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저희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일이 늦어지게 되어서 송구할 뿐입니다요."
김개똥 삼 형제는 며칠 전 만주까지 갔던 호랑이 사냥을 마치고 무산으로
돌아오자마자 무산군수의 전갈을 받았다.
무산군수의 전갈을 받은 김개똥 삼 형제는 부랴부랴 경흥까지 달려와 이제야 도착한
것이다.
지금 최현필이 머물고 있는 관사의 한 방에서는 김개똥 삼 형제를 비롯해 대정원
요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자 분분히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박승인을 비롯한 몇 명은 이미 김개똥 삼 형제와 지난해(1864년) 외몽골까지
잠입하여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기에 몇 달만에 다시 보는 김개똥 삼 형제와의
해후(邂逅)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할 일은 뭡니까요?"
맏형인 김개똥이 이렇게 물었다.
김개똥으로서는 조정에서 자신들을 찾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정작 무슨 일로
자신들을 찾는지는 모른 채 부랴부랴 경흥까지 왔으니 그런 궁금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사냥꾼답게 김개똥과 그의 동생들은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었다.
최현필은 그런 다부진 체격의 김개똥 삼 형제가 믿음직스러웠다.
잠시 김개똥 삼 형제를 바라보던 최현필은 자신들의 이번 임무와 김개똥 삼 형제가
해 주어야 할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한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러시아에 가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러시아의 동 시베리아 총독과 면담을 해서, 러시아와 우리 조선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고, 두 번째로는 몇 년 전부터 러시아로 무단 월경한 우리 조선 백성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조선으로 귀환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구요."
최현필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김개똥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어떻습니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잠시 생각을 하던 김개똥은,
"저희 같은 미천한 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해 드려야지요. 그런데
러시아 쪽은 사냥꾼을 노리는 약탈자들이나 비적(匪賊)들이 횡행하는 지역입니다.
저들 러시아의 관헌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치안 상태가 썩 좋지만은 않습니다요.
그리고 나으리께서 말씀하신 조선 유민(流民)들 문제는 그동안 제가 러시아 땅을
왕래하면서 봐온 것 만해도 상당합지요. 그러나 그들 유민들이 우리 조선 땅으로
다시 귀환할 지는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요."
"아니 왜요? 조선사람이 조선 땅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니 도대체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김개똥의 이와 같은 말에 옆에서 듣고 있던 박승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이렇게 말했다.
사실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었다.
조선 사람이 조선 땅으로 돌아오기를 싫어한다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 이유는 너무도 간단하다.
당시 러시아로 건너간 조선 유민들 대부분이 19세기 초에 발생한 홍경래의 난의
여파로 거기에 연루된 일부의 유민들이 월경을 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유민들은
지방관아나 토호(土豪)들의 착취를 견디지 못하여 일가족을 이끌고 야반도주(
夜半逃走)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난 1863년에 벌어진 삼남 지방의 민란의 여파로 월경한 유민들도 상당하였다.
이러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유민들이 대부분인 상태에서 천군의 등장과 달라진
조선의 실상을 모르는 유민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모르는 조선 땅으로
어떻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 설사 조선의 이러한 변화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섣불리 조선 땅으로 돌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러시아 측의 기록을 살펴보면 한 가지 주목할 대목이 있다.
1869년 12월 러시아 연해주 군무지사 후루겔름( )은 조선의 함경도 경흥군수와
협상하여 국경을 넘어온 한인들을 되돌려 보내려 했다. 회담 결과 이들의 반응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경흥군수는 세금감면과 현지관리나 시장에서의 전횡을
제거하겠다고 공표하였고 조선 정부 역시 월경자들이 고향마을로 되돌아올 경우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식료품과 옷, 토지 등을 제공하고 오래된
부채와 체납금을 경감해 주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해주로
건너간 조선 주민들은 귀국하기를 거절하였다(*3)
김개똥의 이런 설명을 들은 최현필은 가만히 침음성(沈吟聲)을 삼킨다.
어차피 월경한 유민을 데려오는 것이 이번 러시아 방문의 목적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앞으로를 위해 러시아 측과 접촉하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을 위해
러시아 측에 살고 있는 유민들의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
이었다.
굳이 러시아 땅에 터전을 일구고 살고 있는 유민들을 억지로 끌고 올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앞날을 위해서라도 좀 더 많은 조선 사람들이 그 지역으로 이주하여 살았으면
하는 생각까지 하는 최현필이었다.
"유민들을 억지로 귀환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그 문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만
유민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필요성이 있지요."
"알겠습니다요, 저희 형제와 교류하는 러시아 관헌들이 몇 명 있으니, 일단 러시아
땅으로 건너가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동 시베리아 총독부와 선(線)이 닿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요."
아무래도 사냥을 업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김개똥 삼 형제이다 보니 모피의 가치를
알아주는 러시아 측 관리들과의 안면도 당연히 있었다.
조선에서는 호랑이를 잡으면 산군(山君)을 죽였다고 해서 관아에 끌려가 형식적인
취조와 곤장 몇 대를 맞고 잡은 호랑이의 가죽은 빼앗기기 일쑤였으니 김개똥 삼
형제가 좀 더 좋은 대접을 해주는 러시아 관리들과 선이 닿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개똥은 이렇게 말한 후, 최현필과 상의하여 내일 러시아를 향하여 출발하기로
결정하였고, 일행이 사용할 물품들과 러시아 측에 전달할 선물로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홍삼(紅蔘)을 점검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쳤다.
이제 내일이면 러시아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