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69화 (169/318)

17.

"뭐야!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제독님. 우리 육전대가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조선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였습니다."

"올리비에 대령은? 올리비에 대령은 어떻게 됐나?"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군이 쏘아대는 총 소리에 놀라서 정신이 없었는지라.

.."

로즈 제독은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그토록 믿었던 막강 육전대가 전멸이라니...

이럴 수는 없었다. 강화된 대대 병력이 단 몇 분 사이에 몰살당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도 그동안 수많은 전쟁에 참전했었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아니,

프랑스 역사상 400명이 넘는 대대 병력이 일순간에 몰살한 전례는 없었다.

로즈 제독의 놀란 모습을 보면서, 살아서 돌아온 육전대 군사들은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료들이, 전우들이 어육이 되었는데 자신들만 살아서 도망쳤으니

어떤 처벌을 내릴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어떤 병사는 팔꿈치 아랫부분이 너덜너덜

했으며, 어떤 병사는 허벅지 경동맥에 총상을 입었는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선혈이 낭자했으며 성한 모습의 병사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간단하게

응급조치를 하기는 했지만 저대로 놔두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사가 태반이었다.

병사들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다못한 눈치 빠른 부관이 눈짓으로 물러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언제 전령을 보냈는지 멀리서 엠마누엘 중령과 보쉐 중령,

릴리앙 중령, 패트릭 대위, 등이 뛰어 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령관님."

선임자인 엠마누엘 중령이 모두를 대신해서 물었다. 로즈 제독은 그런 참모들에게

고개를 돌리는데 전에 없이 눈빛이 날카로웠고, 서슬이 퍼랬기에 참모들이 흠칫하고

놀랬다. 로즈 제독이 아무런 말이 없자 부관이 나서며 자초지종을 말해준다. 부관의

말이 이어질 수록 참모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낯빛은 파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좌중은 일순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로즈 제독이 그 침묵을

깨트린다.

"엠마누엘 중령!"

"예. 제독님."

"지금 즉시 가용 가능한 모든 병력을 집결시키도록! 이번에는 내가 직접 병력을

이끌고 저 간악한 노란 원숭이들을 기필코 찢어 죽이고 말 것이야."

"하지만 제독님... "

엠마누엘 중령은 로즈 제독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심정도

마찬가지였기에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즈 제독의 명령에 공감하지는 못했다.

"제독님. 제고해 주십시오. 우리 육전대 400여 명의 병사가 전멸 당한 마당에 이렇게

서둘러서 진격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우리 자랑스러운 프랑스 육전대 400여 명이 순식간에

몰살당했단 말이야! 싸울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일방적인 공격에 몰살을 당했다고!

내 반드시 그들의 복수를 하고 말 걸세. 모든 조선 노란 원숭이들의 심장을

갈라서라도 복수를 하고 말 것이야!!!"

로즈 제독은 이성을 잃은 듯이 보였다. 눈알이 빠져 나올 듯 부릅떠져 있었고,

실핏줄이 터졌는지 두 눈에는 핏발이 가득했다. 말 그대로 광분하고 있었다.

"제독님. 지금 우리는 조선군의 정확한 전력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육전대 400여

명이 몰살당한 마당에 남아 있는 병력 대부분도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저도 엠마누엘 중령님의 생각과 같습니다. 제독님. 제발, 명령을 제고해 주십시오."

패트릭 대위까지 이렇게 말하자, 로즈 제독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품속에서 시가 하나를 꺼내더니 그 끝을

신경질적으로 물어뜯으며 입에 물었다. 옆에 있던 부관이 재빨리 성냥을 켜서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도왔다. 뻑뻑거리며 시가를 빨아대던 로즈 제독은 그때서야 진정이

좀 됐는지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얘기를 해보게."

"... 음..."

"..."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너무도 엄청난 일을 당했기에 그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도 바쁜 마당에 대책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리라...

참모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었고, 로즈 제독은 로즈 제독대로, 속이 타 들어가는지

시가 끝만 질겅질겅 씹을 뿐이었다.

"제독님, 일단 소수의 병력을 파견해서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아군의 생존자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적의 공격에 대비해서 병사들을

배치하고 방어선을 서둘러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독님."

"음..."

로즈 제독은 자신의 실책을 지적하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졌다. 원정함대의

사령관이 부하들 앞에서 방방 뛰고 난리를 부리는 못난 모습을 보였으니 부하들 볼

면목이 없었지만, 일단은 적의 침입에 대비하자는 패트릭 대위의 말이 옳은 듯

싶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프랑스 조선 원정함대 상륙군은 제대로 된

방어선 하나 구축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중화기로 가져온 미트라예즈(

Mitrailleuse) 소구경 속사포 6문과 6파운드 야포 16문도 제대로 배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조선군이 쳐들어온다면, 그리고 살아남은 육전대 병사들의 말처럼

조선군이 강력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프랑스 상륙군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로즈 제독은 서둘러 명령을 내린다.

"패트릭 대위의 말이 맞다. 패트릭 대위는 1개 소대 병력을 이끌고 강화성을

정찰하도록 하게!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고, 적의 동태와 살아남은 우리 병사가

있는지 만 확인하고 와!

그리고, 나머지는 신속히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언제 적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서둘러!"

로즈 제독이 이렇게 명령을 내리는데 갑자기 굉음(轟音)이 들렸다.

"뻥! 뻥! 뻐버벙---"

"따다다다다당--- 땅따따당당---"

"콰과광--- 쾅쾅!"

천둥이 치는 것 같은 굉음에,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모두 고개를 돌리는데,

갑곶돈대 앞에 정박하고 있던 통신보조함 데룰레데와 키엔샹이 포격을 받고 있었다.

데룰레데와 키엔샹은 함대의 원활한 통신과 정보 공유를 위해 갑곶나루 앞쪽에

정박하고 있었고, 나머지 연안포함 타르디프와 르 브레돈, 르두타블과, 듀피 드 롬은

강화해협 곳곳에 정박한 채 강화해협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 데를레데와 키엔샹이

포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데를레데는 함수에 크게 한 방 맞았는지 함수 부분에서

불기둥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고, 키엔샹은 돛대가 부러진 채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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