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20화 (117/318)

10.

"사령관 님, 사령관 님."

한상덕은 김영훈이 대답도 하기 전에 아재당으로 뛰어들었다.

아직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때라 아재당의 모든 들 창문은 올려져

있었고, 방문에는 햇볕을 가리는 얇은 발이 하나 쳐져 있을 뿐이었으니 들어가기도

쉬웠다.

"이것을 보십시오, 사령관 님."

"뭡니까?...아니...이것은... 음..."

김영훈은 한상덕의 손에서 무슨 편지 같이 생긴 문서를 전해 들고 살펴보면서 이렇게

신음성을 토했다. 그동안 그렇게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닥친 것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입수했소?"

"충청도 제천에서 위장 생활을 하던 우리 요원이 남종삼의 집에서 입수한 것입니다."

"위장 생활요?"

"그렇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배론과 가까운 제천에 단종진이라는 요원과 다른

요원 몇 명을 위장 잠입시켰는데 단종진 요원이 큰 일을 해냈습니다."

한산덕은 그동안 대정원에서 배론의 천주교 공동체를 감시하기 위해 요원들을

잠입시켰던 일과 단종진이라는 요원이 배론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이선이라는 천주교

신자를 포섭하여 사찰(使察)해 왔는데, 결국 이선이라는 여인이 남종삼의 집에서

민승호와의 사이에서 이루어진 약정서를 찾아낸 사실을 빠짐없이 말했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자 김영훈의 얼굴은 침통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문득 이선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영훈은 또 한 번 놀랐다.

이선이는 역사 속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에도 천주교를 배신하여 남종삼을 비롯한

천주교 수뇌부를 검거하는데 일조(一助)했던 여인이 아닌가. 참으로 역사는 얄궂게

흘러가고 있음을 김영훈은 새삼 느끼게된다.

"어떻게 할까요?"

"...음..."

"사령관 님!"

"음... 지금 저들에 대한 감시는 물샐틈없이 완벽합니까?"

"그렇습니다. 이최응 일당과 민승호 일당, 구신(舊臣)들과 검계의 조직원들은

물론이고, 수원유수 이유원과 그가 키우는 사병들에 대한 경계와 감시도

철통같습니다.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일망타진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한상덕은 결단을 촉구한다는 뜻으로 김영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영훈은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토록 아니기를 빌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나오다 보니 그동안 그렇게 애가 닳고, 혼자서 끙끙 앓았던 것에 대한 허탈한 마음이

물 밀 듯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역사는 그에게 또 다시 피를

요구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관련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세요. 대궐에 있는

부대부인만 제외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잡아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이유원이가 키우는 사병들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잡아들이라고 하세요. 남한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친위천군 대장 안용복에게 지급으로 파발을 띄워서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들이라고 하세요. 아울러 반항하는 자는 척살(刺殺)하여도 무방하다는

명령을 내리세요. 그리고 근위천군 대장 김욱에게 명을 내려 도성을 오가는 사대문(

四大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라고 지시하고 도성 안에 대한 순찰과 경계를 철통같이

시행하라고 이르세요. 지금 이 시간 부로 서울과 경기지방에 위수령(衛戍令)을

내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천주교 신자들요?"

"그렇습니다. 사실 남종삼을 비롯한 선교사들과 수뇌부 일부만이 이번 역모(逆謀)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음...그렇지요."

김영훈은 난감했다. 일단 천주교는 조정에서 금(禁)하는 사교(邪敎)였기에 그

주동자들이 이번 역모에 관련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 죽음으로 몰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대략 이만 명이 넘는 신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천주교 신자들을 모조리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영훈이 이렇게 난감해 하고

있는데 한상덕이 그것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이오?"

"일단 천주교의 수뇌부들은 모조리 잡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이 약정서에 언급된

대로 선교사들이 청국으로 밀입국을 시도할 우려가 있으므로 서해안의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고, 전국에 흩어져 있는 나머지 일반 천주교 신자들은 색출하여 일단

한 곳에 격리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죄의 유무(由無)와 경중(輕重)에 따라서 저들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겁니다."

한상덕의 의견은 일면 타당성이 있었다.

일단 선교사가 청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해야만 했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을

색출하여 한 곳에 격리 수용시킨다면 앞으로의 일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습니다. 한원장의 뜻대로 하세요. 그러나 일반 천주교도들에게는 고문과 같은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대신 역모의 주동자라고

파악된 인사들에 대해서는 모든 동원 가능한 방법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저들에게까지 인정(人情)을 베풀고 싶지는 않군요."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아! 한가지 더요. 지금부터 한원장은 몇 몇 관계기관의 인사들과 잘 협의를 해서

천주교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연구를 하세요."

"연구라면은...?"

"앞으로 우리 조선이 개화를 하게되면 자연스럽게 서양의 여러 종교가 들어올 것은

자명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저들에게 어떤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들 천주교 신자들을 떳떳하게 우리 조선에서 받아들일

방법을 생각해보시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김영훈은 어차피 천주교가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지 100년 가까이 된 상황에서

언제까지 음지(陰地)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일반 조선의 도덕과 전통에 상충되는 부분을 순화하여 떳떳하게 선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생각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선결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한 것이다.

아재당을 빠져나온 한상덕은 그 길로 대정원과 의금부, 경무청과 소방청, 근위천군과

친위천군, 그리고 추밀원에 연락해서 이번 역모에 가담한 인사들에 대해서 빠짐없이

잡아들이라는 김영훈의 명령을 전달했다. 그리고 각 지방 감영에 파발을 띄워 각지에

흩어져 있는 턴주교 신자들에 대한 검거도 아울러 지시했다.

7월도 다 저물어 가는 막바지 여름에 조선반도에서는 관련자들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고, 근의천군과 친위천군이 병영에서 뛰쳐나와 서울 장안의 요소 요소에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한 바탕 피 바람이 불 일만 남았다.

(*1)남상교의 마지막 말은 남종삼이 잡혀가기 전에 실제로 한 말입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61 밝아오는 아침의 나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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