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하루가 지났다. 아침부터 프랑스의 조선 원정군은 분주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또 조선인들이 버리고 간 가축들을 도살하여, 모처럼 신선한 고기를 실컷 먹었기에
사기도 충만했고 몸 상태도 좋았다. 갑곶나루의 한 민가에서 하룻밤을 지난 로즈
제독의 인상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조선의 가옥이라는 것은 구조가 특이해서
아궁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방식의 난방을 하였으니, 난생
처음 보는 로즈 제독은 난방이 못 미더워서 야전 텐트에서 하룻밤을 묵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법국함대에 종군한 조선인 천주교 신자 중 한 사람의 권유로 그 민가에
묵게 되었고, 그 신자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주어,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얼마나 많은 장작을 아궁이에 집어넣었는지 뜨거워서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깜깜한 밤중에 견디다 못한 로즈 제독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이번에는 온 몸을 스멀스멀 기어다니며 물어대는
빈대와 벼룩 등으로 인해 온몸이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렇게
별의 별 헤프닝을 다 겪었으니 로즈 제독의 아침 컨디션이 좋을 리 만무했다.
1866년 갑자년(甲子年) 양력 10월 14일(음력 9월 6일)인 어제, 갑곶나루에 상륙한
로즈 제독은, 물치도 앞 바다에 정박해 있던 게르에르와 프리모게, 라플라스, 그리고
갑곶나루와 강화해협 일대에 정박해 있는 연암포함 타르디프와 르 브레돈,
르두타블과 듀피 드 롬, 통신보조함 데룰레데와 키엔샹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만을 남겨둔 채 전 병력과 화력을 갑곶나루로 상륙시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각 함선의 수병들은 남겨둔 상태였으나, 조선군 관리가 왔다 간
후로, 통신보급함 키엔샹을 물치도로 보내 게르에르와 프리모게, 그리고 라플라스에
있는 동원 가능한 모든 수병들을 긁어모았다. 일거에 강화도를 들이쳐 선교사 9명을
죽이지 않았다는 헛소리를 씨부렁거린 건방진 조선 관리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병력과 화력을 동원해서 강화성을 들이칠 생각을 했지만 올리비에
대령을 비롯한 모든 참모들이 먼저 위력정찰을 할 것을 건의하였기에, 할 수 없이
올리비에 대령으로 하여금 육전대를 이끌고 위력정찰을 하고 올 것을 지시했다.
명령을 내린 로즈 제독이나 명령을 수행하는 올리비에 대령이나 어느 누구도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의 조선 원정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의 명령으로, 강화성에 대한 위력정찰을 하기 위해 육전대 병력 400여명을
이끌고 출진한 올리비에 대령은 일치감치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였기에 그런 대로
속이 든든했다.
어젯밤 내린 비로 길은 진창으로 변했고, 흙탕물이 졸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지만, 위대한 프랑스 육전대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프랑스의 조선 원정함대에 종군한 조선인 천주교 신자가 그려준 강화성에 이르는
길은 대충 잡아도 2Km 정도밖에 돼 보이지 않았다. 올리비에 대령은 파악한 정보대로
먼저 강화성의 남문을 공략하기로 하고 군사들을 재촉했다. 남문에 가까운 동문도
동시에 들이칠까 하다가, 먼저 남문을 공략하고 남문에서 겨우 몇 십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동문은 나중에 공략하기로 했다.
"모두들 힘을 내라! 이제 조금만 더 가면 강화성이 나타난다."
얼마를 그렇게 행군했을까? 멀리로 강화성의 남문이 보였다. 올리비에 대령은 잠시
행군을 멈추고 망원경을 꺼내 강화성 남문을 관측했다. 알아볼 수 없는 한문으로
뭐라고 적혀있는 현판이 보였고, 좌우로는 군기(軍旗)가 빼곡이 세워져 있었다.
조선군으로 보이는 군사들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제법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강화성의 남문은 성루 앞 양쪽으로 뾰족하게 돌출 된 성곽이 있었다. 흔히 고구려의
축성술(築城術)의 특징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치(稚)'와 비슷한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튀어나온 성곽의 모습이 꿩의 머리 같다고 해서 ‘치’라
불렀는데, 쳐들어오는 적을 삼면(三面)에서 공격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잘못하면 독 안에 빠진 쥐의 신세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강화성의 남문은 고구려의
치와 비슷한 게 약 10미터 정도 앞으로 돌출 되어 있었다.
"부대 전투대형으로! 바로 적들을 들이친다!"
올리비에 대령의 자랑스러운 프랑스 육전대는 재빨리 종대 행군대형에서 횡대
전투대형으로 대열을 변경했다.
"부대에--- 앞으로---"
강화부성의 남문은 어재연이 지휘하는 1대대의 3개 중대병력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2대대의 3개 중대 병력이 동문을 지키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후방에 위치한
서문과 북문은 1개 중대가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2개 대대가 강화부성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나머지 2개 대대는 강화도 곳곳의 요충지에 흩어져서 주둔하고 있었다.
"대대장님! 적군이 오고 있습니다!"
어재연이 갑곶나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어느새 법국군대는 300미터
전방에서 전투대형으로 강화부성 남문을 향해 행진해 오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도
400명은 족히 돼 보였는데, 중화기는 없고 모두 소총만으로 무장한 모습이었다. 약간
싱거운 느낌이 든 어재연은 나지막하면서 힘있는 목소리로 주위의 군사들에게
명령한다.
