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51화 (148/318)

5.

제너럴 셔먼호에서 빠져나온 세 사람은 평안감사 신태정이 기다리는 만경대로 향했다.

신태정은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며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소?"

"저들에게 하루의 말미를 주어 퇴거할 것을 통보했습니다, 영감."

"... 음..."

박찬호의 단호한 말에 신태정은 깊은 침음성만 흘릴 뿐 별 말이 없었다. 그런

신태정을 보며 박찬호가 다시 말한다.

"저들은 미국(米國) 국적의 제너럴 셔먼호입니다."

"미국요? 그리고 제너 머요?"

"그렇습니다, 영감. 일전에 철산부 앞 바다에서 좌초하여 철산부사의 구휼을 받은

이양선의 국적이 미국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이양선은 미국의 셔먼이라는 장군의

이름을 붙인 배입니다."

"셔먼 장군이라..."

신태정은 비록 외직(外職)으로 떠돌고 있었지만 백성을 보살필 줄 아는 사려 깊고,

사물을 보는 안목이 남 다른 목민관이었다. 그리고 이미 수군이 해군으로 바뀌어

여러 척의 양선을 건조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 양선에는 조선에는 없던

명명(命名) 전통을 도입하여 역대의 유명한 장수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너럴 셔먼호의 어감이 비록 낯설고 어설프다고는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저들이 이렇게 내륙까지 내항(來航)한 까닭은 무엇이라고 합디까? 역시 교역

때문이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교역입니다. 영감. 그러나 처음 문정한 황주목사에게

왕궁의 보물 유무와 우리 평양부의 방어 상태에 대해서 탐문한 것으로 봐서는 불측(

不測)한 흉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니 이미 불측한 행동은 실행에 옮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찬호의 말이 맞았다. 이미 첫 문정관 정대식이 퇴고할 것을 요구하였음에도 이렇게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부의 코앞까지 항행하였다는 것은 불측한 일임이

분명했고, 미수교국의 국법을 유린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교역 외에 다른 것을 요구하지는 않고?"

"물자가 떨어졌다면서 물자를 요구하였으나, 소관이 대금을 청구하자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대금을 요구했다...?"

"그렇습니다, 영감. 우리 조선이 예의지방(禮義地方)이라고는 하나, 저들과 같은

무뢰배들에게까지 예의를 차릴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것은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니오?"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들이 물건값을 치르고도 남는 돈이 수중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우리에게 물자를 요구한다는 것은 도적과 다를 바 없는 심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음..."

신태정은 박찬호의 말에 좋다 싫다 말이 없었다. 박찬호 평양 서윤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신태정은 이현익에게 묻는다.

"아 대령."

"말씀하시지요, 영감."

"만일 저들이 하루의 말미를 어기고 퇴거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그전 같으면 자신이 지휘했어야할 군사문제는 지금은 오로지 무관들이 알아서

지휘하고 감독했기에 신태정은 이현익에게 이렇게 물었다. 비록 문관이고,

군사분야에 문외한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평양부, 아니 평안도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황망한 사건에 모른척할 수는 없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백성들의 희생이 더 큰 걱정이었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실력행사를 해야하옵니다. 그리하여 저 포악한 무리들에게

조선 국법의 지엄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소장도 생각하고, 다른 참모진의 의견도

같사옵니다. 아울러 섭정공 합하께서 내리신 명대로 적선을 나포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 음... 부디 백성들이 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오."

"알겠사옵니다, 영감."

문관인 자신이 군사분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저

백성들에게 피해가 돌아가지 않고 일이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신태정은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무관은 무관의 할 일이 따로 있고 문관은 문관의

할 일이 따로 있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만경대를 빠져나온 이현익과 김영진은 근처의 군막으로 향했다.

군막에는 이미 예하 대대장들과 중대장들 그리고 참모진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익은 예하 지휘관들의 보고와 주민 소개 대책, 그리고 내일 있을지도

모르는 작전을 짜는 것으로 하루해가 다 넘어가도록 군막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