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95화 (93/318)

90.

올해 초에 남양의 삼도 수군 통어영이 조선 해군사령부로 개편되고 나서 그

사령관으로 보직 임명된 김종완 조선 해군 사령관 겸 이순신함의 함장은 지금 조선

최초의 증기함 풍백호에 탑승하고 있었다.

풍백함에 김종완이 탑승하고 있다고 하니 김종완이 풍백함의 함장으로 좌천당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질 분도 있을 수 있겠으나 지금 김종완은 풍백함의 광학조준기를

이용한 120mm 쌍열주포(雙列主砲)의 시험발사를 참관하기 위해 풍백함에 승선한

것이다.

풍백함은 그동안 충분할 만큼의 시험발사에 성공하였지만 이번의 시험발사는 그

성격이 약간 달랐다. 그것은 바로 신기도감 기기창에서 개발하여 해군에 인도된

광학조준기의 첫 운용시험이라는 점이었으니, 그러므로 그 의미에 있어서 약간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이미 지난해(1865년) 진수하여 시험운용을 거쳐서 해군에 인도된 풍백함은 만재

배수량은 1500톤에 불과한 연안방어용의 소형 함선이었으나, 주포로 120mm 포 4문이

선수(船首)에 2문, 선미(船尾)에 2문씩 쌍열(雙列)로 배치된 앙 애슬론(en echelon)

방식의 회전식 포탑을 채용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형태의 주포를 보유하고 있었다.

각각 2문씩 배치된 선수와 선미의 주포에는 이순신함의 주포인 5인치 포의 회전식

포탑과 비슷한 두꺼운 강철 합금의 구조물이 포수와 2문의 쌍열주포를 보호하고

있는데 훗날 이것을 모방한 여러 나라의 회전식 포탑이 설치되기에 이르니 풍백함의

쌍열주포는 전함(戰艦)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풍백함 식(式) 쌍열주포라는 용어를

전사(戰史)에 올리게 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물론 앙 애슬론 방식의 회전식 주포라는 이름은 역사 속에 등장하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풍백함의 모양은 일반적인 기범선의 형태와 다를 바 없었으나 쌍열주포에 장착된

회전식 포탑이 약간은 어색하면서 특이한 배였다.

이런 풍백함이 지금 남양만 앞 바다 대부도의 섬 그늘에서 주포 발사시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포 우로 14밀!"

관측병 박상현이 이렇게 소리치자 풍백함 포술장 함종문은 박상현을 한 번 힐끗

보더니,

"확실한가? 박상현!"

풍백함의 포술장(砲術長)은 다름 아닌 이순신함의 포술병 출신 함종문이다.

포술장 함종문은 이제 겨우 24살로 조선공사관의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지현과

함께 천군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천군이었다.

어지간하면 부사관 이상의 지원을 받아서 시간원정단을 구성하려고 했으나 본인이

어떻게 원정단의 결성을 알았는지 죽어도 원정단에 따라가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억지로 원정단에 뽑히게 된 몇 안 되는 사병 출신의 천군이었다.

함종문과 박지현은 나이도 같고 성격도 비슷하여 서로 친구 먹기로 하고 친하게

지냈지만 맡은바 임무와 병과가 다르다 보니 지금은 서로의 얼굴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못 본지 오래되었다.

천군에서 막내이다 보니 평소에는 까불기도 잘하고, 천군의 여러 선배들에게

어리광도 잘 부리는 성격의 함종문이었지만 이렇게 풍백함의 포술장이 되어 밑에

많은 수의 부하들을 거느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엄이 몸에 베였는데, 그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나왔는지도 모른다.

포술장 함종문의 호통소리에 광학조준기를 통해 표적을 관측하던 박상현이 움찔한다.

이미 풍백함의 120mm 쌍열주포는 충분한 시험발사를 하였지만 이렇게 처음으로 광학

조준기를 이용한 시험발사인지라 박상현도 떨리는 것을 어쩌지 못하였다.

지금 관측병을 맡고 있는 박상현은 올해 겨우 19살의 어린 나이였으나, 조선의

산학자(算學者)로 숙종, 영조 시대에 이름을 떨친 홍정하(洪正夏: 1684 ?)의

자손에게서 홍정하가 서술한 구일집(九一集)을 배워 통달한 수학의 영재였다.

