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난 7월에 적발된 역모를 꾸민 일당들의 검거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도성 안에 있는 이최응과 이재원을 비롯한 종친부 인사들과 민치상을 정점으로
민승호와 민겸호 형제를 비롯한 여흥 민씨 인사들, 그리고 전 도승지 심의면과 그의
아들 심이택을 비롯한 청송 심씨의 인사들과 이용규와 이조원 부자를 필두로 하는
연안 이씨 인사들 등 김영훈과 천군에 반대하는 구신(舊臣)들의 검거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역모를 획책한 인사들을 검거하는 임무를 총지휘한 한상덕이 그 진압과 검거에
있어서 가장 우려했던 두 집단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도성 안에서 암약(暗躍)
하던 검계의 왈짜들과 일부 대전별감 출신 무뢰배의 검거였다. 다행히 일부 검계의
왈짜 중 두목 급의 무뢰배가 화승총을 쏘아대며 격렬하게 저항하기는 했지만 이미
포위된 상태에서, 퇴로가 막힌 것에서 하는 최후의 발악에 불과했다.
한상덕이 우려했던 또 하나의 집단은 바로 이유원이 키우고 있던 사병들이었는데,
수원성과 인접한 화성군 화산(華山) 기슭에 자리잡은 용주사(龍珠寺)를 근거로 하여
그 세력을 키우던 이유원의 사병들은 수원부(水原府) 관아에서 이유원이 잡힌 것과
동시에 친위천군의 사단장 직할의 1개 여단을 투입하여 간단히 진압할 수 있었다.
이 진압작전은 친위천군 대장인 안용복이 진두지휘하였는데 가급적이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하라는 김영훈의 명으로 최루탄을 이용한 기습을 단행함으로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압과 검거를 하는데 성공하였는데, 이미 지난 계해년(癸亥年1863년)
섣달에 창덕궁을 침범한 호위영의 군사들을 아무런 인명피해 없이 무참하게 박살낸
경험이 있는 안용복에게 이유원이 키우던 오합지졸(烏合之卒)들을 진압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압과정에서 저들의 저항에 부상을 입은 병사가 다수 발생하였지만, 사망한
병사들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친위천군의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적들을 제압하였다.
그 외에 광주유수(廣州留守) 신협도 역모와 관련돼 파면 당하고 유배되었는데,
자신이 관장으로 있던 광주의 사요에서 사사로이 화승총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었는데도 그것을 적발하지 못한 책임을 물은 것이었으니, 그것은 화성군수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조정에서는 역모의 주동자로 판명된 인사들을 군기시(軍器寺) 앞 네거리에서
참형을 하였는데 그 수가 무려 백 명이 넘었다.
역모에 관계된 주동자 급 양반 사대부와 남종삼을 비롯한 천주교 지도자들의 참수는
물론이고 아무 것도 모르고 이용만 당했던 검계의 왈짜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참형을
당했는데, 그동안 힘없는 백성들을 등쳐 먹고살거나 기생집이나 색주가에 얹혀서
살면서 온갖 나쁜 짓은 다하고 살았던 그들이었기에, 그렇게 죽어도 누구하나 그들을
위해서 변호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형옥(刑獄)에서 군기시 앞 형장까지 가는 동안 주변에 운집한 백성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기 일쑤였으니, 그동안 힘없는 백성들이 그들에게 맺힌 포한(抱恨)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참형을 당한 사람 외에도 재산이 몰수된 인사들도 많았고, 이런 인사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검계의 졸자들과, 역시 아무 것도 모르고 반란에 가담한 이유원의
졸개들과 함께 졸지에 건교부에서 시행하는 도로망 확충사업이나 각종 건설 사업에
동원되어 형량에 따라 죽어라 일만 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번 역모의 주동자 중에서는 어린 임금의 외가(外家)쪽 인사들이 많았던 것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그런 외가의 움직임에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았던 어린 임금이었지만 행여나 생모(生母)인 부대부인 민씨에게 화가 미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였으니, 그런 어린 임금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은 어느 누구라도 부대부인 민씨를 걸고 넘어지는 인사가 있을 시에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음으로써 부대부인의 문제는 일단락(一段落)되었지만,
졸지에 외가까지 풍비박산(風飛雹散)이 난 어린 임금은 천애고아(天涯孤兒)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 것이 안타깝다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로(寒露)가 지나 농촌에는 조선 팔도에서는 추수가 한창인데, 운현궁의 아재당에
있는 김영훈의 얼굴은 수심(愁心)이 가득했다.
