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32화 (129/318)

12.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잘 드러나지 않는 까만 고무보트 몇 척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바로 이순신함에서 빠져 나온 고무보트였다.

모두 합해서 8척에 이르는 고무보트 위에는 까만 복장의 특수수색대 대원들이 탑승해

있었는데, 그들은 지금 조선해군 최초의 해적질을 하기 위해서 밤바다를 가르며 가고

있었다.

가끔씩 노 젓는 소리만 들리 뿐 밤바다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마를 그렇게

갔을까? 이순신함을 출발한 수상 침투조 대원들은 더욱 소리를 죽이며 연합함대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장갑함 아가멤논의 좌현(左舷) 견시수(見視手) 제임스 테일러는 원래부터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다른 수병들이 위스키에 흠뻑 취했을 때도 그만은

정신이 비교적 말짱했다.

자정이 지나자 술을 마시던 수병들도 하나 둘씩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선실로 들어갔지만 그만은 아직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고 있었다.

술은 몇 잔 마시지 않았기에 정신은 말짱했지만 밀려오는 졸음을 쫓는 일은

제임스에게도 고역이었다. 한겨울의 차가운 바닷바람에 몸은 저절로 웅크려 들었고,

반대로 쏟아지는 졸음은 더욱 기승을 부렸다.

"흐-암..."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던 제임스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하면서 혼잣말을

한다.

"우이씨... 오늘밤은 꼬박 나 혼자 견시를 서야겠네..."

교대병이 의당 왔어야 하는 시간이 지났으나 모두들 술에 취해 골아 떨어졌는지

오지도 않았고,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제임스는 이렇게 푸념을 했는데 그런 제임스의

시야(視野)에 뭔가가 갑자기 들어왔다. 하필이면 오늘이 달도 없는 무 월광(無月光)

시기였기에, 연합함대와 겨우 1500야드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하도록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 제임스의 불운이었다.

혹시 내가 잘 못 봤나 하는 생각에 눈을 한번 비비고 다시 봐도 영락없는 함선의

실루엣이었다. 그리고 그 옆의 작은 함선까지... 두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제임스는

그대로 고함을 지르려고 하는데, 뭔가 번개보다도 빠른 한 줄기 빛이 자신의 이마를

관통하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 이순신, 아가멤논 좌현 견시 청소했다. 이상."

"여기 검은 호랑이. 알았다, 이상."

"여기 검은 봉황(鳳凰), 계속 수고해라, 이상."

헤드셑에서 들려오는 짤막한 무전에 뉴 아이언사이드를 향해 접근하는 검은 봉황 두

개조의 대원들을 지휘하는 강혁수는 이렇게 나지막하게 대답했고, 그가 지휘하는

다른 대원들은 그저 묵묵히 노만 저을 뿐이었다.

한국 해군 UDT/SEAL 소속이던 강혁수와 그의 대원들은 지금 어두운 밤바다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까만 색 흑복(黑服)을 입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입지 않았던

흑복을 입으려니 약간 어색하면서 답답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흑복의 좋은 점도 많았는데 상의와 하의가 한 벌로 구성된 흑복은 오늘같이

차가운 겨울 날씨에 작전을 벌일 경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상하 한 벌의

흑복은 추운 겨울 바람을 막아주어 추위에 몸을 덜 노출시킨다는 장점이 있었고, 또

기존의 전투복이 과격한 전투나 행동을 할 때 상의가 하의 밖으로 빠져 나올

가능성이 많은 반면에 이 흑복은 한 벌로 돼 있었기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이들이 입고 있는 흑복은 주로 특전사 대 테러 부대원들이나, 각 특전 여단

소속의 특수임무 지역대원들이 주로 입는 군복인데 오늘밤 같이 무 월광 시기에는

안성맞춤의 색채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기존의 전투복은 각종 딴띠와

엑스밴드, 등등이 적함의 장비 또는 자신의 장비에 걸릴 수 있고, 그것으로 인해

소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반면에 일자형의 흑복은 모든 개인 물품을 포켓에

집어넣을 수 있었기에 소음과 걸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아무래도 사령관이 특전사 출신이라 타 부대 출신의 대원들에게도 흑복을 입도록

권유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강혁수가 하고 있는데 무전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좌현 견시 해치웠다."

