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14화 (166/318)

4.

기가와 중늙은이는 봇짐의 주둥이를 열고 뭔가 길쭉한 것을 꺼내는 데 그것은 바로

화승총(火繩銃)이었다. 길이가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화승총 열 자루가 각각의

봇짐에 넣어져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각각의 봇짐에서 화승총을 꺼내놓더니 일일이 시험 방포(放砲)를 한다.

필시 같은 사요에서 만든 것이 분명한 총탄을 화승총에 하나씩 넣고, 화문개(火門蓋)

를 열더니 거기에 점화용 화약을 짚어 넣는다. 그리고 나서 품속에서 지포 발화기를

꺼내 가지고 능숙한 솜씨로 화승에 불을 당긴다. 화승에 불을 당기고 나서 앉아 쏴

자세를 취하며 닫았던 화문개를 다시 열면서 정면 50보쯤 떨어진 고목 나무를 향해

조준을 한다.

화승이 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하얀 화약이 타는 연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이 거치한 화승총에서 굉음과 함께 불이 뿜어져

나왔다.

"빵! 빵!"

이렇게 일일이 하나씩 방포를 해보는 것이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화승총을 시험하는

모양이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중에서 벌어진 두 사람의 시험 방포는 주변의

산짐승들이나 알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정순남은 도대체 남한산성의 친위천군들은 뭐를 허고 있기에 저눔들의 총소리도 못

듣는 것이다냐 하는 생각을 하는데, 실상 저들이 이렇게 시험 방포를 하는 그 공터의

위치가 정말 절묘했다.

주변이 인적이라곤 거의 없는 관목으로 뒤덮여 있는데다가 여성의 음부(陰部)와도

같은 계곡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형상이라 총소리가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고 안에서

맴도는 절묘한 지역이 바로 그곳이었다.

고목 나무의 중간부분이 너덜너덜 해져있는 것이 저들이 이곳에서 시험 방포를

한지가 꽤나 오래 전부터였던 것 같았다.

이렇게 스무 자루에 달하는 화승총의 방포 시험이 성공리에 끝나자 기가와

중늙은이는 각각의 봇짐에 다시 화승총을 챙겨 넣고, 시험 방포의 표적이 되었던

고목 나무와 주변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한다. 용의주도(用意周到)하고 주도면밀(

周到綿密)한 것이 하루 이틀 그런 일을 한 솜씨가 아니었다.

모든 주변 정리를 끝낸 기가와 중늙은이는 서둘러 산을 내려와서 다시 광주에 있는

사요로 걸음을 옮긴다.

장순규와 정순남은 두 사람이 사라지자 관목 숲에서 나와 두 사람이 시험 방포를 한

공터에 내려와 이것저것 여기저기를 살핀다.

공터에는 화약의 흔적으로 보이는 검은 가루만이 약간씩 흩어져 있을 뿐 이렇다할

증거나 단서는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화약의 흔적도 기가와 중늙은이가

발로 이리저리 흩트려 놓았기에 자세히 보기 전에는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형님, 저눔들이 화승총을 어찌케 맨들었으까요? 필시 그 사요에서 맨든 것이 분명헐

듯 싶은디..."

"내 생각도 자네와 같네. 아무래도 우리가 화승총의 제조 공장을 드디어 찾아낸 것

같구만."

"허면 이대로 저들을 들이칠깝쇼?"

정순남은 그동안 자신들을 고생시켰던 저들을 일망타진(一網打盡)하고 어서 빨리

일을 끝내고 싶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큰공(功)을 세우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장순규는 이 계통에 오래 몸담고 있던 선배답게 침착했다.

"아니야, 내 생각에는 필시 저들이 화승총을 도성 안으로 반입(搬入)할 심산인 것

같으니, 일단 미행을 계속해서 도성 안에 마련된 저들의 거점과 잔당들을 모조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네. 자! 서두르세나."

장순규는 이렇게 말하고 기가와 중늙은이가 내려간 방향으로 몸을 날리기 시작하는데

통통한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이다.

정순남도 장순규를 따라서 뛰기 시작하는데 장순규에 못지 않은 빠른 몸놀림을

보여준다.

이 두 사람만 보아도 그동안 대정원 요원들이 얼마나 혹독한 수련과 자기 관리를 해

왔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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