지난 7월에 적발한 역모사건으로 참형을 당한 인사의 수가 무려 백 명이 넘었고,
단순하게 역모에 연루되어 유배를 가거나 형량에 따라 노동을 하는 인사들의 숫자가
무려 천 오백 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억류되어 있는 천주교 신자들의
숫자도 팔 천명이 넘었기에 그 처리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금 경향(京鄕) 각지에서 올라오는 상소는 그 도를 넘을 정도로 많았는데 하나같이
사교(邪敎)인 천주학 쟁이들을 능지처참으로 다스려 국법의 지엄함을 보여주라는
내용 일색이었다.
역모에 연루된 종친부와 양반 사대부들에 대한 성토(聲討)와 탄핵(彈劾)의 상소도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처리한 일에 뒤 북을 치는 내용이었으니 말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고, 대부분이 배고픈 승냥이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오로지
천주학 쟁이들을 능지처참(陵遲處斬)으로 다스리라는 상소가 줄을 잇고 있었기에
김영훈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김영훈이 이렇게 불편한 심기을 다스리고 있는데 밖에서 한상덕의 말소리가 들린다.
"합하, 한상덕입니다."
"들어오세요."
김영훈의 말이 떨어지자 아재당의 방문이 열리면서 한상덕을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바로 김기현과 김인호, 김정호 등이었다.
"어떻습니까? 저들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하던가요?"
"다행히 베르뇌 주교가 우리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했습니다."
"음... 잘됐군요. 어차피 저 들의 살길은 우리가 제시한 길뿐이 없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일단 우리의 조건을 수용했다니 잘된 일입니다."
한상덕은 지금 베르뇌 주교가 잡혀있는 해주 감영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한상덕은 김영훈의 명을 받고 김정호와 함께 해주 감영에 가서 베르뇌 주교에게
조정의 뜻을 전달하고 그 수용을 종용하였는데, 뜻밖에도 베르뇌 주교는 조정의 뜻을
조건 없이 수용하기로 하였다.
사실 조정의 조건이라는 것은 간단했다.
이미 처형된 남종삼과 홍봉주 등 몇몇 지도자급 인물들을 제외한 다른 신자들에게
어떠한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고, 원한다면 천주교에 대한 자유로운 전교도 보장할
것이되, 앞으로 조정에서 실시하는 각종 건설 사업에 노력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시기는 앞으로 5년 동안이 될 것이며 5년 간의 노력 봉사가 모두 끝나는 시점을
기해 천주교의 전교를 허락한다는 조건이었으니 베르뇌 신부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단서조항이 있었다.
첫 번째 단서조항은 바로 조선의 실상에 대한 천주교 선교사들의 로마 교황청으로의
보고나 법국 정부로의 보고는 일체 조정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천주교 선교사가 어느 나라를 가던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그 나라의 생활상과
자연환경, 문화나 풍습에 대한 것을 조사하여 로마 교황청에 보고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자세한 그 나라의 실정을 파악하고 천주교를 선교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런 정보를 빼앗기는 상대방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선교사의 행위는 명백한 간첩행위와 마찬가지였다.
이런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이러한 점을 베르뇌 주교에게
분명히 주지시키고, 앞으로 로마 교황청이나 법국 정부에 보내는 보고에서는 반드시
조선 조정의 사전 검열이 있을 것을 동의하도록 하였다.
두 번째 단서조항은 조선 전래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천주교의 전례의식에
포함시키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천주교 선교사들은 조상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는 조선의 제사(祭祀)를 우상숭배라는 논리로 일방적으로 매도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제사를 폐하고 신주(神主)를 불사르게 한 행위는, 천주교가 조선의 전통과
문화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였기에 그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여 한상덕은 베르뇌 주교에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천주교 식
제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는데 일단 로마 교황청의 정식 인준이 없는 상태에서
베르뇌 주교가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딱히 사리에 어긋나지도
않아 보였기에 베르뇌 주교는 일단 먼저 시행하고 나중에 로마 교황청의 인준을
청하기로 하였다.