"뉴 아이언사이드 우현 견시 오케이."

"좌현 견시 오케이."

이렇게 연속해서 들려오던 무전이 갑자기 잠잠해졌다.

이순신함 갑판에 자리잡은 저격수들이 순식간에 연합함대의 견시수들을 해치운

것이다.

강혁수는 무전이 뜸해지자 이순신함의 저격수가 적함의 모든 견시수들을 쓰러트린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은 잠시 후 터진 "땡땡땡"하는 소리에

깨지고 말았다.

강혁수는 직감적으로 적함의 견시수에게, 이순신함이나 자신의 대원들이 들킨 것으로

생각하고 낮게 소리를 질렀다.

"이런, 들켰다. 서둘러라."

이제 뉴 아이언사이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디선가의 종소리가 울리다니

강종혁은 이순신함의 저격수들을 욕했지만 이제 와서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적에게 발각 당한 이상 최대한 빨리 접근해서 승선하는 것이 중요했다.

강혁수는 뒤를 잠깐 돌아보다가 이순신함에 있는 저격수를 호출했다.

"여기 검은 봉황! 무슨 일이냐?"

"여기 이순신, 적함 콜로라도에서 살아남은 견시수 하나가 종을 친 것 같다. 최대한

서둘러라. 이상."

"제길, 알았다. 이상."

덜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뉴 아이언사이드의 갑판 난간에 여러 개의 갈고리가 걸렸다.

이어서 얼굴에 기다란 모양의 검은 물체를 뒤집어 쓴 일단의 병사들이 차례차례 뉴

아이언사이드의 갑판으로 올라왔다. 아까 콜로라도의 견시수가 울린 종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혹 누가 갑판으로 나왔더라도 이순신의

저격수들에게 모두 골로 갔겠지만...

수상(水上)에서 침투조(浸透組) 대원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 수중(水中)이라고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중 침투조 요원들은 언더 워터 비클이라는 수중 침투 장비에 몸을 싣고 적함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수중 침투조가 출발은 먼저 했다. 아무래도 수상보다는 수중

침투가 더 어려웠고, 언더 워터 비클의 수중 항속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과거에서 사용할 일이나 있을까하는 의견이 많았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준비해

온 언더 워터 비클이 이렇게 사용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김영진이 지휘하고 있는 수중 침투조는 빛 줄기 하나 안 들어오는 수중에서 오로지

감과 고성능 랜턴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어두운 바다 속에서 적함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지만 그래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갔다.

'우이 씨팔, 이것 왜 이리 느린거야...?'

시계를 한번 흘낏 쳐다 본 김영진은 속이 탔다.

중간에 방향을 잃어버려 시간을 잡아먹었기에 이렇게 애가 타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세 척의 적함에 폭탄을 장착하기도 전에 수상 침투조의 작전이 시작될

수도 있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언더 워터 비클에 의지하지 않고 수영을 해서 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수영하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속도를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이렇게 속만 끓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목표했던 케이프타운과 포츠머스의 물에 잠긴 밑바닥이 김영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침투 전에 확인한 바로는 영미 연합함대는 기함 격인 아가멤논을 비롯한 영국의 함선

세 척이 가장 가까이에 한 줄로 나란히 위치해 있었고, 그 안쪽으로 미국의 뉴

아이언사이드와 콜로라도가 사선 방향으로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 이들의 위치를 봤을

때 케이프타운과 포츠머스가 틀림없었다.

적함을 확인한 김영진은 수신호를 대원들에게 보내며 폭탄을 장치할 것을 명령했다.

이렇게 지시한 다음에 김영진은 콜로라도를 찾기 위해서 언더 워터 비클을 움직였다.

