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지난 8월 2일에 죠슈번에 대한 정벌을 결정한 막부는 허둥대고 있었다.
정벌을 지휘해야하는 막부의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도꾸가와 이에모찌는 어린
나이에 결핵에 걸려 골골하고 있었기에 정벌군을 지휘할 형편이 못되었고, 할 수
없이 막부를 지지하는 어삼가(御三家) 중 하나인 기슈 쥬나곤이 총대장으로
임명되었지만 기슈는 애초에 죠슈번을 정벌할 마음이 없었기에 그에게 배당된 정벌군
총대장 직(職)을 고사(固辭)하였다.
하여 막부에서는 부랴부랴 새로 임명한 총대장이, 또 다른 어삼가의 하나인 오하리
전 다이나곤이었다.
오하리도 기슈가 고사한 총대장의 자리에 자신이 앉는 다는 것에 부담을 느꼈는지,
처음에는 완강한 고사의 뜻을 밝혔지만 여러 막부 관리들의 간절한 청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이렇게 총대장의 인선문제와 4개국 연합함대의 무력시위로 인해 어영부영 세월만
죽이고 있던 막부의 죠슈 정벌군이 오사까 성에 본영을 세우고, 죠슈 정벌에 대한
회의를 소집한 것이 정벌이 결정된 지 두 달하고도 보름이 넘게 흐른 10월
18일이었다.
이 회의에는 동맹국 참관인 자격으로 윤정우 조선공사와 무관들도 참석하였는데,
윤정우는 여기에서 화려한 전술과 탁월한 식견을 선보임으로써 막부 고관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막부를 지지하고 따르는 제(諸) 번(藩)의 공경대신(公卿大臣)들과
무사들에게 그의 이름 석자를 크게 각인시키기에 이른다.
윤정우는 이번 제 1차 죠슈 정벌을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었다.
죠슈번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막부의 힘과 막부에서 동원한 30여 개에
이르는 각 번의 힘, 그리고 죠슈번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각각의 힘을 소진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부에서 주장하는 죠슈번의 완전 정벌과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죠슈번의 힘과 막부의 힘을 상잔(相殘)하여 소진시킬 생각에 골몰하였는데,
죠슈번을 완전히 굴복시키기보다는 죠슈번이 재기할 수 있는 힘을 남겨두어 나중에
죠슈번이 일어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왜국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전란(戰亂)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이 무렵 정벌군 총대장을 맡고 있는 오하리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이번 정벌군에 참여한 번이 30여 개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뛰어난 번이나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없었다는 것에 그의 고민이 있었다.
도사번 같은 경우에는 이번 정벌에 반대하여 일체의 군사를 파견하지 않고 있었고,
정벌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사쓰마번의 경우에는 며칠 전 번의 중신인 사이고
다까모리가 이와꾸라의 오두막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기에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마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채로 죽은 사이고와 이와꾸라의 시신에는 다시 등에 몇
발의 총상이 발견되었는데 검시관(檢屍官)들의 검시(檢屍)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에서 확인사살을 당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단서로는 범인의 윤곽도 잡기 어려웠다.
그일 때문에 사쓰마번에서는 우왕좌왕(右往左往)하면서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이로써 사이고를 정벌군의 군사(軍師)로 초빙하여 정벌군 전체의 군무(
軍務)를 맡기려는 오하리의 계획은 좌절되고 말았으니, 그것이 바로 오하리의
고민이었다.
막부의 여러 중신들의 권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정벌군 총대장을 맡기는 했지만
일이 처음부터 꼬이고 있었으니 오하리로서는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오하리의 고민을 해결해준 사람은 구미모도 죠운이었다.
구리모도는 정벌군의 총대장 오하리의 고민을 꽤 뚫어 보고 오하리에게 조선의
참관인 윤정우와 그의 부하들을 소개시켰는데, 윤정우와 조선무관들은 그 훤칠한
생김새와 깍듯한 예절로 오하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하리를 비롯한 왜인(倭人)들은 선천적으로 왜소한 자신들의 체구(體軀)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자신들에게 거의 머리 하나는 더 있는 조선공사와
무관들이 자신을 돕는다고 나타났으니, 오하리로서는 흡족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윤정우가 내놓는 계책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이었으니, 머리 속에 똥만 가득 든 오하리는 하찮은 일이라도 윤정우의 의견을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정우를 비롯한 조선의 무관들이 처음부터 오하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출중한 체격과 예절바른 몸가짐을 가지고 있는 조선사람들이라도
무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윤정우가 가장 먼저 내놓은 계책이 오하리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 계책이 나름대로 성공하자 오하리의 윤정우에 대한 신임은 더욱
두터워만 갔다.
사실 윤정우가 처음으로 내놓은 계책이라는 것은 간단했다.
우선 정벌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막부의 양식보총으로 무장한 정병(精兵)과
사쓰마번의 지원군(支援軍), 아이즈번의 친위군(親衛軍)으로 하여금 죠슈번의 주력(
主力)과 맞붙어 그 주력을 깨트리는 단순한 것이었다.
