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중환은 "택리지" '산수조' 편에서 평양에 대해 이렇게 서술하였다.
"강가에 살 만한 곳으로는 평양 외성(外城)을 팔도 중에서 첫째로 친다. 대개 평양은
앞뒤에 백 리(里)나 되는 들판이 탁 틔어서 명랑한 까닭에 기상이 크고 넓다. 산
빛은 수려하며, 강은 급하게 쏟아지지 않고 천천히 앞면에서 출렁거린다. 산은 들과
어울리고, 들은 물과 어울려서 평탄하고 수려하다. 강물이 넓고 커서 크고 작은
장삿배가 물결 가운데 들락날락하고, 층층 바위는 강 언덕을 둘러 있다. 서북쪽은
좋은 밭과 평평한 두렁이 지평선까지 펼쳐졌으니, 이것은 하나의 별천지이다."
제너럴 셔먼호가 이렇게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을 때 평양부의 평안감사
신태정(申泰鼎)(*1)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이양선이 처음 출몰한 용강현령의
보고와 황주목사 정대식의 장계가 속속 평양부로 도착한 시점에 놀고 있었다면
직무태만으로 당장 물고 나야 마땅했을 것이나, 다행히 신태정의 수하에는 유능한
참모들이 많이 있었다.
지금 평양부 외성 밖의 만경대(萬景坮)에는 평안감사 신태정과 천군 출신의 평양
서윤(庶尹) 박찬호, 평안도 사단의 평양연대의 연대장 이현익(李玄益) 대령과 휘하의
대대장들과 참모진들이 한참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지금 저들 이양선이 어디쯤 오고 있다고 했소?"
"아까 들어온 파발의 보고에 의하면 이양선은 적교천을 막 통과하였다고 했습니다,
영감."
적교천이라면 평양부에서 겨우 25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평양 서윤
박찬호의 말이 떨어지자 신태정 감사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말이 25리지 저들의
움직임으로 보면 오늘 중으로 평양부 경내까지 진출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아니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곳 만경대에서도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을지
몰랐다.
"헌데, 꼭 저들 이양선을 우리 평양부 가까이까지 접근시켜야할 필요가 있소?"
평안감사 신태정은 평양 서윤 박찬호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천군 출신의 서윤은
아무리 아랫사람이라고 해도 부리기 까다로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하여 이렇게 말도
제대로 못 놓고 반 존대를 해주고 있었다.
"영감,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들 이양선의 정확한 항행 목적을 파악하지 못하고
보산성(保山城)에서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섭정공 합하의 명에도
부합되지 않는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동강의 하류, 평양부에서 80리 가량 떨어진 지점에는 둘레가 910보에 이르는
자그마한 섬이 하나있다. 이곳이 바로 보산성인데 지난 인조대왕 시절에(1627년)
평안감사로 있던 김기종이 세운 산성이 있다. 섬을 삥 둘러서 성을 쌓고 그 성안에
약 1개 대대의 병력이 주둔하면서 평양부 방어의 전진기지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보산성이다.
원래 평안감사 신태정은 이곳 보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평양연대 산하의 1대대로
하여금 저들을 문정하고 퇴거하도록 유도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평양 서윤 박찬호와
평양연대장 이현익, 그리고 그의 참모진의 만류에 뜻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섭정공 김영훈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양선의 습래(襲來)를 어떻게 알았는지 서울에서 섭정공 김영훈의 명을 가지고
파발이 당도한 것이 며칠전의 일이었다. 파발마가 가지고온 서찰은 섭정공 김영훈의
친필 서찰이었는데, 김영훈은 신태정에게 보낸 서찰에서 가급적이면 이양선을 평양부
가까이 접근시켜 저들의 정확한 항행 목적을 파악하고, 저들이 고분고분하면 약간의
식량을 원조하여 퇴거하도록 유도를 하되, 만약 저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이양선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을 모조리 죽여서라도 조선 국법의 지엄함을
보이고 가급적이면 저들이 타고 온 이양선을 나포하여 서울로 가져올 것을
지시하였다.