역시 콜로라도는 가장 멀리 위치하고 있었다. 시계를 다시 본 김영진의 입에서는

절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C-4에다 신기도감에서 개발한 소형

전지와 인공 수정을 이용한 쿼츠식의 조악한 시계를 장착한 폭탄을 이제 겨우 적선의

배 밑바닥에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그리고 두 척의 영국함선에 완전히 설치하지

못했는데 시간은 벌써 작전 개시 시간이 다 됐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의 요체는 수중에 침투한 대원들이 설치한 폭탄이 터지는 것을 기점으로

수상 침투조 대원들이 남아있는 적선의 갑판에서 적 수병들을 해치우고 적선을

탈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국 함선 콜로라도에는 아직 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작전 개시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김영진은 랜턴으로 신호를 보내서 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케이프타운의 설치는 완료됐나?'

'케이프타운 설치완료 했습니다.'

'포츠머스는...?'

이렇게 수신호로 김영진이 물었는데 멀리에서 포츠머스에 폭탄을 장착하러 간

대원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 다 설치했나?'

'포츠머스 설치완료 했습니다.'

'좋다, 그럼 철수한다.'

'아직 콜로라도에는 설치하지 못했는데요?'

'콜로라도에 설치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제 폭탄이 터지려면 4분이 채 남지 않았다.

잘못하면 우리까지 죽을 수도 있어.'

김영진의 판단이 옳았다.

폭탄이 터지기까지 이제 4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콜로라도에까지 폭탄을

설치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만 했다. 한국에서 자신들이 다루던 폭탄이라면

얼마든지 타이머를 조절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설치한 폭탄은 그런 조절 기능이 없는

멍청한 폭탄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들이 설치한 폭탄에 자신들의 목숨까지

일을 수도 있었다.

'콜로라도는 이순신함에게 맡기고 우리는 안전지대로 물러난다. 서둘러.'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들은 이런 하찮은 임무에 죽어서는 안 되는, 조선의

귀중한 자산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목숨을 아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김영진의 수신호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언더 워터

비클에 몸을 실었다. 이제 빠져나가는 일만 남았다.

연합함대라고 모두 정신이 나간 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합함대 사령관 격인 영국함대의 로저스 제독이 오늘밤만큼은 마음껏 먹고 마시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미국함선 콜로라도의 당직사관 제임스 가드너는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다. 그리고 영국함선의 승무원들이 마음껏 술에 취한 것에 비해 미국함선의

승무원들은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술자리를 끝냈기에 가드너도 자기 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가드너는 사관사무실의 한 책상에서 오늘의 당직 근무자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는데

밖에서 견시수가 친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을 느꼈다.

낮 시간 같으면 견시수가 친 종소리가 사관사무실까지 들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밤에 견시수의 종소리는 의외로 멀리까지 울려

퍼진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든 가드너는 책상 위에 풀어놨던 권총 벨트를 허리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9인치와 8인치 후장포가 즐비한 건 데크(Gun-Deck)을 지나 상 갑판으로

올라가던 가드너는 이상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종을 친

견시수가 그 다음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만약

적이 나타났다면 계속해서 종을 치던지 아니면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가드너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상 갑판으로 올라온 가드너는 제일 먼저 다른 함선들의 모습부터 살펴봤다. 이상이

없었다.

바다를 둘러봐도 아무런 이상이 없자 가드너는 함수 쪽으로 뛰어갔다.

가드너가 그렇게 상 갑판 위를 뛰어가고 있는데 왼쪽에 정박하고 있던 영국함선

케이프타운과 포츠머스가 있는 곳에서 갑자기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케이프타운과 포츠머스가 "끼기기기긱" 하고 소리를 내지르며 두 동강이가 나는 것이

눈에 띠였다.

"오! 신이시여..."

직감적으로 적의 공격을 눈치챈 가드너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한다.

"적이다! 적의 공격이다!"

이렇게 외치며 함수에 도착한 가드너는 제일 먼저 견시수가 있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비록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지만 최대한 눈을 찡그리며 위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마땅히 있어야할 견시수들은 모두 머리에 총을

맞고 갑판 위에 쓰러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가드너는 몸을 낮추며 건 데크로 통하는

함수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적이다! 적의 공격이다!"

건 데크로 내려온 가드너는 이렇게 소리치며 뛰기 시작했다.

