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10화 (108/318)

104.

최현필과 대정원 요원들은 무라비예프의 지시를 받은 연해주 군무지사 후루겔름( )의

안내를 받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치진헤를 비롯하여 양치헤, 시지미, 차피고우 등의 조선인 정착촌을 둘러보았으며,

그들의 생활상을 소상히 기록하였다. 그 외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군영이 세워져 있는

노브고로드, 크라스노까지 방문하여 세밀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파악하였다.

이런 그들의 조사에는 치진헤에서 최현필과 조우한 노브고로드 경비대장 레자노프가

병력을 이끌고 항상 동행하면서 경호 겸 감시의 임무를 펼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최현필 일행에게 극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관리들은

최현필 일행에게 최대한의 협조를 아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연해주 일대를 구석구석 돌아본 최현필과 대정원

요원들은 다시 녹둔도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한 여름이 시작된 지 오래인 7월 중순이 다된 시점이었다.

러시아로 넘어간 때가 지난 5월 1일이었으니 두 달하고도 보름이 다되어서야

조선으로 돌아온 것이다.

경흥부에 도착한 최현필은 일단 파발을 서울로 띄워 오매불망(寤寐不忘) 자신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섭정공 김영훈에게 자신들의 무사귀환 소식을 알리고, 다시

김개똥 삼 형제를 비롯한 몇 명의 요원들을 러시아로 밀파하여 좀 더 세밀한 정보를

알아오도록 지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고 많았다. 최 중위."

김영훈은 일부러 자신의 옛 부하인 최현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어엿한 근위천군의 마군대대장에 소령의 계급을 달고 있지만 원래는 특수

수색대의 소대장에 불과했던 최현필이었으니 상관인 김영훈이 이렇게 친근하게

불러주는 것이 오히려 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수고는요..."

7월 말이 다 되어서야 서울에 돌아온 최현필과 대정원 요원들은 김영훈에게 러시아

방문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이렇게 바로 운현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말한 최현필은 보고서를 몇 장 꺼내더니 김영훈과 한상덕에게 건넨다.

"이것은 무라비예프가 보낸 답서이고, 또 이것은 이번에 저희가 얻은 정보들입니다.

거기에는 우리 조선의 유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몇 군데의 러시아 군영에 대한

기록도 있습니다."

무라비예프가 썼다는 친필 답서는 알아볼 수 없는 말이 잔뜩 러시아 어로 써 있었다.

김영훈은 잠시 그것을 살펴보다가 한상덕에게 넘기고, 번역을 할 것을 지시한다.

이어서 보고서를 살펴보던 김영훈은 러시아에 거주하는 조선인 유민들의 숫자가

의외로 많은 것에 놀라며 이렇게 묻는다.

"우리 조선인 정착민들이 이렇게나 많은가?"

"그렇습니다. 사령관 님. 이번에 저희가 알아본 바로는 총 다섯 군데의 조선인

정착촌이 있었으며, 그 수는 무려 1800명에 달합니다."

"그래...?"

"예. 우리 천군이 등장한 후에는 러시아로 월경하는 유민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전에 이미 홍경래의 난을 피해서 월경한 유민들이나, 지방관헌들의 착취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피해 달아난 유민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조선 유민들의 숫자에 잠시 당황한 김영훈이었다.

물론 앞으로를 위해서라면 유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었지만, 그동안 이들

유민들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자책감이 심하게 들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저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이렇게 지시한다.

"한 원장!"

"예, 사령관 님."

"동학의 최제우에게 연락해서 러시아에 있는 우리 유민들을 결속할 방법을

강구하도록 하세요. 이왕이면 그쪽에 동학을 퍼트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학을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김영훈은 조선인 유민들이 그동안 조국을 떠나서 살아왔어도 그 정신만은

살아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동학으로 하여금 조선 유민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점(求心點) 역할을 하게 할 생각이었다.

김영훈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최현필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번에 무라비예프가 우리 조정에 선물을 보내왔는데 군마(軍馬)를 오십 필이나

보내왔습니다."

"그래...?"

러시아가 사용하는 군마는 당당한 체구에 빠르기가 여느 말보다 월등하였다. 그러나

단점이 있는데 지구력이 약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부터 몽골에서 들여온 군마는 체구는 러시아 말보다 작고 빠르기도 약했지만

지구력이 뛰어난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무라비예프가 우리가 선물로 준 자기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자기를...?"

이번에는 한상덕이 나서며 이렇게 물었다.

선물을 준비한 이가 바로 한상덕이었는데, 자신의 기억으로는 홍삼을 보냈지, 자기를

보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삼을 넣은 자기 있잖습니까?"

