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63화 (160/318)

11.

동검돈대를 무력화시키고 강화해협에 접어든 프랑스의 조선 원정함대는 초지진에

위치한 초지돈대와 장자평돈대와 성암돈대를 무력화시켰다. 역시 조선군은 보이지

않았으며, 요새에도 과연 요새포가 있기나 했을까 할 정도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로즈 제독은 아까운 포탄만 낭비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로즈 제독의 얼굴에 그런 기색이 나타나면 나타날수록 옆에 있는 함대

부사령관이자 육전대 사령관인 올리비에 대령의 안색도 어두워져 갔다.

원정함대는 어느새 덕진진에 접어들었다.

"제독님, 앞에 조선군의 요새가 또 나타났는데 어떡할까요? 포격을 지시할까요?"

로즈 제독의 부관은 로즈 제독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채고 있었다. 부관의 이런 말이

있자 로즈 제독은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그냥 간다. 더 이상 아까운 포탄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상륙지점으로 항진하도록."

"알겠습니다, 제독님."

로즈제독의 명령을 받은 부관이 다시 각 함들에게 명령을 전파하자 올리비에 대령이

나선다.

"제독님. 조선군의 요새를 그냥 놔둔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렇게 좁은

수로에서 조선군 요새포의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 원정함대가 몰살당할 수도 있습니다.

명령을 제고해 주십시오, 제독님."

"대령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지 못했나? 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요새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것을, 자네는 보지 못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하지만 제독님."

"그만! 이제 그만 하게, 조선군은 우리가 봐왔던 쓰레기 같은 청군의 군대나

코친차이나의 원주민 군대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 지금 쓸데없는 일로

논쟁하고 싶지 않네."

"..."

올리비에 대령은 말문이 막혔다. 로즈 제독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난 지금

끝까지 자기 고집을 내 세울 수도 없었다. 도대체가 동양의 노란 원숭이들은 다른

나라의 군대가 침략하는 마당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위정자라는 것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청국도 그러더니 그

속국인 조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Pirla!"

모나코 인근의 작은 시골마을 출신의 올리비에 대령은 이탈리아와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인지 평소에도 북부 이탈리아 사투리가 자주 튀어나왔다. 지금도

북부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토리노 지방에서 자주 사용되는 욕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삐를라란 말은 한마디로 멍청한 이란 말이니까, 조선군과 조선 정부가

멍청하다는 소리였다.

이런 올리비에 대령의 습관을 알고 있던 로즈 제독이 다시 말한다.

"이제야 알겠나? 동양의 노란 원숭이들은 겨우 이 정도에 지나지 않은 족속들일세."

"... 예... 헌데 어떻게 우리 선교사들과 천주교 신자들을 그렇게 무참하게 학살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음... 그러니까 이런 놈들에게는 그저 따끔하게 힘을 보여줘야 한다니까. 그래서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혼을 내줘야만 하는 것일세."

두 사람이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물살이 세졌는지 배가 조금씩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덕진진을 지나 팔꿈치 수로라고 일컬어지는 손돌목에

진입하고 있었다.

손돌목은 강화해협에서도 가장 조류가 빠른 곳이고 또한 양안(兩岸)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었다. 이제 이 손돌목만 지나면 상륙 예정지인 갑곶나루까지는 사방이 탁 트인

곳이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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