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103화 (101/318)

98.

지난 3월 중순 서울을 출발한 특수수색대 2중대 1소대장 출신의 최현필 중위와

행보관 출신의 박승인을 포함한 7명의 대정원 요원들은 3월 하순에 함경도 함흥에

도착했다.

최현필은 특수수색대 1중대 1소대장 출신으로 지금은 근위천군에서 복무하고

있었는데, 한상덕이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초빙한 요원이다.

최현필은 ROTC 출신의 특전사 장교로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천군에서는

드물게 있는 러시아에 정통한 인물이었기에 이번 임무의 적임자로 판단되어 이렇게

대정원 요원들을 이끄는 비밀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물론 천군에는 민간인 러시아

전문가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민간인을 파견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있었기에 최현필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원래가 특수전을 전문으로 하는 특전사의 장교였지만, 군에 입대하기 전부터 본디

품었던 꿈은 기갑 사단장일 정도로 독일군 기갑부대의 매니아를 자처하는 약간은

특이한 인물이 바로 최현필이었다.

최현필은 특수수색대 1중대장인 한상덕이 대정원을 설립하고 초대 대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인 과거의 1중대원 상당수를 차출하여 대정원으로

끌어갔는데도 자신은 죽어도 군인으로 남고 싶다는 생각에 상관을 따라가지 않은

특이한 인물이었다.

야전군으로 끝까지 남아 이마에 왕별을 달아보고 자신의 꿈인 기갑사단장을 언젠가는

이루고 말 것이다 라는 최현필의 거창한 포부(抱負)에 굳이 한상덕도 막지 않았다.

아직은 조선이나, 다른 서양의 나라에서도 전차(戰車)라는 것은 꿈에도 볼 수 없는

것이었으나 언젠가 조선이 제국(帝國)이 되고 세계 최초의 전차를 개발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전차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이 되고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는

올해 겨우 스물 아홉 살의 당찬 젊은이가 바로 최현필이었다.

이렇게 서울을 출발한 최현필과 대정원 요원들은 출발 전에 이미 함경감사

조성하에게 파발을 띄웠기에, 자신들을 안내해줄 김개똥 삼 형제를 만나서 경흥으로

가서 다시 러시아와의 국경을 넘기만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하다면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함흠에 도착했다.

그런데 막상 함흥에 도착하고 보니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김개똥 삼 형제는 이미

지난달에 국경을 넘어 만주 땅으로 호랑이를 사냥하러 가서 그 종적( 迹)이 묘연(

杳然)하다는 무산군수의 전갈뿐이었다.

이대로 무작정 김개똥 삼 형제를 기다리자니, 할 일 없이 시간만 죽이는 결과가 될까

두려웠고, 그렇다고 다른 안내인을 구해 월경(越境)을 하자니 김 개똥 삼 형제만 한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현필은 김개똥 삼 형제를 기다리느니 아무 안내인이나 섭외해서 러시아로

월경하자는 주장을 하였으나 이미 지난해(1864년)에 김개똥 삼 형제의 안내를 받아

외몽골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던 박승인 행보관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김개똥 삼

형제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박승인은 나이로 보나 군 경험으로 보나 최현필보다 못하지 않았으며, 지난번의

외몽골 잠입과 같은 경험이 있었기에, 최현필이 함부로 그의 주장을 물리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무엇보다 노련한 박승인의 말을 따라서 손해 날 것은 없다는

최현필의 생각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선택이었다.

할 수 없이 김개똥 삼 형제가 오면 바로 경흥으로 달려오라고 전갈을 넣고 경흥으로

출발한 대정원 요원들이 함경도 끝자락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경흥 땅에

당도한 것이 바로 지난 달 보름이었다. 거기에서 대정원 요원들은 다시 김개똥 삼

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만주로 호랑이 사냥을 떠난 김개똥 삼 형제는 종무소식(

終無消息)이었다.

4월 5일에 경흥에 도착하여 경흥 관아의 관사에 머물면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기 아까운 생각에 최현필는 대정원

요원들에게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러시아의 동방정책에 대한 강의를 하기로

했다.

