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종삼은 지난 봄에 민승호 일당의 거사에 동참하기로 약조를 하고 나서 충청도 배론(
舟論)으로 내려갔다. 베르뇌 주교가 황해도 이북으로 올라가는 것을 잡지 못하고,
잠시 서울에 머물렀지만 마음의 갈등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고향인 충청도 제천 땅과
가까운 배론 신학당에서 잠시 피세정념(避世靜念)(*1)하며 묵상할 생각을 한 것이다.
아무리 천주교를 조선 땅에 선교하는 것이 자신의 일생일대의 과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외이(外夷)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것에 대해 혼란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한 때는 임금의 승지로서 이 나라 조선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그러던 그였기에 자칫하면 멸문의 화(滅門之禍)는
물론이고, 이 땅에 천주교의 씨앗이 채 퍼지기도 전에 몰살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에 대해, 과연 이일이 옳은 결정인가 하는 회의(懷疑)가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여 남종삼은 곧바로 제천으로 내려와 배론 신학당에서 머물며 천주님께 자신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인가에 대해서 묻고, 또 물었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다.
충청도 제천 땅에 있는 배론의 천주교 역사는 꽤나 오래되었다.
1791년 신유대박해를 피해 숨어든 일단의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황사영 백서사건의
주인공인 황사영도 이곳에 배론에서 잡혀 결국 죽음을 당하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배론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다가 1855년 천주교도인 장주기(요셉)의 집에 조선 최초의 신학당이 설립되었고
그 책임자로 푸르티에 신부가 부임하기에 이른다. 조선 교구장 베르뇌 주교는 1861년
배론 신학당을 '성요셉 신학교'라고 명명하고 1865년에는 4명의 조선인 신학생이
이곳에서 신학과 라틴어에 대한 수업을 받고 있기도 했다.
한동안 배론에 머물면서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던 남종삼은 서울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서울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교우들의 소식도
궁금하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결심을
민승호를 비롯한 그의 일당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서울에 마땅한 거처가 없는 남종삼은 태평동의 홍봉주의 집에 머물면서 민승호와의
만남을 시도하는데 자신이 홍봉주의 집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민승호와
민치상이 먼저 찾아왔다.
민승호는 이미 남종삼이 서울에 마땅한 거처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홍봉주의
태평동 집으로 무작정 찾아온 것인데 공교롭게도 남종삼이 서울로 상경한 것이 바로
어제였기에 이렇게 남종삼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민승호는 그동안 수 차례에 걸쳐 이곳 홍봉주의 집을 방문하여 남종삼에 대해서
물었는데 그것은 그만큼 애가 닳은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남종삼을 비롯한
천주교 세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부족했다는 의미도 있었다.
"영감, 결단을 내려주셔야 겠소이다."
민승호는 민치상이 말을 하기도 전에 대뜸 이렇게 남종삼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남종삼은 다짜고짜 이렇게 몰아 부치는 민승호의 행동에 내심으로는 기분이 언짢음을
느꼈지만 이들이 이렇게 다급하게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먼저 궁금했다.
"좀 차근차근히 말씀해보시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오이까?"
"저들이 아라사와 손을 잡으려고 하고 있소이다."
"예?"
남종삼도 역시 민승호가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라는데,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민치상이 말한다.
"제가 오늘 외무부에서 한 장의 문서를 발견했는데 바로 외무대신 유후조와 아라사의
총독과의 사이에서 오갔던 서신이었소이다."
"그게 사실이오이까?"
"그렇습니다. 영감. 이제 영감께서 결단을 내려 주셔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민승호가 민치상이 말하는 데 끼어 들어서 부가 설명을 한다.
아무래도 민승호가 이번 일의 주동자이니 그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미 우리는 모든 거사 준비를 마친 상태이옵니다. 이제 영감께서 법국의 군대만
몰고 오신다면 우리의 거사는 바로 시행될 것이옵니다."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오. 당최 정신이 없어놔서..."
"좋습니다. 다 말씀드리지요. 이미 흥인군 이최응 대감을 비롯한 몇 몇 종친부의
인사들이 우리편에 가담한 사실은 영감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겝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귤산 이유원 대감께서도 우리편에 합류하셨사옵니다."
"귤산 대감까지요?"
남종삼은 설마 이유원까지 합류한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해연히 놀란다.
이유원이 누군가? 바로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직계손(
直系孫)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이유원은 지난 순종 시절과 철종 시절에 공조 판서와
이조 판서를 두루 역임한 문신 이계조(李啓朝, 1793∼1856)의 아들로 명망있는
중신이 아니던가. 그런 이유원까지 거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남종삼은
그동안 참여냐 불참이냐로 갈등했던 것이 봄 눈 녹듯이 사라짐을 느낀다.