이런 김영훈의 명을 번연히 알면서도 신태정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대완구(
大碗口)와 소완구(小碗口)를 함수와 함미에 각각 2문 씩 장착하고 있었고, 모든
승무원들이 소총으로 중무장을 한 이양선을 어떻게 아무런 피해 없이 탈취하라는
것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니 탈취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올해부터 개편된 행정조직개편안으로 인해 문관은 오로지 행정사무만을 보도록
되었기에 직접적인 군사의 조련과 지휘는 무관인 평양연대장 이현익이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평양부 내에서 평양연대의 훈련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본 신태정이었기에
군사들의 훈련상태나 질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올해부터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 등 북방에 있는 도(道)의 지방군에 대해서는
중앙의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에게만 지급되는 모든 보급품과 무기들이 지급되어, 천군
출신의 무관들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백성들의 안위였다. 그렇지 않아도 구경거리라면,
걸신들린 각설이 마냥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조선 백성들의 습성 상 이양선이
출몰하였다고 하면 너도나도 대동강 양안으로 몰려들어 구경을 한다고 난리법석을
부릴 게 자명했다. 자칫 잘못하여 이양선의 포격에 구경나온 백성들이 상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신태정의 오직 하나뿐인 걱정이었다.
"저들에 대한 문정은 예정대로 두로도(豆老島)와 두단도(豆段島)의 중간에서 하실
생각이시오?"
"그렇습니다, 영감. 저들 이양선이 벽지도(碧只島) 인근에 나타나면 이곳
만경대에서도 육안으로 관측이 가능하니까 그때 출발하여 문정하겠습니다."
평양부에서 대동강을 따라 약 10리 정도 내려가면 두로도에 두단도라는 섬이 있다.
그리고 두단도를 지나면 또 하나의 섬이 있는데 벽지도라는 섬이 바로 그것이다.
두로도와 벽지도는 둘레가 각각 21리와 22리에 달하고 중간에 있는 두단도는 둘레가
6리에 불과했다.
"세 섬에 살고 있는 백성들의 소개(疏開)는 어떻게 됐소? 그리고 평양부민들이
양안으로 몰려드는 것을 방지할 대책도 다 세워져 있겠지요?"
"걱정하지 마시오소서, 이미 우리 연대의 군사 일부가 세 섬의 백성들을 모두
평양부의 친척집으로 소개한 상태이며 양안에는 우리 연대의 나머지 군사들이
철통같이 포위하여 백성들의 접근을 막고 있사옵니다. 영감."
평양연대장 이현익의 믿음직한 말이 들렸다. 평양 서윤 박찬호는 아직까지 하오체에
익숙하지 않아 말끝마다 "그렇습니다,"를 연발했는데 이익현은 조선의 무관답게
말하는 것도 박찬호와는 달리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현익의 장담과는 달리 평양부의 백성들은 너도나도 양안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양선 구경을 놓칠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었다.
기호지방의 주민들 같으면 남양 해군사령부 소속의 이순신함을 비롯한 소위 양선(
洋船)을 많이 보았기에 별다른 동요와 관심이 없었을 것이지만 평안도 주민들은
달랐다. 기껏 철산부의 일부 어민들이 지난 5월에 조난 당했던 미국(米國) 국적의
서프라이스(Surprise)호를 본 것이 이양선을 목도(目睹)한 유일한 경우였다. 그때
조난 당한 서프라이스호의 살아남은 8명의 선원들은 철산부사의 구휼(救恤)을 받아
모두 청국으로 송환됐던 적이 있었다.
평안감사 신태정의 눈에도 양안으로 이양선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백성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신태정은 이현익을 나무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가만히
일을 뿐이었다.
신태정과 박찬호를 비롯한 평양부의 모든 관헌들이 만경대에 둘러앉아 이양선에 대한
대책을 숙의(熟議)하고 있는데 평양감영의 아전하나가 소리를 치며 손가락으로
하류를 가리키며 말한다.
"사또--오, 사또, 이양선이 보입니다요---"
모든 이의 시선이 이양선이 올라오고 있는 벽지도 쪽으로 향하고, 이양선이 올라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이익현은 신기도감 기기창에서 만들어 올해 초에 보급된 쌍안경(
雙眼鏡)으로 이양선의 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한 다음, 쌍안경을 신태정에게 넘기며
말한다.
"영감, 저희들은 문정을 가보겠습니다. 가시지요, 서윤 나으리. 작전참모도 같이
가세나."
"그럽시다. 연대장."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평양 서윤 박찬호와 연대장 이현익, 그리고 연대 작전참모 김영진은 평안감사
신태정에게 인사를 하고 만경대를 나섰다. 김영진은 지난해 있었던 워리어와 뉴
아이언사이드 탈취작전에서 활약한 경력이 있는 천군 특수수색대의 중위 출신으로
지금은 평안도 사단 소속의 평양연대 작전참모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