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08화 (106/318)

102.

두만강을 건넌 대정원 요원들과 김개똥 삼 형제는 먼저 녹둔도를 지났다.

일행이 지나온 녹둔도는 말이 섬이지 실상은 육지와 연결된 지 오래였다.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는 1800년대 이후 두만강 상류의 모래가 유속(流速)에

밀려 내려와 녹둔도와 그 대안(對岸) 사이에 퇴적하여 러시아 쪽 육지와 연결되었다.

겨우 둘레가 8㎞ 남짓한 조그만 섬이었지만 수 십호의 인가가 있어

벼·조·옥수수·보리 등이 재배되고 있었으며, 세종대왕 시절 6진(鎭)을 개척하면서

세웠던 토성과 목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러시아 땅으로 접어든 일행은 중간에 한 무리의 야생 사슴 떼를 발견하였는데,

크기가 조선에 살고 있는 보통의 사슴보다도 훨씬 큰 엘크과(科)의 대형 사슴이었다.

짱께들은 그 사슴을 일컬어 말과 같이 크다하여 흔히 마록(馬鹿)이라고 불렀으며,

붉은 색의 가죽을 가지고 있다하여 붉은 사슴(赤鹿)이라고도 불렀다.

일반적으로 사슴이라면 온순하고 연약한 동물로 알려지고 있었으나 마록은 들소처럼

사납고 강한 동물이다. 붉은 사슴이 다 그런 것이 아니고 북만주와 연해주 일대에

사는 마록과 그의 동족인 북미에 사는 엘크만이 그렇게 성질이 달랐다.

마록은 그 크기에서 일반 사슴들과 전혀 달랐다.

우선 큰놈은 키가 거의 160Cm이 넘었으며 몸무게는 자그마치 450Kg에 이르는 대형

사슴이었다. 그렇기에 말 사슴이라는 뜻의 마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리라.

평소 같으면 마록 떼를 발견한 김개똥 삼 형제가 숫사슴을 잡아서 녹용을 채취하였을

것이지만 중요한 임무를 띄고 가는 형편에 함부로 총을 쏘고 피를 볼 수 없는

일이었기에 사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이렇게 마록 떼와 헤어진 일행은 포시에트만을 지나, 노브고로드의 조선인 유민들이

건설한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경흥 땅을 떠난 때가 4월 29일었으니, 이틀만에 노부고로드에 온 것이다.

일행이 머물고 있는 조선인 유민의 마을은 정확히는 노브고로드 지역에서 약 15km

정도 떨어진 치친헤강 하구의 조선인 정착촌이었다. 이 조선인 유민의 마을은 2년

전인 지난 1863년에 함경도에서 건너온 유민 약 20가구가 건설했는데 그 뒤에 유민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지금은 그 수가 늘어 약 47가구 200여 명이 넘는 마을이

되었다. 일행은 여기에서 잠시 쉬면서 평소에 김개똥과 모피 거래를 하던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경비대장 레자노프( ) 중위를 만날 예정이었다.

이미 김개똥의 막내 동생을 경비대에 보냈기에 이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비적이나 약탈자들은 만나지 않았다. 뭐 그들을 만난다고 해서 그런

거적때기 같은 것들에게 당할 대정원 요원들이 아니었지만 일단 말썽은 피하는 게

좋은 일이다.

완만한 구릉지대에 자리잡은 조선인 정착촌은 뒤로는 병풍 같은 수림(樹林)이

자리잡고 있고 눈앞으로는 논과 밭이 줄을 지어 있는 전형적인 조선의 농촌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최현필은 지금 일행이 묵고 있는 촌장의 집 뒤에 마련된 허름한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고 있었다.

자신이 타고 온 말과 일행이 타고 온 말을 합쳐 모두 열 마리가 넘는 말을 일일이

말잔등을 닦아주고, 발굽을 확인하여 혹시 편자가 잘못되지나 않았나 신경 쓰는

모습이 마군대대의 대대장다웠다.

아직 전차가 없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기마대가 발전하여 기갑부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에 최현필은 그런 대로 마군대대의 일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최현필이 마군대대의 대대장이 되는 길은 험난했다.