"쥬신상사의 광주요(窯)에서 생산된 그 자기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기야 쥬신상사의 광주요에서 생산된 자기는 이미 나가사끼의 외국 상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으니, 러시아 촌놈인 무라비예프의 눈이 돌아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김영훈은 잊고 있던 것이 생각이 난 듯 묻는다.

"그리고 따로 요원을 보내 세밀한 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했나?"

"그렇습니다. 이미 김개똥 삼 형제와 몇 명의 잠입과 정찰에 능한 요원들을 딸려

보냈으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사령관 님."

"그래 잘했다. 최 중위, 정말 수고했어, 이제 그만 가보게. 안 그래도 자네 부인이

자네를 눈이 빠지라고 기다리고 있겠구만... 우리가 너무 오래 잡아둔 것 아닌가

몰라...? 하하하"

"하하하..."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그리고 중대장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충성."

"충성, 고생했다."

최현필이 나가자 한상덕은 김영훈에게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사령관 님. 러시아와 정식 수교까지는 아니더라도 통상 정도는 허락을

하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통상 정도는 가능하지..."

"그런데 왜...?"

"왜 통상에 대한 제의도 하지 않았느냐?"

"그렇습니다."

한상덕은 무라비예프가 자기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는 최현필의 말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장 막대한 이득을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한상덕이었다.

그런 한상덕의 의문을 김영훈은 잘 알고 있었다. 김영훈은 천천히 담뱃대에 담배를

재면서 지포 발화기로 불을 당기고 한 모금 빨아재끼며 거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데,

"사실 우리가 저들에게 팔 수 있는 물건이야 많지요, 그런데 내가 왜 저들과의

통상을 허락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더 큰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더 큰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에도 내가 한 원장에게 말했듯이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파는 때는 아직도

2년이나 남았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먼저 저들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아무런 관계가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이 알래스카를 매입할 의사를 나타낸다면 저들은 분명히 그 이유에

대한 의심을 할 것이오. 혹시 거기에 자신들이 모르고 있는 뭔가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자칫하면 가격이 뛸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군요..."

"나는 최대한 저들이 애가 닳을 정도로 천천히 관계를 진척시킬 것이오. 그리고

통상에 관한 것도 저들이 먼저 원하는 형식을 취해야지 우리가 원하는 형식을

취했다가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어차피 알래스카는 우리가 얻을 수

있습니다. 조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에요... 천천히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 님, 그러나 경흥부사는 교체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흥부사를요?"

"그렇습니다."

한상덕은 이렇게 말하며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들과 통할 수 있는 관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의 김기배와 같은 용렬한 위인에게 중요한 러시아와의 일을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그럼 누가 좋을까요? 최현필이가 가장 적임자기는 한데 그 친구는

죽어도 군인으로 남고 싶다고 할 것이고..."

"최현필이는 지가 안 한다고 할겁니다. 차라리 우리 천군 중에 러시아어에 정통한

민간인에게 맡기는 것은 어떨까요? 아울러서 북병사 이남식도 교체하는 겁니다."

"이남식이까지요?"

"그렇습니다. 이남식이야 어차피 전대 왕부터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자니까 이제 바꿀

때도 되었습니다."

한상덕의 말이 맞았다.

그동안 김영훈이 집권한 후로 전국의 병마사와 지방 수령들을 천군으로 임명한다든지,

아니면 김영훈의 지시를 잘 수행하는 조선인 관헌들로 교체하였는데, 김기배와

이남식 만큼은 아직까지 교체하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교체하여 새롭게 떠오른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다.

"한 원장이 알아서 하세요... 그나저나 저들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저들이

화승총을 제조하는 공장은 파악이 됐습니까?"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응...?"

한상덕의 말에 김영훈은 의구심이 들었다.

앞에 있는 놋쇠 재떨이에 담뱃대를 탕탕 털며, 자신을 쳐다보는 김영훈에게 한상덕은

이렇게 말한다.

"남종삼이를 비롯한 천주교 세력이 저들과 접촉한 사실은 있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합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좀 이상합니다."

"일단 그 문제는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이렇게 말하며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지시를 하는데, 그 내용을 통

알 수가 없었다. 김영훈의 귓속말을 들은 한상덕은 자신의 무릎을 한 손으로 탁 치며,

"아! 그러면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아마 그렇게 하면 저들이 움직일 겁니다."

"정말 그렇군요... 참 한가지 더 보고를 드릴게 있습니다."

"뭡니까? 말씀하세요."

김영훈은 한상덕이 보고할 게 또 있었나 하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한상덕은 김영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저들이 검계(劍契)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뭐요? 검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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