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38화 (13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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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을 쳐라.... 조기가 올라온다."

곡우(穀雨)가 코앞인데 격렬비열도 앞 바다에는 지금 조기잡이가 한창이다.

눈에 보이는 고깃배만 해도 몇 백 척은 족히 될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너도나도

그물을 내리고, 올리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겨우 장정 예닐곱 명이 작업하는 조각배에서부터 스물 댓 명까지 작업하는 큰배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고깃배들이 작업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흑산도 어귀의 따뜻한 바다에서 겨울을 난 조기 떼는 곡우를 전후로 해서

격렬비열도까지 올라오는데 이때에 잡히는 조기는 곡우 조기라고 해서 크기는 작지만

살이 연하고 맛이 좋아, 서해는 물론이고 멀리 남해에서 온 고깃배들까지 격렬비열도

앞 바다에 몰려들어 한 바탕 난리 굿을 치르고 있었다.

"거기는 머허는 거여 시바앙! 어여 그물 못 땡기는겨---"

"알었구먼유... 아제. 근디 흥은 나는디 당최 손발이 안 맞는 구먼유..."

두 줄로 서 있는 고깃배에서 그물을 양쪽으로 잡아 당겨서 물에 쳐 놓은 그물에 걸린

조기를 올리는, 순전히 힘과 운으로 하는 방식의 고기잡이에는 단결력과 협동심이

필요했다.

그런데 지금같이 너 따로 나 따로 서투르게 내지르는 그물질에는 그물 안에 갇힌

조기가 모조리 도망가기 십상이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어부들의 손과 발을 맞추어줄

수 있는 노동요(勞動謠)였다.

몇몇 신참 어부들 때문에 전체적인 그물질이 서투르게 돌아가자 보다못한 아제라

불린 사내가 잠시 목청을 가다듬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이 사내가 이렇게 선창을 하자 그 선창을 다른 어부들이 따라서 한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이 고기를 많이 잡아, 이밥 한 번 먹어 보세---"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한 손으로 하늘잡고, 한 손으로 고기를 잡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그 가락에 맞춰 그물을 당기기 시작하자, 연신 헛손질에 정신

없던 어부들의 그물질이 어느새 아귀가 척척 맞아 돌아가는 물레방아처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만선일세, 만선일세. 오늘 하루는 만선일세---"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우리 같은 고기 밥이, 이제 드디어 살판났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이제 다시 선주 놈한테, 우리 고기 안 뺏기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땀이 나네 땀이 나네, 그물 땡기기 땀이 나네---"

"어기야 디여, 어기야 디여."

노동요 가락은 점점 신명을 더하고 그에 비례해서 장정들의 손놀림도 척척

들어맞았다.

이렇게 노동을 하며 부르는 노동요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또 지역과 하는 일에

따라 가사가 제멋대로 바뀌게 되는데 지금처럼 "우리 같은 고기 밥이 이제 드디어

살판났네 이제 다시 선주 놈한테 잡은 고기 안 뺏기네" 하는 소리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전 같으면 대개 잡은 고기의 7할 내지는 8할, 심지어는 전부를 뺏기는 경우도

허다했다. 특히 한동안 파도가 높아서 출어(出漁)를 못했다든지, 아니면 바다에

고기가 씨가 말라 구경도 못하였다든지 한 후에는 잡은 고기의 전부를 뺏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김영훈과 천군이 집권을 한 후로는 그런 악습이 일체 금지되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잡은 고기의 7할 5푼은 반드시 어부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법률이

제정된 이후에는 그동안 어부들의 등골을 빼먹던 선주들에게 철퇴가 내렸으니 이제

드디어 고기 잡는 어부와 같은 하찮은 백성들일지라도 스스로 노력한 만큼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지난 정초에 전면적인 토지개혁이 시행되어 그동안 등골빠지게 일만 해야했던

농투성이들에게도 살만 나는 세상이 왔지만 그것은 비단 농투성이들에게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고기 잡는 어부들에게도 새로운 세상은 열리고 있었다.

"우와. 만선이다---"

"얼씨구나 지화자 좋구나..."

"만선이구먼유... 만선이에유..."

어느새 갑판 위에는 살아있는 조기가 산처럼 쌓였고, 더 이상 잡아도 어디에

쟁여놓을 공간이 없었다. 너도나도 '얼씨구나 좋구나'를 연발하는데 아까 노동요를

구성지게 뽑았던 아제라는 사내가,

"어여, 그물과 어구들을 정리하드라고... 해지기 전에 포구(浦口)에 당도혀야

하는구먼..."

"알겄구먼유..."

아제의 말이 떨어지자 이제껏 손발이 맞지 않아 고생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잡은 조기와 그물과 어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신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아제라 불린 사내는

괴춤에 꽂아둔 곰방대를 꺼내더니 담배를 재고 성냥을 꺼내 킨 뒤에 기운차게 한

모금 빨아재낀다.

담배와 성냥은 괴춤 안쪽에 주머니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신주단지 모시듯 모셨기에

바닷물에 젖지 않았다. 그리고 행여 바닷물에 젖을까 기름 종이에 고이 접어두었으니

젖을 턱이 없었다.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재낀 아재라 불린 사내는 큰 소리로 외친다.

"이제 포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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