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65화 (162/318)

13.

평소에 강화도와 내륙을 왕래하던 인파와 물자로 분주하던 갑곶나루에는 개미새끼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건너편의 군하나루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피난을 간 흔적이 역력한 갑곶나루의 여기저기에는 미쳐 챙기지 못한 가재도구와

세간이 어지럽게 널어져 있었으며, 주인 잃은 닭과 돼지들도 몇 마리 보이고 있었다.

갑곶나루에 상륙한 조선 원정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과 참모들은 강화해협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갑곶돈대에 위치한 이섭정(利涉亭)에 올라와서 이제 막 상륙하고 있는

병사들과 장비들, 그리고 어지러운 갑곶나루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어떤가 내 말이 맞지? 조선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니까... 하하하..."

"... 음..."

로즈 제독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올리비에 대령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2차

아편전쟁 당시의 오합지졸(烏合之卒) 청국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떻게 자신들의

나라에 상륙한 외국 군대에 대해서 이렇게 대응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일단 우리의 계획대로 주변의 고지들을 정찰하도록 하게, 그리고 나서 강화성에

대한 위력정찰은 내일 아침에 실시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제독님."

올리비에 대령은 로즈 제독의 말에 대답을 하고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청국시간으로 맞춰진 시계는 어느새 오후 3시를 넘기고 있었다. 회중시계를 쳐다본

올리비에 대령은 육전대를 이끌고 고지를 정찰하기 위해 이섭정을 나가는 순간, 병사

하나가 뛰어 왔다.

"제독님. 조선의 관리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래? 이제야 나타났구만... 어서 리델 신부를 모셔오게."

리델 신부는 로즈 제독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자 조선의 관리가 왔음을 직감하고

이섭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사방이 탁 트인 팔각 지붕의 이섭정에는, 로즈 제독을

비롯한 원정함대 수뇌부들이, 융복을 입고 당당하게 서 있는, 조선인 관리가 분명한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쳐다보고 있었다. 어재연 강화도연대 1대대장이었다.

"제독님, 찾으셨습니까?"

"아! 리델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조선의 관리가 왔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법국인 선교사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자 어재연은 이 사람이 리델 신부인 것을

직감했다. 이 사람이 조선에 있다가 탈출한 선교사 중 한 사람임을 직감했다.

인파루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조선군의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고 있던 어재연이었지만,

경무청 소속의 경무관이나 입지, 더 이상 조선군 무관은 입지 않는 융복 차림이었다.

법국 군대를 안심시키려는 술책이었다. 어디서 주어 입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융복은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색깔이 바랜 상태였고 군데군데 솔기가 타져 있었고, 실밥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요?"

로즈제독의 말을 리델 신부가 어눌한 조선말로 통역하자 어재연은 가슴을 쭉 펴고

말한다.

"나는 조선군 친위사단(천군) 제 1연대(강화도연대) 제 1대대장 중령 어재연이라고

하오."

리델 신부의 통역으로 상대방의 신분을 확인한 로즈 제독은 같잖은 생각이 들었다.

꼴에 군대라고 어디서 주어 들었는지, 유럽식의 사단 편제에다, 스스로를 대대장이자

중령이라고 밝힌 눈앞의 사내가 가소로운 생각이 들었다.

로즈 제독이 아무런 말이 없자 이제는 어재연이 말할 차례였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의 군대요? 그리고 아국을 불법적으로 침공한 이유는 무엇이오?"

"우리는 법국 코친차이나 함대의 일원으로 조선이 우리 법국인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폴레옹 3세 황제폐하의

명을 받들어 당신네 조선을 응징하기 위해서 왔소."

"법국의 함대라구요?"

"그렇소, 우리는 법국의 함대요."

"헌데, 그게 무슨 소리요? 아국이 당신네 법국인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을 학살하다니? 내가 비록 강화도에 주둔하는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관계로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

소리요. 혹시 당신네들이 뭘 잘 못 알고 온 것 아니오? 분명히 말해두지만 아국은

당신네 법국인 선교사들이나 천주교 신자들을 한 사람도 학살하지 않았소."

어재연의 말을 들은 리델 신부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두 눈으로 학살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가? 한 사람도 죽은 선교사가 없다니? 리델 신부의 낯빛이 당혹감(當惑感)

으로 하얘지기 시작하자, 로즈 제독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서 통역할 것을

채근했다.