"누구도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방포하지 말아라! 적군이 200미터까지 접근하면
방포할 것이니!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는 내 명령이 있기 전에는 방포하지 말아야 한다!
"
강화부성 남문에 포진한 3개 중대에 배치된 한(韓)-4198식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는
각각 36정에 달했다. 어마어마한 화력이었다.
한-4198식 기관총은 화집점을 형성한 채로 성곽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유탄발사기도 마찬가지였다. 1분에 800발이나 발사할 수 있는 한-4198식 기관총이
불을 뿜고, 반경 3미터에서 5미터 안에 있는 인마(人馬)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유탄발사기가 발사된다면, 법국군대 400여 명이 한순간에 도륙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성 싶었다.
법국군대는 질서도 정연하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죽을 자리인줄도 모르고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법국군대를 보면서 어재연은 연민의 정을
느꼈다. 어느새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법국군대는 사격대형을 취하려는 듯 멈춰
서기 시작했다. 야포도 없는 개인화기만으로 무장한 법국군대는 횡대 전투대형으로,
막강한 조선군의 화력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범의 아가리 속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친위천군 강화도연대 1대대 군사들은 한식보총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지난해 지급 받아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사용했으니 익숙하지 못하다고
하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빵! 빵! 빵! 빠방! 빠바방!"
약간은 둔탁하면서도 경쾌한 총소리와 함께, 전투대형을 갖춰 접근하던 푸른색
상의와 빨간색 하의를 입고있던 법국 군사들이 낙엽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어재연의
눈에 보였다. 갑작스런 기습에 놀란 탓인지 법군군대는 아직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몇 십 초에 불과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어재연은 보유한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적군을 섬멸해야하는 때가 왔음을 느꼈다.
"계속 방포하라---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도 방포하라! 적들을 도륙내라---"
어재연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회를 기다리던 한-4198식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사수들이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를 발사했다. 한식보총이라고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숙달된
사수가 1분에 60발을 발사할 수 있는 한식보총의 위력도 대단했다.
"빵! 빵! 빵! 빠방! 빠바방!"
"따다다다다다당--- 따당땅땅땅---"
"퐁! 포봉! 퐁! 퐁!"
어지러운 발사음과 동시에 적군의 전열이 순식간에 무너졌으며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부하들을 독려하는 어재연의 눈에 적군의
지휘관으로 짐작되는 이가 보였다. 당황한 듯 허둥대며 군도(軍刀)를 휘두르는
모습이 틀림없는 지휘관인 것 같았다.
올리비에 대령은 부대를 전투대형으로 변경한 후 강화성을 향해 전진시켰다.
군사들의 손에 있는 소총은 언제라도 발사가 가능하도록 실탄이 장전된 소총이
들려져 있었고,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재앙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막 사격대형을 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는 찰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총의 발사음이 들렸다.
"빵! 빵! 빵! 빠방! 빠바방!"
갑자기 들려오는 총소리와 함께 프랑스 육전대 병력은 여기저기에서 피 보라를
뿌리며 쓰러지는 병력이 속출했다. 조선군이 발사한 것이 분명한 총탄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으악---"
"아악---"
"살려줘---"
"내 다리--- 으아---"
올리비에 대령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귓가로는 총탄이 지나가는 소리가 쌔앵하고
들렸으며, 여기저기에서 총탄에 맞은 부하들이 피 보라와 함께 쓰러졌고, 채 마르지
않은 진창에 총탄이 박히면서 진흙과 흙탕물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올리비에 대령은 자신의 얼굴에 끼얹어진 흙탕물을 씻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군도부터 뽑아들었다.
"적이다--- 응사하라---"
군도를 휘두르며 악을 썼지만 순식간에 무너진 전열을 가다듬기 어려웠다. 자신의
명령에 반응하여 응사하는 육전대 부하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조선군은 강화성의
성가퀴에 몸을 숨기고 사격을 하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의 총탄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막
후퇴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소구경 속사포의 발사음과 같은 것이 연속으로
들렸다. 그리고 생전 들어본 적 없는 희한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뭔가가 터지는데
폭발 권역에 있던 부하 몇이 폭풍에 휩싸인 가랑잎처럼 단발마를 지르며 멀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올리비에 대령은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 엎드렸다. 엎드린 채로
권총을 뽑아든 올리비에 대령은 전방을 향해 쏘아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권총의 사거리가 미치지도 않았지만 무조건 쏘고 봤다. 순식간에 6연발 권총은 모두
발사됐는지 더 이상 총탄을 뿜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피가 뿌려졌다. 소총과 소구경 속사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야포?에 의한, 거의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며 올리비에 대령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만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총소리가 잠잠해 지면서 어눌한 프랑스 말이 조선군 측에서 들려왔다.
"항복하라--- 모두 총을 버리고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올리비에 대령은 조선군이 어떻게 프랑스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손을 들고 일어섰다. 주변에는 화약 냄새가 진동했고, 곳곳에서 쓰러진
부하들의 신음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올리비에 대령은 망연자실(茫然自失)
했다. 단 5분도 채 되지 않는 접전에서 자신의 육전대 군사 대부분이 땅에 쓰러져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위대한 나폴레옹 3세 황제폐하의 정예
육전대가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