홍정하는 숙종, 영조 때의 조선을 대표하는 산학자로써 구일집이라는 조선최고의

산학서를 남긴 인물인데, 그가 쓴 구일집에 조선의 대표 산학자인 자신과 청국의

뛰어난 산학자 하국주와의 만남에 대해 서술되어 있는 게 있는데 그 내용이 자못

흥미롭다.

청국의 천문관인 흠천감의 사력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던 하국주는 청국의 사신을

따라서 조선에 오게 되는데, 그때 그런 하국주의 소문을 듣고 홍정하가 찾아가서 "

조선의 이름없는 산학자인데 대인의 풍모를 흠모하고 있던 바 이렇게 당돌하게

찾아왔습니다. 부디 산학에 대한 대인의 높은 가르침을 소인에게 내려주십시오."

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가 1713년 5월 29일이었다고 구일집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홍정하의 이런 공손한 인사를 받은 하국주는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홍정하에게

산학 문제를 하나 냈는데 하국주의 표정은 내 까짓게 이것을 알겠느냐 하는

표정이었다.

"360명이 한 사람마다 은1냥 8전을 낸 합계는 얼마나 되겠소? 그리고 은 351냥이

있소, 한 섬의 값이 1냥 5전한다면 몇 섬을 구입할 수 있겠소?"

이미 어려서부터 산학에 재능이 있던 홍정하는,

"앞 문제의 답은 648냥이고, 다음 문제의 답은 234섬이 되옵니다."

홍정하가 답을 이렇게 금방 구하자 하국주는 이번에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도형에

관한 문제를 냈다.

"제곱한 넓이가 225평방자일 때 한 변의 길이는 얼마요?"

"제곱해서 225일 수는 15가 되니까 답은 15자가 되지요."

홍정하는 이 문제도 금방 맞추고 말았다.

슬슬 열이 오른 하국주는 홍정하에게 회심의 문제를 냈는데, 설마 네가 이것도

맞추겠느냐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런 하국주의 생각과 달리 홍정하는 그 문제도 쉽게 맞추고 말았다.

이제 반대로 홍정하가 문제를 내었는데 하국주는 홍정하의 그 문제를 그 자리에서

풀지 못하고 하루의 말미를 받고 관사에 가서 하루 밤낮을 끙끙 머리를 싸매고

노력했어도 결국 맞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홍정하라고 해서 모든 산학을 다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국주가 마지막까지 공개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현대의 삼각함수를

구하는 문제였다. 하국주는 홍정하의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수치심에 최후로

삼각함수를 구하는 문제를 냈고, 그에 대한 배움이 없었던 홍정하는 결국 그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

홍정하는 그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는 자괴심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배움을

갈구하는 학자의 마음으로 하국주에게 사정하여 결국 삼각함수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나중에는 하국주로부터 유클리드가 저술한 기하학서의 전반(前半) 부분을

한역(漢譯)한 기하원본(幾何原本)과 원주율의 근사값을 구하는 방법을 서술한

측량전의(測量典儀), 그리고 하국주 자신이 저술한 구고도설(勾股圖說)을 홍정하에게

빌려보게 하였다.

그중 하국주 자신이 저술한 구고도설은 '밑변이 3, 높이가 4인 직각 삼각형의 빗변이

길이는 5가 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같은 내용의 책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이것에 대한 정의가 거의 없었고 겨우 중국에서 건너온 구장산술(

九章算術)에 약간 있는 정도였으니 홍정하가 조선의 산학 발전에 끼친 공은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이런 홍정하의 가문은 원래부터 조선에서 알아주는 산학자 가문이었다.

그러나 홍정하가 죽고 나자 그의 가문에서는 이후 뚜렷한 산학자의 배출이 없었고

서서히 몰락해가고 말았다.

당대 조선의 제일가는 산학자 집안이었던 홍정하의 가문도 그가 죽고 나자 중인

신분의 집안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서서히 몰락하게 되는데 그 집안의

마지막 자손으로부터 산학을 배운 박상현은 역시 마찬가지로 산학을 업으로 삼았던

중인 집안 출신이었다.

가세(家勢)가 빈한(貧寒)한 관계로 군포를 납부할 형편이 못 되었던 박상현은 지금은

이렇게 군역을 대신하기 위해 군문에 종사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조선 전통의 산학과

천군에서 배운 수학을 응용하여 조선의 수학을 발전시킬 욕심을 가지고 있는 한

마디로 풍백함의 한낱 관측병으로 썩기에는 아까운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김종완은 그의 이런 재능을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보고를 대정원에 이미

올렸기에 대정원장 한상덕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관측병 박상현은 함종문의 확인에 자신의 직분을 잊지 않고,

"확실합니다. 포술장 나으리."

