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재당의 김영훈도 아직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김영훈도 역시 마찬가지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밤늦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김영훈의 부인 조씨는 그렇게도 바라던 아이를 수태(受胎)
하여 지아비인 김영훈이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였으나, 한가하게
마누라 치마폭에 쌓여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아내 조씨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
김영훈도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접니다. 사령관 님."
"들어오세요."
김영훈은 이렇게 밤늦은 시간에 한상덕이 아재당으로 찾아오자, 무슨 심상치 않은
보고가 있는 줄 짐작했다.
"무슨 일입니까?"
"방금 장순규와 정순남으로부터 새로운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
"드디어 저들이 화승총을 제작하는 곳을 알아냈답니다."
"그래요? 어딥니까? 거기가?"
그렇게 탐문해도 알 수 없었던 화승총의 제조 장소를 알아냈다는 보고에 김영훈은
흥분했다. 이제야 확실한 증거를 입수하였다는 생각이 그를 이렇게 흥분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유원이 몰래 사병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과 그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확보한지
오래였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바로 광주의 사요라고 합니다."
"사요요?"
"그렇습니다."
"음..."
광주의 사요에서 화승총이 몰래 제조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김명훈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황석영이 쓴 "장길산"이라는
대하소설이었다.
김영훈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 본 장길산은 아직은 가치관이 완벽하게 성립되기
이전인 그에게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만큼 쉽게 잊을 수 없는 소설이었다.
길산과 묘옥과의 가슴아픈 사랑도 김영훈의 심금을 울렸지만 민중들의 고단한 삶이
그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하였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광주의 관요(官窯)에서 화승총이 몰래 만들어지던 장면이었다.
장길산에서도 광주의 관요에서 화승총을 밀(密) 제조하더니만 지금에 와서 까지
화승총이 그곳에서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새삼 그 뿌리가 매우 깊음을 김영훈은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 모든 증거를 포착했으니 모두 잡아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음..."
김영훈은 말이 없었다.
이미 한상덕에게서 민승호와 민치상이 남종삼을 만난 것에 대한 보고를 받았던
김영훈이었기에 이제 저들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천주교도의 처리 문제였다.
원래의 역사에서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 8000명을 처형한 병인박해(丙寅迫害)를 잘
알고 있는 김영훈이었기에, 자신이 흥선과 같은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천주교에 대한 애정이었다.
집안이 대대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인 관계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천주교
신자가되어, 천주교 신자로 태어났고, 철이 들 무렵까지 성당에 다니던 김영훈이었다.
그리고 큰 누님도 수녀일 정도로 천주교와 김영훈과는 인연이 깊었다.
비록 나이가 들면서 불교로 개종아닌 개종을 했다고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천주교에 대한 애정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앞에 앉아 있는 한상덕도
한국에 있을 때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지 않는가.
김영훈은 난감했다. 아니 괴로웠다.
자신이 한 때 그토록 신봉하던 천주교를 믿는 자신의 조상들이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것은 한상덕도 마찬가지였으니, 자신의 손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이었기에 그런 괴로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민승호가 남종삼을 만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파악된 것이 없습니까?"
이미 낮에 그에 대한 보고와 이유에 대한 예상까지 보고 받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묻는 김영훈이었다.
괴로운 것은 한상덕도 김영훈 못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피를 흘리고 일을 수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한상덕은 오늘 낮에 민승호와 남종삼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저들이 법국의 군대를
끌어올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이미 한 바 있었다. 진정 괴로운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두 사람이 그토록 애정을 가지고 있는 천주교에서 나라를 팔아먹는 그런 일을 실제로
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두 사람을 사로잡고 있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음..."
"..."
"지금까지 파악한 연루자가 얼마나 된다고 그랬죠?"
"이최응을 비롯한 종친부에서 열 두 명이고, 민씨 일파가 부대부인을 포함해서 모두
열 명이며, 남종삼을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도 상당수 연루되어 있는 상태고, 전
형조판서 심의면을 비롯한 청송 심씨 일파 역시 상당한 숫자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조연과 연안 이씨 문중에서도 다 수가 이번 역모에 가담한 것을 파악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부 구신(舊臣)들과 검계의 왈짜들, 전 대전별감(大殿別監)이었던 자들
일부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기하급수(幾何級數)적으로 불어나게 됩니다."
"...음..."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태까지 자신의 영달(榮達)과 사리사욕(私利私慾)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이
나라 조선과 이 나라의 이름 없는 백성들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왔다고
자부하고 있는 김영훈이었기에 그 충격과 괴로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럴
때는 섭정공이고 뭐고, 개혁이고 뭐고, 하는 이런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만 싶었다.
"일단 남종삼이 추진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세요. 한원장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괴롭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남종삼에게 민승호가
왜 접근했는지? 남종삼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는데 주력하세요. 아울러, 모든 대정원 요원들과 경무청의 수사관들,
경무관들에게 일급 비상경계령을 하달하도록 하구요. 그러나 절대로 저들에게 그런
눈치를 채게 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일을 은밀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지시하는 김영훈의 얼굴도, 그 지시를 받는 한상덕의 얼굴도 펴질지를 몰랐다.
이래저래 두 사람에게는 오늘밤이 괴로운 밤이었다.
(*1)천주교에서 시행하는 일종의 자기 수행으로 모든 일상에서 벗어나 기도, 묵상
등을 통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은 피정이라는 줄임말을
사용한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60 휘몰아치는 태풍(颱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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