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선실 안의 세 사람은 분통이 터질 것 같은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누구도 입을 열고 말을 하지 않았다. 노란 원숭이라고 깔보던 조선관헌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은 꼴이 된 세 사람의 표정은 침통함 그 자체였다.
프레스톤은 답답한 마음에 따라놓은 포도주를 연거푸 들이키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토마스 목사는 분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리춤에 꽂아둔 권총집으로
오른손을 가져갔다, 놓았다 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도, 왜 내가 이 권총을
생각하지 못했단 말인가? 하는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선장 페이지도
두 사람의 이런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뿐 달리 위로의 말을 건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도 성질이 뻗치는데 두 사람을 신경 쓸 만큼 여유가 있지 않았다.
프레스톤은 포도주가 다 떨어지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토마스 목사에게로 돌리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토마스 목사. 저들이 분명 조선사람들이 맞다는 말씀이시오?
감히 노란 원숭이 주제에..."
"... 음..."
토마스 목사는 깊은 침음성만 내 뱉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도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도 세 사람 중 가장 충격을 덜 받은 그였기에 창 밖으로
대동강 양안의 움직임을 살펴보다 말한다.
"프레스톤씨, 아무래도 저들의 움직임이나 강경한 태도로 봐서는 이번 조선 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려울 듯 싶습니다. 그러니..."
"지금 토마스 목사는 나에게 이대로 돌아가자고 말하고 싶은 거요? 정말 그런 거요?"
"... 그... 그게, 아니라... 프레스톤씨, 진정하시고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듣기 싫소, 토마스 목사는 다시 돌아가서 선교사 일을 하면 되지만 나는 사정이
달라요. 토마스 목사는 내가 이번 조선 행에 쏟아 부은 돈이 얼만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시오? 그리고 영국의 미도우 상사와 용선 계약을 체결한 것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나는 조선과의 교역을 위해 나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물건을 구입했소,
절대로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오."
프레스톤은 배수의 진을 친 심정으로 말했다. 사실 프레스톤은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원래 제너럴 셔먼호는 미국인 프레스톤의 소유였으나, 프레스톤은
조선으로 오기 전에 청국 천진에서 영국해운상사 Meadows and Company와 거액의 용선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용선 계약을 체결한 대가로 받은 거액을 물품 구입대금과
선원들을 고용하는데 사용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현재는 선주는 프레스톤
자신이었지만 선적(船籍)은 영국의 미도우 상사의 소유였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허무하게 조선에서 물러난다면 프레스톤이 미도우 상사에 변제해야 할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프레스톤은 토마스 목사가 아무런 말이 없자 왈칵 짜증이 치밀었다.
"토마스 목사, 당신이 장담하던 왕궁의 보물은 어떻게 된 거요? 그리고 은으로 된
산이나 대단하다는 조선의 광물자원은 어디에 있단 말이오?"
프레스톤이 이렇게 토마스 목사를 몰아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 황주목사
정대식의 문정 때 토마스 목사는 보물이 있다는 평양의 방위 태세와, 왕궁에 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청국에 퍼져 있는 소문에 의하면,
법국의 군대가 조선 원정을 단행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자국의 선교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의 막대한 부를 선점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청국인들 뿐만 아니라 당시 상해나 천진에 있는 국제적인 투기꾼들은
믿고 있었다. 지금 청국의 상해와 천진 등 대도시에는 조선에 대한 알 수 없는
뜬소문이 난무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왕궁은 금과 은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은산(銀山)이 존재한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여기에 편승한 이들이 바로 프레스톤과 토마스 목사였다.
토마스 목사는 프레스톤의 거듭된 추궁에도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페이지
선장이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밝힌다.
"... 음... 프레스톤씨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물러선다면 우리는 국제적인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평양 부근의 왕궁에 보물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도 확인을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니, 보물은 둘 째 치더라도, 조선의 노란 원숭이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목적을 쉽게 이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말이오? 페이지 선장. 당신 지금 제 정신이요? 밖을 보시오! 밖에는 수많은
조선군사들이 우리 배를 감시하고 있는 실정이란 말이오. 그런데 뭐가 어째요?
따끔한 맛을 보여줘요?"
여태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토마스 목사는 페이지 선장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프레스톤은 페이지 선장의
말에 구미가 더 당겼다. 적어도 이렇게 처참한 심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토마스 목사는 좀 조용히 하세요. 페이지 선장! 어떻게 따끔한 맛을 보여준다는
것인지 한 번 말해보세요."
"예, 프레스톤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대로 물러갈 수는 없습니다. 저들 노란
원숭이들이 우리에게 내일까지 퇴거를 요구했지만, 우리는 그 요구를 거부하는
겁니다."
"거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내일까지 퇴거하지 않고 좀 더 항행한다면, 저들은 분명히 다시
한 번 문정을 하기 위해 관헌들을 파견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저들 관헌들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하는 것입니다."
"... 음..."
"페이지 선장! 당신 미쳤소? 관헌을 인질로 잡아 협상을 하다니 자칫하다가는 우리
모두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는 것이오!"
프레스톤이 별 다른 말없이 침음성만 삼키고 있을 때 토마스 목사는 방방 뛰며
난리를 부렸다. 페이지 선장의 말은 상식을 벗어난 엄청난 내용이었기에 토마스
목사의 이런 반응은 이해가 됐다. 그러나 프레스톤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페이지 선장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소. 우리가 저들의 고위급 관헌을 인질로
잡을 수만 있다면 저들은 분명히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렇게
합시다."
"하지만, 프레스톤씨..."
"토마스 목사는 가만히 있으세요. 이일은 선주인 내가 명령하는 것입니다. 페이지
선장, 계속하세요."
프레스톤은 단호하게 토마스 목사의 말을 끊었다. 비록 상선이라고는 하지만 동남아
일대에서 약탈무역에 종사했던 전력이 있었기에 저너럴 셔먼호는 자체 무장도 비교적
충실했다.
12파운드 전장포가 함수에 2문이 있었고, 2파운드 캐논포가 함미에 2문, 거기에 모든
승무원들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으니, 허접쓰레기와 같은 노란 원숭이 군사들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토마스 목사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비록 자신이 이교도(異敎徒)의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러 오지 않고, 일신의 영달과 욕심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런던선교회에서 해고당했다가 복직한 상태여서, 지금은 어떤 선교사의 자격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한 종교의 어엿한 성직자였다.
독실한 감리교 회중교회 목사였던 아버지 로버트 토마스(Robert Thomas)의 훈육을
받아 일찌감치 목회자로서의 삶을 서약했고, 또 무지한 이교도들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원천리(不遠千里) 머나먼 청국 땅까지 달려온 자신이 아닌가. 그런
토마스 목사였기에 이들이 하려는 일이 처음에 자신도 가졌던 생각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는 하지만, 이제야 장님이 눈을 뜬 것과 같이 무지와 몽매,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난 자신이었기에, 더 이상의 과오를 저지르지 말 것을 종용하기 위해서
프레스톤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프레스톤은 그런 토마스 목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페이지 선장에게 말한다.
"일등항해사 윌킨슨과 상승역 호거드를 불러오시오."
"알겠습니다, 프레스톤씨."
프레스톤과 페이지는 토마스 목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일만 할 뿐이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토마스 목사는 그저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한 때나마 나쁜 뜻을 품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