세 번째 단서 조항으로 오로지 자신들이 믿는 종교와 자신들이 믿는 신만이
절대적이고 우월하다는 의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서 서양의 과학이나 기술이 동양보다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도
겨우 몇 세기 전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고, 서양이 중세 암흑기에 마녀 사냥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동양에서는 이룩한 엄청난 과학적 탐구와, 사상적 발전과, 문화적
소양은 그런 서양 문화나 과학의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한상덕의 이러한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문화적 우월주의와 인종적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저들 선교사에게 그런
점을 강요하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일 수 있었지만, 조선 백성들이 믿는 종교와
조선에서 발전시켰던 여러 가지 사상에 대한 우월한 사고에서의 접근이 아닌, 동등한
관점에서의 접근을 요구한 것은 문화적 자긍심이 남다른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항목이었고, 앞으로 천주교가 조선 사회에 토착화 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저들 선교사들에게 인지시켰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산자 대감. 저들 천주교 신자들과 지난번 역모에 연루되어 형량에 따라 각종 건설
사업에 투입되고 있는 범죄자들을 잘 활용하시면 건교부에서 시행하고 있거나 앞으로
시행할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한결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겝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합하. 이미 건교부의 관헌들이 그에 따른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있사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동안 건교부에서는 도로망 확충과 각종 광산의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광산의 개발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만 시행하더라도 그 성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이었으나, 도로망 확충과 같은 국가적인 사업 같은 경우에는 하루아침에 그 성과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기에, 건교부에서도 애로사항이 많았었다.
그렇다고 지금 조선에서 건설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기존의 도로가 좋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미 도로망 확충 사업을 시작한지 두 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조선의 교통 상황은 다른 외국에 비해서는 열악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꺼번에 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인력을 투입할 수 있었으니 김정호의 뿌듯한 마음은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도 김정호의 얼굴에는 그러한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김정호의 입이 귀에 걸려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김영훈은 그런 김정호를 미덥게 바라보다가 말머리를 김기현에게로 돌린다.
"재경대신 대감."
"말씀하시옵소서, 합하."
"천주교 신자들이 비록 조정에서 금하는 종교를 믿는 것은 분명하지만 저들도 분명
우리 조선의 백성들임은 분명할 터, 하여 저들과 저들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알겠사옵니다, 합하. 그것에 대한 대책을 곧 강구하여 시행하도록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농림대신 대감."
"말씀하시지요, 합하."
김인호는 천군 중에서 제일 연장자이기도 했고, 김영훈이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였지만 김영훈을 따르고 지지하는 것은 어느 천군 못지 않았다.
간혹 일부 민간인 출신 천군 중에서 김영훈과 군 출신 천군의 독주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에도 앞장서서 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녔던 인물로, 모든 천군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사실 천군 조선에 오고 나서 여러 번 상호간의 갈등이 노출된 적이 있었지만 크게
불거지지 않고 잘 수습되어, 지금은 단결된 힘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김인호의 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는 김영훈도 사석에서만큼은
꼭 박사님이란 호칭을 사용할 정도였으니, 그 인품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조정에서 몰수한 역도(逆徒)들의 토지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끝났습니까?"
"지난 번 역모에 관련된 역도들로부터 몰수한 토지가 실로 어마어마합니다."
"...?"
"...?"
"...?"
김영훈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의 눈과 귀가 한 순간에 김인호의 입으로 쏠렸는데,
김인호는 그것을 의식한 듯 서둘러 말을 이었다.
"먼저 이유원 일가에게 몰수한 토지만 해도 10만 결이 넘사옵니다."
"10만 결요? 그렇게나 많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유원이 보유한 토지는 모두 기호(畿湖)일대에 있는 노른자위의
토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최응과 이재원을 비롯한 종친부 인사에게서
몰수한 토지도 그에 버금가는 양이옵니다. 그리고 여흥 민씨 일파의 토지와 청송
심씨 일파의 토지, 연안 이씨 일파의 토지를 합한 것은 거의 15만 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었사옵니다. 그 외에 역모에 가담한 구신(舊臣)들이 보유한 모든 토지를
합하면 약 40만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양이옵니다."
"히휴... 그렇게나 많습니까?"
"그렇사옵니다, 합하. 그 중 이유원은 소작인에게 박하게 굴지는 않아서 백성들의
신망이 다른 이들에 비하면 후했다고 합니다. 하나 그것은 그자가 후해서라기 보다는
워낙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지라, 그렇게 박하게 굴지 않아도 자기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어마어마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줄로 사료되옵니다."
"그렇군요, 허면 이제 기호일대에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자가 누가 남았습니까?"
김영훈은 이번 기회에 지난번에 시행하려다 미뤄놓은 토지 개혁을 단행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김잉호에게 이렇게 물었는데 뜻밖에 김기현이 그 대답을 한다.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사옵니다, 합하."
"대감께서요?"
"예... 실은 신(臣)의 장인(丈人)의 집안에서 기호일대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사옵니다."
"송서(松西) 이경재 대감 댁에서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나.