우선 말이라고는 거의 타보지 않았던 최현필이었기에 조선에 와서 기마술(騎馬術)을

익히고 마상재(馬上才)을 연마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마입마상(走馬立馬上 달리는 말 위에 서서 총쏘기), 우초마(右超馬

우칠보右七步라고도 하며, 말 오른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좌초마(左超馬

좌칠보左七步라고도 하며, 말 왼쪽에 매달려서 달리기), 마상도립(馬上倒立 말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달리기), 횡와양사(橫臥佯死 말 잔등에 누워서 죽은

듯이 달리기), 우등리장신(右裏藏身 속칭 우장니리右障泥裏, 말 오른쪽에 엎드려

숨어서 달리기), 좌등리장신(左裏藏身 속칭 좌장니리左障泥裏, 말 왼쪽에 엎드려

몸을 숨겨 달리기), 종와침마미(縱臥枕馬尾 말꼬리를 베고 자빠져서 달리기)

이렇게 여덟 가지로 이루어진 마상재를 숙달하기 위해 최현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말

위에서 떨어져야했으며, 매일같이 멍들고 다쳐서 집에 돌아오는 통에 갓 결혼한

아내의 속을 태우기 일쑤였다.

덕분에 이제는 누구 못지 않게 마상재의 달인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쓴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다.

최현필이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고 나오는데 멀리에서 먼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최현필이 보기에 김개똥의 막내 동생과 노브고로드 경비대장 레자노프 중위인 것

같았다.

최현필은 얼른 집으로 들어가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놨다.

최현필이 밖으로 나오자 이미 러시아 경비중대원들과 김개똥의 막내 동생이 말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레자노프 중위입니다."

약간은 황인종의 피가 섞인 것 같은 피부색을 한 레자노프가 최현필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김개똥의 막내 동생으로부터 최현필이 근위천군의 마군대대장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자신과 비슷한 나이또래의 최현필을 향해 경례를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안녕하시오, 중위. 나는 조선국 근위천군 마군대대장 최현필 소령이오."

최현필은 이렇게 답례하며 악수를 청하는데 오히려 놀란 것은 레자노프였다.

레자노프가 비록 175Cm의 러시아 군에서는 비교적 작은 키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보다 키가 큰 동양인을 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최현필은 자신보다

10Cm는 더 커 보였으니 놀라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최현필이 늠름하게

경례를 받으면서 악수를 청함에야... 더군다나 최현필이 정확한 러시아어로 인사를

하는 것에는 까무러칠 뻔하였다.

최현필의 안내로 조선의 대정원 요원들과 인사를 나눈 레자노프는 최현필을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

최현필이 머물고 있는 촌장의 집은 한 쪽에 온돌이 놓여 있는 침상이 있었고, 취사를

할 수 있도록 화덕이 따로 놓여 있는 게 약간은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널찍한 공터 비슷하게 생긴 공간에 커다란 탁자와 의자 몇 개가 놓여져 있는

것이 조선의 집과는 그 구조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다.

최현필과 박승인 그리고 김개똥이 한 자리를 차지하여 앉았고, 레자노프를 비롯한 몇

명의 러시아군이 그 반대에 앉았다.

레자노프는 최현필이 정확한 러시아말을 하는 것을 들었기에 거리낌없이 러시아말로

이렇게 묻는다.

"소령님께서 이렇게 러시아 땅을 방문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군인답게 일체의 외교적인 수사를 배제하고 단도직입으로 이렇게 묻는 레자노프의

물음에 최현필도 시원하게 대답을 한다.

"본관은 귀국(歸國)의 동방방문 사절단이 지난해(1864년) 아국 조정에 요청한

통상요구에 대한 답신을 귀국의 동(東) 시베리아 총독각하께 전달하기 위해 왔소.

아울러 귀국에 무단 월경한 아국 백성들의 정확한 숫자와 그들의 생활상을

확인하고자 하소."

최현필의 이와 같은 말에 레자노프는 크게 고무된 표정이다.

레자노프는 지난해에 러시아에서 통상을 요구하는 서신을 조선에 전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답신을 받지 못하였기에 이미

러시아의 동방 방문 사절단이나 시베리아 행정청에서는 그 일을 포기하고 있는

지경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이번 일이 잘되면 자신의 출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앞섰기 때문이다.

레자노프는 다시 한 번 최현필에게 묻는다.

"소령님의 그 말씀은 아국의 총독각하를 뵙고 그 답신을 전달하고 싶다는 말씀입니까?

"

"그렇소. 본관은 귀국의 무라비요프 총독각하를 뵙고 아국 조정의 답신을 직접

총독각하께 전달하고 싶소."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57 개혁(改革)의 첫걸음...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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