹세하세."
언제 가져왔는지 커다란 태극기를 손에 든 군사 하나가 커다란 장대에 태극기를
달았다.
그 군사는 돈대의 석축 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선창을 하는
박만철이나 후렴을 따라 부르는 군사들의 눈에 휘날리는 태극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박만철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혀 애국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휘하
군사들이 이렇게 호응을 해주니 기쁨의 눈물이 앞으로 가릴 정도였다.
올해 초부터 전국적으로 보급되어 배우기 시작한 신식 가사(歌辭)는 애국하는 노래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었다. 대표적으로, "애국가(愛國歌)"가 있었고, "주상전하를
위한 노래"도 있었다. 그리고 태극기도 같은 시기에 제정되어 전국에 보급되었다.
애국가나 주상전하를 위한 노래보다는, 애국하는 노래가 지금 상황에 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박만철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인데, 휘하 군사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자 감동한 박만철은 가슴속에 맺힌 것을 풀 듯이 꽥하고 고함을 질렀다.
"우--- 와--- 이겼다---"
"와---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
한 바탕 축제분위기였다.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고, 감동의 물결이었다. 반 만년
역사에서 이렇게 감격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숱한
세월을 이민족의 침략만 받았던 조선 민족이, 동양의 대국 청국도 우습게 말아먹은
법국의 함선을 수장시켰다는 것은 말로는 표현할 수도 없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바야흐로 서양 제국(諸國)의 마수(魔手)가 동양에 뻗치고 있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강대한 청국이나, 호전적인 왜국도 무릎꿇은 이양선을 물리쳤다는 기쁨은 엄청난
것이었다.
갑곶 근처에 정박하고 있던 데를레데와 키엔샹만 불벼락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용강돈대 앞에 정박하고 있던 연안포함 듀피 드 롬은 물론이고 손돌목 인근에
정박하고 있던 나머지 세 척의 연안포함 타르디프, 르 브레돈, 르두타블도 같은
운명에 처해졌다. 특히 손돌목 인근에 정박하고 있던 타르디프와 르 브레돈,
르두타블은 덕진진과 광성보에 소속된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덕진돈대,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 등 총 여섯 곳의 돈대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해 모조리 수장
당하고 말았으니, 이로써 법국이 수운을 통제할 목적으로 염하에 정박시켜 놓았던
6척의 통신보급함과 연안포함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물치도 앞 바다에 정박하고 있는 세 척의 대형함 게르에르와 프리모게,
라플라스만이 남았는데, 그 세 척의 대형함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신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