"이 사람의 얘기는 우리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 중에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죽은 사람이 없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분명히 우리 프랑스 선교사 9명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이 학살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리고 우리에게도 검거의

손길이 미쳤는데...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리델 신부의 통역에 로즈 제독을 비롯해서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어재연이

다시 말한다.

"아국 조정에서는 당신네 선교사들을 한 사람도 살해하지 않았소. 그러니 어서

군대를 물려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겠소. 그리고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모두 귀국의 책임일 것이오.

"

어재연은 이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당한 걸음으로 한 쪽에 메어놓은 말로

향하는 어재연 중령에게 누구도 뭐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재연은 몽골 말이

분명한 체구가 작고, 그러면서도 단단하게 생긴 말에 훌쩍 올라타더니 강화부성을

향해 말을 몰고 사라져갔다. 어재연이 그렇게 사라지자 프랑스의 조선 원정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과 참모들은 그때서야 정신이 드는지 갑론을박(甲論乙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리델 신부님.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올리비에 대령님. 그러나 저 사람의 말은 분명히 조선에서

한 사람의 선교사나 신자들이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 신부님은 저 자의 말을 믿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올리비에 대령과 리델 신부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요꼬하마 공사관 경비중대장

패트릭 대위가 나섰다.

"... 음... 저는 개인적으로 저 사람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저 사람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베르뇌 주교님을 비롯한 동료 선교사들과 신자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

"리델 신부님! 지금 장난하는 것이오?" 우리 프랑스군이 이 조선 땅까지 함대를

이끌고 온 이유가 무엇이오? 그리고 우리가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소? 그런데 뭐가

어쩌고 어째요?"

"하지만, 제독님. 저 사람의 말대로 우리 선교사들과 신자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좋은 일이 아닙니까?"

"여러 말 할 것 없어요. 분명히 베르뇌 주교님을 비롯한 우리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은 조선 정부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했습니다. 저 자는 분명히

우리의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알린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 제군들!"

"맞습니다, 사령관님. 분명히 잘못된 정보를 알려주면서 우리 군의 혼란을 유도할

a생각입니다."

"저도 패트릭 대위의 뜻과 같습니다. 제독님."

연안포함 타르디프의 함장인 윌토르 릴리앙(Wiltord Lilian) 중령까지 이렇게 말하자

리델 신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로즈 제독은 무슨 말을 하려는 올리비에

대령을 보며 쐐기를 박듯이 말한다.

"모두들 잘 들어라. 방금 그 자의 말은 못들은 걸로 한다. 그리고 일체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도록! 알겠나?"

"알겠습니다, 제독님."

"알겠습니다."

"리델 신부님도 아시겠죠?"

"... 음... 알겠습니다, 제독님."

"그리고 올리비에 대령은 육전대 몇 개 중대를 이끌고 저 앞에 있는 고지들을

정찰하고 오도록! 뭐 특별한 움직임은 없겠지만, 그래도 정찰 한 번 하는 것이

좋겠지..."

"알겠습니다, 제독님."

올리비에 대령의 대답을 들으며 로즈 제독은 이섭정을 빠져 나왔다. 해는 어느새 산

너머로 사라져 버려 산그늘에 위치한 이섭정은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프랑스의 조선 원정함대가 갑곶나루에 상륙한 오늘은 9월 6일(양력 10월 14일)이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80 제 1차 조법전쟁(朝法戰爭)...5

어제 연재분에서는 상당한 오탈자와 오(誤) 문맥이 있었습니다. 여러 독자 대감의

이해를 구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리플란에, 글의 진행이 상당히 더디다, 아니면,

글을 너무 늘인다, 하는 말씀을 많이 남기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과 같은 글의 진행은 제가 볼 때는 가장 이상적입니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윤민혁님이 쓰신 한제국건국사에서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한 권으로 다뤘고, 병인양요를 한 권 반에 걸쳐서 다뤘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전혀 느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글의 진행이 빠를 것이지요. 大韓帝國記의

이번 챕터 "제 1차 조법전쟁"의 진행이 느리다고 한다면 작전회의도 하지말고, 적의

동향에 대한 묘사도 집어치우고, 오로지 전투만 해서 끝내라는 말인가요? 그러면

그게 글입니까? 쓰레기지. 大韓帝國記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독자가 지켜야할 선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작가가 지켜야할 선을 지키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