박상현의 확인이 있자 함종문이 다시 소리친다.

"주포 우로 14밀."

함종문의 확인 구령이 있자 선미의 120mm 쌍열주포 2문이 서서히 오른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한다.

회전식 포탑의 선회는 좌우 어느 쪽으로도 자유롭게 이루어 졌지만, 덕분에

회전기관을 움직이는 군사들은 죽을 맛이다.

그리고 풍백함의 관측병 박상현이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광학조준기는 신기도감의

기기창에서 만들어서 지난 3월에 해군에 인도(印度)된 T자형의 모양에 프레스로

찍어낸 얇은 관으로 껍데기를 덮어씌운 모습이다.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 기술진이 보았다면 기겁할 만한 모양새였으나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고, 나름대로의 성능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T자형의 양쪽 끝 거울의 각을 조절해 상(像)이 들어오면 T자 상위(上位) 관을

통과해서 하위(下位) 관에 들어와 관측병의 창에 상이 맺히며 양쪽 상이 일치할 때의

각을 읽어 계산하기만 하면 거리를 읽을 수 있도록 한, 단순하다면 단순한 모양과

원리였으나 이것을 개발하느라고 기기창의 기술자들은 몇 개월의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것도 천군이 보유한 수퍼 컴퓨터의 자료와 한국 국방과학연구소의 연구 경험과

운용 노하우의 바탕이 있었기에 개발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만일 수퍼 컴퓨터가 없었다면 일일이 사람

손으로 계산하고 만들어야 했기에 몇 배의 시간이 더 걸렸을지 몰랐다. 특히 미세한

거울각의 흔들림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 광학조준기 덕분에 원래 사격이라면 일가견이 있던 조선사람들의 명중률은 가히

신화(神話)적일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니, 나중에 조선 해군과 해전(

海戰)을 벌이게 될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몰라도 적에게는 지옥의 불 벼락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광학조준기의 단점도 있었는데, 그것은 자동으로 계산되는 계산기가 없는

현실에서 관측병의 수학적인 능력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남양의 해군사관학교에서나 해군 지휘부에서는 천군의 수학자들을

초빙하여 수학적 재능이 있는 관측병들에게 따로 수학의 원리와 이해를 돕는

특별교육까지 시켜야 했다. 그중 박상현은 그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다른 조선 해군의 관측병들보다 발군(拔群)의 실력으로 교수하던 천군

수학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앙각(仰角) 35도"

박상현의 소리가 다시 들리고 함종문의 확인이 있자 포수 옆에 있는 부사수가

낑낑거리며 주포 한 쪽에 마련된 둥그런 바퀴를 돌린다.

천천히 2문의 120mm 주포가, 양기(陽氣) 뻗친 새벽 좆이 빳딱빳딱 서듯이 고개를

바짝 쳐들기 시작한다.

이어서 함종문의 지시로 주포에 장착할 포탄과 장약(裝藥)이 선택되고 그 명령에

따라 장전수들이 포탄과 장약을 밀대로 밀어 넣고 주포의 덮개를 닫으며 소리친다.

"방포(放砲) 준비 끝"

이순신함과 같은 최신예의 전투함이었다면 전자식 사통장치에 의한 정확한 거리와

풍속 등에 대한 자료가 산출되고 발사할 탄약이 선정되면 급탄장치가 자동으로

주포에 탄약을 장전할 일이었지만 그런 것들을 기대할 수도 없는 지금의 조선해군

실정에 이 정도로 숙달된 동작을 보인다는 것은 그동안의 노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포수의 외침이 있자 함종문은 해군사령관 김종완과 풍백함 함장 이원희가 있는 쪽을

쳐다보며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린다.

"대감께서 명령을 내리시지요."

김종완이 이렇게 이원희 함장에게 권하자,

"사령관 대감께서 계시온데 어찌 소장(小將)이 방포 명령을 내릴 수가 있겠사옵니까?"

이원희는 도리어 이렇게 사양의 말을 하는데 김종완이 다시 권한다.