원래 이경재는 이유원 다음으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경화거족(
京華巨族) 중에서는 이유원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전 우의정이자, 지난해 고부겸 청시승습사로 청국에 다녀온 이경재였으니,
이경재만 잘 설득한다면 김영훈이 시행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토지개혁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 대감께서 장인을 잘 설득해서 우리의 뜻을 알아듣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시행할 개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토지 개혁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니까요."
"알겠사옵니다, 합하."
"그럼, 지난해 안동 김씨 일파에게서 몰수한 토지와 이번에 몰수한 토지를 합하면
토지개혁의 전면 시행을 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농림대신 대감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기호일대의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경화거족은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옵니다. 삼남지방의 거족들이 문제를 삼을 소지가 있사오나, 지금 같은
추세라면 저들의 반발은 무시하여도 좋을 성 싶사옵니다. 더구나 노사 기정진도 우리
천군의 편에 있는 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전국의
서원과 향사에서 몰수한 토지까지 합하면 충분할 것이옵니다."
김인호는 뛰어난 인품의 소유자답게 김영훈을 대하는 것도 이렇게 깍듯했다.
김인호의 말이 맞았다.
노사 기정진의 조카딸이 한상덕의 처(妻)였으니, 백성을 위한 토지개혁을 한다고
한다면 원래의 기정진의 성품 상 그냥 있을 것도 아니었고, 질서(姪壻조카사위)인
한상덕을 위해서라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 이미 소작인들에게 분배한
서원과 향사에서 몰수한 토지까지 있음에야...
"좋습니다. 일단 토지개혁은 내년(來年) 벽두(劈頭)에 시행할 것이니, 대감을 비롯한
농림부에서 토지개혁에 대한 안(案)을 만들어서 제게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에
조정에서 몰수한 토지의 소작인들에게는 금년까지만 참고 있으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너무 많은 세금을 걷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명심하겠사옵니다, 합하."
"알겠사옵니다, 합하."
김영훈의 명이 떨어지자 아재당에 자리한 대신들이 이렇게 답하고, 그 모습을 보던
김영훈은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 한상덕에게 말을 한다.
"한 원장."
"예, 합하."
"아직도 일부 선교사는 찾아내지 못하였다고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그 중에는 남종삼의 서찰을 가지고 있는 리델 신부가
끼어있사옵니다. 그자는 칠시 그 서찰을 가지고 청국으로 밀항하여 법국의 군대를
부르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서해안 일대에 비상 경계령을 내려놓고 있는
상태이옵니다."
"그럼 이렇게 하세요. 우선 몸을 피한 선교사들과 천주교 신자들의 귀에, 억류된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는 겁니다."
"... 예? 헛소문요?"
"그렇습니다. 조정에서 군기시에서 처형한 역도들말고도 사교를 믿는 천주학
쟁이들도 처단할 것이라는 헛소문 말이에요.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을 처단하라는
경향 각지의 상소 내용도 적당히 흘리도록 하고요."
"...?"
"그러면 저들 일행들은 필시 배를 타고 청국으로 건너갈 생각을 할 겝니다. 그때
약간의 틈을 보여주고 저들을 그냥 청국으로 건너가도록 놔두세요."
"하오나, 합하. 그렇게 되면 법국의 군대가 반드시 우리 조선으로 쳐들어오게 될
것이옵니다."
"그렇지요.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겝니다. 이제 곧 독일과 수교하는 마당에
우리 조선도 서서히 국제 사회로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단 그런 헛소문을 퍼트릴 때
명심할 것은 반드시 소문이 무성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들이 청국으로
밀항할 결심을 할 겝니다."
"알겠사옵니다, 합하."
이미 중앙군에 대한 확실한 개편을 하였고, 지방군에 대해서도 개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아무리 많은 법국의 군대가 쳐들어 온다하여도 김영훈은 충분히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다시 말한다.
"그리고 한 원장은 경흥부사로 가 있는 이재화(李在和)박사에게 연락하여 러시아와
접촉을 시도해보라고 하세요."
"러시아에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재화 박사에게 제가 지난번에 알려준 방법을 사용하라고 하세요.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겝니다."
"알겠사옵니다, 합하."
한상덕을 제외한 나머지 대신들은 러시아와 접촉하라는 김영훈의 지시와 지난번에
김영훈이 알려준 방법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그런 대신들을 바라보면 웃고만 있을 뿐 다른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62 밝아오는 아침의 나라...2
번호:5059 글쓴이: yskevin
조회:104 날짜:2003/12/05 1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