"거기에 귤산 대감께서는 휘하에 막강한 사병을 양성하시고 계십니다. 영감께서
법국의 군대를 부르고, 그 법국의 군대가 강화도로 침입하는 경우엔 저들이 조련한
군사들도 모두 강화도 일대로 몰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옵니까?"
"그렇지요..."
민승호는 일부러 남종삼의 동의를 유도하기 위해 이렇게 물었는데 역시나 세상
돌아가는 물정에 어두운 남종삼은 민승호의 그런 물음에 저도 모르게 동의를 하고
말았다.
민승호는 일이 잘 돌아감을 느끼면서 계속 말을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 도성 안의 방비는 허술해 질 것은 분명한 일이옵고, 또 우리가
도성 안에서 내응하기만 한다면 이유원 대감의 군사들이 도성으로 진격하여 저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울 것이 아니옵니까?"
"과연..."
"그런데 이렇게 영감께서 이렇게 미적거리기만 하시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니옵니까?"
"으...음..."
남종삼은 민승호의 자못 힐난하는 투의 말투가 귀에 거슬리기는 하였으나 그의 말에
가시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따지지는 않았다.
남종삼이 법국의 선교사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법국과 아라사와의 관계에 따르면
아라사와 법국은 이미 큰 전쟁을 몇 차례나 치른 경력이 있었다. 더군다나 서양의
대국인 아라사가 조선에 진출한다면 법국으로서는 껄끄러운 상대인 아라사를
의식해서라도 조선으로의 출병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생각에 잠긴 남종삼의 마음에 쐐기를 박는 소리를 하는 민승호였으니, 그것은
다름아니라 도성 안에서 소요를 일으키며 내응할 세력에 대한 얘기였다.
"이미 이유원 대감의 사병은 모두 총포로 무장을 끝낸 상태이며 언제라도 출병(出兵)
할 만반(萬般)의 준비가 모두 끝났으며, 도성 안에서 내응할 검계의 조직원들에게도
무기가 속속 지급되고 있소이다. 이제 영감의 결단만이 남았소이다."
"지금 검계라고 하시었소?"
"그렇사옵니다."
남종삼은 더 이상 망설일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검계라면 충분히 도성 안을 소란스럽게 만들 수 있는 존재였으며,
그 검계의 조직원들이 안에서 내응을 한다면 천하의 천군이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남종삼이었으나 만일을 위해 쐐기를 박아둘 필요는 있었다.
"한가지 약조를 해주시겠소이까?"
"무슨 약조 말이옵니까?"
"지난번에 한 약조 말이오이다. 그것을 문서로 남겨주실 수 있겠소이까?"
"문서로 말입니까?"
"그렇소. 천군을 몰아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기만 한다면 법국과의 수교는
물론이고 우리 천주교에 대한 선교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문서 말이오이다."
남종삼은 마지막 패를 던진 심정이었다.
어차피 이들과 협조를 하기로 한 마당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으로 얻을
생각이었다.
천주교의 선교는 물론이고 법국과의 정상적인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다시는 지난
신유박해(辛酉迫害)와 같은 참담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내건
조건이었다.
민승호는 그런 남종삼의 생각을 이미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역시 남종삼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좋습니다. 제가 약정서(約定書)를 써 드리지요."
"고맙소."
남종삼은 이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지필묵을 꺼내서 건넨다.
민승호는 남종삼이 건네준 지필묵을 받아서 먹을 갈더니만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써
내려간다. 약정서를 다 쓴 민승호는 먹이 잘 마르도록 입김을 몇 번 불더니, 먹이 다
마르고 나자 그것을 남종삼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여기 있소이다. 이제 영감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법국의 군대를 불러올 방법만
강구하시면 됩니다."
"알겠소."
남종삼은 민승호가 써준 약정서를 훑어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종삼에게 민치상이 묻는다.
"영감, 어떤 방법으로 법국의 군대를 불러오실 생각이오?"
"아! 그거요? 그것인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소이다."
"생각해 둔 것이라면...?"
"우리 천주교의 선교사 중에서 법국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부탁한다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소이다."
"저번에 뵌 적이 있는 그 장경일 주교라는 분을 말씀하시는 겝니까?"
민승호는 이미 장경일 주교를 한 번 본 적이 있기에 이렇게 물었다.
그러나 장경일 주교만이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를 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이미 법국의 선교사들은 열 세 명이나 조선에 와서 몇 년씩 선교를 해오고 있었기에,
누구라도 편지를 써서 보내면 법국의 아시아 함대는 내일이라도 달려올 것이었다.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지금이라도 내가 편지를 써서
그분들에게 보내기만 하면 그분들은 당장 청국으로 갈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법국의
군대가 오는데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을 것이오."
남종삼의 이런 장담에 민승호와 민치상의 얼굴에는 화색이 절로 돌았다.
앞으로 한 달만 참고 있으면 자신들이 그토록 그리던, 자신들의 세상이 온다는
생각에 희열(喜悅)을 감추지 못하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