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59화 (156/318)

7.

지금 프랑스함대의 기함이 게르에르의 함대사령관실에서는 작전회의가 한창이었다.

이미 청국을 출발하기 전에 모든 함대를 동원한 기동훈련을 했었고, 또 모의

상륙훈련까지 마친 상태였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모든 지휘관들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곳을 상륙지점으로 삼고 싶은데 제군들의 생각은 어떤가?"

프랑스함대 사령관 로즈제독은 조선 서해안과 강화도가 나와있는 해도를 펼치고서

강화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은 강화도의 갑곶나루였다.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해도는 원래 충청도 서해안 일대만 표시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1차

원정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황해도 언저리와 한강유역까지 포함된, 나름대로

상세한 해도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 그 지점은 주위에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위치가 아닙니까?

그리고 해협 건너편의 고지도 신경이 쓰이는 곳입니다. 만일 그런 고지에 적이

포대를 설치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1차 원정에 참전한 경력이 없는 요꼬하마 공사관의 경비중대 책임자인 앙리

패트릭(Henry Pattrick) 대위가 말했다. 게리에르의 함장 엠마뉴엘(Emmanuel) 중령과

육전대 사령관 올리비에(Olivier) 대령은 패트릭 대위와 마찬가지로 참전 경험이

없었다. 하여, 마찬가지의 우려를 나타냈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지난번 1차 원정 당시에 그곳에는 아무런 포대도

없었다네. 그리고 해협 양안(兩岸), 요소 요소에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아무런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며, 아예 군사 자체가 없었지. 도대체 이 나라는

군사라는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라니까... 그 한강 유역에 포대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군사나 포대는 없었다니까..."

"하하하..."

"하하하..."

"그리고 이곳으로 상륙하면 강화도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성이 있다는 정보일세.

이곳으로부터 그 성까지는 대략 10Km에서 20Km나 될까?"

"하루면 점령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로즈 제독을 비롯한 함대의 다른 지휘관들이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을 때, 요꼬하마

공사관 경비중대장인 패트릭 대위만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패트릭 대위를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에는 부사령관 올리비에 대령이 묻는다.

"제독님, 이곳과 이곳 등 여러 군데의 요새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미리 포격을

해서 무력화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올리비에 대령은 부사령관답게 신중했다. 자신이 지난번 코친차이나 반군을

진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도 적을 경시하지 않았던 데에 있었다.

한마디로 방심은 금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비에 대령이 가리킨 곳은

강화도 바로 밑에 있는 동검도(東檢島)의 동검돈대와 강화도 내에 있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에 위치한 돈대들이었다.

강화해협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동검도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화해협의 동쪽

검문소(檢問所)와 같은 곳이다. 강화도 북서쪽에 위치한 교동도 바로 밑에 있는

서검도(西檢島)는 황해도 방면에서 접근하는 적선이나 수상한 선박에 대한 검문을

하는 곳이었고, 동검도는 충청도 쪽 바다에서 접근하는 적선이나 수상한 선박에 대한

검문을 하는 곳이다. 당연히 동검도와 서검도는 강화도 일대 수비의 첨병을 맡고

있는 곳답게 요새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섬이 보유한 배는, 조선의 전통적인 배의 구조인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 아닌, 홀수선이 깊고 뾰족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일단 수상한 선박을

발견하면 빠른 속도로 다가가 문정을 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의 휘하 무장인 나대용(羅大用 1556~?)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사용되었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우리 함대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미리 제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내 생각은 다르네. 자네는 지난번 원정에 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우리가 지난번에

왔을 때 파악한 바로는 조선은 변변한 해군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된 요새도 없는

것으로 나타냈네. 괜한 포탄의 낭비만 불러올 소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하네만, 그렇지

않나? 보쉐 중령."

"그렇습니다, 제독님. 올리비에 대령님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프리모게의 함장 보쉐 중령까지 이렇게 말하자 올리비에 대령도 할 말을 잃었다.

이때 아까부터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던 패트릭 대위가 말한다.

