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54화 (151/318)

2.

서강에 주교(舟橋 배다리)가 세워진 때는 작년 말부터였다. 지난해에 제물포와

부평부 일대에 경공업단지가 조성되고, 모든 경공업공장이 새로 조성된 경공업단지로

이주한 마당에 제물포와 서울을 잇는 도로의 확충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고, 한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의 건설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당장 교량의 건설에 투입할

인력이 태부족이었다.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토목사업이 한 둘이 아닌

상태에서 교량건설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 사업에 투입할 인력이 부족했다. 하여,

먼저 주교를 임시로 가설해 놓고 나중에 교량을 건설하기로 했다. 서강의 주교는

기존에 있던 노량진의 주교가 수원 화성 방면으로 이어지기 편리한 것에 반에,

제물포와 부평부에서 마포로 이어지는 편리한 주교였다.

서강의 주교를 건넌 김영훈 일행은 경기도 고양 땅에 다다랐다. 고양 땅에서

제물포로 이어지는 신작로에는 지금 시멘트 포장공사가 한창이었다. 주교가 다다른

지점에서 시작된 시멘트 포장도로는 지금의 서울시 구로구를 지나 부천시 소사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상태로만 공사가 진행된다면 올해 안으로 제물포와 부평부에 이르는 현대식의

4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완성되리라. 그리고 이 시멘트 포장도로는 다시 노량진

주교가 있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노량진 주교에서는 다시 수원을 거쳐

남양까지 이어지는 포장공사가 역시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언제 지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조선 최초의 철도도 놓여지리라.

김영훈은 제물포와 부평부로 뻗어나가는 포장도로의 위용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김포군 통진부(通津府) 쪽이라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도의 갑곶나루를 마주보고 있는 곳이 통진부의 군하나루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군하나루는 김포에서 생산된 쌀을 한강나루까지 실어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지금은

확장공사와 포장공사가 한창인 김포가도(金浦假道)의 종착지(終着地)이자 시발지(

始發地)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평소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그 왕래가 유별나게 많았다. 그리고 강화도에서 나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강화도로

들어가는 물자도 눈에 띄게 늘어난 상태였다.

"평소에도 이렇게 붐빕니까?"

감곶나루로 가기 위해 배를 기다리면서 김영훈이 물었다. 딱히 누구에게 라고 말할

수 없는 물음이었는데, 신헌이 대답한다.

"이곳 군하나루와 강화도의 갑곶나루는 평소에도 각종 물자의 교류가 풍부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미구에 닥칠 법국의 침공에 대비한 비축물자가 강화도로 들어가고

있는 관계로 평소보다 더 붐비는 것 같사옵니다."

"음..."

김영훈과 일행들이 나루에서 배를 기다리며 이렇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주변에

백성들이 웅성거리며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후 경무관들이 입는 융복(戎服)을 착용한 장년의 사내 하나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오더니,

"어디에서 오신 분들이시우?"

하고 물었다. 보아하니 권세께나 있게 생긴 사람들이 군마를 타고 있었고, 그들을

호위하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장대한 체구에 역시 군마를 타고 왔기에 나루터를

관리하는 소임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신원을 확인해 봄직한 일이었기에 수하들을

이끌고 온 것이다.

"이 나루를 관리하는 분들이시오?"

"그렇소. 이 몸은 경기 지방 경무청 통진부 경무서 소속의 경위 이일서라고

하오이다만..."

지난해 행정조직이 개편되면서 포도청이 경무청으로 바뀌고 각 지방 경무청이

신설되면서 경무관들의 계급도 따라서 개편되었다. 경무관들의 계급은 현대식으로

순경, 경장, 경사, 경위, 경감 등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렇게 바뀐 계급을 사용한지

2년이 다 되었기에 조선의 고루한 관리라 할지라도 이렇게 스스럼없이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렇소이까? 이 몸은 섭정공 합하를 호종하고 온 합참차장 신헌이라고 하오이다."

"예...? 서... 섭정...공 합하시라굽쇼?"

이일서는 숨이 턱 막히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권세있는 사람으로 짐작은 하여

이렇게 찾아와서 물었던 것이지만, 상대가 그냥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닌 이 나라

조선의 최고 실권자 김영훈 일행이라는 것을 듣고 보니, 다리는 후들거리고 입은

더듬거리는 것이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섭정공 합하를 뵈옵니다."

이일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엎드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일서 휘하의

순경들도 뒤따라서 엎드리기 시작했는데, 주변에 운집한 백성들은 무슨 영문이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이일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섭정공 합하께옵서 오셨소--- 어서 예를 갖추시오---"

이일서가 이렇게 외치자 운집한 모든 백성들은 의아한 마음과 황송한 마음이

교차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절을 하는데 그렇게 모든 백성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엎드리고 머리를 조아리자 당황한 것은 김영훈과 일행이었다.

평소에 허례와 허식을 좋아하지 않았던 김영훈이었고, 그의 그런 성품을 잘 알고

있던 한상덕과 김병국, 신헌 등은 당황했다. 더군다나 임금에게도 엎드려서 절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김영훈 일행이 그런 예를 받을 수는 없었기에, 김영훈 일행은

황급히 말에서 내리며 그들을 일일이 일으켜 세웠다.

"제가 섭정공입니다. 여러분들! 모두 일어서십시오. 여러분들이 이러시면 오히려

제가 더 송구스럽습니다."

김영훈이 이렇게 말하며 엎드려 있는 백성들의 손을 잡아 일일이 몸을 일으켜 주자,

엎드려 있던 백성들은 그때서야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며, 너도나도

여기저기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고, 합하... 황공하옵니다요..."

"이...이 늙은이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요..."

"오... 이런 광영(光榮)이... 저희 같은 촌 무지렁이들에게 합하께서는 관음보살의

현신(現身)이나 마찬가지이거늘...오..."

지금 조선의 힘없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김영훈이 관음보살이나 미륵보살의

현신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하늘에서 봉황(鳳凰)을 타고 강림(降臨)한 것이나,

힘없고 소외 받던 백성들을 위해 헌신해온 일이나, 모든 일이 그런 믿음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한 여건이었다.

김영훈은 백성들의 그런 말을 들으며 얼굴이 붉어졌다. 어리석고, 신하의 잘남에

질투하는 못난 임금이 들었다면 당장 무슨 변괴가 생겨도 크게 생겼을 일이나,

김영훈을 친 숙부처럼 따르는 소년왕(少年王)이 그럴 리도 없었지만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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