이미 서울을 떠나오기 전에 대정원에서 러시아에 대한 약간의 교육을 받았지만

지극히 기초적인 수준의 교육이었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고, 이렇게 김개똥 삼 형제를 기다리며 가끔씩 사냥이나 하고, 주변 경치나

구경하는 것으로 소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김개똥 삼 형제가 언제 경흥에 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동안이라도 러시아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나름의 대비를 하는 것이 앞으로를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교육이었다. 이 교육에는 대정원의 요원들뿐만 아니라 경흥 부사 및 경흥부의

아전들뿐만 아니라 인근에 주둔(駐屯)하고 있던 북병사(北兵使) 소속의 무관들도

참석하여 교육을 받았으니 경흥이 러시아와 인접한 곳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곳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가 4월 보름 정도였으니 쥬신상사의

전준호가 조선 공사관 직원들을 붙잡고 엄마 생각에 통곡하던 시점이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봄기운이 완연할 것이나, 함경도하고도 끝자락인 경흥에는

아침저녁으로 서리가 내리고 살얼음이 얼 정도로 추운 일교차(日較差)가 심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는 4월 말이되었다.

오전에 잠시 경흥 관아의 포졸들과 몸풀기 사냥을 하고 나서 오후가 되자 그동안

해왔던 러시아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경흥 관아의 아전들과 북병사 소속의 무관들,

그리고 대정원의 요원들은 동헌(東軒)의 널찍한 퇴청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최현필은 그 중앙에 역시 책상다리를 한 채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 최현필의

옆에는 박문국(博文局)에서 인쇄한 커다란 세계(世界) 전도(全圖)가 걸개에 걸려

있었다.

"오늘은 먼저 그동안 배웠던 러시아의 역사와 동방 진출사 중에서 점검을 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그동안 배웠던 것을 말씀해 보시겠습니까?"

최현필이 이렇게 말하자 자리에 있는 모든 관헌들과 대정원 요원들은 먼 산을

쳐다본다든가 손톱 밑을 소지한다든가, 아니면 고개를 숙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딴청을 부린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의 질문을 받는 학생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뭔가를 말한다는 것은

조선 사람들에게 있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최현필이 다시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나서질 않으니 할 수 없이 제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

좌중의 인물들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과연 무슨 질문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최현필의 질문이 시작된다.

"먼저 러시아의 동방 진출사에서 가장 처음에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로 쳐들어온

장수가 누구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답변해 주실 분 안 계십니까?"

"..."

"..."

"..."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대답이 없었다.

최현필은 좌중을 둘러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

"사또께서 먼저 한 말씀 해주시지요. 아무래도 사또께서 해 주셔야 다른 관헌들도

배운 바를 점검할 수 있겠습니다."

"본관(本官)이요?"

"그렇습니다."

"으...음..."

경흥 부사 김기배는 최현필을 비롯한 대정원의 요원들보다 훨씬 나이도 많았고,

관리로서의 경험도 많았고 품계도 높았지만 근위천군의 연대 참모라는 막강한?

직책을 가지고 있는 최현필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무시하지 못했다. 일단

최현필은 무관으로 문관인 자신과는 다른 계통의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어린 임금의 두터운 신임과 백성들의 한결같은 천군에 대한 지지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때이니 만큼 천군의 위세를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천군 출신의

최현필이었기에 아무리 그가 젊다고 해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잠시 난처한 얼굴을 하던 경흥 부사 김기배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말을

한다.

"서양에 있는 러시아가 동양으로 눈을 돌린 시기는 그렇게 길지 않은 것으로 본관은

배웠소이다. 기껏해야 지금으로부터 이백 삼 사십 년 정도 되었을 뿐이지요.

러시아가 처음으로 우랄산맥을 넘어 서 시베리아로 진출할 당시의 황제-짜르-는 이반

4세라는 황제였는데 성격이 급하고, 공포 정치를 하였다 하여 이반 뇌제(雷帝)라는

별칭으로 불렸다고 본관은 배웠소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지도를 바라보는 척하며 최현필의 반응을 살피던 김기배는,

최현필이 자신에게 빙그레 웃는 것이 아직까지는 크게 틀린 부분이 없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한다.

잠시 뜸을 들이던 김기배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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