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외무부를 이렇게 뛰쳐나온 민치상은 그 길로 안국동 민승호의 집으로 향했다.
민승호는 마침 집에 있었다.
민치상이 기별도 없이 자신의 집에까지 찾아오자 민승호는 버선발로 마당까지
뛰어나와 인사를 한다.
"어인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 영감."
"일단 안으로 들어가세."
민치상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느낀 민승호는 서둘러 안으로 민치상을 모신다.
자리에 안자마자 민치상은 자신이 이렇게 급하게 찾아온 용건부터 꺼낸다.
"큰일났네."
"큰일이라니요?"
"내 방금 외무부에서 나오는 길이네만, 저들이 아무래도 아라사와 손을 잡으려고
하는 모양이네."
"예? 아라사와요?"
민승호는 아닌 밤중의 홍두깨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남종삼이 자신들과 손을 잡는 다는 말만하였을 뿐 그 일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었기에 초조하기 이를 데 없는 요즘이었는데, 민치상이 가져온 소식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아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민승호였다.
사실 이미 모든 거사(擧事) 준비는 끝이 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도성 밖 수원 유수(留守) 이유원과도 입을 다 맞춘 상태였으며, 이유원이 숨겨둔
사병(私兵)들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을 하면 내응(內應)할 세력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이제는 자신들의 거사를 실행에 옮기는 일만이 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까지 거사의 실행을 주저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영훈과
천군의 군사들이 두려워서도 아니었고, 어린 임금의 반대가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남종삼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거사에서 남종삼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였으나, 그의 역할까지 미미한
것은 아니었다. 남종삼은 바로 법국의 군대를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종삼이 불러올 법국의 군대가 강화도에서 분탕질을 하면 저들의 군세가 강화도로
몰릴 것은 자명한 이치였고,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도성의 방비는 소홀할 것이며,
그나마 있는 군세도 어수선할 것이 분명하였다.
이때를 기해 이유원의 사병이 도성으로 진격을 하고, 또 도성 안에서 자신들의
세력이 내응하기만 한다면 일은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남종삼이가 아직까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미적 미적거리고 있는 게
문제였다. 이런 상태에서 저들이 아라사와 손을 잡는다면 법국은 서양의 강대한
나라인 아라사와의 외교문제를 생각하여 쉽사리 조선으로의 출병(出兵)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으니 이렇게 민승호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둔기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민승호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자세한 사정을
파악해야만 했다.
"영감! 그것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내가 방금 외무부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짐작이나 하시겠는가?"
어린 임금의 외숙부가 되는 민승호였기에 문중(門中)의 어른인 자신일지라도 함부로
해라 하는 말투를 사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민승호에게 하게 하는 말투를
사용하는 민치상이었다. 민치상은 다시 말을 한다.
"그것은 바로 아라사의 총독이 외무대신 유후조에게 보낸 서신(書信)이었네."
"예? 서찰요?"
"그렇다네, 이미 저들은 유후조 명의(名義)의 서신을 보냈고, 이번에 아라사에서 그
답신이 온 모양이네."
민치상은 정확하지 않은 단편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넘겨짚어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그 답신을 들킨 외무부 관헌이 저간의 모든 일을 사실대로
알려준 것도 아닐 뿐더러 너무 흥분한 나머지 사실여부의 확인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유후조에게 가서 따졌던 민치상으로서는 그렇게 오해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요?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급히 자네를 찾아왔겠는가?"
"음..."
민승호는 깊은 침음성을 흘렸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일을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잠시 암담(暗澹)한 마음에 정신을 못 차리던 민승호는 결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이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
"제가 당장 남종삼 영감께 가겠습니다."
"가서...?"
"어떻게 하든 남종삼 영감에게 움직일 것을 종용(慫慂)해야지요."
"음..."
민승호의 말에 민치상도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어차피 거병을 계획한 것부터 돌아올 수 없는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네, 나도 자네와 같이 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