뉴 아이언사이드로 올라온 강혁수와 그의 대원들은 건 데크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오면서 보이는 대로 적을 사살했다. 건 데크의 통로에는 등잔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굳이 야시경을 쓰지 않아도 시야가 좋았다. 이렇게 건 데크를 청소한

강혁수는 대원들에게 수병 숙소와 사관 숙소, 사관실로 가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청소할 것을 지시하고, 탄약고에도 몇 명의 대원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몇 명의

대원을 이끌고 가장 중요한 기관실로 향했다.

강혁수가 이렇게 지시하고 건 데크를 뛰는데 갑자기 쿠구궁하는 소리와 함께 뉴

아이언사이드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수중 침투조가 성공한 모양이군..."

칠흑같이 어두운 기관실로 내려온 강혁수와 대원들은 야시경을 다시 뒤집어썼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뉴 아이언사이드의 보일러를 보고 놀라야 했다. 출력은 기껏

700마력에 불과한 놈이 크기는 풍백함의 보일러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아마도

연료효율이 떨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큰 보일러 앞에 수많은 화부(火夫)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잠을 자는 것을 보고 또 놀랬다.

뉴 아이언사이드의 화부가 총 46명에 이른 다는 것을 작전 전의 브리핑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많은 화부들이 선실에서 잠을 자지 않고 이렇게 기관실에서 잠을 자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마도 따뜻한 보일러 옆에서 잠을 자는 것이 더

따뜻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기관실에서 술을 마시다 그대로 잠이 들었던지..

.

잠시 이런 생각을 한 강혁수는 싸늘한 어조로 명령을 내린다.

"해치워!"

강혁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던 뉴 아이언사이드의

화부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다.

"피슉, 피슉, 피슉..."

소음총 소리가 터질 때마다 잠을 자던 화부들은 그 모습 그대로 저 세상으로 가야

했는데, 화부들은 마치 스프링이 퉁기는 것처럼 몸을 들썩하면서, 그렇게 죽어갔다.

아가멤논의 해병대 선실을 담당한 전철만과 이수호, 이종욱은 각자가 맡은 선실의

문을 조용히 열었다.

불이 꺼진 선실은 복도와 달리 깜깜했다. 역시 해병대 놈들도 수병들처럼 잔뜩 술에

취한 채 골아 떨어져 있었다.

아가멤논에 승선하고 있던 영국해병대는 장교를 포함해서 모두 120명이 넘었는데,

모두 5개의 선실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서둘러서 일을 마무리 해야만했다.

전철만은 해병대 특수수색대 출신의 천군이다. 그래서 같은 해병대원들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꺼림칙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들을 살려두고서는 아군이 아가멤논을

탈취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약간 갈등하던 전철만은 머리 위의 야시경을

눌러 썼다. 그리고 소음총을 자동으로 놓고 갈기기 시작했다.

약간은 김빠지는 소리와 비슷한 소음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총에 맞은 해병대원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어갔다. 탄창이 모두 비자 다른 탄창을 꺼내 갈아 끼우고

다시 총을 쏘는 전철만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전철만은 신음성을 내 뱉는 놈들을

골라서 다시 총알을 먹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한 선실의 영국 해병대원 30명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여기 전철만 제 1선실 청소 끝."

자신이 담당한 선실을 확실히 청소했다는 간단한 무전을 남기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으로 향했다.

"응? 이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고 그래, 어서 술이나 마시자구..."

스코틀랜드 글레스고 출신의 앤디 콜과 역시 같은 글레스고 출신의 래리 버즈는 모든

해병대원들이 잠들었는데도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실 앤디는 해병대원이

아닌 기관실 소속의 하사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인 래리와 자주 만날 기회가

드물었고, 오늘 모처럼 해병대 선실까지 와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아냐, 아무래도 이상해."

래리는 뭔가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에 일어나서 한쪽에 있는 총기함으로 가서 리

엔필드 소총 한 정을 꺼냈다.

간단히 총기를 점검한 래리는 엔필드 소총에 총알을 한 발 장전한 후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드문드문 문이 열려진 선실이 보였지만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래리는 그냥 다시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다른 선실을

한 번 살펴보기로 했다.

