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26화 (123/318)

6.

"아니? 사령관 님께서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그리고 한 소령 님도 같이 오시다니요?

"

"하하하. 잘 있었소? 함장. 아니지 이제는 해군 사령관이시지..."

"하하... 안녕하셨습니까? 함장 님."

중간에 이필이 감독하는 도로망 확충사업을 잠시 둘러보고 김영훈과 한상덕은 바로

남양의 구(舊) 삼도 수군통어영의 본영이 있는 현(現) 조선 해군 사령부로 바로 말을

달려왔다.

해군사령부의 경비 병력들도 이필의 수하들이 보여주었던 절도 있는 검문으로

김영훈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음은 물론인데, 현대 한국군 같으면 높은 사람이

위병소를 통과하자마자 득달같이 그 사실을 상황실에 보고를 했을 것이나 지금처럼

아무런 통신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사령관에게 섭정공과 대정원장의 방문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전무했다.

하여 김종완의 부하들은 어쩔 줄 몰라 하였는데, 그런 군사들을 보고 김영훈은

아무런 보고를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이렇게 불쑥 사령관 실로 들이닥친 것이다.

마침 김종완이 어제 풍백함과 운사함의 합동교전 훈련을 마치고 사령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어제만 왔어도 자칫하면 헛걸음을 할 뻔했다.

"기별이라도 주고 오시지 않고요...? 이렇게 갑자기 오시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김종완은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는데, 그런 김종완의 말을 받은 것은 한상덕이다.

"아무렴요, 좋은 일이 있다마다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 소령 님."

"오늘 아침에 사령관 님께서 아버지가 되셨답니다. 하하하..."

"아니 그것이 정말입니까? 오! 축하드립니다. 사령관 님."

"고맙소 함장..."

오랜만에 옛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서로가 격의 없이 옛날 호칭을 사용하며 말을

건네는 모습이 마치 오랜 친구 사이를 보는 것과도 같은 세 사람이었다.

사실 이 세 사람은 천군 중에서도 군사분야의 수뇌부와 같은 인물들이었는데, 그동안

분야가 다르고 맡은 일이 달랐기에 같이 시간을 보낼 일이 별로 많지 않았다.

김종완이 남양에 해군학교를 설립하기 전에는 그래도 가끔 술자리도 함께 하기도

하였으나, 김종완이 남양으로 내려온 뒤로는 거의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내야 했기에 그의 놀람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은 아내가 첫 아이를 낳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왜국의

일을 핑계로 남양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니, 그의 마음 씀씀이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단순히 사령관 님이 득남(得男)한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렇게 찾아오신 것 같지는 않고...? 무슨 일입니까? 사령관 님. 이쯤해서 말씀을 해

주시지요."

"하하하... 역시 함장은 못 속이겠구만... 한 소령이 말씀해 주세요."

김영훈도 기분이 좋은지 한상덕에게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소령이라는 호칭을 쓰면

이렇게 말했다. 아들을 얻은 날이기도 하고 일년만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날이기도 했으니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은 함장 님께 긴히 의논드릴 일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의논할 일요?"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왜국 주재 나가사끼 공사로 가 있는 윤정우 대위의

암호문이 도착했습니다."

"윤정우의 암호문이요?"

"그렇습니다. 윤 대위는 암호문에서 이순신 함의 왜국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한상덕은 김종완에게 윤정우가 보낸 암호문의 내용과 지금 왜국의 정세, 윤정우가

죠슈번 정벌군에 무관들을 이끌고 참관인 자격으로 참관하는 일, 그리고 그가 벌일

공작(工作), 마지막으로 이순신 함이 왜국에 가서 해야할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말하는 한상덕이나 그 말을 듣고 있는 김종완이나 표정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음... 그럼, 막부 정부에 무력시위를 하고 있는 4개국 연합함대를 무찌르면 되는

일이군요."

"그렇지요, 이순신 함의 무장이라면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김종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번에는 김영훈이 다시 말한다.

"그런데, 함장. 절대로 이순신 함을 노출시켜서는 아니 됩니다. 아시겠지요?"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유령이 저지른 것처럼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청요?"

"그렇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무슨 청인지..."

"다름이 아니라 사령관 님께서 지휘하시던 특수수색대 요원들을 1개 소대 정도만

데리고 가게 해 주십시오."

"특수수색대 요원들을요?"

난데없는 김종완의 요청에 김영훈과 한상덕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두 사람의 의구심을 김종완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다. 하여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그냥 이순신 함을 몰고 가서 저들 함대를 공격하고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쓸만한 함선이 있으면 몇 척 나포해 오고 싶습니다."

"나포요?"

"그렇습니다. 사령관 님. 지금 운사함까지 진수하여 우리 해군에서 보유한 근대식

함정이 두 척으로 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서양의 해군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해군이라는 것이 단 시일에 키울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하여 제 생각으로는 이번 기회에 해적질을 해서라도 저들의

함선 중에서 쓸만한 것 몇 척을 나포해 오고 싶습니다."

"...음..."

"음..."

김영훈과 한상덕은 말이 없었다.

김종완의 제안이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그동안 김종완이 노심초사 해군의 발전을 위해서 애써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김종완의 제의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순신 함의 능력이라면 서양의 재래식 함선 백 척이 공격하더라도,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고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으며, 특수수색대의 능력이라면 그 중에서 몇

척을 나포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운 일이었다. 김종완의 그런 요청은 일면

타당했고,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한 김영훈은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알겠습니다. 함장의 뜻대로 하세요... 그런데 함선을 운용할 요원들은 충분합니까?"

"운영 요원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천군의 해군이 200명이 넘게

넘어왔고 그동안 우리가 교육시킨 조선 수병들만 해도 충분합니다. 안되면

해군사관학교의 생도들을 동원해도 되고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함장의 뜻대로 하세요. 필요한 지원은

아낌없이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 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이것이 어찌 함장 개인의 일인가요? 모두가 나라를 위해 하는 일

아닙니까? 밝아오는 아침의 나라! 우리 조선을 위해 하는 일인걸요...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하하하..."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63 밝아오는 아침의 나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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