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전조(前朝) 고려의 문신 정지상(鄭知常)의 "송인(送人)"은 송별시(送別詩)의
최고작이라 평가받는 작품이다. 송인은 대동강(大洞江)에서 친한 벗과의 이별에 대한
아픔과 슬픔을 나타낸 시인데, 정지상이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던 그 대동강에는 지금
한 척의 증기선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지난 여름의 홍수로 불어난 물이
아직 다 줄지 않았음인지 증기선이 항행(航行)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증기선의 함수에는 한 명의 젊은 사제(司祭)와 그 사제보다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서양인 사내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토마스 신부님께서는 조선에 와 보신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프레스톤씨. 비록 7일만에 쫓겨나야 했지만... 제가 조선에 머문 것은
사실입니다."
영국인 토마스 신부는 지난해 여름 서해상의 백령도에 포교를 하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백령도에서 슈퍼다시마와 가리비 양식을 감독하고 있던 이기동 해양대신과
해양부 소속 관리들에게 적발되어 일주일만에 쫓겨나야 했기에 그 때의 기억은
그에게 참담한 아픔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참담했던 기억의 앙갚음을 하기
위해 이렇게 자발적으로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으로 동승하여 조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는 이양선의 이름은 제너럴 셔먼(GENERAL SHERMAN)
호였다. 병인년(丙寅年 1866년) 6월 30일 청국 산동성 지부(芝?)를 출발한 미국
국적의 제너럴셔먼호는 지부를 출발한지 8일만(7월 7일)에 평안도 용강현 다미면
주영포 도착했다.
잠시 주영포에 머물다, 주영포를 출발한 제너럴 셔먼호는 황해도 황주현 삼전방
송산리에 도착(7월 8일)하여 황주목사 정대식(丁大植)의 문정을 받았다. 이때 제너럴
셔먼호에 통역관 자격으로 승선하고 있던 성공회 소속의 영국인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1840∼1866) 신부는 문정하던 황주목사 정대식에게 처음에는
호의적으로 교역과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황주목사 정대식이 단호히 거부하고 퇴거(
退去)를 요청하자, 평양의 지형 및 성곽과 보물의 유무(有無) 등을 캐묻고는 법국인
선교사를 살해한 조선 정부를 응징하기 위해 법국의 많은 함선이 삼남강중(三南江中)
에 대기중이니 자신들과의 통상을 수락하라는 위협을 했다. 그렇게 황주목사를
위협하여 쫓아낸 후 평양부 초리방리 사포구를 향해 항행하고 있는 오늘은 7월
11일이다.
제너럴 셔먼호에는 통역관 토마스 신부 외에도 선주인 프레스톤(Preston 미국인)과
선장인 페이지(Page 미국인. 덴마크인이라는 설도 있음), 일등항해사 윌킨슨(
Wilkinson), 상승역(上乘役) 조지 호거드(George Hogarth)외에 4명의 서양인과
15명에 이르는 청국인ㆍ마래인(馬來人)이 승무원으로 승선하고 있었다.
"음... 조선의 산세는 상당히 아름답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청국의 광활하기 그지없는, 그래서 더욱 황량한 자연에
비하면 조선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제너럴 셔먼호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커다란 섬이 하나 지나갔고, 그 앞으로 새로운 섬 몇
개가 차례로 나타났다. 그리고 오른쪽 강안(江岸)에는 石湖停(석호정)이라고
한문으로 쓴 현판이 걸려 있는 정자가 멋들어지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 석호정을
뒤로하고 알 수 없는 산들이 줄기줄기 이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었다.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남제산(南祭山)과 함사산(函寺山)은 평양과 남쪽 중화(
中和)와의 사이에 있는 산들이며, 남제산과 함사산은 동으로 뻗어서 도증산(道證山)
과 이생산(李生山)까지 산줄기를 잇는다. 그리고 남제산과 함사산의 건너에는,
그러니까 대동강 이북에는 대실산(大室山)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대동강은 그런
산줄기를 둘로 갈라놓으면서 서해로 빠져나가는 큰 강이었다. 그리고 그 대실산의
동북쪽에는 승영산(承令山)이 있고 대실산의 서북쪽에는, 황해도 이북에서는 드물게
펼쳐진 평야지대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평양평야였다.
제너럴 셔먼호의 선주 프레스톤은 알 수 없는 한문이 쓰여진 멋들어진 정자를 천리경(
千里鏡)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선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이 사람들도 청국인들이나 다름없겠지요?
"글쎄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 기껏 조선에 머물렀던 것이 일주일에 지나지
않았기에... 하지만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제가 느낀 점은, 뭐랄까...? 청국인들이
우리 유럽인들을 대할 때 나타나는 선천적인 오만과 적대감, 또는 비굴함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느낌은 이방인(異邦人)일지라도 자신들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방인에게는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하여튼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양에도 사람다운 인종이 있는 모양이군요..."
"그래봤자 노란 원숭이에 불과한 인종입니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요."
"하하하..."
프레스톤과 토마스 신부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조선에 대한 선입견을 쌓아가고
있었다. 프레스톤이 만나본 조선 사람은 지난 7월 8일에 자신들을 문정한 지방관이
최초였는데, 그 지방관은 색깔이 붉고 파란색이 알록달록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서
꼴에 일국의 관리라고 서양인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애쓰던 모습이 역력했기에
프레스톤은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사람들에 대해서 가소롭게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조선사람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토마스 신부도 지난해 여름
백령도에서 강제 퇴거당해야 했던 아픔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하하하... 저길 보십시오. 우리 배를 보고 놀라서 허둥대는 꼴이라니..."
프레스톤이 가리키는 곳에는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조그만 하천이 있었고, 그 하천
변에는 몇 채의 농가가 있어 나름대로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평양 서북부 25지점에 있는 영유현 승영산에서 발원하여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적교천(
狄橋川) 변에 살던 농가의 주민들이, 이양선의 출입을 보고 놀란 나머지 허둥대고
있는 모습이 토마스 신부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