그렇게 복도로 나선 래리는 막 한 선실을 지나는데 선실의 문이 열리면서 덩치가

커다랗고 까만 옷을 입고 역시 머리에 까만 것을 쓰고 있는 이상한 놈을 발견했다.

전철만이었다.

래리와 전철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지만 래리가 조금 빨랐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전철만은 뒤로 쓰러졌고, 래리도 "피슉"하는 소음총의

발사음을 듣지도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래리! 무슨 일이야?"

전철만은 안에서 또 한 놈이 나오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서 달려나오는 놈이 쓰러지자 그때서야 여기저기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여기 전철만, 총에 맞았다."

"이런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가겠다."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은 상대는 이렇게 무전을 끊었고, 다른 선실을 청소하던

이수호와 이종욱이 달려오는 게 전철만의 눈에 보였다.

"야! 전철만, 괜찮냐?"

"몰라, 아무래도 갈비뼈가 부러졌나봐, 씨팔 졸라 아퍼..."

다행히 래리가 쏜 총은 전철만의 방탄복(防彈服)을 뚫지 못하고 그의 갈비뼈만

부러트린 것 같았다. 전장식 리 엔필드 소총탄의 운동에너지로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에서 맞았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가져온 최신 방탄복을 뚫기 어려웠다.

전철만은 이렇게 투덜거리며 방탄복을 벗더니 이곳 저곳을 살펴보았다.

수상 침투조 대원들이 이렇게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를 공략하고 있을 때

김종완은 초조하게 함교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분명히 세 척이 동시에 터져야

했는데 영국함선 케이프타운과 포츠머스만 두 동강이 나고 미국함선 콜로라도는

멀쩡했기에 순간적으로 작전에 차질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된거야? 왜 콜로라도는 무사한거지?"

"모르겠습니다. 함장님. 아무래도 콜로라도에 설치한 C-4가 안 터진 모양입니다."

"이런 제기랄,"

김종완은 저절로 욕이 나오며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그렇지 않아도 한정된 수량의 C-4였기에 그 사용에 굉장히 신경 쓰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C-4가 안 터진 모양이라는 박종화의 말에 김종완은 짜증이 왈칵 솟았다.

신기도감 기기창에서 공중 질소 고정법을 이용한 폭발력 강한 화약을 생산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RDX나 TNT처럼 강력한 폭발력이 나올 수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전에서도 한정된 수량의 귀한 C-4를 사용한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제대로 된 폭약(爆藥)을 생산해내지 못하는 신기도감 연구원들이 원망스러웠다.

더구나 C-4에 장착된 시계는 신기도감에서 만든 시제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래저래 김종완의 원망은 모조리 신기도감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김종완의 속이 타 들어가든 말든 계속해서 무전은 들어오고 있었다. 다행히

아가멤논이나 뉴 아이언사이드에서의 작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부함장! 당장 주포(主砲)를 돌려서 콜로라도를 공격하라고 해. 저 놈이 살아서

아가멤논이나 뉴 아이언사이드를 공격한다면, 배는 물론이고 우리 대원들까지 위험할

수 있으니까 즉시 공격하라고."

"알겠습니다. 함장님."

부함장 박종화는 무전으로 포술장을 호출하더니 콜로라도의 좌표를 불러주면서

포격을 지시했다.

잠시 후 이순신함의 127mm 자동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오토브레다 사(社)에서 개발한, 이순신함을 비롯한 한국형 구축함 사업에

주포로 선정된 127mm 자동포는 분당 40발이라는 어마어마한 발사속도를 자랑한다.

더구나 초속 810M의 빠르기와 컴퓨터가 제어하는 자동발사장치는 해안가에 정박한

19세기의 증기선 정도는 눈을 감고도 맞출 수 있을 정도였다. 이순신함에서 발사된

철갑탄은 초탄(初彈)부터 콜로라도의 함수에 명중했다.

비록 콜로라도가 만재 배수량 4772톤의,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함선이라고 하지만

장갑함의 두꺼운 장갑도 뚫을 수 있는 이순신함의 철갑탄에 직격(直擊) 당하자 견딜

수 없었다. 18인치의 비교적 두꺼운 압축목재로 만들어진 콜로라도의 상 갑판을

그대로 뚫고 들어간 철갑탄은 함 제일 밑바닥에 있는 조리실에서 터졌다.