"오늘 풍백함이 광학조준기를 이용한 최초의 방포를 시험하는 마당에 함장인

대감께서 방포 명령을 내리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사양하지 마십시오."

김종완이 이렇게까지 권하자 이원희는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방포 명령을 내린다.

"방포!"

"방포"

이원희의 방포 명령을 받은 포술장 함종문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수가 주포의 덮개에

달린 끈을 잡아당긴다. 쾅하는 굉음(轟音)과 함께 2문의 120mm 주포가 불을 뿜었고

엄청난 폭음과 함께 포신이 발사의 반동으로 뒤로 후퇴했다.

주포에 주퇴복좌기(駐退復座機)를 장치한 덕분에 배가 한 번 흔들리기는 했으나,

배에 크게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후 박상현이 소리친다.

"명중!"

표적은 약 2Km 정도 떨어진 바다에 정박한 낡은 폐 어선이었는데 2발의 포탄을

뒤집어쓴 표적은 산산이 부서진 채 흔적을 찾을 수도 없었다.

쌍안경으로 관측하던 김종완과 이원희, 그리고 함종문이 그 모습을 확인하고 환한

미소를 짓는데, 옆에서 관람하던 다른 병사들과 포수, 탄약수들이 너나할 것 없이

와하고 소리치며,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모든 병사들이 이렇게 배가 떠나 갈 듯 주상전하 천세를 연호(連呼)하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연락병 하나가 달려오더니 감종완과 이원희에게,

"두 분 대감, 이순신함으로부터 발광신호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응? 발광신호가...?"

"그렇사옵니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렇게 호들갑인가?"

이원희는 이미 경상좌도 병마절제사를 지낸바 있기에 대감이란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으나 자신보다 젊지만 능력은 더 뛰어난 사령관 앞에서 대감 소리를

듣는 것이 민망한지 괜히 연락병에게 역정을 냈다.

이원희의 역정에 연락병은 잠시 주눅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보고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순신함으로부터 발광신호가 왔는데 내용을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선박 한

척이 지금 막 영흥도와 대부도 사이의 해협에 진입하여 우리가 있는 방면으로

북상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대감."

연락병은 이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이원희에게 전하는데 이원희는 그

문서를 한 번 훑어보더니 다시 김종완에게 전달한다.

김종완은 이순신함으로부터 온 발광신호의 내용을 살펴보더니,

"음... 증기선이나 작은 목선 정도의 배라... 이순신함이 관측되기 전에 포착해서

다행입니다. 이순신함의 레이다가 그 정도의 목선을 포착하다니 대단하군..."

이순신함은 대부도와 풍백함의 주포 발사 시험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서

경계를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괴선박에 이순신함이나 풍백함이 노출되기 전에

레이더로 포착한 것이다. 기껏해야 증기선이나 작은 목선 정도일 것이나 아직 신분의

확인이 안된 상태의 괴선박이었기에 충분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 해군의 입장에서는 이순신함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른 나라의 해군이나 배에

그 정체가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순신함은 영원히 그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만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서

나쁠 일은 없었다.

김종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원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풍백함으로 괴선박을 한 번 문정(問情)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풍백함으로 말이옵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그 괴선박이 양이의 통상요구를 빙자한 침범이라면 우리

풍백함으로 격침시키면 그만인걸요... 풍백함의 승무원들에게 실전(實戰) 경험을

쌓게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알겠사옵니다. 사령관 대감의 뜻에 따르지요."

풍백함도 이순신함과 마찬가지로 어지간하면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원칙이었으나, 모처럼 제대로 된 사통장치를- 비록 광학조준식의 사통장치이지만-

보유한 기념으로 괴선박을 문정하고 여의치 않으면 최초의 교전까지 염두에 둔

김종완의 생각이었다.

이원희는 김종완의 뜻에 따라 풍백함으로 괴선박을 문정할 것을 결정하고

승무원들에게 괴선박이 있는 방향으로 풍백함을 이동시킬 것을 명령한다.

이원희의 명령이 떨어지자 항해사가 기관실에 기관 출력을 올릴 것을 지시하고

풍백함 중앙에 위치한 검은 연통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서서히

풍백함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이미 풍백함의 기관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보일러를 끄지 않고 예열(豫熱)

을 하고 있었기에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방금 주포의 시험발사를 마친 포술장 박상현과 포수들도 앞으로 다가올 풍백함

최초의 실전이 될지도 모르는 문정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포를 점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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