이미 정벌군이 집결한 상태에서 여러 가지의 사소한 문제 때문에 정벌이 늦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윤정우가 내민 계책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타당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오하리는 정벌군 내의 각 번의 내부 사정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미 정벌군이 집결한 마당에 사소한 문제로 정벌을 늦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윤정우의 생각에 공감한 오하리는 제 번의 문제는 도외시한 채 무조건
죠슈번의 주력과 접전하여 섬멸할 것을 명령했고, 총대장의 군령(軍令)이 떨어진
이상 번 내의 문제 때문에 그 군령을 거부할 수도 없었던 사쓰마번은 할 수 없이
막부의 정병과 아이즈번의 친위군과 연합하여 진격(進擊)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은
죠슈번의 주력을 깨트리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와중에 죠슈번이나 사쓰마번, 아이즈번, 막부의 군사들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지만, 서전(緖戰)을 승리(勝利)로 이끌었기에 막부의 중신들과 오하리는 그
문제를 신경 쓰지도 않았다. 반면에 사쓰마번과 아이즈번의 중신들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만 끓여야 했다. 이렇게 정벌의 첫 걸음이 내딛게되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
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우왕좌왕했던 정벌군이었지만, 정벌이 시작되자 그동안의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쏙 사라지고 이제는 어떻게든 정벌의 문제를 매듭짓는 것에만 매달렸다.
이렇게 윤정우의 계책대로 일이 진행되자 윤정우와 조선무관들을 대하는 오하리의
태도가 당장에 달라졌다.
오하리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윤정우를 부르며 다정하게,
"윤 공사, 그대는 나의 장자방(張子房)이오. 부디 나를 잘 도와주시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 윤정우는 차제에 죠슈번을 확실히 손보자는 막부의 의견을 대부분 무시했다.
이미 전장에 나온 이상 막부의 지시에 아랑곳하지 말고, 총대장 단독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것을 주장하였고, 그의 그런 주장은 오하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오하리는 처음부터 정벌에 소극적이었던 터라 윤정우의 그런 주장이
먹혀들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오하리에게 윤정우가 주장한 것은 막부의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윤정우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대로 죠슈번을 지도상에서 삭제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양측의 힘을 적당히 뺄 심산이었다.
윤정우는 일단 서전을 승리로 이끈 정벌군이 총대장 오하리에게,
"일단 서전을 승리로 이끈 이상 죠슈번의 군사들은 크게 위축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우리 정벌군은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죠슈번 국경을 넘는 겁니다."
일단 정벌이 시작된 이상 오하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전력을 죠슈번에게 집중시키고 전면적인 공격을 한다면 저들
죠슈번의 군사들은 결사항전(決死抗戰)의 심정으로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되면 우리측도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총대장께서 모든 책임을 지게 되는 거지요."
"음..."
"따라서 우리는 모든 군사들을 동원해서 죠슈 지역을 포위한 후, 외교적인 교섭을
통해서 저들의 항복을 유도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외교적인 노력을 통한 항복교섭이라...?"
"일단 우리 정벌군이 저들의 근거지를 포위하고 모든 화력을 거기에 집중시킨다면
저들은 우리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윤정우는 원래의 역사에서 사쓰마번의 사이고가 시행했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이른바 무력을 통한 외교적 해결을 신봉했던 사이고는 [무력이야말로 외교를 호전(
好戰)시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 속의 1차 죠슈번 정벌 때 사이고는 "총칼을 휘둘러 겁을 줘라, 다만 베지는
말고 겁만 줘라. 그러면 저들은 알아서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사정할 것이다. 그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면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정우는 사이고가 썼던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는데, 역사 속의 사이고가 다만
무력의 과시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윤정우는 그 무력을 어느 정도 사용함으로써
양측의 감정의 골이 더 깊게 파이도록 하였으며, 양측의 무력을 어느 정도는
소진시키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윤정우의 이러한 제안은 오하리의 마음을 아주 흡족하게 했다.
오하리는 윤정우의 말대로 즉시 시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막부의 군대가 죠슈
일대를 포위하고 무력시위를 벌이자 서전에서 패배한 죠슈번에서는 항복할 의사를
표시해왔다.
사실 지난해의 죠슈번 같으면 결사항전의 전의(戰意)를 불태웠을 것이나, 근왕파(
勤王派) 지사들 대부분이 지난해 있었던 하마구리 어문의 변으로 인해 죽거나 실각한
상태였고, 지금 죠슈번의 정권은 좌막파(佐幕派막부의 체제를 인정하는 쪽) 중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하나 결사항전을 주장하는 중신이 없었다.
지난해 하마구리 어문의 변으로 상당수의 근왕지사(勤王志士)들이 사라진 죠슈번은
그나마 살아있던 가쓰라 고고로가 막부의 정벌이 있기 며칠 전에 자신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 후에는 그 중심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었으며, 나머지 근왕파는 뿔뿔이
흩어져 종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저항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결국 죠슈번에서는 저항다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항복을 하고 말았는데, 사이고
만큼 뚱뚱한 죠슈번의 번주 모리 요시지까는 정벌군 총대장 오하리에게 고개를
숙이고 항복을 청하며 용서를 빌어야 했다.
득의만면(得意滿面)한 오하리는 전 날 윤정우가 알려준 대로 하마구리 어문의 변을
주동한 인물 중에 아직도 살아있는 마쓰다 우에몽노스께, 구니시 시나노, 후꾸하라
에스고이 등의 목을 베어 가져올 것을 명했고, 항장(降將)인 죠슈번의 모리 번주는
어쩔 수 없이 오하리의 명령대로 세 중신의 할복을 명해야만 했다.
이렇게 죠슈번의 세 중신이 할복하고 내년부터 참관교대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자,
이렇게 죠슈번에 대한 정벌은 마무리됐는데, 오하리는 자신을 도와준 윤정우와
조선무관에게 신선조 1조 조장 오끼타 소우지가 애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키쿠이치몬지 노리무네(菊一文字則宗)라는 명검을 한 자루씩 선물하여 자신의 후의(
厚意)를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