"제독님, 제가 요꼬하마에 있을 때 한가지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습니다."

"응? 흥미로운 정보?"

"그렇습니다. 우리 요꼬하마 공사관에 출입하는 왜국인 하나가 하는 말이 막부와

여러 번들이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니 그것은 또 무슨 말인가?"

"제독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왜국은 내전 상태입니다. 그런데 내전의 양

당사자들인 막부와 죠슈번은 물론이고 사쓰마번과 아이즈번과 같은 유력한 번들이

모두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그 후장식 소총을 왜국에

판매한 나라가 조선이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으래? 그럼, 그 조선제 후장식 소총이라는 것을 자네 눈으로 확인했나?"

"음... 제가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그 정보를 가지고온 왜국인은 믿을만한

정보원입니다."

페트릭 대위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였기에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왜국의 내전 와중에 양측이 사용된 소총이 후장식 소총인 것은 틀림없었다.

그리고 왜국에 주재하는 다른 외교관들의 사이에 오가던 소문도 후장식 소총을

누군가가 왜국에 판매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없었다.

지난 갑자년(甲子年 1864년) 신기도감에서 개발하여 외국으로 수출한 양식보총의

숫자는 무려 5만 정에 육박했다. 그중 왜국에만 3만 정 가까운 양식보총을 판매했고,

청국과 외몽골에 각각 1만 정의 양식보총을 판매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청국과 외몽골에 판매한 2만 정의 양식보총은 아직까지 그 실체가 노출된 적은

없었다. 외몽골은 서양 제국(諸國)의 관심밖에 있는 지역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청국에 판매한 양식보총 1만 정은 아직까지 노출되지 않았다. 청국이야 워낙 넓은

땅덩어리를 자랑하고 있었고, 각지에서 발생했던 민중봉기나 태평천국의 난 같은

민란들도 대부분이 진압되어 비교적 평온한 상태였기에 양식보총을 보유한 군대가

동원될 일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서양 제국에서는 청국이 후장식 소총을

보유하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또 변법자강운동의 결과로 각지에서 군수공장과

기기창이 들어서고 있었기에 관심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도 그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왜국은 달랐다. 왜국에만 3만 정 가까운 양식보총이 판매되었고, 그동안 크고

작은 소요가 끊임없이 일어나 상태에서 양식보총이 노출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지난해 있었던 막부의 제 1차 죠슈번 정벌이 있은 후 그런 소문이 서양 제국의

외교가(外交街)에 회자(膾炙)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양식보총의 개머리판에 "

기적의 중공업(Miracle Heavy Industry 신기도감(神器都監)의 기술자들은 원산지를

알아볼 수 없도록 영문으로 이렇게 표시해서 수출했다.)"이라고 새겨진 표식만으로는

어느 나라에서 제조하여 판매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패트릭 대위의 설명을 들은 로즈제독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조선이라는 나라는 절대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못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강력한 후장식 소총을 개발한 나라에서 변변한 요새 하나 만들지

못하고, 중요한 해안 요새에 변변한 화포하나 배치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한강 유역에 있던 요새포야 서울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워낙 중요한

요충이었으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포대를 만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거야 어찌어찌해서, 아니면 나라 안의 모든 화포를 동원해서 만들었다고

애써 치부해버리는 로즈 제독이었다.

"내 생각은 대위와 다르네. 우리가 파악한 정보로는 조선에 변변한 전장식 소총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후장식 소총이라니... 말이 되질 않네."

"하지만 제독님.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라도 이 해협 주변의 요새는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올리비에 대령은 패트릭 대위의 말에 힘을 얻어 다시 한 번 로즈 제독에게 권했다.

올리비에 대령이 또 다시 권하자 로즈 제독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좋아! 몇 군데 포격해보고 대응이 없으면 더 이상 포탄을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이야. 알아듣겠는가?"

"감사합니다, 제독님."

"... 끙..."

올리비에 대령이 하자는 대로 한다는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로즈 제독의 얼굴에는

쓸데없는 곳에 아까운 포탄만 낭비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은은하게 노기(怒氣)

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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