"콰광"하는 소리와 함께 함수가 들썩하더니 조리실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함 밑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뚫린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콸콸콸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명중탄이 속출하면서 콜로라도는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제임스 가드너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적의 공격을

알렸지만 그의 그런 외침은 콜로라도와 함께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콜로라도가 그렇게 허무하게 가라앉자 이순신함의 여기저기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이순신함 옆에 있던 풍백함에서는 "주상전하 천세!" 소리가 떠들썩했다.

"여기 검은 봉황, 상황종료, 이상."

"여기는 함장이다. 다시 한 번 말하라, 이상."

강혁수의 무전이 들어오자 무전기를 재빨리 낚아챈 김종완은 이렇게 물었다. 상당히

상기된 표정을 한 김종완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여기 검은 봉황, 뉴 아이언사이드의 수병 577명은 모조리 황천길로 갔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뉴 아이언사이드는 우리가 접수했다. 이상."

"이야!"

"우와---"

강혁수의 무전이 다시 들어오자 함교에 있던 모든 승무원들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김종완도 크게 고함을 지르면 주먹을 허공에

내질렀다. 이른바 히딩크 식 어퍼컷 세레머니였다.

"잘했다. 검은 봉황. 잠시 대기하라, 곧 운영요원을 보내겠다. 이상."

"여기 검은 봉황, 알았다. 이상. 통신 끝."

뉴 아이언사이드에 침투한 검은 봉황으로부터 무사히 함선을 장악했다는 무전이

들어오고, 얼마 안 있어 아가멤논에 침투한 검은 호랑이로부터도 함선을 탈취하고,

아가멤논의 승무원 705명을 한 사람도 없이 청소했다는 무전이 연이어 들어왔다.

김종완은 가슴이 막막해지는 게 뭐라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 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해적질을 해서 탈취했을 망정 이제 조선은 세계 최강의 장갑함을 두 척이나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기분이 좋았지만 김종완은 자신의

직무를 잊지는 않았다.

"부함장, 풍백함에 발광 신호를 보내! 운영요원을 바로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로 보내도록 말이야."

"이미 제가 보냈습니다. 함장님."

"오, 그래... 그럼 우리 배에 타고 있던 운영요원들도 보냈나?"

"물론입니다. 함장님."

이순신함과 풍백함에 타고 있던 운영요원들은 주정(舟艇)에 나눠 타고 아가멤논과 뉴

아이언사이드로 향했다. 먼저 침투해 있던 천군 특수수색대 대원들이 내려준 밧줄을

타고 올라간 조선해군 증기선 운영요원들은 우선 아래에서 보던 것 보다 배가 상당히

작아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천군의 까만 군복이 모조리 피로 얼룩진 것을

보고 치를 떨어야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약과였다.

상 갑판 밑에 있는 중 갑판 여기저기와 하 갑판 곳곳에는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한꺼번에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양이(洋夷)들의 시체를 처음 본 운영요원들은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고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으니, 그 놀라움은 필설(筆舌)로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다.

한참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운영요원들은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간신히 제 정신을

차리고 양이들의 시체를 상 갑판으로 옮겨 그대로 바다에 던졌다.

무려 2000명이 넘는 생목숨을 삼킨 시모노세키의 앞 바다는 적막했다. 가끔씩 바다에

던져지는 죽은 자의 시체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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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66 밝아오는 아침의 나라...6

번호:5072  글쓴이:  yskevin

조회:73  날짜:2003/12/09 22:32

..

버그 자수입니다.

어제 올린 글에서 이순신함의 주포를 이탈리아 오토 브레다사의 127mm 함포라고

랬는데 사실은 미국ud사의 mk45mod4 함포입니다. 그렇게 알고 봐주시길... 사실 KD-1

광개토대왕급에 그렇게 장착되었기에 당연히 KDX-2 충무공 이순신함에도 127mm

함포가 장착되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는...^^;;

오늘 글도 나름대로 통쾌합니다. 머리는 지끈지끈, 코는 맹맹한 상태에서 썼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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